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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사 5 - 용적편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휴식용으로 집어든 책이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생각이 복잡해서 휴식이 필요했다. 이럴때의 나는 현실도피계의 금메달리스트다. 세이메이와 히로마사는 늘 새로운 사건으로 내게 다가와 다른것을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럴때 그들이 너무 고마워진다. 이번 용적편을 읽으면서 잠시 깜짝 놀래본것은 히로마사가 세이메이에게 고백을 하는 장면이었다. 음양사를 좋아하는 우리는 설마 그 고백이 그 고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만나게 된것을, 우정을 쌓게 된것을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는 히로마사의 고백이었다. 얼굴까지 빨개졌다니 히로마사 너무 귀여운거 아닌가 모르겠다.
둘의 우정은 너무 부럽기만 하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모두 결혼과 직장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직장에서의 친구들도 직장을 떠나버리게 되면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는것, 가끔 만나게 되면 반갑기는 하지만 그때 매일 만날때와는 또 다른 거리감도 살짝 있다. 더구나 낯가림마저 심한 내 경우는 거리를 두고 사람을 대하기 일쑤라 늘 마음이 잘 열리지 않는다. 아무리 친한척을 한다한들, 마음을 열지 않고 대하는 이상 상대방도 나를 대할때 그럴것이라 생각한다. 역시 인생은 외로운 법인가? 외롭지 않을 인생을 만들고자 한다면 우선 마음을 열고,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수밖에 없을것 같다.
헤이안시대의 여인들의 미적기준이 나와서 무척 흥미로웠다. 검게 물들인 이(黑齒)나 눈썹을 모두 뽑아버린다는 말은 상상만 해도 해괴했다. 시대별로 흑치에 대한 성향은 조금씩 달랐지만 아름다운 여인이 되기위한 것이라는것은 변함이 없었다. 열일곱 소녀가 이도 검게 물들이지 않고 눈썹도 뽑지 않아 이상했다라고 표현하고 시집마저 가기 힘들것 같다는 소녀 아버지의 푸념은 일본의 풍습을 보는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고 무척 낯설기도 했다. 헤이안시대때는 무사들까지도 검게 이를 물들였다고 하지만, 도쿠가와 시대때는 기혼여성임을 표시하는 상징이거나 남편에게 영원한 순종과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전족을 한 작은 발이 기준일텐데 실제로 전족한 발의 사진을 본적이 있었는데 매우 충격적이었다. 만약 전족을 푼 맨발을 보인다면 그 사람에게 모든것을 바친다는 의미가 된다고 한다. 작은발을 가진 여자를 원하고, 검게 물들인 이를 가진 여인을 원했다면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어떤 여자들을 으뜸으로 쳤을까? 흰치아와 검은 머리, 붉은 뺨 정도라고 생각한다. 전족이나 검게 물들인 치아가 아니라서 우리나라 옛여인들은 그래도 약간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전족이야 너무 아픈 형벌이니 중국의 여인들이 안됐을 뿐이고, 일본의 옛여인들이야 그들의 미적 기준을 그리 삼았으니 검은 이가 너무너무 이뻐보였으리라 생각한다. 시대별, 나라별로 변하는 미의 기준은 참 흥미롭다.
주(呪 ) 히로마사가 어려워하고 난감해 하는 부분이다. 세이메이가 주에 관한 이야기를 할라치면 먼저 입을 막아버리곤 할 정도다. 나도 세이메이가 말해주는 주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도 어렵다.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비는 저주, 초자연적 존재나 신비적인 힘을 빌려 길흉을 점치고 화복을 비는 술벅인 주술, 음양가의 술가나 술법을 행할때 외는 글귀, 그리고 이 말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주의 의미들. 음양사 1편에서 이름을 부르자 주에 걸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번 5편에서도 이름을 부르자 주에 걸려버린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명을 가르쳐준다면 그 이름과 자신은 묶여있지 않으니 주에 걸리지 않겠지만, 실명은 자신과 묶여있기 때문에 불리우게 된다면 주에 걸린다는 말은 무척이나 많은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름은 내 자신이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엔 내 자신이 걸려있는 것인만큼, 주에 관한 그의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늘 그렇지만 이번 5편도 첫장부터 기묘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무토막에 불과했지만 백몇십년 동안 경을 들어 혼이 생긴 이무기이야기나 자신을 꾸미지 않는 소탈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벌레아가씨 이야기나, 세이메이의 사형쯤 되는 가모노 야스노리의 부탁이야기는 푸근한 이야기 보따리로 지친 내마음을 다독여주는것 같다. 휴식용 책이라면 너무 성의없는 칭찬일까? 절대 성의없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가지의 이야기로 나를 달래주는 음양사. 오랫만에 손에 들고보니 오랜친구를 만난듯 마음이 편해진다. 음양사 시리즈를 모두 읽고 별전을 읽어야 하는건지, 별전을 읽고 나머지 시리즈를 읽어야 하는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별전엔 나올까? 세이메이와 히로마사가 처음 만난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