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개정판이 나왔다는 말에 없던 호기심이 생긴 책이다. 얼마나 재미있길래 개정판이 나왔을까 생각하며 낚이지는 않을것 같은 만족감에 골랐던 책이다. 이 책은 남자아이가 남자로 커가는 과정을 그려낸 성장소설이라고 말해도 무난할 듯 싶다. 위인전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주인공의 어린시절 위인이었던 어느 한 남자의 장례식을 가며 추억에 잠기는 내용이다. 장례식은 길어야 2박3일 정도지만 몇십년을 아우르는 시간여행까지 하게되는 재미도 있다. 난 늘 궁금하기도 했다. 언니만 넷을 가졌고, 학교도 여자만 다니는 학교를 다닌터라 늘 남자들의 성장기가 궁금하긴 했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환경속에 성장한 여자들은 그럴것 같기도 할터. 남편도 가끔 추억의 단편을 꺼내주기도 하지만, 내게 들려주는 추억엔 왠지 엄청난 편집이 가해져있는 느낌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적나라한 그들만의 세계인지 난 늘 궁금하고 목말랐다. 아 그렇지. 한때 흥행했었던 <친구>라는 영화도 충격적이기는 했다. 비록 폭력배 이야기라 끔찍한것도 있었지만 어느정도 그들의 내면이 파악되기도 했다. 그런 맥락으로 보자면 이 책 역시 <친구>라는 영화와 거의 흡사하다.

책표지에 가끔 감동하기도 하는 나는 이번 책표지에도 슬픔을 느꼈다. 아무 이유없이 책표지에 아무그림이나 막무가내로 넣지는 않을것 아닌가! 맨발의 남자는 왕을 위하여 술과 안주를 준비했나보다. 비닐봉지에 들은 술과 북어. 비를 맞으며 부재중인 왕의 의자에 우산을 씌어주고 있는 그림은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이 영웅을 잃고 느꼈을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빗물은 그의 눈물이리라.

마사오라는 인물은 혼자 떠오르는 태양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떠올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는 그는 모두의 영원한 왕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왕, 그리고 공정한 왕, 작은 도시에 꼭 한명은 있을법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죽자 권력의 빈자리를 향해 제2,제3의 인물들의 난투극이 벌어지는데 그 제 2의인물과 제 3의 인물과 함께하는 추억여행이 그것이다. 책의 말을 인용하자면, 장례식장에 가기전 추억하고, 버스에 타면서 추억하고, 휴게소에서 쉬면서 추억하고, 밥을 먹으면서 추억하고, 친구를 만나면서 추억하고, 장례식장 들어서며 추억하고, 첫사랑을 만나면서 추억하고, 택시를 타면서 추억하고 술을 마시면서 추억하고, 잠자면서 추억하고, 추억하고, 추억하고 또 추억한다.

쌍둥이도 아니건만 한날 한시에 태어난, 뱀의 혓바닥을 가진 친구에 대해서도, 무식하리만치 생각은 하지않고 팔뚝만 굵고 의리가 있던 친구에 대해서도, 그의 첫사랑에 대해서도, 그의 두번째 사랑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추억은 사실 볼만하다. 남의 인생을 살짝 엿보는 기분이랄까? 나에게도 있는것을 확인시켜준 관음증을 자가진단 할수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작은마을에서 벌어진 권력난투극은 진지하고도 싱겁게 끝났지만, 허탈한 마음을 감출수도 없는게, 주인공은 너무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인공은 마사오 같은 인물이어야 하지않나, 아직도 나는 마사오와 같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원하고 있는것은 아닌가를 잠시 생각에 빠지게도 만들었다. 주인공이 꼭 영웅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난 언제부턴가 주인공은 그 어느곳에서도 주인공감이 되어야만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허탈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편견을 깨주기도 한 주인공인것 같다.

추억이란 참 소중하다. 나도 어릴적의 추억이 참 소중하다. 엄마에게 맞은 기억까지 소중하다. 주인공은 내가 겪지 못한 아주 많은 일을 대신 겪고 내게 말해주었다. 수많은 추억들이 주인공과 함께 영원히 푸르렀으면 좋겠다. 그 당시에는 괴롭고 힘들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빛을 발하는것은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지치고 괴롭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시 떠올릴수 있을 것이다. 난 이책이 추억이 너무 많아 에피소드들은 재미있었지만,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이 너무 없어 살짝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추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미묘한 힘이 있는 책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띄어지기도 한다.

작가의 거침없는 표현들이 걸작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나 나올법한 거침없는 육두문자와 거침없는 생 날것의 표현들은 보기 역겹다기 보다 왠지 즐거웠다. 너무나 적나라한 표현에 작가소개에 나온 작가의 얼굴을 몇번씩이나 보게할 정도다. 아주 좋으신 분같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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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07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성석제의 글들 참 좋아해요.
이기호와 쌍벽을 이루면서 좋아하는데 아직 못봤네요.
그쵸, 그를 통하면 육두문자도 참 구수하죠~^^

첫눈 2011-04-07 19:54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은 벌써 많은 작가분들의 글을 읽으셨나봐요..
부럽습니다 ^^
저는 처음 접해본 분인데요..재미도 있었지만, 개정판까지 나올정돈지...약간 갸웃했었어요 ^^
육두문자는 아주 즐거웠어요. 제 마음이 다 뻥뚫릴정도로요 ㅎㅎ
보면서 많이 웃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