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표지에 보이는 우산을 쓴 여인의 모습은 그리 우울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여러 서평을 통해 이 책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쓴 책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저 여인의 앞모습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보이는 뒷모습은 그리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참 다행이다. 영란일지도 모를 저 여인의 뒷모습이 불행해 보이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다. 영란이라는 책제목에 떨궈져있는것은 빗물이 아니라, 그녀가 뒤로 하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고로 아이를 잃고, 그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던 남편까지도 잃었다. 집도 잃었다. 가진것은 피폐해진 정신과, 마구 치솟아오르는 분노와, 얼마 남지않은 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졌을때 아이와 남편이 있는 그곳으로 갈수 있다는 이유도 됐다. 남편이 미처 인세를 주지못해 빚아닌 빚을 청산하려 이정섭을 만나고, 그는 그녀가 몹시 위태로워보여 도저히 혼자 두지못해, 친구의 장례식장인 목포까지 그녀를 데려간다. 이정섭은 훵한 눈빛의 그녀를 둔채 목포를 떠나고, 그녀는 목포의 항구에 위치한 영란여관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 밤.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가게되고, 점차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도 알게되고, 죽은 아이에게 못다해준 사랑을 쏟을 아이도 만나게 된다. 그녀는 힘을 얻는다. 이정섭 또한 목포에 두고 온 그녀가 자꾸 떠오르고 그도 목포로 향한다. 목포를 쓰고자 하는것은 핑계에 불과할 뿐. 그또한 상처받은 영혼이기 때문에 상처받아 아무것도 남지않는 훵한 눈빛의 그녀가 어찌되었는지 너무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들은.......

책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는듯한 느낌을 준다. 전라도의 구수하고 진득한 사투리 때문이다. 목포에서 3년정도 살았던 내게 이 책은 너무 슬프게만도 볼수 없었던 것이 그들의 정다운 사투리와 내가 아는 곳이 종종 나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그녀는 목포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홀로 찾은것이 아니라, 목포에서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이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준것이다.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 오로지 상처만 가득한 그녀를 감싸안아 주었던 목포는 실은 내겐 큰 고통을 준곳 이기도 했다. 그녀가 목포에서 사랑을 찾았다면 난 목포에서 분노를 알게되기도 했다. 이정섭이 말했던 대로 목포여자는 모두 강인하고 열정적인 면모를 가졌을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는데, 맞다!! 내가 아는 목포여인들은 모두 강인하다. 그리고 열정적이다. 그녀들은 너무 강인해서 나를 매번 상처를 입혔고, 그녀들은 너무 열정적이어서 상처입고 기죽은 내가 하찮게 보이기도 했을것이다. 내가 힘든것을 알았지만, 그녀들과 나 사이에서 어쩔줄 몰라하던 남편은 나를 방치했다.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고 아는사람이라고는 나를 잡아먹어 버릴것만 같은 호랑이 같은 그녀들 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다. 나의 목포생활은 이러했는데, 영란은 너무 운이 좋은 여자다. 가는곳마다 그녀는 좋은 사람들만 만나는 걸 보니 부럽기도 했지만, 내 자신이 반성되기도 했다. 나는 목포에서 잘하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무서운 그녀들이 두려워서 내마음 한조각 나눠주지 못했다. 그러나 영란은 줄 마음 한조각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다가오는 그 마음들을 물리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나에게 호랑이 같았던 그녀들도 내게 다가오려 했지만 내가 마음을 주지 않았던 것일까?

실연의 고통에 몸부림 치면서도 또 다른 사랑으로 그 마음들을 치유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 마저도 훈훈해 진다. 나 역시 3년간의 목포생활을 하며 우울증까지 얻었지만 남편의 도움으로 목포를 벗어나며 내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목포얘기만 나오면 이를 갈아대는 나를 남편은 이해해주며 그때 많은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것을 두고두고 미안해 한다. 그호랑이 같았던 그녀들도 이젠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이젠 나를 잡아먹지 못한다. 나는 그곳을 떠났고, 내 자신을 지킬 힘을 키웠다. 나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며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 나를 아꼈던 친구들과, 나를 아끼던 지인들의 사랑으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육아때문에 쉬고있던 일을 다시 시작하며 나는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영란은 운이 좋은 여자다. 나도 운이 좋은 여자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포효를 내질렀다. 이정섭과 영란이 만나게 됨을 예고하는 마지막장은 내게 기쁨이기도 했다. 난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잃고,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당할수도 있는 일을 영란이 당한것일수도 있다. 어떤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책장을 넘기는 일 뿐이었으니 그저 그녀를 응원하며 지켜볼 수밖에.

이 책은 그리 슬프지만은 않다. 사람사는 냄새가 풀풀 풍겨온다. 사투리와 함께 실려온 그들의 사는 모습과 상처입은 사람들의 사는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사는모습이기도 하다. 슬픔을 그들과 함께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내 마음의 상처가 있던 자리도 메워주기도 하는것 같다. 목포는 내겐 슬픔의 도시지만, 내가 몰랐던 유달산의 또다른 얼굴들과 그들이 생활했던 여객선터미널쯤의 그곳이 그리워지는걸 보면 말이다. 떠올리고 싶지않던 목포를 떠올리게 하고, 가고 싶지 않던 목포를 가보고 싶어지게 하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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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04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포... 저는 목포가 좀 어려워요.
사람에 얽힌 어떤 추억 때문이예요. 그런데 목포가 굉장히 좋다는 분들도 많더군요. ^^

제게 지금 필요한 것도 사람사는 냄새일지 모르겠어요.
또는 무인도로 홀랑 도망쳐서 숨 쉴 시간일지도 모르겠구요.
월요일이예요, 즐거운 한주되셔요, 첫눈님.

첫눈 2011-04-04 12:04   좋아요 0 | URL
사람을 잃은 상처를, 사랑으로 다시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인데요..마음도 훈훈해져요. 저도 늘 목포는 두렵기만 해요. 특정인물 몇명때문에 목포에 사시는분 전체를 평가하게 되서 좀 안타깝기도 하지만...저는 목포가 쉽게 친해지지 않아요 ^^
마고님께서는 이곳에서 사랑은 받으시잖아요 ^^
힘내세요 ^^
저도 마고님 팬~~~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