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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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 이 어렵고도 지루한 타국의 옛이야기들을 어려서부터, 학생 때부터 읽어야 한다고 그렇게들 강조하고 권장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다른 건 몰라도 고전은 꼭 읽어야 한다는 그런 떠도는 말들이 오히려 독서에 반감을 가지게 만들지 않나 싶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수준 높은 고전을 책린이한테 권하는 게 가당키나 한 건가. 아 물론 청소년 수준에 맞는 고전들도 있겠지. 그런 작품이라도 읽으면 한두 개쯤 얻을 건 있겠지. 그래도 나는 책린이가 충분한 사유를 즐길 때까지는 억지로 권하지 않는 게 낫다고 본다. 독서생활 n년차, 이제는 다양하게 읽으려고는 하는데, 고차원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속상함을 느낀다. 지금 이걸 읽을 단계가 아닌데 너무 빨리 만나서 이해도 못 하고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둬야 하는 게 안타깝다. 그렇다고 훗날에 다시 찾게 될까? 그러지도 않을 거다. 인생은 짧고 읽어야 할 책은 많으니까. 독서력을 더 키우고서 어려운 책을 만났다면 지금보다는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지금 읽어서 즐거움의 기회를 날려버렸으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독서는 단계별로 해줘야 된다.


그 단계별 독서를 하지 않은 탓에 이번 독서도 대 실패다. 몇 년간 지켜보기만 했던 밀란 쿤데라. 그의 글이 쉽진 않아도 읽을만하다고는 들었다. 하여 이건 재미있다고 주입시키면서 읽었는데, 과연 시작부터 심오한 저자의 인생철학이 대거 쏟아져 나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1부만 읽고 요 정도면 소화 가능 범위다 했건만 2부로 넘어가니까 서사는 거의 없고 철학적인 문장들로 가득하여 잔뜩 쪼그라들었다. 아아 멀고도 멀었도다, 나님이여. 반성하고 있다. 읽으면서 ‘알랭 드 보통‘이 생각났는데, 그래도 알랭은 서사 베이스에 철학을 버무려서 읽기라도 수월했지, 쿤데라는 철학 베이스에 서사 몇 방울 짜넣어서 이게 소설인지 에세인지 전공서인지 아유 참 혼란하다 혼란해. 이상 책린이의 넋두리였습니다.


소련의 침공으로 공산주의에 물든 체코가 주 무대이다. 이 가운데 남녀 네 명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돌아간다. 많은 이성과 열심히 성생활을 즐기는 남자 1호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여자 1호를 만나 한 집에 산다. 남자 1호는 여자 1호를 좋아하지만 여전히 바깥 생활을 즐긴다. 한편 남자 1호의 정부인 여자 2호는 만나고 있던 남자 2호를 떠나버린다. 대략 이 정도로 요약을 해뒀지만 이 책의 전개는 두서도 없고 주제도 썩 일관되지 않는다. 그만큼 어려운 책이다. 저자의 사상, 체코의 역사, 철학의 개념을 배워놓지 않았다면 쿤데라의 작품들은 패스하길 바란다. 여튼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사랑-결혼-삶-이성-직업-정치-종교 등등 다양한 분야를 파고든다. 알아듣기도 어렵고 글맛도 없었지만 저자의 침 튀기는 열변을 듣다 보니 결국 다 읽기는 했다. 여러분, 이거 소설 아닙니다. 아무튼 아님. 속지 마세요.


쿤데라가 말하는 가치관, 신념, 이상향에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공존한다. 그 많은 메시지를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해도 되나 싶지만 일단 그렇게 받아들여본다. 가벼움을 원하는 쪽은 상대의 무거움을 느끼고서 멀어진다. 혹은 무거움이 좋은 쪽은 가벼움의 추구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자 1호는 이성들과의 육체적 사랑은 나눠도 정신적인 교감은 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육체적 사랑은 생명력을 가진 가벼움이며, 거기에서 자신을 찾고 정의한다고 믿는다. 그에게 반한 여자 1호는 콩밭에 가있는 남자 1호의 마음을 사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자 1호의 무거움을 이용해야만 했으니, 그의 무거움은 그녀에게 가벼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어보면 서로가 반대되는 모습을 띄게 된다. 이로써 존재의 본질이 영원에 있지 않고 변하는 데에 있음을, 가벼움도 무거움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쿤데라는 그 많은 열변을 토한 거였다. 많은 내용 중 빙산의 일각만 겨우 알아들었으나 제대로 이해하고픈 생각은 안 든다. 그냥 리뷰도 패스할걸 그랬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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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14 0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이 어떤 기분으로 책을 읽으셨을지 느낌이 옵니다 ㅋ 저도 쿤데라 이 책 어렵게 읽었던 기억만 납니다~ 철학 베이스란 말에 완전 공감이 가네요 ^^ 그래도 어려우면 왠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ㅎㅎ

물감 2022-02-14 07:22   좋아요 2 | URL
흑흑 새파랑님 왤케 반갑죠? 모든 평들이 전부 극찬 뿐이어서 넘나 자괴감 들어요...ㅋㅋㅋ

coolcat329 2022-02-14 0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는 삼 년전에 읽었어요. 네 저도 어려웠습니다.ㅠㅠ 책을 펼치자마자 니체의 영원회귀가 나오고 ㅎㅎ
물감님 리뷰보니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저는 어렵긴 했어도 당시 이런 스타일 소설 처음 읽어봐서 ‘참 실험적이고 멋지다‘ 감탄 비슷하게 한 기억이 납니다.
저도 쿤데라 다른 책 또 읽어보고 싶은데 선뜻 손이 안가긴해요 ㅋㅋ

물감 2022-02-14 11:28   좋아요 2 | URL
다시 읽고 싶다니, 쿨캣님의 탐구 정신은 대단하십니다 ㅎㅎㅎ
아 이런 책 너무 어려워요. 저는 노년이 되어서도 이해 못할 거 같네요...
저는 공부 목적으로 독서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있습니다 ^^;

레삭매냐 2022-02-14 15: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의 의견에 격렬하게 공감
하는 바입니다.

책읽기에도 역시나 독서 근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준비가 되면, 어렵던 책들도 가
뿐하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
니다.

고전의 즐거움 대신, 수업 때문에
혹은 입시나 점수 때문에 읽는다
는 게 현대판 비극이 아닐까 싶네요.

<참을 수 없는>은 두 번인가 도전
했다가 결국 완독에 실패했는데 물
감님의 리뷰를 보니 다시 한 번 도
전해 보고픈...

물감 2022-02-14 16: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독서근육. 그게 없어서 떠나보낸 책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주변에서 붐이 일어난다고 덜컥 따라읽어선 안되겠더라고요. 넘사벽을 만나서 슬럼프에 빠지는 일 만큼은 피해야만 해요ㅠㅠ
쿤데라 작품 중에 얇은 것도 있으니 그거 먼저 시도해보심 어떨까요? 이 책은 분량의 압박도 그렇고 진도가 넘 느려요...

공쟝쟝 2022-02-20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력 높여서 한 번 더 도전하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저도 개인적으로는 이 책 안좋아함) 그러나 아직까지도 ‘키치‘에 관한한 명문장들은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설도 지적인 책을 더 좋아하는 듯요. (아니면 세계관이 탄탄하던가) 그리고 소설의 경우 막 읽고 난 뒤보다는 몇 달뒤에 남겨질 흐릿한 인상으로 그 책을 평가 하는 것 같아요. 그 기억에 의거하면 이 책 좋은 책이었던 것 같고요.
하지만, 물감님 말대로 오늘 하루 홀라당 다 사라지게 만드는 흡인력있는 소설 읽기의 쾌감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책이 세상에 많아서 참 다행입니다!

물감 2022-02-21 11:02   좋아요 2 | URL
제가 왜 쿤데라하고 안맞는지 알아냈어요. 제 성향은 철학보다 인문학/심리학 쪽이라서 그런 거였어요 ㅋㅋㅋ 물론 깊게 파고들면 다 연관이 있겠지만요. 제 성격상 통찰력을 공부하기보단 번뇌로 체험하며 배우는데, 이런 것도 T와 F의 차이일까요? 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독서력은 키워놔야죠. 저는 한 60세쯤 된다음 쿤데라에 도전하렵니다. 읽을 책은 정말 정말 많아요. 저 안그래도 읽는 속도 느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