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빅터 - 17년 동안 바보로 살았던 멘사 회장의 이야기
호아킴 데 포사다.레이먼드 조 지음, 박형동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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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누구나 초등학교에서 IQ검사를 해본적이 있을것이다. 나도 물론 몇학년때 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IQ테스트를 한 기억은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나의 테스트 결과를 알지 못한다. 선생님께서 알려주셨는데도 내가 듣지 못했거나, 아니면 선생님께서 나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알려주시지 않으셨거나, 그 둘중 하나일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도중 자기 자신의 IQ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난 입을 다물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내 IQ가 얼마인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나는 지금도 모른다.

이 책은, 17년동안이나 바보로 살아야했던 멘사 회장의 이야기이다. 너무 똑똑하면 바보라는 이야기나, 바보와 천재는 종이 한장 차이라는 그런 이야기는 여러번 들은 적이 있다. 과연 그 차이는 무엇일까? 대체 빅터에겐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 오랜 세월을 바보로 살아야만 했는지 읽기도 전에 마음부터 아파오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빅터는 스스로를 못난 바보라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주위에서 흔히 들어온 말들. 다른 사람과 다른 자신의 생각이나 상상력을 모두 비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눅들고, 말도 더듬게 되고 항상 주위의 경멸어린 시선에 더욱 어깨는 움츠러 드는 소년이다. 그러나 항상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들이 그를 지배한다. 빅터를 믿어주는 사람은 오로지, 선생님과 아버지 뿐이다. 그리고 자꾸 생각나는 로라. 학교에서 실시한 빅터의 IQ테스트 결과가 소문이 나는 바람에 빅터는 더 이상 학교에서 버틸수 없어 자퇴를 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동차 수리공이 된다. 그의 IQ는 73. 그러나 훗날 밝혀진 그의 IQ는 173 이었음이 밝혀지고, 그가 우연히 풀게된 수학공식에 유명한 대기업 애플리에 채용된다. 그러나 사람의 진가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을때 빛을 발하듯, 빅터의 천재성을 일찍 알아본 회장이 해고 당하기에 이르고 빅터 역시 다시 밑바닥 인생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그는 다시 재회한 로라와 선생님의 권유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믿기로 다짐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지금 나는 몹시 부끄럽다. 사실 이 책은 한 페이지에 글자가 빽빽히 들어차 있는것도 아니고, 책이 두꺼워서 읽기 힘든 그런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만큼, 책장이 많이 접히고, 줄도 많이 그어져있고, 형광펜으로 칠을 한 책은 없다. 그만큼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은 글들로 가득 차 있다. 미사여구나 화려한 말장난이 아닌 그야말로 가슴 깊이 와 닿은 그런 말들이란 뜻이다. 너는 바보야, 너는 안돼, 라는 말들이 칼보다 더 심한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때로는 아는것 보다 모르는게 더 나을때도 있다. 빅터는 자신의 IQ가 73이란 것에 더더욱 자신을 놓아버린 듯 하다. 나 역시 만약 내 IQ지수가 낮은걸 알았다면 나도 자신감 없는 아이로 성장했을 것이다. 반면 IQ지수가 뛰어나다는 말을 들었다면 늦둥이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으며 자란 나는 무척이나 건방진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내 IQ지수를 내가 모른다는것을 누가 알까봐 늘 전전긍긍 했지만, 사실 내겐 그것은 아주 잘 된 일이다. 내게 천재성이 숨어있을지 지금도 미지수로 남아있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히든카드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믿음의 상실은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것이다.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내가 빅터를 너무나 부러워 하는것은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를 두었다는 점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한결 같은 마음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일까?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될때, 자기 자신이 미워질때 누군가 자기자신을 믿어주고 따뜻한 눈으로 한없이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을때 큰 힘이 될것이다. 자기믿음을 상실했을때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때에야 비로소 극복할수 있을것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비록 초라하고 바보같아 보인다고 생각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님을 명심해야 하자.  남들이 믿어주지 않는다고 자기 자신마저 스스로를 믿지못하지는 말자.  남들마저 알아주지 않을땐, 자기 자신이라도 스스로를 믿어주고 아끼고 사랑하자.  내가 나를 믿고 사랑할때, 나의 가치는 스스로 빛날 수 있을것이다.

호아킴 데 포사다.
이 책의 저자이다. 마시멜로 이야기와 마시멜로 두번째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내 어린아이들은 마시멜로이야기와 마시멜로 두번째 이야기를 즐겨 읽는다. 이미 세번은 넘게 봤다고 한다. 너무 읽어 책 표지가 더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는 책장에 꽂아만 두었을 뿐, 지금까지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엔 아이들이 즐겨 읽던 마시멜로 이야기 두권을 내가 읽고, 아이들에겐 바보 빅터를 읽어보라고 권해야 겠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쓴 작가라 하면 무척이나 좋아할 듯 싶다.


Be Yourself (너 자신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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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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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에 떠돌이개가 두마리 있었다. 동네꼬맹이들은 그 두마리의 개에게 이름도 붙혀주었다. 제트와 킬러. 꽤 멋있게 지었다고 감탄은 했지만 저 두마리가 과연 모두 수컷일까 궁금했다.그래서 나도 살짝 밑을 쳐다봤는데 역시 수컷이 맞았다. 정말 동네꼬맹이들은 참 똑똑하기까지 하다.알고지었을까? 모르고 지었을까? 제트와 킬러는 알고보니 떠돌이개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주변에 있던 어떤집의 개들이었고 주인이 있다는것은 제트와 킬러가 안보이고 나서야 알게된 사실이었다. 팔려갔다고한다.그렇게 그들과의 인연은 짧았지만, 나는 킬러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슬픈눈을 하고있던 누렁이 킬러가 먼저 떠오른다.



이책은 제 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거창한 상을 받은 책은 잘 친해지지 않는다. 작가의 무수하고도 어려운 함축적 이미지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명 한글로 써졌건만 내가 그것을 해석하며 읽어야하는것은 나의 뇌가 더이상 견디지 못할것이 분명하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된것은 술술 잘 읽힌다는 문장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추리소설을 연재하던 젊은대학생이 군대를 다녀오고 난뒤 낯선 검은양복으로부터 범죄소설 시리즈를 써달라는 의뢰를 받는다.자살을 가장한 타살, 즉 완전범죄를 말이다. 거액의 돈에 결국 허락을 하고 그는 소설을 쓰기시작한다. 몇차례의 시리즈소설 탈고끝에 그는 자유를 만끽할 휴가를 얻게되고, 우연히 들렀던 도서관에서 그간의 신문을 보며 자신이 썼던 범죄소설의 유형대로 사회저명인사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인물들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게된다. 그는 회사에 항의하지만 큰 돈앞에서 결국 그들과 손을 잡고만다. 물론 자기손으로 직접 죽인것은 아니지만 킬링시나리오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죄의식은 늘 그를 괴롭힌다. 하지만 그는 자기합리화도 꽤 잘하는 편이다. 회사로부터 아무리 어려운일을 요구해와도 그는 늘 극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극복뒤엔 항상 혼자 숨죽여 우는 킬러의 외로움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피에젖은 손이 얼마나 끔찍할까..



난 이 책을 보면서 티비만 틀면 나왔던 영화 <트루먼쇼>가 생각났다. 트루먼 역시 자기의 생활이 실제의 삶인줄로 알고 지내왔지만 알고보니 일거수 일투족, 하루 24시간 방송되는 실제상황인것이다. 동네사람들, 직장동료들, 부모님들 거기다 아내마저도 그만 모르는 방송을 위한 설정. 즉 연기자들이었던 것이다. 이책의 킬러역시 그렇다. 킬러의 부모나 친구들은 아니지만, 킬러가 사랑에 빠지는 연인들은 모두 그러하다. 매니저는 킬러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었는데 그 이유인즉슨, 킬러가 봤던 야동의 조회수를 파악하여 많이 봤던 야동의 여주인공의 얼굴로 바꾼것이었다. 청혼을 하려 마음먹었던 연인도 마찬가지. 회사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디만큼 그 어두운 손길이 뻗쳐있는지 알수는없지만 회사를 배반하면 어떤결과가 나올지 책에서는 옛전설인 구미호가 모티브인 <설녀>로 설명을 대신한다. 킬러는 역시 외로울수밖에 없나보다.



술술 잘 읽혀지는 책인것은 맞다. 추리소설에 가깝지는 않으나 완전범죄로 살인을 하기위해 킬링시나리오를 엿보는것은 책속에서 또 한편의 소설을 보는듯 흥미를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미드 CSI를 보는것처럼 살인방법 또한 기발하고 살인을 계획하는 것까지도 치밀하다. 킬러는 항상 괴로워하지만, 돈앞에서 어쩔수없이 나약해지는것은, 사회와 어느정도 타협해가며 비굴하게 살고있지만 그런 비겁함을 감추며 살고있는 나를 보는듯해서 왠지 미워할수만은 없었다.



책의 말미쯤에 킬러는 모든것에 해탈해 빠져버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 착해졌다랄까? 아니면 세상을 거의 다 살아버린듯한, 임종직전의 회개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180도로 꺾어졌다 해야할까? 90도로 꺾어져버리는듯 김빠진 모습에 나는 당황했지만, 책의 말미쯤엔 이런모습의 킬러를 보여야만 하는 작가의 안달남이 살짝 엿보였다. 마무리의 급설정모드인가? 그 즈음엔 내 입에도 내시경을 위한 마취약이 머금어져 있어서 그런끝이 내심 반갑기도 했다.



사람마저도 죽음의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버리는 무서운 세태를 잘 집어낸 책이다.

구조조정이 된 사람들의 살아온 모습들을 보면 역시 사람은 둥글게 둥글게, 모나지않게, 좋은게 좋은것이라는것을 염두에 두고 사는게 좋을것 같다. 하지만 요즘의 세상은 아들이 부모를 죽일정도로 살벌하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저런식의 구조조정을 당하지 않을지 생각해봄직 하다.



얼마전 어느 가난한 작가의 죽음이 있었다. 너무 가난해서 먹지못해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돌아가신 우리나라 소설계의 대모 故박완서작가는 장례식에서 가난한 문인들에게서 부의금을 받지않겠다고 했다. 난 그 말씀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았지만, 이제는 난 피부로 느낄수 있다. 그 여작가의 가난이 말이다. 너무 가슴아프고 안타까운일이다. 먹지못해 죽는다는것은 우리나라가 아닌 아프리카 난민들의 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내겐 큰 충격이었다. 소외된 계층이 따로 있는건 아닌것도 이번에 알았다. 이웃을 둘려보며 서로 돕고 살아야겠다. 그리고 킬링시나리오 까지는 아니겠지만 내 가시돋힌 말들로 인해서 상처받는 사람은 없는지 다시한번 뒤돌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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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 - 조선 최초의 세계인 문순득 표류기
서미경 지음 / 북스토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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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에 대한 나의 지극한 사랑을 말로 하자면, 오늘 밤을 새어도 부족 할 것이다. 홍어를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매운탕으로,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더한 삼합으로, 튀김으로 갖가지 방법으로 홍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켜준다. 그러나 나는 홍어를 먹을때 초장이나 소금기름장을 전혀 찍어먹지 않는다. 홍어를 먹을때 다른것이 첨가되면 홍어의 참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홍어는 비싸다. 그 비싼 홍어를 먹으면서 홍어를 느낄수 없다면 그건 비극인 것이다. 홍어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 나는 생날것의 향을 즐긴다. 목포에 근접한 전라도에서는 잔칫상에 홍어가 빠지면 그 잔치는 이미 2류다. 홍어가 올라왔어도 제대로 삭힌 홍어가 아니라면 그것도 2류다. 제대로 삭혀서 한 입 먹는순간 코에서 더운 김이 훅 끼쳐나와야 1류라고 할수 있다. 제대로 삭힌 홍어의 맛이라면, 강한 암모니아 향때문에 코에서 더운 김이 나오고 그 충격에 제대로 눈을 뜰수가 없으며 머리는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이 전해져 오며 그 다음날에는 입 안의 점막이 모두 벗겨져야 최상급의 홍어맛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홍어는 이런 충격적인 맛때문에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이런 홍어를 잡아서 파는 중간상인 조선시대의 문순득 이라는 사람의 표류기라 하니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우이도의 스물다섯 난 젊은이 문순득은 홍어를 내다팔기 위해 작은아버지를 포함한 6명이 항해에 오른다. 그러나 바람에 막혀 그들은 표류하게 되고 열하루만에 류큐에 닿는다. 그 곳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다 고국으로 돌려보내지기 위해 중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가는 도중 또 바람에 휘말려 이번에는 서쪽으로 열흘넘게 무작정 흘러가다 여송(필리핀)에 닿는다. 그 곳에서 간신히 입고 먹고 생활하다 다시 중국으로 향하게 되는데, 문순득을 포함한 조선인표류자 6인중 4명이 먼저 중국으로 출발한다. 이때 문순득과 어린아이 김옥문이 낙오된다. 표류중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따른던 작은아버지와의 이별은 그에게 큰 슬픔과 충격이었겠지만 그 특유의 긍정적인 시선이 슬픔은 뒤로한 채 앞날을 기약하며 그곳의 생활방식과 문물, 언어를 배우며 지내게 된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다시 중국으로 향하게 되고, 중국에서 조선사신단과 함께 조선으로 향하며 길고 긴 3년하고도 석달이 넘는 표류가 끝이 난 것이다.

문순득은 시대를 잘 못 타고 태어난 사람이다. 오로지 양반만이 득세하던 시절, 홍어잡이는 천하디 천한 신분이라 아무리 머리가 총명하다 한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일본으로 여송으로 중국으로 표류하며 그 곳의 언어를 익히고 그곳의 생활방식과 자신의 생업과도 큰 연관이 있는 배의 구조를 샅샅이 눈여겨 보았다가 우리나라로 돌아와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그는 천민이라 글을 모른다. 그의 정신적인 지주라 할 수 있는 정약전이 기록을 하였을 뿐이다. 그 짧은 기간동안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도 대단할 뿐더러 눈여겨 봐온 모든 것 들을 잊지않고 모두 기억해내어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 그가 시대를 잘못 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총명한 머리로 무엇인가를 해내도 해냈을 것이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뭔가를 이룩해도 이룩했을 것이 분명하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때, 한가지 오해를 한 점이 있었다. 홍어잡이 문순득, 그 혼자 작은배에 혼자 작업을 나갔다가 홀로 표류를 당한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6인이 승선했었고, 절대 홀로 외로운 표류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가 그렇게 오해를 하게 된 것은, 내가 지금 사는 이 곳 거제엔 지금도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혼자 나가거나, 부인과 함께, 아니면 아들과 함께 둘만 나가는 일이 대부분 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가슴 아픈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내 직장동료중 무척이나 가깝게 지내는 동료가 있었다. 그 동료의 아버지도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 분이셨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그 동료에게 해경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배만 있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럴때 대부분 눈치를 챈다. 빠지셨구나 하고. 그러나 제발 살아계시기를 어디선가 피하고 계시기를 바랄뿐이다. 그러나 너무나 무서운 일임엔 분명했다. 내 동료는 울음을 터뜨리며 급히 현장으로 떠났고, 두시간뒤 온 연락에는 아버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바다밑에서. 우리는 오열했고 잠시 후 장의차에 운구되어 온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물을 치시다 그물에 휘감겨 빨려 들어가신 것이라 한다. 이때 만약 옆에서 누군가 돕는다고 하다 나머지 한명도 빨려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옷에 칼을 휴대한다고 한다. 그런 위급 상황시에 바닷속에서 그물을 잘라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실 많은 어부종사자들이 그렇게 항상 칼을 휴대하고 다니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잃게도 만든다. 자연의 힘을 어찌 인간이 대항할수 있으며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동안, 표류자는 문순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신으로 가다 표류를 당한 경우에는 그 표류자가 글을 알기에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표류자는 글을 모르는 어부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문자를 깨우치지 못해 경험하기 힘든 일을 당하고도 그저 그들만이 아는 이야기로 회자되다 사라져버린 안타까운 사연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 문순득이 정약전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책에서는 여러번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리고 그 외롭고 외로운 유배생활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문순득의 표류기는 정약전에게도 삶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의 유배지로 향하는 길에서 그들이 나눈 얘기도 내 눈물샘을 건드린 부분이기도 하다. 우애좋은 형제가 나란히 유배지로 가는동안 이제 헤어지면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도 하지 못하는 밤이 얼마나 서글펐을 것인가. 그러나 그들은 유배지에서도 학문의 꽃을 피우며 그들 자신의 발전을 꽤했다니 역시 위인은 위인이다.

이 책에서는 중간중간 사진을 삽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한가로운 일본 어촌마을의 잔잔한 풍경을 보니, 얼마전 일본을 휩쓴 쓰나미와 지진때문에 대 참사를 당한 모습이 떠올라 너무 마음이 아프고 쓰라리다. 문순득이 표류하다 흘러간 곳은 류큐라고 하여 그 당시에는 일본과는 또 다른 국가 였으나 일본이 흡수하려는 그 시대였다. 류큐는 언어도 일본과는 틀리다고 한다. 내가 얼마 전에 읽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라는 책에 주인공 가족이 오키나와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주인공 지로라는 꼬마가 오키나와에서 어른들이 하는말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온다. 바로 그 곳인 것이다. 지로의 고조할아버지쯤 되시는 아카하치도 이 책에 홍길동일지도 모른다는 홍가와라 아카하치로 소개되기도 한다. 얼마 전 읽었던 책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보여 내심 반갑기도 했다.

KBS 역사 스페셜에서도 소개된 바 있을 정도로 이 표류기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표류에 표류를 거쳐 오랜시간 표류를 했다는 점과, 표류자가 그 나라의 문물을 익혔다는 점과, 여러나라를 떠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것을 잊지않고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졌다는 점이 무척이나 큰 의미로 남는다. 그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가 흘러간 곳을 200년이 지난 지금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 그의 표류로 인해 그 나라에 기록이 남겨진 것은 우리 사람이 그곳에 살았던 자취가 지금 현대에 살고 있는 나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하다 생각 될 정도이다. 그의 표류행이 얼마나 힘들고 험난했을지,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겨야만 했는지, 꼭 살아서 돌아가고 싶었을 그의 마음과 한 가정의 가장을 잃고 젊은 과부가 되버린 그의 아내의 마음이 전해져 와서 이렇게 편하게 읽고 있는 지금 미안해질 정도다. 전라남도 해남에는 아직도 문순득이 지은 집이 남아있다고 한다. 해남에 가게 되면 꼭 한번 방문해 그를 기리고 싶다.

문순득의 표류기
홍어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
읽는 내내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만 보기 아까운 생각, 아버지가 보시면 너무 좋을 내용, 꼭 한권 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아오르는 책이다.


1805년 1월 8일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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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투명한 내 마음
베로니크 오발데 지음, 김남주 옮김 / 뮤진트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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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 이해는 어디까지 일까? 사랑은 참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까? 아무튼 사랑은 너무 어렵다.

사랑에 상처받은 외로운 한 남자의 이야기가 이번 주말 내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지독하게 사랑했지만 결국 그 사랑에 대해 어느것 하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한 남자의 외로운 사랑.

랜슬롯은 권태기에 빠져 전처와 이혼하고, 전처와는 너무나 다른 통통튀는 매력이 있는 이리나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하게 된다.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사랑했던 그녀가 어느 날 밤 사망한다. 랜슬롯은 그녀의 죽음에 얽힌 일련의 사건들과 마주하게 되고, 그녀를 잃은 상실감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죽음에 어떤 일이 있던건지 느리지만 빠른속도로 그녀의 자취를 더듬어 간다. 너무나 자유분방한 이리나를 견디며 살았던 것도 그녀를 너무나 사랑해서 였지만, 그녀의 자취를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그녀에 대해 뭘 알고 있었던건지 그는 점점 비참해 지고, 그녀의 의심스러운 행동들로 인해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버린 그의 신경세포는 그를 점점 피해의식과 정신분열 초기증세로 까지 발전시키고 만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리나의 실상에 대해 더이상 알고 싶지않다는 마음가짐으로 체념 어린 극복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다. 그러나 이리나는 어찌됐건 그를 사랑한건 분명하다. 오로지 그녀만의 방식으로.

불성실한 혼인관계가 남아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크게 상처가 될 수 있는지, 그 한 남자의 상처가 고스란히 보이는 책이다. 질투심으로 온 몸이 활활 불타오르더라도, 그녀를 향한 사랑때문에 그 조차도 감내를 하는 그 남자를 보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런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심리묘사가 아주 탁월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랜슬롯의 머리에 심어 놓은 듯 했다. 끝내 터지지는 않았지만 책을 다 본 후엔 랜슬롯의 머리에 있던 폭탄이 내 머릿속으로 옮겨 온듯한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는 것 만 같다. 불우했던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랜슬롯. 성장과정이 그를 얼마나 폐쇄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다시금 부모로서의 역할이 새삼 진지하게 다가오는 듯 하다. 그렇다면 이리나는 그의 어떤 모습에 반했던 것일까? 이리나의 추측하기 힘든 생활방식은 읽는 동안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아직은 보수적인 우리의 생활방식에, 이리나의 생활방식은 죽었다 깨어나도 하기 힘든 행동들로 가득하다. 자유로운 이리나와 폐쇄적인 랜슬롯.
언밸런스한 커플의 사랑이야기는 이미 이리나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줄거리에 그녀는 왜 그에게 사랑을 느꼈는지 알수는 없었다. 다만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것만 알게 되었을 뿐. 사랑은 참 어렵다.

한 남자의 깊은 고뇌와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수작임에는 틀림없겠지만, 너무나 빈번한 괄호의 사용과 지문은 독자들이 상상하며 생각할 여유도 주지않는, 그야말로 여백의 미가 전혀 없다. 지문 하나하나 토씨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것은 랜슬롯을 지치게 했던 그의 전처 엘리자베스의 습관과 같다. 마치 설명해 주지 않으면 독자들은 전혀 이해를 못하리라 생각하는 것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여백의 미가 절실하게 그리워 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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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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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각자의 잘못을 저지르고 산다. 알게도 저지르고 모르게도 저지른다. 모르게 저지르는 잘못이야 어쩔수 없지만, 알고 저지르는 잘못을 지었을때는 그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며 사과하기 전까지는 엄청난 괴로움에 시달리며 살게 된다. 나도 그런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한명일 것이다.

이 책은, 잘못을 숨기며 사는 댓가가 어떤것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사니 다들 공감하겠지만,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 하며 사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안들키고 넘어가도 죄책감으로 이어져 그 기억이 떠오를때 마다 괴로워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잘못을 저지르게 됐으면 빨리 고백하고 혼날만 하면 빨리 혼나는게 마음 편하다는 나름의 진리도 터득했다. 이 책은, 죄를 짓고도 11년간이나 침묵하며 괴로워했을 마을사람들과, 죄를 뒤집어쓰고 전과자가 되어 망가져 버린 한 가족의 가슴아픈 사연이다.

작은 마을 알텐하인, 11년만에 출소한 토비아스. 그는 기억에 없던 2시간과 갖가지 불리한 증언과 증거들로 살인죄를 뒤집어썼다. 자기 자신이 정말 살인을 저질렀는지, 그러지 않았는지도 알지 못한채 이제 전과자라는 타이틀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맞부딪힌다. 돌아온 그는 자신으로 인해 부모님께서 큰 상처를 받게 된 것을 알고 괴로워한다. 동네 여자친구 둘을 죽이고도 뻔뻔스럽게 돌아왔냐는 듯 마을사람들은 돌아온 그를 용서하지 못한다. 최근에 이곳으로 이사온 아멜리라는 편견이 없는 소녀는 11년전에 있었던 살인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토비아스를 만난 후 그에게 반해 더욱 그 사건에 집착하게 되고, 우연히 그 살인현장에 목격자가 있음을 알아낸다. 마을사람들의 이상한 행동과 토비아스를 위협하는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드디어 유골이 발견되고 점점 마을의 미스테리가 하나 둘 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알텐하인의 유지 테를린덴과 라우터바흐의 죄가 낱낱이 드러나게 되고, 마을사람들은 그들의 보호를 받기위해 입을 다무는 앞잡이들 이었음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그리고 토비아스의 소꿉친구지만 지금은 유명배우가 되어 세계곳곳을 누비는 나디아마저도. 토비아스의 잃어버린 10년과 깨져버린 가정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오랫만에 온전히 내가 책에 몰입되는 맛을 본것 같다. 나는 어찌 된 일인지 슬퍼도 울지만, 너무나 화가 나거나 분이 나도 눈물이 난다. 이 책을 읽는동안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몇번이나 눈물이 날 뻔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골마을에 이런 추악함으로 뭉친 마을사람들이라니. 이런 사람들을 이웃이라 믿었다니 너무 분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을의 누군가 몇명은 나쁜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마을 전체가 이럴수가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토비아스와 그의 가족이 느꼈을 외로움이 느껴져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내용과 구성이 너무나 탄탄해 아주 멋진 영화를 한편 보고 난 기분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 머릿속은 스크린처럼 상영이 될 정도였다. 책은 아주 두껍고 글이 너무나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만 앞 몇장을 넘기자마자 그 책에 빠져버리는 아주 강한 흡입력 있는 소설이다. 책은 중반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빠른 속도로 결말에 치닫는다. 나는 이때 아주 묘한 감정도 느꼈다. 빨리 범인을 알아내고 싶어서 끝을 보고싶은 마음과, 이 재밌는 내용이 이제 얼마 안남아서 아쉬운, 아껴서 보고싶은 상반된 마음이 교차했다. 이런 느낌, 너무 오랫만인것 같다. 너무나 좋은 책을 오랫만에 만나서 인지 이 흥분은 빨리 식지 않을 것 같다.

저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동네를 무대로 썼다는데, 저자가 배경으로 썼던 곳은 모두 관광코스가 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한다. 이번책에서는 알텐하인을 쓰레기같은 마을로 썼지만, 누구든 자기의 고향만큼은 아름답게 기억되길 바라지 않을까? 저자의 남편이 자기의 고향만큼은 소재로 쓰지 말아달라 부탁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여행에 관심이 없던 나 조차 이 마을을 토비아스의 눈으로 꼭 한번 걸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마을은 아름답게 묘사됐고 스토리는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토비아스의 집과, 보덴슈타인 저택과 티스가 아멜리를 붙잡고 걸었던 길들. 저자의 다음 작품에서는 과연 어떤 마을이 또 등장하게 될지 살짝 기대가 된다.

잘못은 빨리 뉘우치고 잘못의 댓가를 치루는게 제일 현명한 방법임과 잘못을 숨기는것이 얼마나 더 괴로운 것인지 다시한번 깨우치게 되는것 같다. 가까운 이웃은 피를 나눈 사촌보다 가깝다는 말은 이제 옛말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아직 우리 이웃은 따뜻함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이웃에게 잘하며 힘들때 같이 힘을 나누고 덜어줄 수 있는 이웃과 친구가 내게 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이 뭉클해 진다. 내용은 추악했지만 그러므로 인해 내 주위의 따뜻함을 맛볼 수 있었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 따스한 봄에 읽어보며 내 주위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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