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레플리카
윤이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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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1 윤이형
계속 읽어봐야지, 하다가 윤이형의 이상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나서야 읽게 되었다. 오랜만에 잘 쓴 소설 읽으니 좋았다. 샘도 나다 좋다 했다.

대니-노인, 인공지능, 육아의 고달픔, 온갖 것을 섞어 써도 잘 쓰면 된다. 헬렌 올로이도 생각나고 한 스푼의 시간도 생각나고.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적인, 인간의 감정을 더 잘 읽는다는 점에서는 초인간적인 존재는 오래된 인간과 어린 아이 모두를 사랑해 줄지도 모른다.는 아이디어는 엄청 낙관적인 미래관 같다. (그래서 인간은 더 슬퍼질 수 있다는 것은 별개로.)

굿바이-화성의 아이가 언뜻 떠올랐다. 여기서도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될 기회를 갖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드러나는 불평등, 제목 때문에 꽤 슬픈 결말이 될까 걱정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서 뭐.

쿤의 여행-쿤에 내가 기생한 건지 쿤이 내게 기생한건지. 자라지 않은 나의 회한. 가입하지 못 했던 연극회활동. 자라지 못한 채 죽은 아버지. 이 소설 말고도 은근 열 다섯 살 짜리가 많이 나온다. 집에 사춘기 소년소녀라도 키우는건가.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랬다. 그게 내가 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눈을 깜빡일지,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할지조차 나는 알 수 없었다.” 

루카-게이 서사의 또다른 형태. 제대로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사랑한다고 믿었다가 다시 그 사랑을 잃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 루카와 딸기가 그렇고 루카와 아버지가 그렇고. 액자 이야기 같은 루카와 딸기의 시나리오. 아버지가 루한을 찾아가는 이야기. 
“어떤 일들은 그저 어쩔 수 없고 어떤 일들은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으며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 그저, 그럴 수 없다. 삶이라는 이름의 그 완고한 종교가 주는 믿음 외에 내가 다른 무언가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믿음을 지켰고 너를 잃었다. 그 사실이 가끔 나를 찌르지만 나는 대체로 평안하다.” 

러브 레플리카-마음이 아픈 사람들. 그 아픔 때문에 남을 자신인 양 만드는 사람. 엑스 저팬 노래 중에 이런 곡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핍-핍과 얀. 어른이 사라진 세계. 어른을 대체하지만 제대로 대체하지 못하는 고통. 망해가는 세상. 잃어버린 사랑.  숫자가 바뀌는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검색하다 어떤 블로거가 알아냈다!!해서 오, 하고 들어가보니 뭔지는 안 밝혀놔서 치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좀 알려주세요. 
캠프 루비에 있었다-외우주 행성 개척 중인 사람들. 진우와 린. 모두를 구하지 못해 절망하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한 소년. 남의 마음이 들리지만 왜 그들을 살려둬야 하는지 죽이면 안 되는지 답하지 못하던 소녀. 소년과 소녀. 사랑의 확인. 고통의 공감과 함께 사라지지 말라고 절규하는 소녀.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우리 곁의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을 뿐이지. 오래전 그의 동료 한 명이 스스로를 위로하듯 던진 말이 졸음 속으로 끼어들었다. 죄책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우리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주어야 해.” 
“자신이 읽은 과거의 다른 마음들이 가르쳐준 문장, 사람은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없어를 그는 몇 번이나 쓰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사라지게 하지 마. 이 바보들아. 사라지지…… 마. 가! 가서 살아. 어디든.” 

엘로-마법사였다가 조약돌 공예를 하게 된 주인공과 엘로. 고양이의 죽음. 엘로와 마법사 양피지는 뭘 비유한 걸까. 캠프 루비랑 겹치는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남의 작은 고통이나마 덜어주고 소소한 행운이라도 주려는 마음. 그것을 할 수 없을 때 떠난 여행. 거기서 만난 동료. 퀘스트. 모험. 빗방울을 꿰어 파는 것은 소설에 대한 비유가 될 수도. 남의 고통으로 돈 벌기. 그에 대한 가책. 대신 돌을 갈아 팔기. 약간 청소년 소설이나 위저드 베이커리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의심에서 벗어나려는 마법사는 다음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첫째, 행복한 사람 한 명의 피를 유리병에 가득 담아 충분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릴 것
  둘째, 나무를 베는 사람들이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할 것
  셋째, 내리지 못하는 빗방울 언덕으로 가서 거기서 얻은 것으로 4천 함펜을 만들 것
되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라지는 것만은 아니다”- 양피지 퀘스트.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 못 하고 끝난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나. 

해설의 제목이 ‘가망 없는 세계의 사랑’인 건 매우 적절해 보인다.
‘인간에게 생명(삶)이란, 사람들 사이에 머문다는 것을 의미하며, 죽음은 사람들 사이에 머물기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던 한나 아렌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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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01 2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이전까지 어떤 명절 보내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올해는 이것저것 끝내주게 행복한 명절 되실 거예요!!

2019-02-02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syo > 재와 신발

리뷰를 가장한 잘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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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28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못 쓴 소설 못 쓴 소설!!
아 이걸 좋아요를 누르기도 그렇고 안 누르기도 그렇고 애매하네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1-28 11:55   좋아요 0 | URL
강한 부정은 긍정ㅋㅋ 종이에 뽑아서 태워 재로 만들어 마시고 싶은 소설. 그러면 왠지 이 문장들이 문재들이 내 몸으로 흡수될 듯한 주술적 미신적 믿음마저 불러일으킨 문제의 글. 신발에 그 재를 뿌리면 탈취 소취 효과와 무좀 예방까지 누릴 듯한...(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syo를 불러봐 넌 건강해지고...)

syo 2019-01-28 12:00   좋아요 1 | URL
요즘 저한테 왜 이러세요 ㅋㅋㅋ 이러실 것 까지는 없어보여요 ㅎㅎㅎㅎ

예방이라고 하셨지만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는데 무좀은 피부과.... 명동 ywca 회관 건물에 있는 피부과가 최고에요. 국민학교때부터 달고 다니던 제 20년짜리 무좀을 완치시키더라구요.
TMI네요. TTTTTMI군요.

반유행열반인 2019-01-28 12:21   좋아요 0 | URL
너무 유용한 맞춤형 정보까지...감사합니다ㅋㅋㅋ이쯤 되면 syo님의 정체?에 대해 미래에서 온 정보수집용 인공지능설에 더해 외계인설 만능 허경영설까지 붙을 기세입니다...
 
죽도록 즐기기 - 성찰없는 미디어세대를 위한 기념비적 역작
닐 포스트먼 지음, 홍윤선 옮김 / 굿인포메이션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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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7 닐 포스트먼
AMUSING OURSELVES TO DEATH


대학 때 ‘교육의 종말’을 과제 때문에 겨우 봤었는데 정신 못 차리고 그 닐 포스트만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85년 내가 태어날 무렵 나온 책이고, 저자는 당시 거의 모든 분야를 압도하는 정보 전달 매체로 떠오른 텔레비전을 여러 사례를 들어 비판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진리, 전통의 가치, 가치의 우열이 있다는 입장이고, 텔레비전은 중요한 것들과 사소한 것들을 뒤섞고 빠른 화제 전환으로 통찰의 여지를 없애고 정치, 종교, 교육 등 진지해야 할 모든 분야를 오락거리로 만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매체는 의사소통의 방법에 영향을 미치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텔레비전은 그저 재밌거리를 다루는데 머물러야 함에도 다양한 분야에 침투해 많은 것들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매체에 압도되어 별다른 의식하지 못 한 채 수동적으로 즐기고, 탈맥락적으로 정보를 소비하고, 그렇게 중요한 일들이 오락거리로 전락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저자가 뭐가 문제인지 콕 찝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정치인들이나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더 용이해지는 것 등이 가능성 있다)은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다만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절대 불변의 진리와 가치가 없다는 입장에 서면 저자의 말처럼 인쇄문화, 책을 통한 정보 획득과 의사소통이 텔레비전을 통한 그것보다 가치 있고 고차원적이라 말할 근거는 무엇인가 의문이 들 법하다. 또한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것 또한 문제 삼을 만한 것인지 의문이다. 오히려 소위 심각한 (정치, 교육 등 공공담론이 필요한)분야에 오락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아예 무관심해질 수 있는 상황을 완화하고 진입의 허들을 낮출 수도 있지 않나 싶다.

저자가 주장하는 매체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 던지기,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올바른지 가르치고 배우기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하는 부분, 우리가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신도 모르게 낚이는 주의력과 구매력과 의사결정이 정말 우리 자신의 주체적 의지인지, 수많은 정보는 정말 진실에 근접한지, 누군가의 이익에 부합하게 의도적으로 재구성된 프레이밍된 것은 아닌지 끊임 없이 의심하고 돌아보고 정신차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안 그러면 나도 모르게 디도스 공격하는 좀비 피씨 마냥 이용 당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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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28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고보니 우린 동갑이었군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01-28 09:15   좋아요 0 | URL
태어난 ‘무렵’이잖아요ㅎㅎ 저는 84년 12월생이어요. 만 나이는 동갑 맞을 듯ㅋ (그외에도 공유한 시공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93년에 피구왕 통키를 봤다거나 03-04년과 17-18년경 관악구에 있었다거나...)

syo 2019-01-28 09:30   좋아요 0 | URL
아슬아슬하게 누나시네요.

그것보다, 03-04년 관악구 스토리까지 알려면 syo가 알라딘에 쓴 거의 최초의 글까지 다 털어야 되는 건데!! 오와.....

반유행열반인 2019-01-28 09:49   좋아요 0 | URL
막 모골이 송연하여 언팔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그러시는거 아니죠? ㅋㅋ그냥 딱 글 하나 보고 넘겨 짚고 아님 말고 하는게 제 특기에요. 워낙 건드리신? 책이 많으니 뭔 책만 검색해도 다 syo님이 남기신 글입니다....가 따라와요. 알라딘 리뷰 전체가 syo님 ppl수준?!

syo 2019-01-28 10: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써놓은 글을 뒤지기 시작한 건 제가 먼전데요.
이쪽도 역시 열반인님에 관한 상당량의 정보를 수집해 놓았답니다. 후후후.

똑바로 된 책 정보도 없는 글이 모쪼록 디지털 공해가 되지는 않았으면 하고 애쓰고 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반유행열반인 2019-01-28 11:05   좋아요 0 | URL
똑바로 된 책 정보 없는 syo님 목소리로 된 글 앞으로도 많이 남겨주세요. 제가 굳이 서재 동네에 기웃거리게 된 계기입니다. 출판사에서 공짜로 뿌린 책에 남긴 칭찬 일색 리뷰나 안 읽은 책 심심하니까 까러 오는 (저 같은)사람만 있는게 아니란 걸, 심지어 숨은 고수들이 은거하며 칼날을 벼리고 있다는 걸 syo님 덕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틈새에서 뭉툭한 막대기 같은 송곳 들고 얼쩡거리는 처지가 되어 버렸네요...다 syo님 때문입니다!!!(급 남의 탓)
 
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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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말고는 본 소설이 없었는데 이창동 ‘버닝’이라는 영화가 나왔다는 광고를 봤고, 온라인 서점에서 ‘버닝의 원작’이라면서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를 얼핏 봤다. 그래서 사 보았다.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도 아니, 이게 뭐가 좋다는거야, 아, 여기 나오는 여자들 다 짜증나, 미도리는 제일 싫어, 남자 주인공도 짜증나, 그러나 이미 읽은지 십 수년이 흘러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도 그냥 저냥 비슷한 느낌이었다. 묘사는 치밀하고 어떤 분위기가 있지만, 나는 이런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쓴 글을 보고 이게 뭐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하면서 받았던 어떤 느낌이 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아, 저런 걸 하루키 흉내낸다고 하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반딧불이-친구와 친구의 여자친구와 이제 막 상경해 대학 신입생 생활을 보낸 이야기. 친구는 죽고 남은 여자친구와 내가 어쩌고 저쩌고 그러다 여자가 떠나는 이야기. 읽으면서 계속 언젠가 읽은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드는데 책 표지에 ‘상실의 시대’의 모티프가 된 중편이라고 한다. 음. 기억은 안나고 기분만 남았는가.
헛간을 태우다-남자와 남자의 애인 비슷한 아는 여자와 그 여자의 애인이 헛간을 태우는 이야기. 대마초도 태움.
춤추는 난쟁이-꿈 속 난쟁이의 춤, 코끼리 만드는 공장, 여자를 꼬시려 난쟁이를 몸 속에 담고 춤을 추고, 여자가 징그럽게 변하는 부분이 조금 인상적이지만 뭐 어쩌라고. 혁명 후의 이야기. 그냥 판타지.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제목과 같은 부분은 화자의 기억에서 아주 잠깐 떠오르고 대부분은 사촌동생과 버스를 기다리고-타고-병원에 가고-과거 회상을 하고-다시 버스를 기다리다 올라타려다 끝나는 이야기이다. 주변을 둘러 보고, 옛일을 생각하고, 기시감을 느끼고 그런 묘사는 세세하다.
세 가지의 독일 환상-뭔 겨울 박물관과 섹스 타령, 괴링 요새와 그곳을 설명하는 베를린 청년, 뭔 공중정원 주인과 크로이츠베르크. 독일 지명과 장소만 주절 거리면 이국적인가. 그나저나 독일 가고 싶다.

1984년에 나온 소설집이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쓴 글들을 읽는다. 그 할애비 하루키는 아직도 글을 쓴다. 꾸준히 쓰고 고치고 달리기도 한다고 주절거리는 걸 어떤 사람이 SNS에 카드뉴스로 올려 둔 것을 보았었다.

뭔가 분위기만 있는 글들을 나는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버닝 보고 싶다. 영화 볼 수 있는 날이...언젠간 오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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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26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호와 불호만 있는 작가 같아요. 그런데 또 의외로 호와 불호가 만나도 큰 언쟁이 벌어지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분위기도 연출되고..... 하여튼 희한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1-27 08:00   좋아요 0 | URL
남들이 좋다는 건 뒷북으로 읽어보긴 하는데 늘 좋을 수는 없나봐요 역시나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고 ㅋㅋ
 
인류의 기원 - 난쟁이 인류 호빗에서 네안데르탈인까지 22가지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
이상희.윤신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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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이상희, 윤신영

‘왜 맛있을까’를 읽으며 번역자인 윤신영 기자(과학 분야)에 대해 찾아 보다 이 책의 공저자인 걸 알게 되었다. 과학자이면서 문재를 갖춘 번역가들을 보면 신기하다. (핑거스미스를 포함한 빅토리아 3부작 번역한 최용준도 무려 천문학자다. 관심이 생겨 그가 번역한 어슐러 르귄 책들을 몇 권 사 모아 놨지만 아직 한 권도 못 봤다...언젠간 보겠지…)

마침 예쁜 주기율표 담요가 “날 3만 얼마 주고 사면 잘 나가는 과학책을 두 권 줄게.”라고 해서 그동안 궁금했던 이 책을 소유하게 되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있게 되었는가?”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오랜만에 제목과 내용이 아주 적합하게 일치하면서도, 고인류학이라는 분야를 쉽고 흥미롭게 소개하고, 재미있는데다 유익하구나! 하는 느낌이 읽는 내내 드는 책을 찾아냈구나! 왜 이제 봤지!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학교 다닐 때 역사책에서 두어쪽 남짓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어쩌구 저쩌구 요놈 저놈-호모 에렉투스-호모 사피엔스!!’ 이렇게 배우던 초기 인류의 역사가, 십 몇 년 전 배운 내용조차 새로운 발견과 유전자 분석 등 기술 발전으로 벌써 뒤집히고 또 뒤집히고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모든 앎이 고정된 것은 없음을, 다 변하고 항상 옳은 것도 없다는 것을 새삼 다시 확인한다.

서문은 저자에 대한 소개쯤 된다. 미국에서 고인류학 박사학위를 하고 대학에 자리 잡은 이상희 교수가 자신이 경험한 미 대륙 자동차 횡단 여행을 이야기하며 고인류학 여행에 우리를 초대한다. (사실 안 읽어도 큰 지장 없지만 나름 저자와의 아이스브레이킹, 강의 첫 시간 같은...)

책의 차례를 주욱 훑어보면 연대 순이 아닌, 흥미로운 질문과 주제로 고인류학의 주요 연구 성과와 현대의 우리의 모습을 설명할 만한 점들을 연결지어 꾸려 놓은 것을 먼저 확인할 수 있다. 책의 뒤쪽으로 가서 찾아보기 직전 페이지를 보면 간단한 연표를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의 시간적 위치를 대략 파악하는데 미리 보고 가면 도움이 된다.

22개의 주제는 각각이 강의 한 시간처럼, 궁금할 만한 것들을 다뤄준다. 한 챕터의 분량은 길지 않고 핵심을 딱 추리면서도 알려줄 건 다 알려준다. 잡지와 신문 지면에 연재했던 특성이 책에도 반영된 듯 하다. 연구 성과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과 지식은 이교수의 몫, 문장의 명료함과 전달력 있게 (특정 전공 분야임에도 어린 학생들도 무리 없이 볼 만큼) 쉽게 정리된 것은 아마도 과학동아 편집장이던 윤기자의 몫이었던 것 같다. 좋은 공저자다.ㅎㅎ

1장 원시인은 식인종? : 인류 일부가 특정 공간 특정 시점에서 식인 행위나 풍습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나, 극한의 위기나 상징적, 문화적 행위(적에 대한 복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도)로 실시했을 뿐 ‘식인종’이라 할 만한 주식으로서의 식인은 없었다.
2장 짝짓기가 낳은 ‘아버지’ : 일대일 파트너가 아닌 유인원에게 ‘어머니’개념은 있지만 ‘아버지’개념은 없다.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인간 수컷은 다른 종보존 전략(다수에게 씨를 뿌린다든가…)보다도 한 암컷을 지키고 그녀가 낳은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이 종보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에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3장 최초의 인류는 누구? : 응, 아직 몰라. 아마 계속 모를 수도. 고인류학이야 말로 귀납적 가설이 뒤집히고 뒤집히는 반전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학문 같다. 이전의 가설을 뒤집을 만한 화석이 발굴되면 그동안 정설로 알려진 것이 후다닥 뒤집히고. 그 덕인지 저자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유연성을 기르게 된 것 같다.
4장 머리 큰 아기, 엄마는 괴로워 : 인류가 진화할 수록 머리는 점차 커졌는데, 직립보행을 선택하면서 골반과 산도는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유인원은 혼자 셀프로 제 새끼를 받는게 되지만 인간은 누군가 아기를 받아 줘야 하고-그리하여 사회적 인간의 탄생!
5장 아이 러브 고기 : 원시인 여럿이 석기를 들고 매머드를 때려 잡고 만화 고기 뜯는 이미지는 사실 엄청 최근의 모습이고, 육식 시작 초창기에는 겨우 1미터 남짓의 불쌍한 꼬마 같은 인류가 다른 육식 동물이 뜯어먹고 남은 사체의 뼈와 두개골을 돌로 죽어라 부숴서 골수 빨아 먹으며 연명했다. (상상하니 너무 불쌍하다.) 그런데 골수는 지방 듬뿍이라 먹다보니 애들이 에너지도 많이 섭취하고 뇌도 똑똑해지고 덩치도 커져서 나중에는 진짜 매머드도 때려잡게 되었다. 그치, 시작부터 창대한 것은 없다.
6장 우유 마시는 사람은 ‘어른 아이’ : 유당 불내증은 질환이 아니다. 락타아제는 모유 먹던 아기만 형성하다 젖 떼면서 사라지는게 일반적이었는데 돌연변이 일부가 성인 되서도 젖을 소화할 수 있게 된 것 뿐이다. 유목이 먼저냐 돌연변이가 먼저냐(DNA분석결과 목축 낙농업이 먼저다. 문화가 진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쿡애들이 우유 마시는게 쿨한 것처럼 광고해서 우유 못 마시면 촌스럽고 덜떨어진 거 마냥 여기게 됐지만 사실 우유 마시는 어른은 엄청 인공적인(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일이다!!
7장 백설공주의 유전자를 찾을 수 있을까? : 피부색과 멜라닌. 털 달린 사자 같은 육식동물과의 경쟁을 피하려고-걔들 낮잠자는 무더운 한낮에 사냥-더우니 털 없는게 낫지-털 없으니 피부암 위험!!-멜라닌 색소 형성으로 검은 피부(초기 인류는 검다)-고위도로 이동하며 검은 피부가 비타민 디 형성 방해!-다시 하얘집니다…(흰 피부는 5000년 정도 밖에 안 됐댄다…)-참고로 유럽 애들이랑 동아시아 애들이랑 피부가 밝게 만드는 유전자가 다르댄다...각자 다른 경로로 하얘진거다...
8장 할머니는 아티스트 : 인류의 수명 증가, 노년층은 정보 전달자이자 예술이 꽃필 수 있는 기반+손주 돌보는데 힘을 보태어 자손의 번성도 도움
9장 농사는 인류를 부자로 만들었을까? : ‘사피엔스’에도 나오는데 수렵 채집 시절의 인류보다 농업 시대 인류가 죽도록 일하고도 기아에 시달리기도 함. 골고루 아무거나 처먹고 적당히 생존하던 인류가 농사 망하면 다 죽음...ㅠㅠ영양 섭취도 불균형해짐…
10장 베이징인과 야쿠자의 추억 : 베이징 원인의 화석은 (다행히도 정교히 복제된) 모형만 남기고 실종, 이교수에게 왠 일본인이 야쿠자 행사에 그 실종된 화석이 등장할 예정이라는 첩보를 주며 같이 잠입하자! 했는데 이교수의 지도교수가 위험하다고 절대 안 된다고 해서 포기.
11장 아프리카의 아성에 도전하는 아시아의 인류 : 모든 인류의 시작은 아프리카 기원론(완전 대체론)이 대세이다 최근 비슷한 오래된 시기의 아시아 화석이 발견되어 다지역 연계론(인류는 각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도 힘을 얻고 있다.
12장 ‘너’와 ‘나’를 잇는 끈, 협력 : 네안데르탈인 조차 다쳐서 홀로 살 수 없는 사람을 동료들이 먹여 살리며 노년까지 부양한 흔적이 화석에 남아 있다. 인간은 약하니까 서로 도왔겠지. 이기적 유전자설. 그러나 저자는 단순 생물학적 이익이 아닌, 더 넓게 남을 생각하는 협력과 이타심을 인류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심한 근시안인 자신이 그 먼 시절 태어났더래도 살아남았을거라며. 훈훈.) 
13장 ‘킹콩’이 살아 있다면 : 거족, 거인에 대한 원형으로 추정되는 기간토피테쿠스(대형 유인원, 아마도 인간과 경쟁하다 사라짐. 사라진 그들이 남긴 뼈를 현생인류가 용뼈라며 소비 중…...미안해…) 
14장 문명 업은 인류, 등골이 휘었다? : 이족 보행으로 얻은 이익과 요통, 관절통. 두뇌가 먼저 커졌다는 설에서 연구 결과 아무래도 다리가 먼저 발달했다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15장 가장 ‘사람다운’ 얼굴 찾아 반세기 : 고인류학자 리키 집안(부부-그의 아들-아들의 부인과 딸)의 인간다운 고인류 화석 찾기 반세기. 퀴리 집안도 생각나는 한 분야 파기 가업
16장 ‘머리가 굳는다’는 새빨간 거짓말! : 인간의 큰 두뇌. 일부만 사용한다는 건 거짓말. 아이 때 형성되고 땡이라는 것도 거짓말. 넓은 사회성과 큰 두뇌의 연관성(그렇다면 히키고모리 내 뇌는 점점 쪼그라 들고 있을 수도…)
17장 너는 네안데르탈인이야! :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사피엔스 종이랑 싸우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족했다는…) 최근 유전학 발전과 함께 아닌데? 현생 인류에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몇 퍼센트 남아 있는데? 하면서 흔들리고 있다.
18장 미토콘드리아 시계가 흔들리다 : 돌연변이에 일정 주기(걸리는 기간)가 있다고 믿고 그에 따라 연대 추정을 했었는데 (중립 이론) 알고보니 그 딴 것 없고 불확실성의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니 그 동안 일정하다고 여기고 계산한 것 다 엉터리일지도…) + 쓰잘데 없다고 믿었던 수많은 비암호화 DNA도 삶에 영향을 준다. 미토콘드리아 DNA도 핵 밖에 있지만 역시 인간 삶과 번식에 영향을 준다.
19장 아시아인 뿌리 밝힐 제3의 인류 데니소바인 : DNA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물리적인 증거인 화석이 충분히 발견되지 않아도, 조그만 뼈조각 하나로도 고인류종의 존재 증거가 된다. (그 중 한 예가 데니소바인. DNA로만 존재 증명한 고인류종)
20장 난쟁이 인류, ‘호빗’을 찾아서 : 인도네시아 플로렌스 섬에서 발견된 작은 인류 플로렌스인. 다양한 초기 인류 출발 지점의 가능성
21장 70억 인류는 정말 한 가족일까? : 인종 개념의 허구, 아프리카 기원론의 문제점, 비슷한 이유로 반대 주장인 다지역 연계론도 지닌 문제점(어쩌라고…) 
22장 인류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 식생활 문제나 질병 이야기하는 주장들을 보면 현대 인류의 생활패턴은 바뀌었지만 신체는 여전히 석기 시대 인류와 같아서 어쩌구...하는 걸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었는데 어, 그게 아니랜다. 문화와 문명도 진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하긴 요즘 애들이 우리 때보다 키 엄청 커짐…)인구 증가, 인류 집단 간 교류, 의학 발달, 인류 다양성 그 자체로 인한 지역성 증가가 진화를 촉진하는 요인이라고 저자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인류가 워낙 많아지고 여기저기 방방곡곡 살다보니-고산 지대 살다가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고산병에 적응하는 유전자가 생겨났다 뭐 이런…)
진화 라는 말 자체만 보면 뭔가 더 나아지고 위대해지고 이럴 것 같지만, 과학에서 진화란 철저하게 중립적인 의미이고 그저 변화, 적응과 관계된 것이라고 저자는 부록에서도 거푸 강조한다.

두 저자의 맺음말을 읽고, 부록1에서 진화에 대한 간단 속성 정리(여기서도 재차 언급되는 것을 보니 빠른 시일 내에 ‘종의 기원’을 보긴 봐야 겠다는 생각…이러고 또 몇 년 묵힐 듯), 부록2에서 이 책에서 다룬 고인류의 계보를 역시 초간단하게 (추정)시간 순으로 다룬다. (사실 이렇게 압축적이니 더 어렵다…)

아, 뭔가 유익했다, 뿌듯하다, 하면서 나중에라도 생각나라고 나름 대강대강 정리해 봤는데...아마 나중에 이 글만 봐서는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모를 것 같다. 이 책은 두고두고 나중에도 읽어 보고 싶다. 딸아이(만7세)에게도 야 너 크면 읽어 봐 재밌다 아주. 이러고 있다. 끝.

P.S. 고인류학 분야에서도 성별 편향성이 존재하고, 이를 인식한 저자는 개선을 위해 책 속에 동봉된 이 엽서(알라딘은 모바일에서는 사진이 안 들어가네...인류 진화의 모습을 여성으로 그려 둠)를 인근 박물관에 보내 보자, 고 제안한다. 내용도 좀 예시로 자세하게 써주시면 보냈을텐데...”인류 진화사에서 지워진 주인공을 되찾아 주세요-“ 이건 너무 모호하잖아. “왜 박물관에 원시인 중에 열심히 매머드 때려 잡는 남자들만 잔뜩 그려놨어? 여자 어디갔어? 응? 공평하게 그려 좀!” 뭐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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