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모중석 스릴러 클럽 6
딘 쿤츠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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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 요즘 멜랑꼴리한 작품을 연달아 읽었더니 여성호르몬의 과다 분비 때문인지 아주 그냥 감수성이 폭발해버렸다. 이젠 기어가는 개미 떼만 봐도 슬프고, 광장을 돌아다니는 비둘기들도 짠하고, 그 비둘기가 개미를 쪼아대는 광경마저 멜랑꼴리하다. 소멸 직전인 나님의 남성성을 위해서라도 장르소설을 자주 읽어줘야겄다. 하여 고른 것이 딘 쿤츠의 스릴러물인데, 사실 난 이 작가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딘 쿤츠는 필력, 소재, 스토리텔링 등등 다 좋은데 결정타가 약한 게 단점이다. 아니면 마무리가 흐지부지하거나. 아무튼 ‘모중석 스릴러클럽‘을 도장 깨고 싶어서 그냥 집어 든 건데 오호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그놈의 급 마무리는 여전했다. 아 진짜 일부러 이러는 건가? 누가 좀 물어봐 줬으면.


아내를 납치한 자들이 남편에게 돈을 요구해온다. 그들은 남편 근처에 있던 행인을 총살함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남편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뚫고 있는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범인의 명령에 따라 친형에게 돈을 빌리러 간 남편은 형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알고 보니 범인들은 형의 부하였으며, 자신을 이용해서 형의 돈을 뜯어내려고 했던 것. 뚜껑 열린 형은 동생과 배반한 부하들을 잡아다 송장번호를 매기려 한다. 범인과의 약속시간은 다가오는데 몸값은커녕 당장에 요단강 건너게 생겼으니 어쩜 좋으랴. 여기에 남편을 의심하고 쫓아다니는 형사까지, 갈수록 꼬여만 가는 상황들을 어떻게 풀어낼라나.


멋없는 제목에 서사까지 올드해서 매력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읽어보면 푹 빠져드는 작품이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 했던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뻔한 플롯 중에 베스트라 할 수 있는 납치 사건은 처음부터 목적과 방향이 정해져있어 변수를 넣는 게 쉽지 않다. 독자의 예상을 깨려면 옆길로도 빠져보고 시점도 분산시키는 등 다양한 연출과 변형이 필요한데, 그게 어려운 납치 사건은 직진밖에 선택지가 없다. 그럼에도 <남편>은 이 같은 악조건을 나름 잘 극복해낸 편이라 이것만으로도 박수갈채를 받기에 충분하다. 근데 감각적인 스토리텔링에 비해 작명 센스라곤 1도 없는 작가이다. 스티븐 킹보다도 제목을 못 짓는다니. 아무리 옛날 사람들이라 해도 이건 좀 아니지라.


장르소설가마다 지닌 전매특허가 있는데, 딘 쿤츠의 경우는 밸런스 게임이다. 끔찍한 선택지를 주어서 고민하는 동안 지독한 멘붕을 선사하고, 고른 후에는 예정된 곤욕을 치르게 한다. 주인공의 고통을 독자도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데 이거 참 미칠 노릇이지. 범인의 명령을 거절하면 아내가 죽고, 시킨 대로 하면 인생 쫑파티 하는 거다. 이 같은 작가의 사디즘 성향은 아마도 어렸을 적 부친의 가정폭력 때문이지 싶다. 암튼 그럼에도 작품에 어떤 거부감이나 불편함이 들지 않는 것은 작가의 타고난 글감각 덕분이다. 노력형인 스티븐 킹에 비하면 딘 쿤츠는 확실히 재능형 작가다. 모든 소설에는 막혔다 싶은 구간이 꼭 있는데 이 작가는 살리기 힘든 장면조차 매끄럽게 넘겨서 막혔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내가 추구하는 글 타입의 좋아하지 않는 작가라니, 기분 참 멜랑꼴리하군.


전반적으로 정공법을 따르지만 주인공의 심리 변화로 개성을 갖춘 케이스이다. 엄격한 부모의 통제 속에 자라난 주인공 밋치는 여전히 부모와 소원하다. 그들은 나약한 밋치를 사냥감으로 여겼고, 사냥감에게 필요한 달아나는 법을 배우게 했다. 반면 일등 신랑감 엄친아였던 형은 완벽한 사냥꾼이었고, 부모는 그에 걸맞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런 완벽한 형이 있어 안도했던 밋치는 형의 일행에게 넘겨져 생매장 당하게 된다. 어찌어찌 탈출하고서 아내에 대한 일념으로 각성하는 수퍼맨 남편님. 평생 사냥감이었던 그는 총을 쏘고 차를 탈취하는 등, 선 넘는 행동으로 자신도 모르게 사냥꾼이 되었다. 처음과 나중의 입장이 뒤바뀐 건 주인공만이 아니다. 밋치의 친형은 아군이었다가 적이 되고, 적이었던 형사는 뒤에 가서 아군이 된다. 그 하나뿐인 아군을 기어이 적으로 만드는 주인공의 돌발행동까지. 과연 어떻게 해야 시청률이 올라갈지 잘 아는 작가일세. 여튼 사건이야 무사히 끝났지만 뒷이야기를 싹둑 잘라버려서 김이 확 빠져버렸다. 아 증말 누가 사디스트 아니랄까 봐. 자 그럼, 아내를 살리려고 저지른 남편의 범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또 범죄의 구분선은 어디까지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당신은 기꺼이 범죄자가 될 것인가. 자문자답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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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리커버 특별판)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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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잘 사는 집안은 아니었다. 전학도 많이 다녔고, 그래서 제대로 된 친구하나 없었다. 전학생이 친구를 사귀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PC방, 학원, 태권도, 만화책, 군것질 등등. 돈으로 경험과 기분을 공유하는 애들끼리는 금방 친해졌다. 전학생은 돈도 없는 데다 이미 친해져있는 애들 사이에 낄 자신도 없었고, 그렇게 어영부영하다 또 전학 가길 반복했다. 한참 어린 나이에도 돈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배웠고, 학교 밖에선 누군가를 잘 만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게 다 가난 때문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와 우리 집이 못 산다는 이유로 원망해본 적도 없었다. 아, 지금 감성팔이 하는 거 아니니까 좀 더 들어보시라.


마지막 전학은 고2 때였다. 여전히 교우관계가 서툰 전학생은 빠르게 존재감을 잃어갔다. 어느덧 전학생이라는 것도 잊혀질 무렵, 급속도로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 여자애가 있었다. 인기도 많은 애가 왜 나한테 다가온 건지 사실 지금도 모르겠다. 아무튼 처음으로 누군가와 연인 관계가 되었고, 이제껏 본적 없는 온갖 감정에 정신을 못차렸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이것저것 나를 가꾸게 했다.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어보고, 죽어라 노래연습을 하고, 패션에도 눈을 떴다. 그렇게 있는 거 없는 거 다 끌어모아서 내 감정에 갖다 바쳤다. 뒤늦게 안 사실은 그 애가 잘사는 집안이라 늘 빈부격차가 느껴졌고, 그럴 때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곤 했다. 그때 알았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랑은 죄라는걸. 없이 자라온 나는 몸도 마음도 여유롭지 못했다. 좋아한단 감정만으로는 이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고 당장의 난관들을 이겨낼 자신도 없었다. 만나면 즐겁고 기뻐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자격지심의 승리였다.


<구의 증명>을 읽으며 내 철없던 과거가, 미성숙했던 정서가 떠올라버렸다. 이 작품의 두 남녀도 가난한 사랑에 허덕인다. 온전치 못한 가정의 두 아이는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지내며 언제나 붙어 다녔다. 서로에게 구원이었던 이들에게는 오로지 애정의 마음뿐이었고, 그래서 사랑 외 감정 앞에서는 가볍게 무너져 버린다. 둘은 서로가 아니면 기댈 곳이 없었다. 가난한 집의 애들이 다 그렇듯 이들도 일찍 철이 든다. 소년은 부모의 빚을 갚느라 바빠지고, 부모가 없는 소녀는 소년과의 시간이 줄어들어 서운하다. 그러다 알고 지내던 꼬마가 눈앞에서 사고로 죽자 위태롭던 이들의 영혼은 크게 방황하며 약속이나 한듯 서서히 멀어진다.


꼭 알아야 하는 것은 가르쳐주는 이가 없고, 몰라도 되는 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눈치로 배운다. 쫓기는 삶을 살아보면 다 그렇게 된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소년은 제 구차함을 소녀에게 보여줄 수 없어 이래저래 도피생활을 택한다. 유일한 보호자인 이모마저 죽고 혼자 남은 소녀를 자신의 불행에 끌어들일 수가 없었다. 소녀는 떨어져서 평생 괴로우나, 함께해서 평생 힘드나 마찬가지라며 같이 살자고 애원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테니 옆에만 있어달라는 말과, 빚쟁이의 삶은 나로 족하다며 밀어내는 마음이 계속해서 부딪혔다. 누군가는 사랑하니까 보내주라고 하고, 누군가는 사랑한다면 끝까지 잡으라고 한다. 보내주지 않으면 이기적이라고 하고, 붙잡지 않으면 사랑이 그거밖에 안되냐고 한다. 사랑이란 게 어떤 공식이나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가난한 사랑에는 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세상 풍파를 사랑과 믿음만으로 헤쳐나갈 수는 없다. 왜 그런 노래 제목도 있지 않은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생각지도 않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자주 나온다. 그러니 마냥 짠하고 먹먹한 러브 스토리라 생각지는 마시길. 왜 작가는 이 눈물겨운 작품에 기괴함을 집어넣은 걸까. 이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영역에 있음을 표현하려던 건지도 모른다. 일개 독자의 소견으로는, 그런 묘사나 표현 없이도 충분히 감정을 끌어내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 장면들이 작품에 썩 녹아든 것 같지도 않았고. 여하튼 최진영의 혼잡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무난 무난한 작품이다. 기회 되면 읽어보시되, 추천은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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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3-02 23: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전학을 많이 다니셨군요. 저는 한 번도 전학을 해본적이 없어 그 기분을 잘은 모르지만, 제가 초딩 때 키가 커서 대부분 혼자 앉았어요. 그래서 제 옆 빈자리는 늘 전학생이 앉았죠 ㅎㅎ
근데 그 어색함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전학생은 오죽했을까 싶어요.
고2 때 현실의 사랑에 눈뜨셨군요. 저는 물감님과는 반대로 세상을 너무 늦게 알아서 😢

이 책 유명한거 같아요. 저도 들어봤고 도서관에서 본 적 있거든요. 제목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네요.

물감 2022-03-03 00:05   좋아요 1 | URL
유소년때 전학은 진짜 최악이에요. 성장이 멈춰버려요. 아니면 매우 더디거나요.
쿨캣님은 전학생들이 안불편하셨나요?ㅋㅋ

이 책은 그냥 그러네요. 강렬한데도 남는게 없는듯한..

coolcat329 2022-03-03 07:53   좋아요 1 | URL
전학생 진짜 불편했죠. 특히 남자일때 , 교과서 같이 봐야할 때는 그 어색함이 ㅋㅋ

새파랑 2022-03-03 0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완전 감성적이네요~!! 물감님 리뷰만 읽으면 별 다섯 느낌입니다~!! 전 고 2때 스타크래프트나 하고 있었는데 역시 남다르셨군요~

꼭 알아야 하는건 정말 아무도 안가르쳐주더라구요 ㅎㅎ 왠지 이 책이 땡깁니다 ㅋ

물감 2022-03-03 09:44   좋아요 1 | URL
저는 pc방을 안다녀서 스타같은 pc게임하고 멀어질 수 밖에 없었어요 ㅋㅋㅋㅋ 돈 없어서 오락실만 다녔더니 지금도 100원으로 한 시간은 플레이 합니다. 조이스틱과 버튼의 맛, 잊을 수가 없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그저그랬지만 새파랑님은 이 책도 냠냠냠 잘 읽으실 거 같아요~ 이책 보다는 <해가 지는 곳으로>를 더 추천합니다 ^^

책읽는나무 2022-03-03 09: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진영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구의 증명> 내용이 좀 생소해서 안읽은 걸 읽었다고 착각했나보다~싶었는데 <해가 지는 곳으로>를 읽은 것 같네요? 그 책은 핀 시리즈 맞죠??^^
최진영 작가의 소설 읽고 꽤 괜찮다는 느낌이 남았었는데 역시 물감님은 별 셋!!! 별짠님!!
별 하나는 더 주시지!!!!ㅜㅜ
그래도 물감님의 리뷰는 늘 읽기 좋아요.^^
김동률 가수의 노래 연습은 고2 때 부터셨구나? 뭐 그런 생각을 좀 했습니다ㅋㅋㅋ
좀 아픈 사랑이었을 수도 있었겠으나, 김광석 가수 노래 제목은 늘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감 2022-03-03 13:16   좋아요 1 | URL
찾아보니까 <해가 지는 곳으로>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시리즈 더라고요~ 그 시리즈를 몇 권 읽어봤는데 대체로 다 괜찮은 편이었어요. 대거상 받은 <밤의 여행자들>도 이 시리즈입니다^^

음... 저는 별점이 짜면 짤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 점수와 별개로 칭찬도 하니까요. 이게 다 높은 점수만 주는 독자들한테 수없이 낚인 탓입니다요... ㅋㅋㅋ

김동률도 김광석도 늘 옳습니다. 요즘은 이런 류의 가수 구경하기가 넘 힘들어요ㅠㅠ 그래서 계속 과거에 머물러있게 되네요 ㅎㅎ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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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버스회사가 파업을 했다. 하는 수 없이 동네 친구들과 한 시간 넘게 학교를 걸어 다녔다. 이런 곳을 삼 년이나 다닐 생각에 자퇴 욕구가 나날이 들끓었지만, 한 달 두 달 다니다 보니 어느새 장거리도 익숙해져 버렸다. 아마 함께 걷던 친구들이 있어줘서 그냥저냥 버틴 것 같다. 삼십분을 걸을래도 한숨 나오는 지금에 와서 그 시절을 떠올리면 참 무모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근데 살면서 한두 번쯤은 무모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나의 진짜 욕구를 마주할 수가 있고, 그렇게 습득한 경험과 감정은 평생의 자양분이 되어주거든. 다 큰 어른들이 소년만화에 열광하는 현상 또한 그 무모함의 참맛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오늘의 정유정 작가를 있게 해준 작품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읽었다. 스릴러 여제라는 분이 이런 청소년 문학으로 등단했다는 게 참 미스테리지만, 기대만큼 말랑말랑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예상외로 하드코어 한 장면도 많았고, 묵직한 메시지도 여러 번 날리곤 했다. 이로 보건대 정유정의 성향은 원래부터가 하드보일드 쪽인듯하다. 많은 작가 지망생이 딱총 들고 전장에 임할 때, 정유정은 양손에 샷건 들고서 뛰어든 느낌이랄까. 이렇게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우니 아군으로써 마다할 사람이 있겠나. 개인적으로 청소년 문학은 잘 안 읽는다. 흑인문학처럼 청소년 문학도 솔직히 다 비슷비슷하거든. 청소년들의 무대는 너무나 좁고 소재도 매우 한정적이라서 어떤 독창성을 갖추기가 어려운데 그 힘든 걸 이 분은 해냈더라. 이런 경우를 본투비 사기캐라고 하는가 보다. 부럽다요.


환자 된 친구를 대신해 그의 형에게 중요한 물건을 전달해주려는 중학생 김준호. 그 형은 데모하다 전국 경찰에 쫓기는 지명수배자였다. 경기도민 준호는 온천지에 깔린 경찰을 피해서 먼 지방까지 내려가야 한다. 근데 이 비장한 여행길에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끼어든다. 정신병원을 탈출한 할배와, 평소 말도 안 하던 두 친구와 맹견 한 마리까지. 그렇게 졸졸 따라다니며 감놔라 배놔라 하는 프로참견러들을 상대하다 뚜껑 열린 준호는 부탁이고 뭐고 간에 그냥 다 때려치고 싶어졌다. 호구 잡힌 준호의 네버엔딩 개고생 스토리는 그렇게 쭉 이어진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소년만화의 플롯을 따라간다. <반지의 제왕>을 예로 들어볼까. 호빗에겐 반지 파괴라는 목적이 있고, 준호에겐 친구 형을 만나겠다는 목적이 있다. 호빗은 원치 않던 친구들이 따라나서고, 준호도 계획에 없던 사람들과 여행하게 된다. 호빗은 반지를 노리는 적들을 피해 다니고, 준호는 들키지 않기 위해 경찰들을 피해 다닌다. 호빗은 반복된 시련으로 절망에 빠지고, 준호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여러 번 패닉이 찾아온다. 호빗은 친구들의 협조로 반지 파괴에 성공하고, 준호도 팀원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형을 만난다. 흔한 기승전결이지만 그만큼 익숙한 것이어서 몰입하기도 좋고 주제를 강조하기에도 그만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작가는 소소한 메시지만 던지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주제를 드러낸다. 내내 무방비였던 독자의 뒤통수를 갑자기 때리는데, 그제서야 작가가 심어둔 떡밥들이 생각나면서 마치 보물섬을 발견한 기분마저 들더랬다. 이게 정말 청소년 문학입니까? 선 지대로 넘었는뎁쇼.


이 작품의 키워드는 ‘아버지의 부재‘와 ‘해방된 자유‘로 나눌 수 있다. 준호는 존경하던 아빠가 가출한 뒤로 웃음을 잃었다. 친구 승주는 자신을 과잉보호하는 엄마를 막아줄 아빠가 필요했다. 친구 정아는 개장수 아빠의 폭력을 피해 온 동네를 쏘다녀야 했다. 단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단 이유로 먼 길을 떠났나 했더니, 후반에 할배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연들이 하나의 주제를 갖춘다. 할배는 버려진 갓난 아를 주워다 친딸처럼 키웠는데, 그 딸이 죽고부터 이상 증세를 보여 유치장에 들어가고 병원에도 보내졌단다. 딸에게는 나뿐인데,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하며 비통해하던 할배는 한 아이의 아버지였고, 세 친구에게는 이런 아버지의 애정이 필요했다. 참된 아버지의 부재로 준호는 아직도 아빠에게 버림받던 날의 악몽을 꾸며, 승주는 엄마의 참견으로 학교에서 기피 대상이 되었으며, 정아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도 엄마를 돌봐야 했다. 숨 막히는 현실을 벗어나려 뛰어든 무모한 여행이었지만 끝에 가서는 각자만의 자유를 찾아낸다. 이들의 자유는 부재중인 아버지한테 있던 게 아니라, 아버지라는 이름에서 해방될 때라야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성장과 독립을 가로막는 게 무엇인가. 작가는 계속해서 질문한다. 무모했던 아이들은 자유를 찾았고, 무모한 도전으로 정유정은 멋진 소설가가 되었다. 이렇듯 무모함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무모함이 젊고 어린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님을 작가는 증명해 보였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취약해도 되고 무모해도 좋다. 그러니 세상에 너무 겁먹고 기죽고 그러지 말자. 그리고 오늘의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도 말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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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2
헤르만 헤세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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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검사 결과 INFJ인 나님은 한마디로 이방인이라서 평생을 고통 중에 방황하는 유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무겁고 적막한 이야기에 끌리고, 그토록 페이소스를 중요시했던 게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사실 그렇게나 삶이 힘들면 즐거움과 평안을 쫓아야 할 터인데 오히려 스스로에게 시련을 가함으로써 고통의 삶을 자처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근데 나의 내면 어딘가에서는 이 같은 시련이 있어야 자아가 성장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어도 꼭 트라우마로 맘 고생하고 성장통 씨게 겪는 인물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곤 한다. 재밌게도 고전문학에는 그런 캐릭터들이 넘쳐나는데, 많은 나라 중에서 독일 쪽이 나랑 잘 맞는 것 같고, 여러 작가들 중 헤르만 헤세와 가장 잘 맞는 듯하다. 헤세의 삶 또한 방황과 시련 그 자체였고, 그래서 그는 항상 자아를 찾고자 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다 고만고만해 보여 혹자에겐 지겨운 인상을 주겠지만, 나 같은 이방인에게는 참으로 고맙기만 한 작가란 말씀. 나의 아픔을 헤아리고 어루만져 주는 작가를 살면서 몇 명이나 만나보겠나. 헤세, 당신은 그저 빛...


동네에서 영재 소리 좀 듣던 초딩 한스는 명문 신학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도 모범생이 되어 선생들의 관심과 총애를 받는 공부의 신, 한스. 전국에서 모인 돌아이들 가운데 랭킹 1위인 하일너와 단짝이 되고부터 한스의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다. 의욕 저하로 성적과 사회성이 쭉쭉 떨어지고, 그러다 결국 정신쇠약증에 걸려 퇴학을 당하고 만다. 이후 어떻게 해봐도 병이 낫질 않자 죽음으로 고통을 끝내려던 그에게 한줄기 빛이 내려온다. 그것은 바로 LOVE...


앞서 말한 대로 나님은 방황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나 정확히는 극복과 성장보다는 고뇌와 방황에 더 주목하는 편이다. 우리 아싸들이 겪는 방황은 뭐랄까,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만 같아서 주변에 탄식과 아우성이 끊이질 않는다. 주인공 한스도 마찬가지였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았다 보니 어느새 미세한 자극에도 금이 가는 유리멘탈이 된 주인공. 낚시가 유일한 취미이자 기쁨이었는데 그마저도 학업 때문에 내려놓았고, 이로써 ‘나‘를 잃어버린 소년의 보이지 않는 방황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신학교 희대의 빌런, 하일너의 등장으로 한스의 자아는 흑화하고 독자들은 뜨악한다. 솔직히 이거 <데미안>의 베타버전 아닙니까, 글쎄?


천재 소리 듣는 하일너는 학업에 관심이 없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대 자연과 시 쓰는 일에만 몰두하는 친구였다. 그의 사차원적인 말과 행동에 모두가 등 돌렸지만 오직 한스만이 하일너에게 끌렸고, 모양은 달라도 목적이 같은 벌과 나비의 관계로 발전한다. 하일너의 돌발행동들은 착한 아이였던 한스에게 엄청난 충격과 자극이었고, 누가 시켜서가 아닌 제멋대로 인생을 재단해가는 친구를 보며 나도 모르는 스위치가 켜지고 만다. 알고 보니 행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었고, 꼭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게 정답이 아니었다. 친구의 반항과 이탈이 옳다고는 말 못 해도, 그 금지된 것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은 주인공. 그러니까 이제껏 자신은 남을 위한 인생을 살았고, 하일너는 철저하게 자기 인생을 살았던 거였다. 이제까지 내 인생에 내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한스는 청소년의 허물을 차례차례 벗어던진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 빨랐다는 게 문제였다. 와장창 깨져버린 유리멘탈은 한스를 통제불능의 정신병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를 잡아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는 학교를 떠나 곁에 없었다. 이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그 사실이 한스를 깊은 수렁에다 던져넣은 것이다. 그렇게 한스는 커다란 수레바퀴에 깔린 채로 있어야 했다.


근데 하일너가 전교생에게 버림받았을 때에 한스도 그를 외면했었다. 그러자 혼자가 된 하일너를 보며 자신이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 알게 되었고, 다음엔 자신이 혼자가 되어보니 학교가 얼마나 야만스러운 곳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최고의 교육을 자랑하고, 우수한 신학생을 양성하는 신학교가 어쩜 이렇게 영혼을 달래주는 법도 모른단 말인가. 어느덧 몸도 정신도 커버린 소년은 손상 부위를 잘라내려고만 하는 신학교를 이해하지 못해 마음이 완전히 떠버린다. 자신이 그토록 방황할 때 진심으로 대해준 이가 아무도 없자, 어째서 하일너가 그렇게 혼자 겉돌다 학교를 떠나야 했는지 겨우 이해한 것이다. 보다시피 이 두 사람은 이상주의자다. 이런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이 의식주에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성 떨어지고 현실성 없다는 말을 듣기 쉽다. 누구보다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타입인데 본인들도 그 점을 모르고, 남들도 알아주질 않으니 상처가 점점 벌어져 더 이상 손쓸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른다. 과연 헤세는 불완전한 자아의 붕괴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다루는 감정 조절의 달인이다. 살아생전 헤세가 겪은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 전혀 가늠이 안된다.


고향에 돌아온 한스를 누구도 반겨주지 않았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올 기대는 물 건너갔으니까. 공부밖에 할 줄 모르던 애가 공부를 내려놓으니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아직 한참 어린 나이인데 벌써부터 실패한 인생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대체 절망이 그를 어디까지 데려가려는 걸까. 한스는 요양하면서 유년시절에 좋아했던 것들과 멀어지게 된 일들을 떠올린다. 또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마음이 끌리던 미지의 것들을 추억해본다.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였던 나의 존재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고, 그렇게 자신을 찾고 나자 병세도 점점 회복되는 게 아닌가. 이쯤에서 어린 한스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주던 부친과 동네 어른들을 생각해보자. 아이에게 미래만을 강조하고 요구하면 아이는 자신의 현재를 부정당한다고 느낀다. 그게 반복되면 현재를 회피하려는 본성이 눈뜨는데, 문제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도망 간다는 데에 있다. 아직 자신에게 어떤 기대가 있기 전의 시절로 말이다. 결국 살려고 하는 행동들이 반대로 자신을 잡아먹는 셈이니, 갈수록 심각해진 한스의 병 증세도 사실 이상할 게 없었다. 여하튼 나를 찾아낸 시점에서 소년의 길고 긴 방황은 끝났다고 봐도 된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았지만 이쯤 하기로 하자.


과거의 나도 나고, 현재의 나도 나다. 어느 한 쪽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세월이 나의 많은 것을 가져갔대도 뿌리만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거든. 나보고 넌 이쪽으로만 가야 한다고, 그게 후회 안 할 선택이라 말하는 타인에게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남들이 나를 알면 뭐 얼마나 안다고. 나를 제멋대로 규정한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내 존재가 인정받는 게 아니올시다. 찍먹파라고 해서 부먹을 먹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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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21 09: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반만 부어서 찍먹반 부먹반 입니다~!! 고전문학도 확실히 나라마다 분위기가 다른거 같더라구요. 저는 프랑스쪽이 좀 맞던데 독일도 좋더라구요. 그리고 데미안 베타버젼 맞는거 같아요 ㅎㅎ 이 책하고 분위기는 약간 다르지만 저는 크눌프하고 클링조어가 더 좋더라구요 ^^

물감 2022-02-21 10:26   좋아요 3 | URL
ㅎㅎㅎ 선택권이 있다면 저는 무조건 찍먹이요. 아 근데 새파랑님의 취향은 러시아 쪽 아니셨나요? 프랑스도 좋긴 한데 제게는 너무 고상하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프랑스는 고전보다는 일반문학이 좀 더 좋아요^^ 반대로 독일은 일반문학이 그저 그런데 고전문학은 넘나 좋고요 ㅎㅎ 말씀하신 크눌프랑 클링조어도 킵해두겠습니다!

새파랑 2022-02-21 11:08   좋아요 2 | URL
예전에 러시아만 너무 파서 요새 읽고 싶은게 별로 없네요 ㅜㅜ 생각해보니 러시아를 요즘 너무 등한시 했습니다 😅

물감 2022-02-21 11:16   좋아요 3 | URL
ㅋㅋㅋ 사랑이 식으셨군요. 이래서 불타는 사랑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새파랑 님의 전작주의를 말리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2-02-21 21:22   좋아요 2 | URL
저도 반은 부먹 반은 찍먹이에요~
저는 프랑스가 좀 더 끌리지만 막상 독일 문학 읽으면 그 진지함!에 정말 반하고 그걸 읽고 있는 제가 너무 좋은거 있죠. ㅋㅋ 많이 못 읽은게 반전이지만요😅
근데요...독일 추리소설은 참 재미없더라구요.

물감 2022-02-21 21:42   좋아요 2 | URL
독일인들에게는 유머가 없기 때문에 진지한 고전소설은 괜찮지만 일반소설은 지못미나 다름이 없죠... 희로애락을 구경하기가 완전 별따기에요ㅋㅋ

나비종 2022-02-21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밝은 경로로 대놓고 떠도는 인터넷간이검사를 몇 번 해본 적이 있는 데요, 예전에는 INFJ가 나오더니 작년 말에는 ISFJ가 나오더라구요. 과연 나란 인간의 정체가 뭔가 싶어 방금 다시 해보니 ISFJ를 고수하는군요. 뭘 지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비종은 ˝용감한 수호자˝~ㅋㅋ
음~ 저는 이야기의 경중을 떠나 선명한 색깔을 드러내는 게 좋습니다. 애매하게 흐지부지한 건 딱 질색이라 열린 결말 이딴 거 싫어하는 유형입니다. 한 번 꺼낸 이야기는 작가만의 결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해피엔딩이건 새드엔딩이건. 해피와 새드의 판단은 독자의 몫이구요.
물감님처럼 헤세의 작품이 저에게도 잘 맞습니다. 자전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점도 좋구요, 억지스럽지 않고 물 흐르듯 전개되는 서사의 흐름도 좋구요, 잔잔히 밀려드는 깊이가 마음에 들거든요. 직접 겪은 상황이기에 뿜어져나오는 섬세한 심리 묘사도요. 무엇보다 거만하지 않은 문체가 제 스타일입니다~^^

첫번째, 두번째 단락의 마지막 문장에서 뿜을 뻔 했습니다.ㅋㅋㅋ 물감님만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문장, 쩌는 매력, 이거 어쩌죠?ㅎㅎ

정체성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에 도약이 없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헤세의 문장은 뚝뚝 끊기는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적이라 좋거든요. 아날로그는 끊김이 없으므로 끝까지 붙들고 끌고 가는 내공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게 어디서 나올까 내내 생각했거든요. 방황과 시련이 작가에게 준 선물일까요.
음, <데미안> 스타일이 조금씩 변주되어 등장하는 이유를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방황했던 헤세가 절실히 필요로 했던, 어쩌면 스스로 되고 싶었던 대상을 주인공과 나란히 세운 게 아닌가 하구요. 데미안은 다소 신적인 신비로움과 통찰력을, 하일너는 한스가 갖지 못한 과감한 일탈을 구현한 인물이었죠. 그런 정반대적인 인물을 주인공과 대비시켜 플러스 마이너스로 제로 효과를 낼 작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점으로 수렴하면서 결론이 극대화되는 거죠.

‘모양은 달라도 목적이 같은 벌과 나비의 관계‘라는 표현은 어떻게 해야 나오는지요? 감탄했습니다~ㅎㅎ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문장 앞에서 공감하면서도 한참 생각합니다. 일정 수준의 돈을 넘으면 돈순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나의 행복은 무엇에 의한 순인가. 이걸 알려면 MBTI를 잘 알아야겠구나 하구요.ㅋㅋㅋ 나를 잘 알아야 내가 어떨 때 기쁘고 편한지 알고 그 방향으로 가겠구나 싶어서요~^^

하일너와 한스를 보면 헤세의 자아가 반반 섞여있는 것 같거든요. 하일너가 버림받았을 때 한스가 그를 외면한 상황은 작가가 그 자신의 자아를 스스로 외면했던 상황을 표현한 게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어요. 여기에도 서 보고, 저기에도 서 보면서 입장 바꿔 스스로를 두루두루 둘러본 헤세님, 엄지척~!

이 작품에 굳이 열린 결말스러운 부분을 찾자면 한스의 죽음일 텐데요, 그의 죽음에 스스로의 의도가 어느 정도 포함되었을까요. 한스는 나를 찾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조금은 기쁘지 않았을까요.
저는 교사의 시선으로 작품을 따라가다보니 주변의 등장 인물들을 행동과 심리를 바라보면서 생각이 많아지더라구요.

‘과거의 나도 나고, 현재의 나도 나다.‘ 공감합니다. INFJ였던 저도 저고, ISFJ였던 저도 저거든요. 몇몇 관계들은 과거의 그들을 붙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인 듯 내가 아닌 나인 것처럼, 그들도 그인 듯 그가 아닌 상황인데 말이죠. 결론은 있을 때 잘해?ㅎㅎ
역시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 인간으로서의 나와 사회적 관계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언젠가 이 책을 읽으려는 생각에 꽤 오래 전에 사둔 책이지만, 물감님이 아니었더라면 2022년 2월에는 만나지 못했겠죠? 이 절묘한 타이밍을 가져다주신 물감님께 감사드립니다~ㅎㅎ^^

물감 2022-02-21 19:23   좋아요 2 | URL
이럴수가, 과거에는 인프제였다니 세상 반가운데요? ㅋㅋ 근데 과학이 주 과목이니 s로 바뀔 수 밖에 없었겠네요. 색깔의 선명함으로만 치면 데미안보다 이 책이 더 선명하긴 해요. 아마도 자전소설이라 그렇지 않나 싶고요. 비교적 초기작이라 그런지 데미안 보다는 문체가 소프트해서 좋았네요 ㅎㅎ

물감표 msg, 성공인가요?ㅋㅋㅋㅋ하일너는 건들지 못할 말벌 같았고, 한스는 힘없이 나풀나풀대는 나비 같았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지만 꿀을 찾아다니는 건 똑같더라고요. 단지 한스가 나는 법을 좀 늦게 배운거죠. 기어만 다니던 애가 하늘을
날아 다니니 그 기분이 얼마나 짜릿했겠어요! 데미안에서는 알을 깨고 비상하는 새에 비유했다면, 이 작품은 번데기를 뚫고 나온 나비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도약없이 진행되는 아날로그 감성의 글, 저도 공감이요! 튀는 구간이 하나도 없어서 참 편안하게 읽혀져요. 편안한 내용도 아닌데 말이죠. 헤세가 성인이 아닌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글을 쓰지 않았나 해요. 그러니 어려운 표현도 잘 없고, 으스대거나 훈계조의 느낌도 없는 게 아닐까요? 이건 저의 뇌피셜.. ㅋㅋㅋ

한스가 하일너를 외면한 것은 헤세가 자아를 외면한 것이라!? 이것도 되게 신선한 관점과 해석이네요. 독서모임은 이런 견해를 공유할 수 있어서 넘넘 좋아요^^ 매번 나비종님의 깊은 통찰력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을 더 자세히 알아가는, 또 나에게 관심을 가져보는 귀한 시간이었어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달에 또 만나요 ^^

coolcat329 2022-02-21 2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3년전 이제부터 고전문학을 읽자 다짐을 하고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이었어요. 그래서 참 애정이 가는 책이에요.
위에 나비종님처럼 저도 ‘벌과 나비의 관계‘ 라는 표현이 좋았어요.
‘헤세, 당신은 그저 빛...‘이것두요
저도 갑자기 헤세의 소설 읽고 싶어 지네요. 🙂

물감 2022-02-21 21:55   좋아요 2 | URL
저의 첫 고전문학은 데미안이었어요. 뭐 그때는 잘 모르고 읽긴 했지만... 그러고보니 둘다 헤세 작품이 고전의 첫만남이었네요. 역시 나랑 잘 통하는 쿨캣님😀
저의 msg를 좋아해주시는 쿨캣님과 나비종님이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ㅎㅎㅎ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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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 이 어렵고도 지루한 타국의 옛이야기들을 어려서부터, 학생 때부터 읽어야 한다고 그렇게들 강조하고 권장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다른 건 몰라도 고전은 꼭 읽어야 한다는 그런 떠도는 말들이 오히려 독서에 반감을 가지게 만들지 않나 싶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수준 높은 고전을 책린이한테 권하는 게 가당키나 한 건가. 아 물론 청소년 수준에 맞는 고전들도 있겠지. 그런 작품이라도 읽으면 한두 개쯤 얻을 건 있겠지. 그래도 나는 책린이가 충분한 사유를 즐길 때까지는 억지로 권하지 않는 게 낫다고 본다. 독서생활 n년차, 이제는 다양하게 읽으려고는 하는데, 고차원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속상함을 느낀다. 지금 이걸 읽을 단계가 아닌데 너무 빨리 만나서 이해도 못 하고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둬야 하는 게 안타깝다. 그렇다고 훗날에 다시 찾게 될까? 그러지도 않을 거다. 인생은 짧고 읽어야 할 책은 많으니까. 독서력을 더 키우고서 어려운 책을 만났다면 지금보다는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지금 읽어서 즐거움의 기회를 날려버렸으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독서는 단계별로 해줘야 된다.


그 단계별 독서를 하지 않은 탓에 이번 독서도 대 실패다. 몇 년간 지켜보기만 했던 밀란 쿤데라. 그의 글이 쉽진 않아도 읽을만하다고는 들었다. 하여 이건 재미있다고 주입시키면서 읽었는데, 과연 시작부터 심오한 저자의 인생철학이 대거 쏟아져 나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1부만 읽고 요 정도면 소화 가능 범위다 했건만 2부로 넘어가니까 서사는 거의 없고 철학적인 문장들로 가득하여 잔뜩 쪼그라들었다. 아아 멀고도 멀었도다, 나님이여. 반성하고 있다. 읽으면서 ‘알랭 드 보통‘이 생각났는데, 그래도 알랭은 서사 베이스에 철학을 버무려서 읽기라도 수월했지, 쿤데라는 철학 베이스에 서사 몇 방울 짜넣어서 이게 소설인지 에세인지 전공서인지 아유 참 혼란하다 혼란해. 이상 책린이의 넋두리였습니다.


소련의 침공으로 공산주의에 물든 체코가 주 무대이다. 이 가운데 남녀 네 명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돌아간다. 많은 이성과 열심히 성생활을 즐기는 남자 1호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여자 1호를 만나 한 집에 산다. 남자 1호는 여자 1호를 좋아하지만 여전히 바깥 생활을 즐긴다. 한편 남자 1호의 정부인 여자 2호는 만나고 있던 남자 2호를 떠나버린다. 대략 이 정도로 요약을 해뒀지만 이 책의 전개는 두서도 없고 주제도 썩 일관되지 않는다. 그만큼 어려운 책이다. 저자의 사상, 체코의 역사, 철학의 개념을 배워놓지 않았다면 쿤데라의 작품들은 패스하길 바란다. 여튼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사랑-결혼-삶-이성-직업-정치-종교 등등 다양한 분야를 파고든다. 알아듣기도 어렵고 글맛도 없었지만 저자의 침 튀기는 열변을 듣다 보니 결국 다 읽기는 했다. 여러분, 이거 소설 아닙니다. 아무튼 아님. 속지 마세요.


쿤데라가 말하는 가치관, 신념, 이상향에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공존한다. 그 많은 메시지를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해도 되나 싶지만 일단 그렇게 받아들여본다. 가벼움을 원하는 쪽은 상대의 무거움을 느끼고서 멀어진다. 혹은 무거움이 좋은 쪽은 가벼움의 추구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자 1호는 이성들과의 육체적 사랑은 나눠도 정신적인 교감은 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육체적 사랑은 생명력을 가진 가벼움이며, 거기에서 자신을 찾고 정의한다고 믿는다. 그에게 반한 여자 1호는 콩밭에 가있는 남자 1호의 마음을 사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자 1호의 무거움을 이용해야만 했으니, 그의 무거움은 그녀에게 가벼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어보면 서로가 반대되는 모습을 띄게 된다. 이로써 존재의 본질이 영원에 있지 않고 변하는 데에 있음을, 가벼움도 무거움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쿤데라는 그 많은 열변을 토한 거였다. 많은 내용 중 빙산의 일각만 겨우 알아들었으나 제대로 이해하고픈 생각은 안 든다. 그냥 리뷰도 패스할걸 그랬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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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14 0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이 어떤 기분으로 책을 읽으셨을지 느낌이 옵니다 ㅋ 저도 쿤데라 이 책 어렵게 읽었던 기억만 납니다~ 철학 베이스란 말에 완전 공감이 가네요 ^^ 그래도 어려우면 왠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ㅎㅎ

물감 2022-02-14 07:22   좋아요 2 | URL
흑흑 새파랑님 왤케 반갑죠? 모든 평들이 전부 극찬 뿐이어서 넘나 자괴감 들어요...ㅋㅋㅋ

coolcat329 2022-02-14 0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는 삼 년전에 읽었어요. 네 저도 어려웠습니다.ㅠㅠ 책을 펼치자마자 니체의 영원회귀가 나오고 ㅎㅎ
물감님 리뷰보니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저는 어렵긴 했어도 당시 이런 스타일 소설 처음 읽어봐서 ‘참 실험적이고 멋지다‘ 감탄 비슷하게 한 기억이 납니다.
저도 쿤데라 다른 책 또 읽어보고 싶은데 선뜻 손이 안가긴해요 ㅋㅋ

물감 2022-02-14 11:28   좋아요 2 | URL
다시 읽고 싶다니, 쿨캣님의 탐구 정신은 대단하십니다 ㅎㅎㅎ
아 이런 책 너무 어려워요. 저는 노년이 되어서도 이해 못할 거 같네요...
저는 공부 목적으로 독서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있습니다 ^^;

레삭매냐 2022-02-14 15: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의 의견에 격렬하게 공감
하는 바입니다.

책읽기에도 역시나 독서 근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준비가 되면, 어렵던 책들도 가
뿐하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
니다.

고전의 즐거움 대신, 수업 때문에
혹은 입시나 점수 때문에 읽는다
는 게 현대판 비극이 아닐까 싶네요.

<참을 수 없는>은 두 번인가 도전
했다가 결국 완독에 실패했는데 물
감님의 리뷰를 보니 다시 한 번 도
전해 보고픈...

물감 2022-02-14 16: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독서근육. 그게 없어서 떠나보낸 책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주변에서 붐이 일어난다고 덜컥 따라읽어선 안되겠더라고요. 넘사벽을 만나서 슬럼프에 빠지는 일 만큼은 피해야만 해요ㅠㅠ
쿤데라 작품 중에 얇은 것도 있으니 그거 먼저 시도해보심 어떨까요? 이 책은 분량의 압박도 그렇고 진도가 넘 느려요...

공쟝쟝 2022-02-20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력 높여서 한 번 더 도전하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저도 개인적으로는 이 책 안좋아함) 그러나 아직까지도 ‘키치‘에 관한한 명문장들은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설도 지적인 책을 더 좋아하는 듯요. (아니면 세계관이 탄탄하던가) 그리고 소설의 경우 막 읽고 난 뒤보다는 몇 달뒤에 남겨질 흐릿한 인상으로 그 책을 평가 하는 것 같아요. 그 기억에 의거하면 이 책 좋은 책이었던 것 같고요.
하지만, 물감님 말대로 오늘 하루 홀라당 다 사라지게 만드는 흡인력있는 소설 읽기의 쾌감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책이 세상에 많아서 참 다행입니다!

물감 2022-02-21 11:02   좋아요 2 | URL
제가 왜 쿤데라하고 안맞는지 알아냈어요. 제 성향은 철학보다 인문학/심리학 쪽이라서 그런 거였어요 ㅋㅋㅋ 물론 깊게 파고들면 다 연관이 있겠지만요. 제 성격상 통찰력을 공부하기보단 번뇌로 체험하며 배우는데, 이런 것도 T와 F의 차이일까요? 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독서력은 키워놔야죠. 저는 한 60세쯤 된다음 쿤데라에 도전하렵니다. 읽을 책은 정말 정말 많아요. 저 안그래도 읽는 속도 느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