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꿈을 잘 꾸는 편이다. 괴한이나 괴물이나 악령에게 쫓기는 꿈, 모두가 떠나버리고 나 혼자만 남게되는 꿈,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몹쓸 큰 일이 일어나는 꿈, 갑자기 나타난 벼랑에서 휙 떨어져버리는 그런 꿈은 항상 나를 괴롭히며 자주 내 잠을 방해한다. 쫓아오는 악의 무리들은 초고속으로 내게 달려들지만 언제나 내 다리는 초저속의 슬로우모션이다. 그럴때의 나는 똑같이 반복되는 패턴의 꿈이라는것을 알고도 항상 당한다. 내 꿈은 정확성이 현저히 낮은 이른바 개꿈의 유형이다. 얼마전 종영된 <시크릿가든> 이라는 드라마에는 꿈이 항상 잘 맞아떨어지는 캐릭터가 있었다. 그런이들은 꿈꾸는게 얼마나 두려울까를 생각해보며, 내꿈은 그저 그런, 꾸고나면 1분이내에 바로 잊혀져 버리는 꿈이라는게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예술가들은 그런 꿈으로 책도쓰고, 가사도 쓰고 한다지만, 내꿈은 보통 정신사나운게 아니라서 아름다운 가사보다는 괴기에 가까운 가사가 탄생될지도 모르고, 작품성이 좋은 글보다는 테러에 가까운 졸작이 나올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아주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내 품에 안긴 이 책은 네개의 단락으로 엮어져 있다. 그중에 첫번째 단락이 <여섯번째의 꿈> 이다.작가는 아주 친절하게도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위한 조각난 사운드트랙을 배경음악으로 깔아주며 나를 폭설에 갇힌 산장으로 안내한다. 상대가 잠들면 내가 죽는다는 설정은 꿈속에서 사람들을 살인하는 어렸을때 봤던 <나이트메어>와 비슷하다. 혹시 모티브가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해봄직도 한게, 아주 무서운 노래에 이유가 있다. 영화<나이트메어>에서 꿈에 온것을 환영하는 듯한 노래가 나온다. 어린소녀가 아주 고요하게 부르는 노래지만 결코 포근하게 느껴지지 않고 무서움에 온몸이 오그라들어버리는 노래가 말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인현장에 도착한것을 알리는듯한 노래. 지금도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 하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이책의 네단락은 서로 다른듯 하면서, 결국 서로 다 엮여있다. 첫번째 단락에서 살인이 있었다면, 그 다음 단락은 그들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를 <복수의 공식>으로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다 서로 인연이 아닌듯 하지만 결국엔 서로 얽혀있는 인연들이다. 위의 조각난 사운드 트랙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의 가사를 보면 왜 눈이 일곱개일까 궁금했다. 아무래도 이 작가는 어렸을적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고양이>를 읽었었나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귀여운 고양이를 상대로 저렇게 무서운 글이 나올리 없다. 고양이는 세마리인데 눈이 일곱이면 누군가 또 있는것이다. 알수없는 또 한명, 바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있는것을 알수있다. 샴 쌍둥이다. 몸은 따로지만 정신적으로 얽혀진 이 정신적인 샴쌍둥이.

P165 (태식) 깡마른 연놈이 판박이처럼 닮았더라고. 손전등 불빛에 드러난 희멀건 팔다리가 나무뿌리처럼 뒤얽혀있는데, 해괴한 광경이었어. 몸이 달라붙은 샴쌍둥이 같기도 하고 머리 둘 달린 돌연변이 괴물 같기도 하고.

샴쌍둥이가 아니더라도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누군가를 죽일만한 사연들이 제각각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질렀던가. 멀리 돌아볼것도 없다. 최근 몇주전 나는 속으로 살인을 한차례 저질렀다. 마음만으로는 나도 연쇄살인자나 다름없으니 난 이미 그들과 엮어버리게 됐음을, 나또한 그들의 공범임을 순순히 자백하지 않을수없다. 작가는 공범이 된 나를 끌고 또 다른 살인의 세계로 이끈다.

네 단락중, 서막으로는 죽음을 보여주고 다음 단락에서는 그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그 다음 단락에서는 이 이야기의 책이 나온다. 여기에는 또다른 형태의 인큐버스가 나오는듯 하다. 인큐버스란 꿈속에 나타나 정기를 흡수하는 요괴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꿈속에서 정기를 흡수한다기 보다 밤마다 이어지는 끝이없는 이야기의 미로로 <여섯번째의 꿈>을 번역하는 남자를 이끌어, 정기가 고갈되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끝이없는 이야기의 미로. 바로 <π> 라는 무한소수 끝이없는 이야기의 설정이다. 어렸을때 엄마가 잠자리에서 일러주었던 그런 이야기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잠자리에서 나누는 달콤한 밀어도 아닌데, 그 남자는 왜 그 이야기에 빠져버렸을까? 아마도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죄책감이 있다. 친구를 놀리고 그 죄책감에 가출할 결심을 하게 만드는 그런 감정. 내 사소한 잘못으로 누군가 상처를 받았을때, 달려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부족한것만 같아 눈물이 나올것만 같은 그런 감정들 말이다. 살아오며 죄책감은 쌓이고 쌓여 이제는, 그럴수도있지 뭐. 라는 말로 내 자신을 합리화 시켜버리기도 하고 못본척 애써 외면하기도 하지만 죄책감은 언제나 그자리에서 늘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작가가 몰래 쳐놓은 거미줄에 독자가 어떤식으로, 얼마나 빨리 걸려드는지를 지켜보고있을 작가의 의도대로 난 이미 즐겁게 거미줄에 걸렸을 뿐만 아니라, 해먹에 매달리듯 대롱대롱 거미줄을 즐기고 있다.

이책의 소재는 정말이지 신선하지 못하다. 공포물에 항상 등장하는 외떨어진 산장. 고양이를 내세운 무서운 노래. 밤마다 이어지는 무서운 이야기. 호러영화에서 봄직한 등장인물의 정신분열,미스테리한 환상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항상 진리는 그렇듯 옛적부터 써온 구태의연한 그 소재들은 공포계의 피라미드에서 최고정점에 존재한다. 매번 같은 소재에 식상해 하면서도 결국엔 꼭 걸려들게 만드는 그런 흡입력 강한 소재. 그래서 항상 무서운 이야기에는 이런 소재가 빠지지 않고 매번 약방의 감초처럼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 네번째 단락에서는 왠지 김이 빠진듯 하다. 읽으라면 읽기야 하겠지만 환상처럼 나타났다 환상처럼 사라져버린 책,<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책에 관해 서술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글의 흐름을 떨어뜨린다. 앞의 세단락의 에필로그쯤 되는 부분이기도 한 이 부분은, 지금까지 작가가 쳐놓은 함정에 모두 걸려서 허우적 대며 즐거웠던 나는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다 가이드와 일행을 잃어버리고 혼자 외톨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외줄타기를 하는듯한, 빠져나올수 없는 이야기의 미로속에 단 하나의 출구를 찾기위해 책을 파고들었던 나에게 그 외줄을 싹뚝 잘라버리고 이야기의 미로에서 갑자기 다른곳으로 공간이동을 해버린듯한 괴리감을 떨칠수가 없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앞에 놓여졌던 커피는 이미 식은 지 오래다. 차게 식은 커피는 쓰디 쓰다. 마치 이 책을 다 본 지금의 내 심정이랄까? 이 책에서 유독 눈에 뜨이는 부분은 <나비효과>다. 나비의 아주 약한 한번의 날갯짓으로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태풍이 일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참 낯설지 않다. 내가 한 행동은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그 간단한 진리를 다시한번 새겨보기도 한다. 살아온 날만큼이나 살아갈 날들이 많은 나에겐 꼭 다시 새기고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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