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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200904 아니 에르노.
작가의 이름은 엄마에게서 처음 들었다.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울엄마가 오십 넘어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육십 넘은 지금도 열심히 쓰신다. 어쨌거나 엄마가 대학 수업 듣던 시절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와 집착을 읽고 싶다 하셨는데 두 권 다 품절이었다. 개인 판매자들은 절판된 책을 터무니 없는 값에 팔고 있었다. 그래서 알라딘 중고알리미에 걸어 놓고 오래 기다렸다. 등록 알림이 오면 재빠르게 장바구니에 담았지만 금세 누군가 먼저 결제를 해 버렸다… 몇 년 만에 두 책을 구해서 엄마에게 건네자 매우 기뻐하셨다. 정작 나는 읽지 않았지…
내가 처음 읽은 작가의 책은 ‘사진의 용도’ 였다. 작년 4월 전자도서관에 저절로 빌려져 있길래 읽어 봤다. 그 때 감상도 남겨놨는데 일부를 퍼오자면 풉. 재미없었나 보다. 독후감이 온통 배배 꼬였다.
‘...질투가 많은 나는 또 생각한다. 철저한 문돌이 예술가들끼리 사랑하니 이런 아기자기한 사랑의 유희를 글로 나눌 수 있다. 사진 하나로 각자 쓴 글을 나중에 교환해 보기. 한 번에 두 글을 보는 독자들은 눈치챈다. 둘이 생각한 것, 경험한 것의 교집합이 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아마 둘은 그걸 확인하고 무척이나 흡족했겠지? (그리고 헤어지지 않았다면 또 옷가지를 벗어던지고...얼씨구 절씨구...다음 날 또 사진을 찍었겠지. 흥)’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른가. 닮았나.
달라졌다-그때는 일을 쉬었다. 집에 오래 있었다. 아직 젖을 먹였다. 가족이 네 명이 된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코로나아웃ㅜㅜ) 동물원에 다녀왔다.
지금은 일을 하고, 밖에 나가고, 젖은 말랐고, 동물원에 갈 수 없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작년 이맘쯤까지도 가 본 적 없는 동네 골목골목을 걸어다녔다. 아, 맥주를 마실 수 있다.ㅎㅎㅎ
그대로이다-책을 읽는다. 독후감을 쓴다. 소설을 쓴다. 옹벽 옆 같은 집에 산다. 가족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같은 자리에 누워 잠이 들고 깨어난다.
프랑스 몰라, 프랑스 타령 그만해 하더니 저번에 읽은 미셸 우엘벡 소설도 프랑스가 배경이고, 이 책도 온통 프랑스 현대사와 그 공간과 시간을 지나온 개인, 그 주변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자서전 같은데 ‘나’의 이야기가 아닌 ’그녀’의 이야기로 서술했다. 나보다 사십 살 쯤 많은 먼 대륙 여성의 회고담 속 문화 예술 철학 정치 관련 인물들은 온통 내 삶과 동떨어져 있었다. 교차점이 많지 않았다. 다만 가르치는 직업과 쓰고 싶은 욕구, 성장, 욕망, 연애 정도는 공명할 부분이 있었는지 잠시 관심 있게 보았지만 이미 다른 책들로 써 버려서 그런가 이 책에서는 파편으로만 담겨 있었다.
남아 있는 사진, 전통으로 남은 명절의 식탁이 반복되며 달라진 개인과 가족과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가 선거에서 이기고 지고 집권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건 여기 지금 사는 나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 유년부터 노년까지 생애를 관통하는 자기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까? 지금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다. 온통 토막쳐서 각각 다른 이야기로 흩뿌리고 싶다. 내 이야기 아닌 척, 내가 살았던 시간이 아닌 척, 이건 허구입니다. 양념을 치고 사람을 섞고 시간과 사건을 재배치하는 순간 이것은 역사가 아닙니다. 가리면서 노출하는 모순 속에 나는 감춰질까 드러날까. 나이를 먹어도 쓰려는 마음을 놓지 않고, 사랑도 남자도 놓지 않은 작가처럼, 울엄마처럼, 또 어디선가 쓸 거야 쓸 거라고, 쓰고 있어 몰래몰래, 하는 사람들처럼, 계속 쓰게 될지 언젠가는 영영 쓰지 않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아니 에르노의 다른 책도 더 볼지는 아직 모르겠다. 재미없어 ㅠㅠ ㅠ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