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비어 있음'의 공간이라면, 도시는 하나의 '채움'의 자리이다. 인간의 욕망은 허를 보존하는 쪽보다다는 허를 채우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 '채움'의 욕망 때문에 드러나는 결과가 '막힘'이다. 차가 막히고 사람이 막히고 숨이 막히고 하수구가 막힌다. 그 '막힘'의 결과가 '넘침'이다. 인간이 채움의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 이상 대홍수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넘친다는 것은 지구의 절멸을 의미한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의 도시를 건설했으나, 그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그 도시들이 사람들을 때로는 파괴한다. 르네 지라르나 일리치식으로 말하자면, 병원이 환자를 만들고, 자동차가 교통을 마비시키고, 식품이 모든 것을 못 먹게 만든다. 학교는 교육을 파괴하고, 공장은 생산을 저지한다.(김현, "시칠리아의 암소")

  때로는, 인간의 작위처럼 무서운 게 없다.

  그것에 반해, 자연의 공간, 허의 공간은 막힘이 없는 순환이 가능한 세계이다. 나는 압구정동 위에서 순환이 가능한 공간을 꿈꾼다. '순환성'이야말로 '살아있음'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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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뒷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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