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200904 아니 에르노.

작가의 이름은 엄마에게서 처음 들었다.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울엄마가 오십 넘어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육십 넘은 지금도 열심히 쓰신다. 어쨌거나 엄마가 대학 수업 듣던 시절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와 집착을 읽고 싶다 하셨는데 두 권 다 품절이었다. 개인 판매자들은 절판된 책을 터무니 없는 값에 팔고 있었다. 그래서 알라딘 중고알리미에 걸어 놓고 오래 기다렸다. 등록 알림이 오면 재빠르게 장바구니에 담았지만 금세 누군가 먼저 결제를 해 버렸다… 몇 년 만에 두 책을 구해서 엄마에게 건네자 매우 기뻐하셨다. 정작 나는 읽지 않았지…

내가 처음 읽은 작가의 책은 ‘사진의 용도’ 였다. 작년 4월 전자도서관에 저절로 빌려져 있길래 읽어 봤다. 그 때 감상도 남겨놨는데 일부를 퍼오자면 풉. 재미없었나 보다. 독후감이 온통 배배 꼬였다.

‘...질투가 많은 나는 또 생각한다. 철저한 문돌이 예술가들끼리 사랑하니 이런 아기자기한 사랑의 유희를 글로 나눌 수 있다. 사진 하나로 각자 쓴 글을 나중에 교환해 보기. 한 번에 두 글을 보는 독자들은 눈치챈다. 둘이 생각한 것, 경험한 것의 교집합이 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아마 둘은 그걸 확인하고 무척이나 흡족했겠지? (그리고 헤어지지 않았다면 또 옷가지를 벗어던지고...얼씨구 절씨구...다음 날 또 사진을 찍었겠지. 흥)’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른가. 닮았나.
달라졌다-그때는 일을 쉬었다. 집에 오래 있었다. 아직 젖을 먹였다. 가족이 네 명이 된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코로나아웃ㅜㅜ) 동물원에 다녀왔다.
지금은 일을 하고, 밖에 나가고, 젖은 말랐고, 동물원에 갈 수 없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작년 이맘쯤까지도 가 본 적 없는 동네 골목골목을 걸어다녔다. 아, 맥주를 마실 수 있다.ㅎㅎㅎ
그대로이다-책을 읽는다. 독후감을 쓴다. 소설을 쓴다. 옹벽 옆 같은 집에 산다. 가족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같은 자리에 누워 잠이 들고 깨어난다.

프랑스 몰라, 프랑스 타령 그만해 하더니 저번에 읽은 미셸 우엘벡 소설도 프랑스가 배경이고, 이 책도 온통 프랑스 현대사와 그 공간과 시간을 지나온 개인, 그 주변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자서전 같은데 ‘나’의 이야기가 아닌 ’그녀’의 이야기로 서술했다. 나보다 사십 살 쯤 많은 먼 대륙 여성의 회고담 속 문화 예술 철학 정치 관련 인물들은 온통 내 삶과 동떨어져 있었다. 교차점이 많지 않았다. 다만 가르치는 직업과 쓰고 싶은 욕구, 성장, 욕망, 연애 정도는 공명할 부분이 있었는지 잠시 관심 있게 보았지만 이미 다른 책들로 써 버려서 그런가 이 책에서는 파편으로만 담겨 있었다.
남아 있는 사진, 전통으로 남은 명절의 식탁이 반복되며 달라진 개인과 가족과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가 선거에서 이기고 지고 집권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건 여기 지금 사는 나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 유년부터 노년까지 생애를 관통하는 자기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까? 지금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다. 온통 토막쳐서 각각 다른 이야기로 흩뿌리고 싶다. 내 이야기 아닌 척, 내가 살았던 시간이 아닌 척, 이건 허구입니다. 양념을 치고 사람을 섞고 시간과 사건을 재배치하는 순간 이것은 역사가 아닙니다. 가리면서 노출하는 모순 속에 나는 감춰질까 드러날까. 나이를 먹어도 쓰려는 마음을 놓지 않고, 사랑도 남자도 놓지 않은 작가처럼, 울엄마처럼, 또 어디선가 쓸 거야 쓸 거라고, 쓰고 있어 몰래몰래, 하는 사람들처럼, 계속 쓰게 될지 언젠가는 영영 쓰지 않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아니 에르노의 다른 책도 더 볼지는 아직 모르겠다. 재미없어 ㅠㅠ ㅠ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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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 2020-09-04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어머님께서도 글을 쓰시는군요~
반유행열반인님,프랑스에 꽤 관심이 많아보이세요.
이 기회에 앗싸리 프랑스어 배워보시는건 어떤가요?^^ 에르노 책 읽어보려했는데 재미없군요 ㅠ

반유행열반인 2020-09-04 22:28   좋아요 1 | URL
저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도 프랑스어 독일어 중에 물론 독일어지!! 하고 유럽 처음이자 마지막 갈 때도 프랑스를 왜 가 오로지 독일어권!!!이러던 사람인데 읽는 족족 프랑스네요...심지어 제일 좋아하는 밀란쿤데라 할아버지도 생각해보니 프랑스어 소설이었어요,,,그래도 프랑스 관심 없다 그만해라 프랑스 하고 밀어냅니다...
어머님께서도 하시니까 막 저도 글 열심히 써야 될 거 같아요. ㅎㅎㅎ
취향 차이도 있고 제가 워낙 프랑스 사회와 역사에 무지한 부분도 많으니 관심이 있으시다면 재미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회되면 읽어주시고 감상 나눠주세요. (나만 당할 순 없어요...ㅎㅎㅎㅎ)

청공 2020-09-04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프랑스어를 택했답니다 ㅎ
프랑스권 출판시장이 훨 활발해서일까요? 독일권보다? 더 ?많은 책이 소개되고 있는것 같아요. 저만의 생각 ㅎ
나만 당할수없다에 빵터졌어요. (그렇게 별루였다니ㅠ ) 출판사에서 책표지는 왜 죄다 이쁘게 만들어 놓았나요?^^

반유행열반인 2020-09-05 05:27   좋아요 0 | URL
예뻐서 사고 싶은 책 만드는 것도 출판사 능력인 듯요 ㅋㅋ프랑스어 배우셨군요. 어려서는 독일 사람이 쓴 소설이 간지나 보였는데 클수록 프랑스 사람이 쓴 소설이 더 야하고 미쳤고(눈부시다고 막 사람 죽이고 그래...) 그래서 찾아보게 되나 혼자 생각 중입니다...

바다그리기 2020-09-05 0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빠도 70 넘으셔서 우연히 듣게된 수필강좌에 푹 빠지셔서는 77세에 수필가로 등단 하시고 이년 후엔 시인도 되셨어요. 천재 소리 들었지만 가난한 홀어머니의 외아들이라 일찌감치 공부를 접으셔서 평생 학력 컴플렉스로 괴로워하시던 아빠는 등단 후 대학교 총장님과 동료 문학가가 되어 우정을 나누는 노년의 하루하루가 설레고 행복하시다면서 엄청난 다작을 하고 계신답니다.
님과 저는 참 신기하게 비슷한 점이 하나씩 나타나네요. ㅎㅎㅎ
엄마를 아빠보다 천만배쯤 더 사랑하는 저는 문학으로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고 계신다는 아빠를 이해 해드리지 못하고 있지만.. 엄마와 함께 글쓰기를 하고 계신다는 님이 정말 많이 부럽네요.
어머니와 함께 좋은 글을 쓰시는 행복한 시간들을 오래오래 누리시기 바라요~

2020-09-05 0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5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5 0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0-09-05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탁탁 토막쳐서 찌개도 보글보글 끓이고 괜찮은 놈은 굽고, ㅋㅋ 전 아니에르노 한권 읽었는 데 갸웃 하면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하지만 왜 재미 없어하시는 지도 잘 알겠어여 ㅠ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0-09-05 12:1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집착은 재밌다고 합니다. 저도 아직 안 읽음...나만 재미없는 거 아니라 덜 시무룩 함 ㅋㅋ

다락방 2020-09-05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읽어서 모르겠지만 그간의 글들로 미루어보면 반유행열반인님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꽤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9-05 16:09   좋아요 0 | URL
네 어머니집에 소장중이라 기회되면 읽어보겠습니다.

다락방 2020-09-05 16:11   좋아요 0 | URL
제가 댓글달고난 후 가만 생각해보니 단순한 열정은 반유행열반인님의 인생책리스트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 알라딘추천마법사보다 정확한 다락방 추천마법사의 맞춤 추천이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9-05 16:18   좋아요 0 | URL
재밌어요? ㅋㅋㅋㅋ추천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0-09-05 16:26   좋아요 0 | URL
재미.. 랑은 완전히 거리가 멀고요. 뭐라해야할까. 어떤 집요함,노골적임,끝까지 감.. 이런 것들이 들어 있는데요. 제가 이십대에는 읽고 이게 뭐야 던졌단 말예요? 너무 솔직해서 불편했어요. 그런데 삼십대 후반이었나, 재독을 하는데 이렇게 연애의 한복판에 던져진, 흠뻑 빠진 여자의 내면을 잘 보여주다니! 거기에서 오는 감탄이 있어요.
반유행열반인님 저랑 책 취향 너무 다르고(야생의 위로 싫어하셨죠), 글쓰는 타입도 너무 다르지만, 단순한 열정은 공통으로 박수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9-05 16:42   좋아요 0 | URL
일방적으로 친구 끊고 이런 댓글 다는 저의를 모르겠네...좋은 책인 거 압니다. 읽어볼 생각입니다. 그래도 꽤 좋아하겠다느니 인생책이니 단정하시는 게 기분이 나쁘네요. 기분 나쁘게 하는 게 목적이셨으면 성공하셨네요. 덕분에 즐거운 주말 되셨길 빕니다.

Alex 2020-09-12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월‘. 이 책은 어떤 내용의 책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권장할 만한 책인가요?

반유행열반인 2020-09-13 04:18   좋아요 0 | URL
쉬이 읽히진 않고 재미는 없고 아니에르노라는 작가를 알 거나 관심이 있으면 그 사람 입으로 자기가 거친 생애를 듣는 정도의 책입니다. 어떤 책을 권하는 일은 (위 댓글에서 제가 썽내는 거 보면) 그리 권장할 일이 아닌 것 같구요ㅎㅎㅎ
 
에티오피아 시다모 디카페인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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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 번째 구매...지만 벌써 넉 달만. 이번에도 가족아이디 쿠폰 털어 월말에 사고 나니 다음날 신제품 코스타리카 원두가 나왔다 두둥...그렇지 디카페인이니까 카페인 있는 거도 사야지 그런 거지...빙하수에 원두를 담그어 카페인 뺐다는 광고 문구를 이번에 처음 봤다. 내일은 이 커피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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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의 세계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양지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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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1 요스타케 신스케.

민트색 표지가 귀여운 손바닥 만한 책이다. 같은 작가 책은 거의 다 샀는데 이 책은 유독 짧다. 앉아서 1분컷, 순식간에 읽는다.
만약, 을 말하기 전에,
만약의 세계에 놓인 무엇이든 절실한 것들은
손목을 잡아채서 내 앞으로 데려다 놓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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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코 테이크아웃 18
정용준 지음, 무나씨 그림 / 미메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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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9 정용준.

한 달에 소설 다섯 권은 무거웠니. 월말이 다가오자 치트키 치듯 단편 하나 분량 책을 빌렸다. 사실 전자책이라 빌리고 나서야 얼마만한 책인지 알았다. 정용준 종이책 세 권 사 놓고 아직도 두 권 못 봤는데. 언제 볼 거야.

미이와 주우는 우연히 다시 만난다. 미이가 갑자기 떠났고, 주우는 미이를 찾아 세상을 헤맸다. 주우는 틱 장애가 있어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욕을 한다. 그런 주우를 괴물 취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이 만이 주우를 이해하고 입 속 무언가에게 치즈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두 번이나 머리털을 잘라준다. 미이의 치즈 같은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사랑하면 안 될 것들을 사랑하는 일, 이라는데, 그렇게 들어도 잘 모르겠더라.

말을 더듬고, 말을 하지 못하고,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소설이 제법 있었다. 나는 아무 말이나 막힘 없이 쏟아서 문제인데. 그럼 내 입에도 치즈 비슷한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입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을 수도 있겠다.
정용준 소설 속 자폐에 가까운 인물들이 구원을 갈구하는 대상은 비슷한 상처를 가진 다른 하나의 사람이다. 대개 이성이고,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상처를 핥고, 그러다 울고, 스스로의 최악을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 앞에서 처참하게 부서지고, 난장판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마음 저미는 난장판은 없었다. 마스크도 벗고 공도 뱉었다. 머리카락도 말끔하게 잘랐다. 이제 소설 속 인물들을 조금 덜 괴롭힐 만큼 작가 마음이 유해졌나 싶은데, 못된 독자는 그래서 재미가 좀 덜 한 거 같네요...인물의 불행이 내 슬픔이자 즐거움...하고 있다.(변태새끼야…)
책 속 일러스트에는 온통 비슷하게 생긴 시꺼먼 부처님들이 입을 막고 입에 문 공을 꺼내고 머리도 잘라줬다. 정용준 책은 읽다 보면 어떤 소설은 엄청 좋은 거 같다가, 이건 또 모르겠다가 했다. 이번 건 모르겠다 에 가까웠다.

+밑줄 긋기

-둘은 걸었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버스 정류장에 멈추지도 않았다. 근린공원을 돌고 8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지나 불 꺼진 초등학교 운동장을 두 바퀴 걷고 파란 육교를 건넜다. 그동안 둘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기이했다. 둘 중 누구도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초조하지도 답답하지도 않은 침묵. 편하게 주고받는 대화를 능가하는 자연스러움이 녹아 있었다. 미이는 길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췄다. 주우도 멈췄다. 가로등 불빛이 둘을 비췄고 그림자 두 개가 바닥에 길게 서 있었다. 미이가 말했다.
넌 날 좋아하면 안 돼.
주우가 왜? 라고 묻는 눈으로 미이를 바라봤다.
난 널 좋아하지 않을 거거든.

상관 없어.

미이는 주우가 쓴 글씨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냐. 서로 안 좋아하면 반드시 한쪽은 슬퍼져.
주우는 볼펜을 들고 한참 뜸을 들이다 뭔가를 썼다. 그리고 노트를 찢어 미이의 손에 쥐어 주고 앞서 걸었다.

안 좋아하는 것은 더 슬퍼.

-주우가 마스크를 벗는 동안 미이는 한 번도 숨을 쉬지 않았다. 아니, 쉴 수 없었다. 20초도 안 된 그 장면은 미이에게 정지 화면처럼 느껴졌다. 마스크를 벗고 입술 위에 까만 색 전기 테이프를 듣고 그 밑에 두꺼운 장판 테이프를 뜯어 냈다. 그리고 주우는 뭔가를 뱉어 냈다. 골프공 크기의 까만 플라스틱 공이었다. 주우는 입을 크게 벌려 뻐근한 턱을 움직였다. 미이는 건네받은 재갈을 손에 들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뭐야?
공 재갈이라고 하는 거야.
뭐야. 말 잘하잖아.
내가 언제 말 못한다고 했어?
그런데 왜?
다른 말도 잘하니까 그렇지.
지금은?
주우는 눈을 꾹 감고 10초쯤 뭔가에 집중했다. 이내 눈을 뜨고 어깨를 살짝 들었다 내렸다.
괜찮을 것 같아. 자고 있는 것 같아.
자? 누가?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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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9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9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0-09-01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특히 장편 말고 단편집을 읽고 나면 작가가 뭐를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를 때가 있어서 생각하기 복잡해
요즘은 비교적 명쾌한 내용의 에세이를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장르마다 다 매력이 있는 건데 언제부터인가 제가 주로 에세이 분야를 사서 읽고 있더라고요.
말로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하고선. ㅋ

반유행열반인 2020-09-01 16:42   좋아요 1 | URL
저는 소설 읽기가 제일 재미있고 진도도 잘 나가는데, 소설도 많이 사는데 자꾸 엉뚱한 다른 책으로 도망가곤 합니다. 참을 수 없는 소설의 무거움인지...
 
[eBook] 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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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9 미셸 우엘벡.

습도가 100퍼센트인 날, 5천 걸음 밖에 있는 공원에 갔다. 비바람이 지난 뒤의 흙바닥은 진창과 떨어진 잎들로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물기 많은 끈적한 바람은 생각보다 산뜻했다. 건강을 바라는 성실한 사람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와 너른 잔디밭 둘레를 끝없이 끝없이 돌고 있었다. 
꽃이 다 진 때임을 알면서도 연못에 갔다. 푸른 연잎만 한가득, 물방울 고인 손바닥을 하늘 향해 펼치고 하늘하늘거렸다. 꽃이 거기 있었다는 늦은 연락처럼 연밥만 두세 개 보았다. 연화정이라 이름 붙은 정자 위에는 연꽃 같은 할머니 하나만 피어있었다. 
축축 젖은 나무 의자에 앉아 책을 보았다. 다 그친 게 아니었는지 자잘한 빗방울이 다시 쏟아졌다. 다시 그쳤다. 작고 부지런한 참새들이 주위를 폴짝폴짝 맴돌며 바닥을 열심히 쪼아댔다. 적어도 스무 마리는 되는 참새들은 겁이 없는가, 나 하나쯤은 만만한가, 연신 콕콕 오물오물 퉷퉷 콕콕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대가리도 주둥이도 눈깔도 자그만게 되게 귀엽다. 무심한 참새목장 새치기처럼 참새를 풀어놓고 내 할 일-독서-했다. 
참새만 맴도나 했는데, 나는 노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앉은 자리 삼십 센티도 안 되는 옆에 왠 할머니가 다가와 내 가방과 우산을 치우고 앉으려 했다. 의자에 붙은 경고문을 가리키며 ‘이 미터 안으로 바짝 붙으면 안 된대요!’ 해도 막무가내였다. 아무 말 없던 할머니는 십 분 쯤 자리를 지키다 떠났다. 또 다른 할머니는 옆에 우물쭈물 다가와서 공부하시나, 하다가 전화기를 불쑥 내 얼굴 쪽으로 붙이더니 이게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 젊은 사람이 좀 고쳐 보시게...그런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절룩대고 검버섯 잔뜩 핀 가는 다리로 부지런히 걷던 할아버지, 맞은 편 벤치에서 푸시업을 하고 제자리 뛰기를 하고 생난리를 치다 한숨을 쉬며 자리에 주저 앉던 또 다른 할아버지. 거참 이런 노화 선배님들 사이에서 늙어가고 죽어가는 공포를 (발기 안 되고 늘어진 성기 때문에 아무도 다가오지도 끌려하지도 않아 외로이 서성이며) 느끼는 사람이 잔뜩 나오는 소설을 읽고 있자니, 가 본 적 없는 VR체험관에 온 기분이었다. 

*
눈빛. 말이 아닌 눈빛으로 사실은 말야, 솔직히 그렇잖아, 우리는 죽은 뭔가에 인공호흡을 하고 있잖아, 했다. 심정지 상태에서 다시 생명 신호가 잡히게 하려면 상당히 과격하게, 격렬하게, 갈비뼈가 부서질 정도의 응급구호조치를 해야 한다. 나는 집요했고, 집요했고, 언제나 집요했기 때문에 죽여버린 마음을 혼수상태까지나마 되돌려 놓았다.고 믿었다. 착각일 거야.
등 뒤에서 벽치기 하던 심장이 다시 심장 께에서 드리블을 했다. 내 심장은 제대로 드리블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주지 못할 만큼 먼 세상에 가 있었다.

왜 내가 읽었거나 읽고 싶거나 샀거나 빌렸거나 한 책이 책장이든 목록이든 꽂혀 있는 걸 보면 흥분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같은 책 읽은 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애처럼 왜 이래.
미셸 우엘벡 소설을 읽게 된 건, 이번에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면 예전에 낸 거 먼저 봐야지 하고 전자책 장바구니에 소립자를 꽂아놨다가, 서울도서관이 어이어이 살 필요 없어 내가 다 마련해 놨다구- 하길래 욕하던 건 이제 다 잊고 오랜 로딩 쯤이야 직전에 읽은 페이지를 되새기는 꼭 필요한 시간이지, 암암 하고 빌렸다.
읽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아 난 이런 취향이었군, 친구들아 너희는 이 책을 읽었니 하고 물었더니 두 명이나 응 오래 전에, 기억도 안 나네, 해서 아 나쁜 놈들 이렇게 재미있는 걸 벌써 봐 놓고 왜 권해주지도 않았대, 그런데 10년 전 새파란 이십 대에 읽었으면 지금 같이 재미있었을 것 같지는 않았겠다 싶었다.

*
십대 후반에 나보다 겨우 14개월 먼저 태어난 이십대 문학청년의 개인 카페에 푸념이나 상념 같은 걸 주절주절 풀어 두면 우매한 물음에 답하는 현자마냥 카페 주인인 친구가 위로하는 댓글을 달아주곤 했다. 나는 굉장히 고립되고 관계 맺음을 어려워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게다가 그나마 가까운 사회적 관계인 가정은 붕괴 직전에 폭력과 주사와 질환으로 점철되어 나도 곧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거기에 그저 말과 글뿐인 반응이 꽤나 힘이 되었다. 예를 들면 잠못 이루고 징징대고 있다는 글을 쓰면 이런 답글을 달아주었다.
“예전에 그냥 '씨팔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넘어간 글귀들이 
어느날 커다랗게 커가지고 머릿속을 팍!하고 칠때가 있지 
그럼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눈물도 웃음도 
모두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면 된다고 
우리는 아직 어리잖아 하하 
딸아 이 말만은 기억해라 
우리는 아직 어리고 
언제나 어릴수 있단 말이다. 
그러니까 걱정마라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

아 ㅋㅋ스무살 짜리가 열아홉살 짜리한테 저런 위로를 하고 있어.
어쨌거나 저 청년은 훗날 (무명의) 소설가가 되었다. 그러고나서 소설을 쓰라고 꼬셔 놓고는 내가 언제 그랬어, 하고 있다…

*
사람이 지금 어떤 존재가 되기 까지 그 사람의 부모와 조부모, 양육 태도, 학창 시절의 경험, 연애사, 직업 세계에서의 성취, 신체적 성적 욕망과 시도와 좌절, 읽은 책과 썼던 글, 그런 걸 훑어보는 게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소설 속 주 인물 미셸과 브뤼노, 그리고 작가 새끼가 현실에서는 여자의 평균수명이 남자들보다 긴 걸 무시하고 너무 빨리 죽여버리는 두 남자와 관계된 여자들 크리스티안, 자닌, 아나벨의 캐릭터를 그리는 데 저런 배경들이 제법 많이 동원되었다.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이 번잡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웠다. 거기에다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양자역학이니 분자생물학이니 사회학 종교학 역사 문화 정치 등등 나무위키 같은 사전식 표현, 서간문, 카탈로그처럼 던지는 상품 브랜드와 가격, 표현 형식이 재미있었다.
야한 상황, 성애 장면 꽤나 많이 나오는 편인데, 이상하게 관능적이지는 않았다. 그냥 존나 무덤덤하게 읽히고, 다 읽고 나면 그야 말로 현자의 시간이 다가오고 아 부질 없고 뜬구름 같은 무념무상의 인간사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드글드글 끓던 욕망도 얘들이 원껏 실컷 하고 다니다 사랑하는 여자들이 갑자기 죽어버리니 구운몽 속 성진이 꿈에서 깨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왜 여자들 다 죽여...미셸 친할머니, 브뤼노 외할머니, 미셸과 브뤼노의 엄마 자닌, 브뤼노 애인 크리스티안, 미셸 애인 아나벨 그냥 막 다 죽는다. 차라리 먼저 죽는 게 나은 것도 같다. 다 죽고 나니 브뤼노는 정신병원에서 약이 효과를 발휘해 욕망이 소멸되고, 미셸은 열심히 생명과 유전자와 진화의 원리에 관해 연구하고 통찰해서 인류 꺼져 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버린다. 솔직히 마지막 에필로그는 군더더기 같다. 야 이게 핵심인데 멍청한 독자야 하면 멍청해서 할 말 없지만…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문과 멍청이 욕망만 가득하고 쓸모 없는 존재야 이과 만세 세상은 이과가 바꾸고 지탱해 간다...아닐까...그냥 (문과생) 혼자 피해망상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
오랜만에 아는 길을 걸었다. 예전에는 해가 쨍한 낮이었고, 봄의 한가운데였고, 개나리와 철쭉 같은 봄꽃들이 피어나는 중이었다. 이제는 완전한 어둠이 내린 밤이었고, 차 전조등, 도로 가로등, 창 안 조명 같은 먼 불빛이 내려다보였고, 높고 좁은 틈에 할머니가 키우는 고추 모종이 뾰족한 열매를 익히고, 할아버지 한 명이 잔뜩 핀 분홍 노랑 분꽃 사이를 뒤지고 있었다. 꽃을 따나? 씨앗은 아직일텐데. 노인은 도처에서 부지런 떨고 있다.
달이 잠시 나왔다가 구름에 감춰지며 순식간에 모양을 바꿔서 반달인지, 초승달인지, 사실은 보름달인지 알 수 없었다. 빛이 흘러내린 구름 자국만 용 모양을 하다가 완전 어둠이 되었다. 
마스크가 잠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왔다. 물음표가 함께 올라왔다 사라졌다.
나도 언젠가는 사라질 건데 뭐 어때. 장래희망은 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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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8-29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딱 일 년 전에 제목에 먼지 들어가는 독후감 쓴 거 알고 놀랐다고 한다...그때도 장래희망은 먼지였다는 게 더 충격...

syo 2020-08-29 12:11   좋아요 1 | URL
요며칠 반님의 글이 제 취향에 턱턱 맞아들어가서 심장을 턱턱 얻어맞고 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8-29 12:20   좋아요 0 | URL
나쌔끼 syo님 취향 노리고 썼나 보네요....좋아요 하나 받을라고 처절.... ㅋㅋㅋㅋㅋ

2020-08-29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9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