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비어 있음'의 공간이라면, 도시는 하나의 '채움'의 자리이다. 인간의 욕망은 허를 보존하는 쪽보다다는 허를 채우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 '채움'의 욕망 때문에 드러나는 결과가 '막힘'이다. 차가 막히고 사람이 막히고 숨이 막히고 하수구가 막힌다. 그 '막힘'의 결과가 '넘침'이다. 인간이 채움의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 이상 대홍수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넘친다는 것은 지구의 절멸을 의미한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의 도시를 건설했으나, 그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그 도시들이 사람들을 때로는 파괴한다. 르네 지라르나 일리치식으로 말하자면, 병원이 환자를 만들고, 자동차가 교통을 마비시키고, 식품이 모든 것을 못 먹게 만든다. 학교는 교육을 파괴하고, 공장은 생산을 저지한다.(김현, "시칠리아의 암소")

  때로는, 인간의 작위처럼 무서운 게 없다.

  그것에 반해, 자연의 공간, 허의 공간은 막힘이 없는 순환이 가능한 세계이다. 나는 압구정동 위에서 순환이 가능한 공간을 꿈꾼다. '순환성'이야말로 '살아있음'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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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뒷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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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23일 전주 공연 팜플렛의 표지이다. 공연 당시의 나이는 80세. 두 시간이나 되는 공연을 혼자 힘으로 끌어가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의 그의 몸은 젊었다. 생동감과  에너지가 넘쳐났다. 처음으로 기립박수를 보냈다. 손이 새빨갛게 올라와도 아프지않았다. 눈물도 글썽였던가. 내 생애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마임에 대한 나의 시각도 완전히 새로워졌다. 길거리에서 운좋게 만나 공짜로 풍선 하나 얻고, 그 빨간 전구같은 코를 가진 광대를 가벼히 웃고 바라보던 일을 더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말없는 그들의 몸짓과 표정에 웃음과 울음의 의미가 절묘하게 담겨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는 침묵으로 말하고 우린 가슴으로 듣는다."

말과 침묵은 결국 같은 뿌리이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

말은 수많은 진실을 속이고,  자극하고,  상처 입히고,

우리가 사는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침묵으로 끝단다.

여기서 우리의 팬터마임은 시작된다.

왜냐하면 침묵은 말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생 땍쥐배리의  '어린왕자'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떠오른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우리는 그것을 마음으로만 볼 수 있어."

-마르셀 마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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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9 0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05-03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가서 보셨나요? 좋으셨겠어요. 마르셀 마르소가 이런 멋진 말을 했다니! 퍼갈께요.^^

메시지 2004-05-0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낄 것 같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는데 1부의 '천지창조'는 중간 부분에서야 이해했습니다. 2부는 재미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던 반면에 1부에서는 깊은 사고를 필요로하는 내용들이 있었거든요. 웃는 가면을 벗지 못해서 울어야하는 maskmaker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스크메이커는 국내에서도 많이 소개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좋았지요.

tnr830 2004-05-25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
저두 이런 공연 보러가고 싶어요
첨 접해본 공연이라 신기하고 가보고싶네요^^
 
왜 우리 신화인가 - 동북아 신화의 뿌리 <천궁대전>과 우리 신화
김재용 외 지음 / 동아시아 / 199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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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보는 눈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모든 눈들은 신화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첫번째 사유 思惟 primary thought 였다는 점에 동의한다. ~~~ 신화 해석은 표면상의 서술 밑에 깊숙이 숨어 있는 속마음을 읽어내는 일이다. 그럴 때, 그 속마음이 바로 오늘의 문화에도 살아있음을 본다.  p.19.

 

단군 신화은 거짓인가, 진실인가.  얼마 전 몇몇 중학생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거짓이라고 답한 녀석에게는 그렇다면 단군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말이 거짓이냐고 반문했더니 난처해 한다. 진실이라고 답한 녀석에게는 그럼 우리의 어머니가 원래는 곰이었냐고 반문했더니 역시 난처해 한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은 가짜라는 절충안을 내놓기도 한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단군 신화의 모든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매년 10월 3일은 단군이 우리 나라를 열었다며 개천절이라며 기념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단군 신화가 존재한다.

신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위의 물음에 답하는 책들은 많이 나와있다. 내가 공감하는 견해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상징 체계로 구성된 세계가 신화라는 것이다.  그 상징 체계에서 숨겨진 의미와 추상화된 철학을 탐구하는 일은 무척이나 흥미있는 작업이다.

'왜 우리 신화인가'의 1부는 우리에게 친숙한 신화 (대상의 범위는 기록되어 전승되는 신화부터 구전되는 무속 신화와 설화들까지)들이 품고있는 상징 체계에 대한 접근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재미있다.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신단수'라는 나무의 의미가 다른 나라의 신화들과 어떤 점에서 공통되며 어떤 특성이 나무에게 그런 의미를 갖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동화 '재크와 콩나무'의 콩나무를 연상시키며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옛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 민족의 놀이인 강강수월래와 달의 상징,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홍수 신화 속 물의 상징, 고대 국가의 깃발 속에 등장하는 상징이나, 현재까지도 우리의 민간에서 전승되는 여러가지의 상징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언어는 필연적으로 병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불안하다는 '언어질병설'에 대한 설명에서도 역시 재미있는 우리의 언어들을 만날 수 있다.

2부에서는 만주족 신화인 '천궁대전'과 우리 신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1부에 비해서 학술적인 진술방식을 취했기때문에 재미는 1부보다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신화에 대한 이해와 우리 민족의 신화가 동북아시아라는 지리적 위치에서 다른 민족과 어떤 관련을 맺었는가에 대한 탐구가 우리 신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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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고등학교용, 2002
한국연극교육학회 엮음 / 연극과인간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한국연극교육학회에서 고등학교 선택교과인 '연극' 과목을 위한 교과서입니다.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에서는 연극의 기본 개념과 연극사, 그리고 희곡과 연극 관람에 관한 기본 지식들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2부는 실제 연극을 만드는 과정과 관련하여 연기, 연출, 무대 장치와 조명, 의상, 분장, 음향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종합예술의 면모를 확인 할 수 있으며, 각각의 장르들이 서로 어떻게 하모니를 맞추어가는지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 작업에 도움이 되도록 구성되어있고, 연습 과정과 연습 내용에 대하여도 자세히 나와있어서, 학교에서 연극반울 운영하시는 분이나 연극반 단원으로 활동하시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겁니다. 연극에 대한 쉽고 편한 책을 원하시는 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연극에 대한 이해, 교과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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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마을 아이들
임길택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물론 어른들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안도현의 '증기기관차 미카'와 '연어'는 이미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사실 모든 동화는 굳이 '어른들을 위한'이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더라도 사회의 시류에 따르며 살 수 밖에 없는 모든 어른들에게 아주 절실하게 읽히고 싶은 존재이다.  이러한 사실이 상업적 고려와 만나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어른들을 위한 동시라는 말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동시 역시 어린이뿐만 아니라 빠르게 흘러가는 시류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어른들에게도 절실한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어른들을 위한 동시'라는 말을 적용해야하는 시집이 있다면 임길택의 동시집 '탄광마을 아이들'이 아닐까 한다.

많은 동시들이 어린아이의 맑고 순수한 마음과 그들의 시선에 비친 때묻지 않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있다. 그러나 '탄광마을 아이들'에서는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들의 시선 속에 삶의 고통을 인내하며 견뎌내다가 결국 지쳐 쓰러져가는 어른들의 슬픈 삶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이 동시집은 차라리 옛날 조선시대의 풍경을 대하듯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설마라는 이름으로 이 동시집에 등장하는 순수하지만 불쌍한 아이들의 삶을 의심하고 신기해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겨울준비의 핵심이었던 연탄을 갈아본 어른들에게는 또다른 추억이며 동시에 고된 삶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어린이들 보다 오히려 연탄을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성장했던 어른들에게 더 진한 감동과 울림을 줄것이다. 물론 현재의 어린이들이 자신과 다른 낯선 아이들의 모습을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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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4-2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프레이야 2004-05-1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시지님, 임길택의 이 동시집 사서 봐야겠어요. 굳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나 동시라고 명명하고 싶진 않지만요. 참, 제가 떡, 아니 책선물 받게 된 거 축하해주셨더군요, 스텔라님의 서재에서요. 감사합니다. 연극에 대한 책 리뷰가 많네요. 잘 보고 갑니다. 또 한 분의 알라딘 유부남이시네요. 님의 아내, 꽤 좋은 분 같아요. 리뷰 낳고 잘 살아라~ 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