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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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 나왔다는 말에 없던 호기심이 생긴 책이다. 얼마나 재미있길래 개정판이 나왔을까 생각하며 낚이지는 않을것 같은 만족감에 골랐던 책이다. 이 책은 남자아이가 남자로 커가는 과정을 그려낸 성장소설이라고 말해도 무난할 듯 싶다. 위인전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주인공의 어린시절 위인이었던 어느 한 남자의 장례식을 가며 추억에 잠기는 내용이다. 장례식은 길어야 2박3일 정도지만 몇십년을 아우르는 시간여행까지 하게되는 재미도 있다. 난 늘 궁금하기도 했다. 언니만 넷을 가졌고, 학교도 여자만 다니는 학교를 다닌터라 늘 남자들의 성장기가 궁금하긴 했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환경속에 성장한 여자들은 그럴것 같기도 할터. 남편도 가끔 추억의 단편을 꺼내주기도 하지만, 내게 들려주는 추억엔 왠지 엄청난 편집이 가해져있는 느낌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적나라한 그들만의 세계인지 난 늘 궁금하고 목말랐다. 아 그렇지. 한때 흥행했었던 <친구>라는 영화도 충격적이기는 했다. 비록 폭력배 이야기라 끔찍한것도 있었지만 어느정도 그들의 내면이 파악되기도 했다. 그런 맥락으로 보자면 이 책 역시 <친구>라는 영화와 거의 흡사하다.

책표지에 가끔 감동하기도 하는 나는 이번 책표지에도 슬픔을 느꼈다. 아무 이유없이 책표지에 아무그림이나 막무가내로 넣지는 않을것 아닌가! 맨발의 남자는 왕을 위하여 술과 안주를 준비했나보다. 비닐봉지에 들은 술과 북어. 비를 맞으며 부재중인 왕의 의자에 우산을 씌어주고 있는 그림은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이 영웅을 잃고 느꼈을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빗물은 그의 눈물이리라.

마사오라는 인물은 혼자 떠오르는 태양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떠올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는 그는 모두의 영원한 왕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왕, 그리고 공정한 왕, 작은 도시에 꼭 한명은 있을법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죽자 권력의 빈자리를 향해 제2,제3의 인물들의 난투극이 벌어지는데 그 제 2의인물과 제 3의 인물과 함께하는 추억여행이 그것이다. 책의 말을 인용하자면, 장례식장에 가기전 추억하고, 버스에 타면서 추억하고, 휴게소에서 쉬면서 추억하고, 밥을 먹으면서 추억하고, 친구를 만나면서 추억하고, 장례식장 들어서며 추억하고, 첫사랑을 만나면서 추억하고, 택시를 타면서 추억하고 술을 마시면서 추억하고, 잠자면서 추억하고, 추억하고, 추억하고 또 추억한다.

쌍둥이도 아니건만 한날 한시에 태어난, 뱀의 혓바닥을 가진 친구에 대해서도, 무식하리만치 생각은 하지않고 팔뚝만 굵고 의리가 있던 친구에 대해서도, 그의 첫사랑에 대해서도, 그의 두번째 사랑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추억은 사실 볼만하다. 남의 인생을 살짝 엿보는 기분이랄까? 나에게도 있는것을 확인시켜준 관음증을 자가진단 할수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작은마을에서 벌어진 권력난투극은 진지하고도 싱겁게 끝났지만, 허탈한 마음을 감출수도 없는게, 주인공은 너무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인공은 마사오 같은 인물이어야 하지않나, 아직도 나는 마사오와 같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원하고 있는것은 아닌가를 잠시 생각에 빠지게도 만들었다. 주인공이 꼭 영웅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난 언제부턴가 주인공은 그 어느곳에서도 주인공감이 되어야만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허탈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편견을 깨주기도 한 주인공인것 같다.

추억이란 참 소중하다. 나도 어릴적의 추억이 참 소중하다. 엄마에게 맞은 기억까지 소중하다. 주인공은 내가 겪지 못한 아주 많은 일을 대신 겪고 내게 말해주었다. 수많은 추억들이 주인공과 함께 영원히 푸르렀으면 좋겠다. 그 당시에는 괴롭고 힘들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빛을 발하는것은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지치고 괴롭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시 떠올릴수 있을 것이다. 난 이책이 추억이 너무 많아 에피소드들은 재미있었지만,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이 너무 없어 살짝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추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미묘한 힘이 있는 책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띄어지기도 한다.

작가의 거침없는 표현들이 걸작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나 나올법한 거침없는 육두문자와 거침없는 생 날것의 표현들은 보기 역겹다기 보다 왠지 즐거웠다. 너무나 적나라한 표현에 작가소개에 나온 작가의 얼굴을 몇번씩이나 보게할 정도다. 아주 좋으신 분같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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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07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성석제의 글들 참 좋아해요.
이기호와 쌍벽을 이루면서 좋아하는데 아직 못봤네요.
그쵸, 그를 통하면 육두문자도 참 구수하죠~^^

첫눈 2011-04-07 19:54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은 벌써 많은 작가분들의 글을 읽으셨나봐요..
부럽습니다 ^^
저는 처음 접해본 분인데요..재미도 있었지만, 개정판까지 나올정돈지...약간 갸웃했었어요 ^^
육두문자는 아주 즐거웠어요. 제 마음이 다 뻥뚫릴정도로요 ㅎㅎ
보면서 많이 웃었어요 ^^
 

이렇게 됐다 ^^ 

http://cafe.naver.com/cafejamo/4295 

http://blog.yes24.com/document/3697570 

대박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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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자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어젠 효과가 있는듯이 밤 12시에 잠들수 있었는데, 새벽에 깨고 말았다.
다섯시쯤 깨서, 이리뒹굴~저리뒹굴~ 더 힘들었다.

또 자게 될까봐 아침 일찍 서둘렀다.
여덟시 반에 집을 나서서 미용실에 들러 봄맞이 염색도 하고 (블루블랙으로 시꺼멓게 ㅋ)
머리도 살짝 잘랐다. 미용실 원장님이 바뀌셔서 살짝 걱정도 됐지만 늙은 아저씨가 원장님이시라니..
이왕이면 젊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그중 내가 겪었던 원장님중 최고~
앞머리를 다듬어 놓은 솜씨가 딱 마음에 들었다.
전엔....다 잘려지고 눈을 뜨고 나면, 깜놀하거나 속상하거나 아니면 다시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요구를 해야 했는데, 이번 원장님은 말 안해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잘라주셨다. 역시 ~ 노련함 ㅋ

머리를 하고 상큼한 마음으로, 머리를 찰랑대며 안경점으로 갔다.
비싸게 주고 산 썬글라스가 이상하게 휘었다. ㅜㅜ 역시 내 썬글라스는 수리를 들어가고야 말았다.
빨리 오렴~~썬글라스야~

택배도 보냈다.
업어키운 나의 조카에게 택배를 보냈더니, 아니 군대라고 택배가 안받아준다고 하면서 다시 내게 돌아왔다. 갈때 택배비. 집에 다시 반려되며 또 택배비. 이건 뭐임? 장난치심? 군대는 못들어간다고 택배를 안받았어야 하지 않나? 무슨 택배회사가 그래? 언니에게 확인을 했더니 우체국 택배만이 진리라고 한다. 난 그래서 오늘 결국 우체국택배로 보냈다. 이녀석 깜짝 놀래겠지? ㅋㅋ

은행도 갔다.
뜻밖의 인물로부터 입금이 되어서 부랴부랴 전화를 하려고 보니, 핸드폰이 사라졌다. 공황상태에 빠진 나는 한참을 은행소파에 앉아서 그동안 나의 동선을 추적,분석했다. 어딜까. 어딜까. 어딜까...
난 되짚어 보기로 했다. 먼저 우체국택배점. 오예~ 그곳에서 나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나의 폰.
반갑구나 핸드폰아~~다시는 널 잃지 않으리~ 날 용서하렴...ㅜㅜ

집으로 오는길..
버스비 1100원.
돈 100이 없어서 걸었다. 너무 많아서 처치곤란이던 동전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ㅈㄱ.
기사님께서 내가 2000원을 내면 900원을 거슬러줄까..아님 날 노려볼까를 생각하다, 그냥 걷기로 했다. 이참에 살도 뺄겸...큭큭큭 ..날씨도 화창했다. 근데 발이 아프다. 얼마전 언니가 놀러왔을때 이쁘다고 내가 언니발에서 벗겨낸 구두다. 살짝 작았지만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내발에 꼭 맞다고 우기면서 등짝을 한대 얻어맞고 득템한 구두다. 천벌을 받은건가? 발이 너무 아팠다. 절뚝거릴수도 없고, 맨발로 걸을수도 없고, 반이나 걸은 마당에 버스나 택시를 탈수도 없고, 난 걸어야했다. 양쪽 네번째 발가락과 새끼발가락이 빨개졌다. 지금은 네번째 발톱까지 아프다. ㅜㅜ 우리언니는 발도 엄청 작은가부다. 난 내가 제일 작은줄 알았는데 ㅜㅜ 언니야 내가 잘못했어~~이 구두 가져가~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나니,
내일 아침은 무얼할까 고민중이다.
아직 덜 읽은 <왕을 찾아서>나 실컷 볼까?

오늘밤은 잠이 잘 올것 같다.
잘 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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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07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잘 주무셨어요?
전 지금 이 시각 님의 재기발랄한 페이퍼에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여~^^
올봄의 유행컬러는 블루블랙이군요,
누군가는 오렌지라고 하여 군침만 흘리다가 왔는데~
그런데 전 오렌지도 블루블랙도 감당안되기는 마찬가진걸요~^^

첫눈 2011-04-07 16:34   좋아요 0 | URL
그날은 아주 잘 잤지만, 역시 그날만 그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낮에 자고 밤에 책읽는 ㅋㅋㅋ
근데...새벽 두시까지 안주무시고 계시네요 ㅎㅎ
저랑 거의 같으신거 같은데요 ㅎㅎㅎ

오렌지나 블루블랙 시도를 안해보셔서 그러실거에요
누구나 다 잘 어울리는 컬러들인걸요 ^^
댓글 달아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
 
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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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꿈을 잘 꾸는 편이다. 괴한이나 괴물이나 악령에게 쫓기는 꿈, 모두가 떠나버리고 나 혼자만 남게되는 꿈,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몹쓸 큰 일이 일어나는 꿈, 갑자기 나타난 벼랑에서 휙 떨어져버리는 그런 꿈은 항상 나를 괴롭히며 자주 내 잠을 방해한다. 쫓아오는 악의 무리들은 초고속으로 내게 달려들지만 언제나 내 다리는 초저속의 슬로우모션이다. 그럴때의 나는 똑같이 반복되는 패턴의 꿈이라는것을 알고도 항상 당한다. 내 꿈은 정확성이 현저히 낮은 이른바 개꿈의 유형이다. 얼마전 종영된 <시크릿가든> 이라는 드라마에는 꿈이 항상 잘 맞아떨어지는 캐릭터가 있었다. 그런이들은 꿈꾸는게 얼마나 두려울까를 생각해보며, 내꿈은 그저 그런, 꾸고나면 1분이내에 바로 잊혀져 버리는 꿈이라는게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예술가들은 그런 꿈으로 책도쓰고, 가사도 쓰고 한다지만, 내꿈은 보통 정신사나운게 아니라서 아름다운 가사보다는 괴기에 가까운 가사가 탄생될지도 모르고, 작품성이 좋은 글보다는 테러에 가까운 졸작이 나올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아주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내 품에 안긴 이 책은 네개의 단락으로 엮어져 있다. 그중에 첫번째 단락이 <여섯번째의 꿈> 이다.작가는 아주 친절하게도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위한 조각난 사운드트랙을 배경음악으로 깔아주며 나를 폭설에 갇힌 산장으로 안내한다. 상대가 잠들면 내가 죽는다는 설정은 꿈속에서 사람들을 살인하는 어렸을때 봤던 <나이트메어>와 비슷하다. 혹시 모티브가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해봄직도 한게, 아주 무서운 노래에 이유가 있다. 영화<나이트메어>에서 꿈에 온것을 환영하는 듯한 노래가 나온다. 어린소녀가 아주 고요하게 부르는 노래지만 결코 포근하게 느껴지지 않고 무서움에 온몸이 오그라들어버리는 노래가 말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인현장에 도착한것을 알리는듯한 노래. 지금도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 하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이책의 네단락은 서로 다른듯 하면서, 결국 서로 다 엮여있다. 첫번째 단락에서 살인이 있었다면, 그 다음 단락은 그들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를 <복수의 공식>으로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다 서로 인연이 아닌듯 하지만 결국엔 서로 얽혀있는 인연들이다. 위의 조각난 사운드 트랙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의 가사를 보면 왜 눈이 일곱개일까 궁금했다. 아무래도 이 작가는 어렸을적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고양이>를 읽었었나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귀여운 고양이를 상대로 저렇게 무서운 글이 나올리 없다. 고양이는 세마리인데 눈이 일곱이면 누군가 또 있는것이다. 알수없는 또 한명, 바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있는것을 알수있다. 샴 쌍둥이다. 몸은 따로지만 정신적으로 얽혀진 이 정신적인 샴쌍둥이.

P165 (태식) 깡마른 연놈이 판박이처럼 닮았더라고. 손전등 불빛에 드러난 희멀건 팔다리가 나무뿌리처럼 뒤얽혀있는데, 해괴한 광경이었어. 몸이 달라붙은 샴쌍둥이 같기도 하고 머리 둘 달린 돌연변이 괴물 같기도 하고.

샴쌍둥이가 아니더라도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누군가를 죽일만한 사연들이 제각각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질렀던가. 멀리 돌아볼것도 없다. 최근 몇주전 나는 속으로 살인을 한차례 저질렀다. 마음만으로는 나도 연쇄살인자나 다름없으니 난 이미 그들과 엮어버리게 됐음을, 나또한 그들의 공범임을 순순히 자백하지 않을수없다. 작가는 공범이 된 나를 끌고 또 다른 살인의 세계로 이끈다.

네 단락중, 서막으로는 죽음을 보여주고 다음 단락에서는 그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그 다음 단락에서는 이 이야기의 책이 나온다. 여기에는 또다른 형태의 인큐버스가 나오는듯 하다. 인큐버스란 꿈속에 나타나 정기를 흡수하는 요괴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꿈속에서 정기를 흡수한다기 보다 밤마다 이어지는 끝이없는 이야기의 미로로 <여섯번째의 꿈>을 번역하는 남자를 이끌어, 정기가 고갈되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끝이없는 이야기의 미로. 바로 <π> 라는 무한소수 끝이없는 이야기의 설정이다. 어렸을때 엄마가 잠자리에서 일러주었던 그런 이야기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잠자리에서 나누는 달콤한 밀어도 아닌데, 그 남자는 왜 그 이야기에 빠져버렸을까? 아마도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죄책감이 있다. 친구를 놀리고 그 죄책감에 가출할 결심을 하게 만드는 그런 감정. 내 사소한 잘못으로 누군가 상처를 받았을때, 달려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부족한것만 같아 눈물이 나올것만 같은 그런 감정들 말이다. 살아오며 죄책감은 쌓이고 쌓여 이제는, 그럴수도있지 뭐. 라는 말로 내 자신을 합리화 시켜버리기도 하고 못본척 애써 외면하기도 하지만 죄책감은 언제나 그자리에서 늘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작가가 몰래 쳐놓은 거미줄에 독자가 어떤식으로, 얼마나 빨리 걸려드는지를 지켜보고있을 작가의 의도대로 난 이미 즐겁게 거미줄에 걸렸을 뿐만 아니라, 해먹에 매달리듯 대롱대롱 거미줄을 즐기고 있다.

이책의 소재는 정말이지 신선하지 못하다. 공포물에 항상 등장하는 외떨어진 산장. 고양이를 내세운 무서운 노래. 밤마다 이어지는 무서운 이야기. 호러영화에서 봄직한 등장인물의 정신분열,미스테리한 환상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항상 진리는 그렇듯 옛적부터 써온 구태의연한 그 소재들은 공포계의 피라미드에서 최고정점에 존재한다. 매번 같은 소재에 식상해 하면서도 결국엔 꼭 걸려들게 만드는 그런 흡입력 강한 소재. 그래서 항상 무서운 이야기에는 이런 소재가 빠지지 않고 매번 약방의 감초처럼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 네번째 단락에서는 왠지 김이 빠진듯 하다. 읽으라면 읽기야 하겠지만 환상처럼 나타났다 환상처럼 사라져버린 책,<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책에 관해 서술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글의 흐름을 떨어뜨린다. 앞의 세단락의 에필로그쯤 되는 부분이기도 한 이 부분은, 지금까지 작가가 쳐놓은 함정에 모두 걸려서 허우적 대며 즐거웠던 나는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다 가이드와 일행을 잃어버리고 혼자 외톨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외줄타기를 하는듯한, 빠져나올수 없는 이야기의 미로속에 단 하나의 출구를 찾기위해 책을 파고들었던 나에게 그 외줄을 싹뚝 잘라버리고 이야기의 미로에서 갑자기 다른곳으로 공간이동을 해버린듯한 괴리감을 떨칠수가 없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앞에 놓여졌던 커피는 이미 식은 지 오래다. 차게 식은 커피는 쓰디 쓰다. 마치 이 책을 다 본 지금의 내 심정이랄까? 이 책에서 유독 눈에 뜨이는 부분은 <나비효과>다. 나비의 아주 약한 한번의 날갯짓으로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태풍이 일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참 낯설지 않다. 내가 한 행동은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그 간단한 진리를 다시한번 새겨보기도 한다. 살아온 날만큼이나 살아갈 날들이 많은 나에겐 꼭 다시 새기고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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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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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보이는 우산을 쓴 여인의 모습은 그리 우울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여러 서평을 통해 이 책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쓴 책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저 여인의 앞모습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보이는 뒷모습은 그리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참 다행이다. 영란일지도 모를 저 여인의 뒷모습이 불행해 보이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다. 영란이라는 책제목에 떨궈져있는것은 빗물이 아니라, 그녀가 뒤로 하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고로 아이를 잃고, 그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던 남편까지도 잃었다. 집도 잃었다. 가진것은 피폐해진 정신과, 마구 치솟아오르는 분노와, 얼마 남지않은 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졌을때 아이와 남편이 있는 그곳으로 갈수 있다는 이유도 됐다. 남편이 미처 인세를 주지못해 빚아닌 빚을 청산하려 이정섭을 만나고, 그는 그녀가 몹시 위태로워보여 도저히 혼자 두지못해, 친구의 장례식장인 목포까지 그녀를 데려간다. 이정섭은 훵한 눈빛의 그녀를 둔채 목포를 떠나고, 그녀는 목포의 항구에 위치한 영란여관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 밤.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가게되고, 점차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도 알게되고, 죽은 아이에게 못다해준 사랑을 쏟을 아이도 만나게 된다. 그녀는 힘을 얻는다. 이정섭 또한 목포에 두고 온 그녀가 자꾸 떠오르고 그도 목포로 향한다. 목포를 쓰고자 하는것은 핑계에 불과할 뿐. 그또한 상처받은 영혼이기 때문에 상처받아 아무것도 남지않는 훵한 눈빛의 그녀가 어찌되었는지 너무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들은.......

책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는듯한 느낌을 준다. 전라도의 구수하고 진득한 사투리 때문이다. 목포에서 3년정도 살았던 내게 이 책은 너무 슬프게만도 볼수 없었던 것이 그들의 정다운 사투리와 내가 아는 곳이 종종 나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그녀는 목포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홀로 찾은것이 아니라, 목포에서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이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준것이다.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 오로지 상처만 가득한 그녀를 감싸안아 주었던 목포는 실은 내겐 큰 고통을 준곳 이기도 했다. 그녀가 목포에서 사랑을 찾았다면 난 목포에서 분노를 알게되기도 했다. 이정섭이 말했던 대로 목포여자는 모두 강인하고 열정적인 면모를 가졌을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는데, 맞다!! 내가 아는 목포여인들은 모두 강인하다. 그리고 열정적이다. 그녀들은 너무 강인해서 나를 매번 상처를 입혔고, 그녀들은 너무 열정적이어서 상처입고 기죽은 내가 하찮게 보이기도 했을것이다. 내가 힘든것을 알았지만, 그녀들과 나 사이에서 어쩔줄 몰라하던 남편은 나를 방치했다.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고 아는사람이라고는 나를 잡아먹어 버릴것만 같은 호랑이 같은 그녀들 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다. 나의 목포생활은 이러했는데, 영란은 너무 운이 좋은 여자다. 가는곳마다 그녀는 좋은 사람들만 만나는 걸 보니 부럽기도 했지만, 내 자신이 반성되기도 했다. 나는 목포에서 잘하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무서운 그녀들이 두려워서 내마음 한조각 나눠주지 못했다. 그러나 영란은 줄 마음 한조각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다가오는 그 마음들을 물리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나에게 호랑이 같았던 그녀들도 내게 다가오려 했지만 내가 마음을 주지 않았던 것일까?

실연의 고통에 몸부림 치면서도 또 다른 사랑으로 그 마음들을 치유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 마저도 훈훈해 진다. 나 역시 3년간의 목포생활을 하며 우울증까지 얻었지만 남편의 도움으로 목포를 벗어나며 내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목포얘기만 나오면 이를 갈아대는 나를 남편은 이해해주며 그때 많은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것을 두고두고 미안해 한다. 그호랑이 같았던 그녀들도 이젠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이젠 나를 잡아먹지 못한다. 나는 그곳을 떠났고, 내 자신을 지킬 힘을 키웠다. 나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며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 나를 아꼈던 친구들과, 나를 아끼던 지인들의 사랑으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육아때문에 쉬고있던 일을 다시 시작하며 나는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영란은 운이 좋은 여자다. 나도 운이 좋은 여자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포효를 내질렀다. 이정섭과 영란이 만나게 됨을 예고하는 마지막장은 내게 기쁨이기도 했다. 난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잃고,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당할수도 있는 일을 영란이 당한것일수도 있다. 어떤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책장을 넘기는 일 뿐이었으니 그저 그녀를 응원하며 지켜볼 수밖에.

이 책은 그리 슬프지만은 않다. 사람사는 냄새가 풀풀 풍겨온다. 사투리와 함께 실려온 그들의 사는 모습과 상처입은 사람들의 사는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사는모습이기도 하다. 슬픔을 그들과 함께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내 마음의 상처가 있던 자리도 메워주기도 하는것 같다. 목포는 내겐 슬픔의 도시지만, 내가 몰랐던 유달산의 또다른 얼굴들과 그들이 생활했던 여객선터미널쯤의 그곳이 그리워지는걸 보면 말이다. 떠올리고 싶지않던 목포를 떠올리게 하고, 가고 싶지 않던 목포를 가보고 싶어지게 하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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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04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포... 저는 목포가 좀 어려워요.
사람에 얽힌 어떤 추억 때문이예요. 그런데 목포가 굉장히 좋다는 분들도 많더군요. ^^

제게 지금 필요한 것도 사람사는 냄새일지 모르겠어요.
또는 무인도로 홀랑 도망쳐서 숨 쉴 시간일지도 모르겠구요.
월요일이예요, 즐거운 한주되셔요, 첫눈님.

첫눈 2011-04-04 12:04   좋아요 0 | URL
사람을 잃은 상처를, 사랑으로 다시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인데요..마음도 훈훈해져요. 저도 늘 목포는 두렵기만 해요. 특정인물 몇명때문에 목포에 사시는분 전체를 평가하게 되서 좀 안타깝기도 하지만...저는 목포가 쉽게 친해지지 않아요 ^^
마고님께서는 이곳에서 사랑은 받으시잖아요 ^^
힘내세요 ^^
저도 마고님 팬~~~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