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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왕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김해생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문화생활과는 한참 동떨어진 사람인가 보다.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미술전 한번 가본적 없고, 연극을 좋아하면서도 20대때 단 한번 본게 전부인걸 보면 말이다. 영화를 제외하고는 직접 찾아가 관람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나는 문화를 즐긴다.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기도 하고, 그림이 있는곳에는 그림에 집중하기도 하고 심심찮게 TV에서 나오는 클래식 음악도 즐겨 듣는다. 그 중 오페라 역시 내 관심분야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화속에 나오는 오페라를 보며 그 내용을 이해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한다. 영화 <아마데우스>나 <파리넬리>는 나를 오페라의 세계로 안내한 큰 역할을 담당했다. 모짜르트의 비운의 삶과 파리넬리의 가슴아픈 사연을 그들만의 언어로 모두의 마음을 울리게 한다. <아마데우스>의 한장면에 삽입되었던 모짜르트의 '마술피리' 역시 두통이 올 정도로 엄청난 음역대를 아울러 온 몸에 소름이 돋을지경이었고, <파리넬리>의 '나를 울게하소서'는 두말 할 것도 없다.

<밤의 여왕>은 노래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안토니아는 가난한 부부의 둘째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가족들의 행복해 하는 얼굴을 보기위해 엄청난 빚을 지며 그들의 생활과는 맞지않게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그러다 결국 파산하게 되고 아버지는 실종된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다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어버린 네 자매중 안토니아는 인신매매단에게 팔려가게 된다. 미국으로 가게 된 안토니아는 인신매매단으로부터 탈출하게 되지만 어려운 삶은 그녀를 도둑으로 창녀로 만들어 버리고 점점 피폐해져버린 그녀는 노래도 잃고 만다. 하지만 그녀의 어두워진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된 음악가의 도움으로 그녀는 다시 인간으로의 삶으로 되돌아오고 그녀의 꿈을 이룬다.

사람의 목소리는 타고나야 하는거라는 생각이 내가 노래를 부를때면 늘 떠오른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늘 따로 있기때문이다. 안토니아 역시 노래를 하는 목소리를 타고 태어난 소녀다. 어릴적부터 안토니아가 노래를 부르면 모두가 안정을 찾았고, 안토니아가 인신매매단에게 팔려 미국으로 향하던 여객선 안에서도 안토니아가 노래를 하면 주위가 조용해지고 울음을 터뜨리던 사람도 눈물을 멈추었다고 한다. 물론 노력으로 연마된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은 몹시도 눈물 겹다. 명창들의 후일담으로 심심찮게 듣는 목에서 피를 세번 토해야 하는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태어나면서 부터 아름답고 향기로운 목소리를 가졌다면 이것은 신의 축복어린 선물이 아닐까?

안토니아는 특별한 감각을 가졌다. 바로 후각이다. 그 사람을 냄새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8살에 불과한 안토니아는 삶이 길지않아 그동안 자신이 맡았던 냄새로 구분할수밖에 없다. 시큼한 냄새라든지 엄마젖냄새, 풀냄새, 오래된 종이냄새 이런식으로 분류를 하여 사람을 구별했다. 안토니아가 좋아하는사람에겐 꼭 좋은 냄새가 나고 안토니아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선 악취가 난다고 했다. 그런 묘한 감각은 나의 딸도 가지고 있는듯 하다. 내 딸도 남다른 예민한 후각기억을 지녀서 가끔 나를 당황케 만들기도 한다. 집집마다의 냄새를 분류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우리집냄새도 있다고 한다. 나도 후각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 코를 가졌는데 우리집냄새는 나도 모르는 냄새다. 과연 자신의집 냄새를 알고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몹시 궁금하다.

안토니아는 어려운 성장기를 거쳤다. 8살에 고아가 되버려 팔려간 안토니아는 도둑이 되고, 창녀가 되어 세상에서 버림받았다. 부모의 역할이 새삼 마음에 와 닿지 않을수 없다. 안토니아의 부모가 만약 근검절약하며 살았다면 안토니아 역시 생활은 힘들지라도 부모 슬하에서 안전하게 자랐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사치를 누렸고, 선물하는 기쁨을 맛보는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않기위해 돈이 어디서 났는지 물어보지 못했던 안토니아의 어머니는 결국 그들의 우유부단함으로 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남편의 수입이 어떻게 되는지, 돈이 어디서 나서 선물을 매일 사오는지, 미래를 위해 돈을 아끼자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던 그녀의 어머니는 솔직히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가 넷이고 뱃속에 아기가 또 있는데도 그들은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았고 결국엔 파국을 맞았다. 부모의 안일한 생활방식이 자녀들을 거리로 내 몬 것이다. 부모란 낳았다고 해서 모두 부모가 되는것은 아닐것이다.

안토니아는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났다. 만약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 지나치는 사람만 있었더라면 안토니아는 그런 하류층을 전전하다 일찍 세상을 떴을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부둣가에서 불렀던 노래를 들었던 음악가 한명이 그녀를 구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으로 치유해주고 그녀의 꿈을 이루어준다.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는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안토니아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어쩌면 그런 능력이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것이다. 다만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난것인가 만나지 못했을것인가로 나뉘어있을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어찌보면 힘든인생을 살아온 인생역경기라고도 볼수있는 책이라고도 할수 있겠다. 내가 원하는 만큼 오페라에 관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꿈을 이루었는지 볼수 있었던것이 한가지 위로라면 위로라고도 할수 있을것 같다. 밑바닥생활의 어린소녀의 모습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책을 덮고 난 후 가슴에 밀려오는 감동이 없는것은 어쩔수가 없다. 도둑이자 창녀인 거리의 부랑자가 노래좀 잘해서 오페라가수가 됐다는 정도로만 요약한다면 심한 비약일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노래나 목소리를 좀 더 독자들에게 설명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밤의 여왕>이라는 제목도 좀 쌩뚱맞기는 하지만 꿈을 이룬 소녀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이는것도 이 무더운 여름밤에 시간을 잊는 좋은 방법이기도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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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사랑은 내게 오고 갔다
조엘 매거리 지음, 정지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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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에게나 약간씩의 강박증은 있을것이다. 이젠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은 보도블럭의 선을 밟지 않으려 노력했었던것을 본적이 있다. 어떤이는 모든 물건들이 일렬종대로 놓여있지 않으면 견디질 못한다던가, 자기의 물건들이 자신이 정해준 위치에 놓여있지 않으면 제 위치에 옮겨놓기전까지는 잠을 이룰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심하게까지는 아니겠지만 누구나 약간의 강박은 있을것이다. 고백하건대 나에게도 있다. 가장 흔한 사례로는 자동으로 잠기는 디지털 도어록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제대로 잠기지 않은건 아닌가 하여 이미 차를 출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확인하고 가는것이다. 그리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무조건 씻어야하는것이 그 두번째 예이다. 식구들중 누구하나라도 귀가후 씻지 않으면 씻을때까지 신경이 쓰이고, 그들이 내디뎠던 곳을 락스 푼 물로 박박 닦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숫자에 연연하는 행동들. 나는 이런 일들에서 무척이나 벗어나고 싶었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 지금은 극복했다. 나는 행여라도 나의 그런 행동들이 무의식속에서 다시 실현될까봐 지금도 노력하며 살고있다. 아침댓바람부터 그릇을 깨도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더이상 생각하려 하지않고, 큰 일을 앞두고 내가 좋아하는 숫자를 생각하려 하지 않는 노력을 하며 무진 애를 쓰고있다고 해야하나?
이 이야기는 흔히 볼수있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저널리스트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강박증으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조엘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친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연인인 페니를 홀로 두고 떠난다. 여행하며 잠시 사랑만 나누었던 호텔메이드에게 혹시라도 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를 몇년이나 괴롭히고, 사랑하는 연인 페니는 점점 멀어진다. 여행을 하며 그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며 점점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더 견고해지지만 그의 사랑은 험난하기만 하다.

글은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회상하고 있다. 그가 점점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보기도 하고, 그가 페니를 점점 사랑해가는 과정을 보기도 하고, 그가 점점 사랑을 잃고 있는것도 보인다. 흥미로운 구성이다. 과연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2년씩이나 세계여행을 한다는 계획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강박이 중증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상태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얻는게 있다면 잃는것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

The Cranberries의 ode to my family 라는 노래에 꽂혀서 한동안 귀에 달고 지냈던 때가 있었는데 문득 책에 나온 가수를 보니 반갑기도 하다. 조엘은 노래구절 가사를 적어놓았다. <난 너를 사랑하니까>
이 노래가사는 어떤 노래의 가사일부분일까? 책을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탐구를 하다니. 부를수 없는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말이다.

너무나 솔직한 저자의 고백이 너무나 신선하다.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스스로 뒤돌아보고 싶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가끔은 글을 쓰며 답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를 더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마음을 공감하며 책을 읽는것도 꽤 오랫만인것 같다. 자전적인 소설의 매력은 여기에 있는것 같다. 모든것을 내보여주는 저자를 이해하는 마음이 그것이 아닐까?

"사람들과의 관계나 사랑에 관련된 감정적인 부분이지. 그 부분은 이미 꽉 차 있어서 난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아. 하지만 한 번 믿은 사람은 쉽게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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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6-0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 니콜슨 주연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가 아닐까요?

2년간 여행이라, 저도 가고 싶네요.
자신을 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인가 버려야할지 모르겠어요.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이라 저는 믿거든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완전하게 믿지 않는거 같아요.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 속 어디에서는 어짜피 사람이란 언제든 떠날 수 있어 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내 곁에 있음 =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제가 잘못된거 같기도 하지만요.
 
이야기 그림 이야기 - 옛그림의 인문학적 독법
이종수 지음 / 돌베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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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초등학교때 내 그림이 교실 뒤에 단 한번도 붙혀진 적이 없다고 하면 할말 다 한것 아닌가 싶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내 짝꿍의 그림은 내가 봤을때 시시하기 그지없었고, 내 짝꿍의 그림이나 내 그림이나 거기서 거기처럼 보였다. 내가 좀 더 잘 그린것 같이도 보였다. 그러나 교실뒤에 붙혀질 친구들의 그림중 10%안에 들만한 그림중에 내가 그린 그림은 없고, 내 짝꿍의 그림이 붙혀졌을때 난 깨달았다. 거기서 거기같았던 그림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그림에서 뭔가가 심각하게 결여된게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떤면에서 부족한건지 알수가 없었고, 도무지 알 수가 없자 그림 그리는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초등학교때 너무나 일찌감치 그림을 포기해버려 늘 미술시간이 힘들었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은것도 있다. 바로 그림을 보는것이다.

난 그림 보는것을 좋아한다. 너무 좋아한다고, 엄청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아니다. 살아가다, 지나쳐가다 그림이 보이면 그때 그림을 본다. 일부러 찾아가서 그림을 보지는 않는다. 글쎄 혹시 내가 수도권에 살면서 문화를 즐기는 시설이 많다고 했다면 난 일부러 찾아가서 봤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아닐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단언한다. 나는 그림 보는것을 좋아한다. 일부러 찾아가서 봐야만이 그림을 좋아하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하지는 않아도 나는 그림 보는것을 좋아한다.

그림을 볼때의 나의 심정은, 화가는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를 생각해본다. 여기는 어딜까. 어떤 이야기일까, 질감은 이렇구나, 이 터치 하나하나에 화가의 손길이 녹아있을것을 생각하면 마음까지 짜릿하곤 한다. 어찌보면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일차원적인 생각만으로 그림을 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이 그림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다. 내가 알지못한 그림에 대한 화가의 속내를 혹시라도 훔쳐볼수 있을까 하고.

나는 지금까지 그림을 봤다. 그런데 이 책에서 아주 흥미로운 단어 하나를 포착했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림을 읽다니!!! 너무 낯선단어에 흠칫했지만 그 낯설음속에 내가 깨닫지 못했던 어떤 감정 하나를 찾아낸것만 같아서 마치 선사시대의 유물을 만난것과도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림을 보고 읽는다는것 바로 그 이야기들이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그림을 먼저 감상한 후, 저자의 글을 읽었다. 그림의 시대적 배경과, 그 이야기에 얽힌 여러 화가들의 그림과, 그에 따른 숨은 이야기들은 내가 궁금해 했던 것들을 알려주었다. 난 그동안 서양화를 많이 봐왔지만 동양화는 제대로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시대에 따른, 화가들에 따른 화법의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너무나 유익했다. 화법중에 갈필이라고 말하는 백묘법이 이채로웠다. 메마른듯, 까칠한듯 표현하는 백묘법으로 표현한 그림도 너무 대단했다. 만약 실력없는 사람은 시도자체도 하지 못할 궁극의 화법이다.

한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귀거래사>이다. 이 느낌을 어떻게 말로 전해야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나는 이 책을 엄청 오랜시간에 걸쳐 읽었다. 물론 바쁜 일상도 한몫했지만 이야기속의 그림에 자꾸만 빠져들어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고, 감동하고 또 감동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지못한 분을 위해 <귀거래사>를 옮기고 싶지만, 내가 섣불리 어떻게 했다가는 오히려 손상을 입힐까 두려워 감히 어떻게 옮기지도 못하고, 그 감동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본다.

너무 슬픈이야기이다. <귀거래사>라는 제목은 많이 들어서 전혀 낯설지가 않고, 제목에서 어느정도 알 수 있듯이 어떤 내용일지 짐작 되는바도 있다. 슬픈감동이라는것이 바로 이런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는걸 알았다. 그림을 보는것을 좋아했지만 이런 감동을 받게 될 줄은 몰랐었기 때문에 난 사실 조금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다. 내용과 더불어 그림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슬퍼보여 어쩔수가 없었다. 다 읽고 난 지금도 마음이 아릿하다면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 충분한 설명이 될까? 충분치가 않다. 그 감동의 깊이를 전할 방법이 없고, 말재주가 없는것에 진한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동양화에서는 그림의 종류가 있다고 한다. 권, 축, 병풍, 삽화가 그것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아주 친절하게 잘 설명해 놓았다.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 보는 방법도 배웠고, 어떻게 감상해야하는지도 충분히 알게 됐는데 과연 내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그림을 감상할 날이 오기는 올까 궁금하다. 축이나 병풍 삽화는 어쩌면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볼수 있을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림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고 싶은데 그림이 너무 작아서 제대로 볼수가 없다는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돋보기를 대고 봐야 깨알같은 인물하나를 찾을 수 있을 정도이니 눈이 어두운 사람은 아무리 그림에 대한 이해를 했다 하더라도 주인공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모를것이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를 하는 기분도 들고.

그림을 좋아한다면 한 번 읽으며 보는것이 좋을 책이다.
아마 분명 감탄을 하게 될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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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시나리오픽션 1
안슬기 / 바이람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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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고 싶으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이 세상은 남자로부터 요구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가는 이 서글픈 세상에 남자의 몸은 굴레 그 자체일것이다. 남자도 사람이건만, 그들은 마음놓고 울 자유도 없다. 약해질수도 없다. 아내가 귀여워도 드러내놓고 귀여워할 수도 없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들은 더 어깨가 무거워진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그들로 하여금 숨 한번 제대로 쉴수 없게 보이지 않는 사슬로 묶어버릴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그래서 남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전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수 있는지 그 끝의 한계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악마>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 한 남자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착한 남자를 악마로 만들어버린 어쩌면 우리들의 사는 모습과도 같을 강석규라는 한 남자를 어떤 시선으로 봐야할지 너무 착찹하다.

세사람이 있다. 남편 강석규, 아내 지수, 아들 훈.
석규는 자기자신의 초라함을 이겨내고 악마가 되어 하찮은 존재에서 거느리는 남자가 된다. 악마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밟고 올라가지만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고 하찮은 존재에서 벗어난 자신의 모습과 악마로서의 모습에 혼란스러워한다.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석규가 나쁜것은 아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나쁘게 보이겠지만 석규는 살기위해 몸부림 친것이다. 실적이 좋지않아 해고당할 위기에 놓이고 신혼때보다 못한 집으로 옮기게 될 정도로 살림이 궁핍해지면 누구나 그렇게 되지 않을까?

지수는 남편을 포기했었다. 사랑이 아닌 연민으로 결혼했지만, 너무나 능력이 없는 남편은 지수가 상상했었던 달콤한 결혼생활은 아니었다. 늘 생활고에 시달려 너무 힘들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변했다. 남편은 회사에서 어느덧 인정받는 위치까지 올랐지만, 그렇다고 집까지 부자가 된것은 아니었고, 회사에서 인정받을 위치까지 가기위해 가정을 방치하다시피 하여 부부사이의 대화는 단절된지 오래였다.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가 있다면 위로받고 싶어진다. 자꾸만.

은 아빠가 싫다. 저런 아빠는 없었으면 좋겠다.

두마리의 토끼를 잡기는 힘든 법이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회사에서 능력받기 위해서라면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하고 그렇게 하자면 가정에 소홀해지기 쉽다. 못벌어 오면 못벌어 온다고 바가지를 긁고, 잘벌어오기위해 밤 늦도록 일하게 되면, 왜 가정에 소홀해지는거냐고 아빠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며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고 해대는 아내가 무서워 아무리 힘들어도 늦도록 술 한잔 마실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이 있는 남자라고 해서 석규처럼 아내를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하지 않을까? 석규는 밖에서 힘들게 일하니까,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라는 핑계로 문란하고 난잡한 생활을 해도 되는 타당성은 없다. 석규는 아내가 아닌 다른여자와 바람을 피워도 되고, 남편에게 지친 지수는 바람을 피우면 안되는 이유도 없다. 바람을 피운건 지수의 잘못이 아니다. 지수를 그렇게 만든건 남편이다. 아내와 자식에게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줬다면 지수가 그런 선택을 했을리 없다. 돈 벌어오는 사람은 당연히 바람 피워도 되고, 주부는 바람피우면 안되라는 법이 어딨나. 모든것은 상대적이기 마련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지수가 바람을 피우게 된것은 둘 모두의 잘못이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지수가 이해가 되는것은 왜 일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지수가 아들 훈에게 아버지를 잘 못 인식시킨 점이다. 아무리 악마로 변한 석규이고, 아내인 자신의 눈엔 한없이 부족하고 마음에 들지 않을지언정 아들에게 만큼은 가정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일하시느라 고생하시는 아버지라고 교육시켰어야 하지 않을까? 훈은 가정에 소홀한 아버지라며 단 한번의 따뜻한 말조차 건네지 않은 비정한 아들이다. 그런면에서 볼때 지수는 자신의 외로움과 아픔만 돌보느라 아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보는지 몰랐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자기자신의 아픔을 밖으로 표출해내어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등돌리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지수는 그런면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마지막 석규의 처절한 눈빛을 떠올리면 너무 마음 아프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댓가로 어쩌면 이미 일은 이렇게 될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악마가 될수 밖에 없었던 그는 잘못이 없다. 누구나 능력없고 힘없다고 석규처럼 악마로 변하지는 않지만 악마로 변하지 않기에는 석규는 너무 섬세한 남자였다. 악마가 된 그를 누가 탓할수 있을까. 그도 이 세상의 피해자인것을. 


잔인함만으로 치자면 별 다섯도 부족할 지경이다. 왠만한 잔인함 정도는 영상이 아니라면 자신있게 볼수 있다고 자부해 왔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너무 눈살이 찌뿌려지는 잔혹함과 거친표현들때문에 한번에 읽을수가 없었다. 재미있는 내용임에는 분명하지만 자꾸만 한템포 쉬고 읽게되는 내 자신을 발견할수 있었다. 작가의 사진을 자꾸 쳐다보게 된다. 이렇게 순하게 생기신 분의 머릿속에서 이런 단어들이 나오다니 믿을수 없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씩의 악마를 품고 살아가는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머리를 끄덕일수 밖에 없다.

부쩍 40~50대의 사망이 늘었다는 뉴스가 종종 나오듯이 우리나라 현 가장의 실태를 아주 잘 표현한 책인것은 분명하다. 물질만능주의에 점점 악마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속에 한 가정이 철처히 파괴되어 버리고 결국에는 폐인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꼬집는 소설이다. 석규의 몸이 대지에 녹아 스며들어 버리듯 어쩌면 그런 삶에 찌든 가장들은 머리카락 한올 조차도 이 더러운 세상에 남겨두고 싶지 않다는듯 생각되어 이 시대에 남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것인지 다시한번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을것이다. 더더욱 많은 악마들이 태어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위해선 어떤 노력을 서로 기울여야할지 깊이 생각해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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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10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여, 남자, 특히 한국 남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
너무 힘든걸요. 한국 여자가 시집살이에 힘들다 하지만, 40-50대의 한국 남자 정말 고생해요. 회사에서 얼마나 부려먹고, 엄청난 스트레스와 지독한 야근들, 거기다 언어 폭력.
그런데 집에 오면 대접도 못 받고, 회사는 점점 팍팍해져 정리 해고가 심심찮고.. 절레절레.

가족의 문제는 상호작용의 결과라 하더군요. 특히
문제가 되는 사람이 있긴 하겠지만, 결국 모든 사람의 역동이 모인 결과라구요.
인간 관계란게... 참 어려워요, 그죠.

양철나무꾼 2011-05-1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방향을 알 수 있다면...그건 바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어디로 어떻게 불지 알 수 없는 바람을 두고 잘 잘못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죠.

때문에 이 시대에 필요한 건 바람의 방향을 읽어내는 일기예보 따위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어요~
 
음양사 6 - 태극편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왠지 자네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지 뭔가"
이번에도 책을 펼치자 마자 세이메이에 대한 히로마사의 고백이 있다. 수줍은 듯 미소까지 띄우며 말했다하니 역시 음양사는 보는 재미가 기가막히다. 세이메이를 향한 히로마사의 진심이 너무 느껴져서 사나이들의 세계를 잠시 엿본것만 같아 눈과 귀가 즐겁다. 사나이세계란 무엇일까? 의리. 우정. 신의. 또 무엇이 더 있을까? 말을 나누지 않아도 그 시간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신분조차도 둘의 사이를 멀게 할수 없는 그들. 그들이 펼치는 모험담에 또 빠져보자.

지난 5권에 고대일본의 미의 기준에 대해 잠시 언급했었다. 이를 검게 물들이지도 않고, 눈썹을 뽑아버리지도 않아 시집이나 갈수 있으련지 하며 아버지를 고민에 빠지게 했던 멋진여성 쓰유코가 이번 6권에서도 매력적인 모습을 뽐낸다. 이백예순두마리의 풍뎅이에 대한 미스테리를 풀고자 스님과 밤을 같이 보낸다. 쓰유코의 아버지는 귀한 딸의 명예를 위해 절대 그리할수 없다고 강하게 반대하지만 쓰유코는 비밀로 하면 그 누가 알게 되겠냐며 당차게 아버지를 설득한다. 쓰유코의 행동은 내겐 너무나 멋진 여성으로 비춰졌다. 헤이안시대가 서기 800년도쯤 될거라 생각하는데, 그 시기에 이렇게 상식의 틀을 깨는 신여성이 있었다니 이 얼마나 신선한 충격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편견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 용기있는 행동으로 보였다. 남자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이를 검게 물들이지도 않고, 눈썹을 뽑지도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벌레에 대한 연구와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일본고대의 신여성을 새로이 본것만 같아서 너무나 즐거웠다. 비록 그녀의 아버지는 애가 탈지라도 ..

귀신에게 쫓기는 사나이가 다리(橋)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귀신에게 들키려하자 관음경을 외워 살아난 이야기도 너무나 흥미롭다. 그 사나이는 몰랐지만 그 다리에는 천수관음상이 다리의 수호신으로 묻혀있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명줄이 길었는지 다행스럽게 그 사나이는 관음경을 호신으로 삼고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위기에 처하자 자신도 모르게 관음경을 외웠고 그 순간 누군가가 나타나 대신 귀신에게 먹혔다고 하는데 알고보니 그 누군가는 다리를 수호하던 천수관음상이었다고 하니 너무나 대단한 우연의 일치와 너무나 대단한 신의 위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만약 그 사나이가 천수관음이 수호하는 다리에서 관음경을 외지않고 반야경이나 열반경을 외웠다면 살아날 수 있었을까? 관음경을 외웠고 하필 천수관음이 수호를 하고 있는 다리라니 정말 엄청난 우연에 나는 또 눈과 귀가 즐겁다. 음양사의 매력이 약간은 허황되고, 조금은 과장되고, 조금은 유별스럽고, 가끔은 믿기힘든 이야기 투성이지만 그런 매력에 나는 읽고 또 읽는것 아니겠는가? 재미있다. 이런 이야기들. 옛날옛적 귀신이야기들.

헤이안시대때는 노래로 대화를 했다하니 참 운치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시조쯤 될것 같은데, 여기서는 노래라고 표현한다. 1권에서 노래짓기에서 아쉽게 패를 해 거식증에 걸려 죽어버린 남자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만큼 그때는 노래가 참 중요한 요소였던것 같다. 연애를 할때도 빠질수 없는 것이 바로 노래짓기라고도 할수 있다. 지지않으려고 시를 대신 지어주는 사람에게 부탁도 하고, 어떤 이들은 베끼기도 했다하니 슬며시 웃음도 나온다. 연애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히로마사가 유부남인지 아니면 미혼남인지 아직 모르겠다. 세이메이는 식신들과 살며 아직 부인이 없는것은 잘 알것 같은데, 지금까지 히로마사의 집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신분이 매우 범상치 않다는것은 매번 언급이 되었지만 늘 히로마사가 술이나 안주를 가지고 세이메이의 집을 찾으며 이야기는 시작되기 때문에 히로마사의 집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히로마사의 가족들에 대한 일화도 찾아볼수 없다. 히로마사는 과연 품절남일까? 하후타쓰와는 어떻게 인연이 맺어진것일까? 별전에는 내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가 나올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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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5-1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양사를 다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언제부턴가 새로운걸요~
더듬어봐야겠어요. 유메 마쿠라 바쿠 라면 열번을 되읽을 의향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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