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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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내 리뷰를 읽고 맘에 들어 하셔서 신간을 보내드리겠다... 뭐 이런 내용으로 출판사분께서 메일을 주셨는데, <늙은이들의 가든 파티>를 신랄하게 혹평했어가지고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더랬다. 뭐 그래도 내가 당당할 수 있는 건, 나님은 애정을 꽉꽉 담아서 까대므로 어떤 작가님이든 내 진심이 전해질 거란 확신 같은 게 있다. 따라서 이번 작품도 당근보다 채찍질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당근이야 뭐 다른 독자들이 번호표 뽑고 대기 중 일 테니깐.


이제는 작가 소개에 MBTI까지 실리는 세상이 되었군. 놀랍게도 나랑 똑같은 INFJ-A 셨더라. 허허, 어쩐지. 개인적으로 한차현 작가의 똥꼬발랄한 병맛코드를 좋아라 하는데, 어째 나오는 작품마다 분위기가 어둡고 심각하고 막 그렇다. 이번 작품은 영화사 분과의 합작이라 그런지 시나리오 기법으로 장면 전환이 매끄럽고 전개 속도도 빠른 편이다. 각 챕터의 분량도 길지 않아서 마치 <살인자의 기억법> 같은 템포와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덧셈보다는 뺄셈으로 승부하는 식이랄까. 이래저래 좋았지만 혹 영화로 만든다면 좀 더 각색이 필요하겠다. 이유는 뒤에 가서 말하기로 하고.


이번에도 ‘차연‘이 주인공이다. 이제는 무슨 차연의 멀티버스 세계관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 차연도 별 볼일 없는 아웃사이더로 등장한다.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로 연락 두절에 종적을 감춘 여자친구 은원. 몇 주 후, 가족을 통해 병원에서 재회한 그녀는 베르 어쩌구 증후군... 뭔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단다. 멘붕인 차연에게 진실을 알려준다며 은원의 고모네가 두 사람을 어느 연구소로 데려간다. 그곳에 실험 캡슐 안에는 은원의 복제인간들이 잠들어있었고, 네가 알던 은원1은 얼마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허?


결국 이 구린내 나는 연구소가 복제인간을 찍어내서 세상에 혼돈을 가져올 것이고, 이것을 막으려는 차연 일행이 겪을 시련에 대한 내용이다. 다소 순탄하게 진행된 감은 있다만, 그럭저럭 괜찮은 상차림이었다. 이만하면 재료도 신선하고, 메인 요리도 있고, 반찬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뺄셈‘이 문제였다. 모양새는 딱 음모론인데 정작 이렇다 할 액션 거리가 없었다. 주인공 차연은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게 일절 없고,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끌려만 다니는 무력함을 보여준다. 또한 거듭되는 진실과 일어나는 상황에 정신줄을 자꾸 놓게 된다.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은원2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인물의 감정선에 중점 둔 것도 아니고, 스토리에 치중한 것도 아닌 참 어중간한 작품이 돼버렸는데 이같은 평이 사실 처음도 아니다. 이래서 이 분의 작품은 명랑 발랄한 것만 좋아한다는 말입죠. 예.


규모에 비해 허술하기만 했던 연구소와 세력들은 말할 것도 없고, 두 남녀의 감정선이나 좀 말해보자. 그러니까 이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호소하여 독자가 페이소스를 느껴야 할 텐데, 증말 미안하게도 호소력이 제로였다는 말씀이야. 솔직히 템포가 너무 빨라 슬픔을 애도할 새가 없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은원1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자마자 연구소 타파 계획에 휘말리질 않나, 동행하는 사람이 죽은 연인과 똑같이 생기질 않나. 얼마든지 인물에 빠져들게 할만한 건덕지가 많았는데, 우째 작가는 애도할 틈조차 주지 않으니 원.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알 게 된 것이, 은원의 아픔과 심정에 무게를 두고자 하셨다는데 허허허... 뭐가 문제냐면요, 독자를 울려야 하는 건 은원2인데, 정작 은원1의 과거 회상만 잔뜩 나오더란 말입니다. 거기다가 은원1은 말없이 퇴장해버렸고요. 이쯤 되면 포인트를 한참 잘못 잡은 게 아닐지요?


아마 제목의 의미는 ‘은원 is One‘일 것이다. 몸은 여럿이지만 하나의 기억을 계승해야 했으니. 여튼 여러모로 아쉬움 많은 작품이었다. 전작 리뷰에서 차라리 빅 스케일의 음모론이면 좋았겠다고 했었는데, 정작 빅 스케일을 써 보니 용두사미가 돼버렸다. 어째선지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작가님이 내 리뷰를 읽는다는 가정하에 적어봅니다. 집필하다가 한 번씩 저 좀 부르세요. 제가 또 훈수를 겁나게 잘 둔답니다? 그럼 이만.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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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4-16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 님 같이 모니터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있다면 소설 쓰는 분에게 도움이 되겠는 걸요.
에세이와 다르게 소설은 독자들의 취향을 알 필요가 있죠. 자기 만족으로만 소설을 쓴다면 모르지만.
이제 물감 님이 승승장구하셔서 출판사에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차원이 되셨군요. 오호!!

물감 2024-04-16 22:23   좋아요 0 | URL
출판사 분들의 메일은 종종 받곤 하는데요, 대부분 비문학이거나 안내키는 소설이어서 잘 안하는 편이에요. 어쩌면 하도 비평만 하다보니 연락이 줄어든건가 싶네요 ㅎㅎ
솔직히 제가 뭐라고 감놔라 배놔라 하겠냐마는, 그냥 못 본체 지나치기 힘든 작가/작품들이 이렇게 있어요. 몇몇 작가분들이 연락주셨듯이, 이 작가님도 연락주길 기대해봅니다 ^^
 
나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0
에밀 졸라 지음, 김치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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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도서 리뷰라지만 시작부터 바로 작품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무슨 수학 문제집 풀듯이 정답만 써놓은 글에는 흥미가 없달까. 다른 건 몰라도 문학 리뷰만큼은 최소한의 스토리텔링이 들어가줘야 글이 매끄러워진다. 이 스토리텔링이란 게 사실 별거 없고, 그냥 내 생각과 사유의 꼬리를 물어만 주면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대한 Tmi와 뻔한 코멘트와 상황 설명만을 나열하기 때문에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온통 매력 없는 글이 되고 만다. 나님은 공장에서 단체로 찍어낸 듯한, 개성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결과물에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이런 말 백날 해봐야 듣는 이도 없고 내 얘기 하는구나 싶은 이는 더더욱 없는 현실이지만, 건강한 글쓰기와 서평 문화를 소망하며 또 한 번 끄적여봤다.


에밀 졸라의 작품 중 가장 재미없어 보였던 <나나>. 역시나 예상 적중해서 고생 좀 했다. 나나는 <목로주점>의 주인공인 제르베즈의 딸인데, 본 작품에서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극단 배우로 등장한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발연기의 달인이지만 그녀의 웅장한 피지컬과 과다한 페로몬이 그 어떤 논란도 잠재워버린다. 아무튼 수입도 짭짤하고 남자들도 잘 들러붙어 먹고 살 걱정 없는 그녀는, 단기간에 성공한 이들이 그렇듯 오만하고 경거망동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돈다발을 바치며 사랑을 갈구하는 남정네들. 그 정도로 나나의 아름다움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이 간단한 줄거리에 비해 쓰잘데없는 장면 묘사로 지면을 꽉꽉 채운 참 괘씸한 작품이었다. 원래부터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작가이고 늘 해 오던 대로 썼겠지만, <나나>가 유독 지루하다 느꼈던 것은 흐름과는 무관한, 정말 안 해도 그만인 묘사들로 도배를 해놨기 때문이었다. <제르미날>이나 <목로주점>에서는 자잘한 묘사들도 테마의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여 감탄했었던 반면, <나나>는 빈약한 내용을 최대한 있어 보이게 하려고 아주 그냥 발악한 걸로 보인다. 어떻게든 분량을 늘리고 싶어서 개똥, 새똥에 진드기 똥까지 긁어모으셨더만? 가장 불만이었던 극단 배경의 묘사부터 짚어보자. 나나의 직업도 그렇고, 초반에 대거 등장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그쪽 업계니까 과한 디테일에도 뭐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배경 묘사에 실컷 공들여놨더니 얼마 못 가서 나나가 극단을 때려치운 데에 있다. 사실 그전에도 나나의 활동이나 관련된 장면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차후의 내용이 앞의 장황했던 설명들과 크게 이어지지도 않는다. 후반부에 다시 배우로 복귀하지만 또다시 그만둬버리므로, 결국 극단과 배우의 설정이 썩 중요치도 않은 별개의 장치였던 셈이다. 에라이.


두 번째로 억지 분량을 짜낸 것이 사교계의 묘사다. 프랑스 문학에서는 상류층의 사교모임 장면이 흔하게 나오는데, 그것이 귀족들의 문화라 따분하고 올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같은 상황이라도 영국 문학은 한층 더 심플하고 위트 있게 풀어나가는 편이다. 그러니 비교를 안 할 수가 있나. 솔직히 큰 스캔들이 없는 이상 사교계가 거기서 거기인데, 여기서 재미와 분량을 뽑아낸들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심지어 나나는 귀족 집안 출신도 아니고, 명성은 있었지만 명예를 가진 것은 아니었기에 아무리 남자들의 등골을 빼먹고 다녔어도 평판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여인네들의 시샘과 질투를 받긴 했어도 남자들과의 썸씽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작가조차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하다. 근데 어째 리뷰가 점점 산으로 가는 기분일쎄?


연극으로 거액을 거머쥔 나나는 집을 사고 하인들을 거느리는 주인마님이 되어 신분 상승의 맛을 누린다. 일도 안 하고, 돈은 펑펑 쓰고, 알아서들 기어 대니 황후의 삶이 부럽지가 않은 그녀. 일상에 싫증 날 때면 남자들을 낚아다 돈을 타낸 뒤 영혼을 쥐락펴락하다가 걷어차버린다. 마치 악마에게 먹힌 것처럼 갈수록 심해지는 팜므파탈 플레이가 서서히 파멸을 노래하고 있었다. 보다시피 나나는 남자들을 타락시키는 걸 본능적으로 좋아했고, 남자의 수치심을 건드리면서 자극받기를 즐겨 했다. 도무지 해석 불가한 그녀의 자기 파괴적인 행동들이, 알 수 없는 증오의 화살들이 나중 가서야 겨우 납득이 되었는데, 불행을 몰고 다니는 루공-마카르 집안의 핏줄이, 사회를 향한 무의식적인 원한과 보복심으로 표출된 거였다. 잘 보면 나나에게 꼬이는 남자들은 백작, 사업가, 은행가 등등 죄다 상류층이었고, 이들의 부와 명예를 날려먹음으로써 저도 모르게 복수한다는 식이었다. 보통은 이 악물고 성공한 뒤 위에서 군림하는 정도로 그칠 텐데, 나나는 파산에다 풍비박산으로 사회에 매장하여 회생 불가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면서도 탕진과 섹스의 재미만은 꼭 챙겼으니, 이건 뭐 본인만의 무기를 흉기처럼 다뤘다고 해야겠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러니까 이 작품의 메인 테마는 ‘성(性)‘이다. 에로티시즘을 강조하기보다 그 욕망에 깃든 기질을 다루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나는 자신의 육체가 지닌 매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적극 활용하여 원하는 바를 모두 이뤄낸다. 혹여 그 과정 또는 결과에서 현타라도 왔다면, 그녀의 ‘인간다움‘은 지켜냈을지언정 작품성은 떨어졌을 거다. 처음부터 나나는 ‘성‘으로 꽃피우고 진다는 결말이었을 테니까. 것보다 나나라는 인물의 개인사가 너무 없어서 투박한 캐릭터가 된 점이 아쉽다. <목로주점>에서 죽은 엄마를 떠나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나이를 먹어왔고, 어떻게 배우로 발탁되었는지 등등 궁금한 게 많은데 전혀 언급이 없더라. 여하간 이번 작품은 졸라에게 실망한 점이 수두룩 빽빽하다. 그나마 재미없단 걸 알고 봐서 다행이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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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10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나 진짜 재미없었어요 ㅜㅜ

물감 2024-04-10 16:30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제가 알던 에밀 졸라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어요...

꼬마요정 2024-04-10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나 읽다가 말았어요ㅠㅠ 책은 두꺼운데 진도가 안 나가니 그냥 던져놨어요ㅠㅠ 근데 물감 님 리뷰는 재밌네요^^

물감 2024-04-10 18:25   좋아요 1 | URL
리뷰가 다행히도 먹혔군요 ㅎㅎ 의리로 완독하긴 했지만 저도 확 던지고 싶었어요!!

stella.K 2024-04-10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품>이란 소설과 <목로주점>인가를 오래 전 읽다 너무 기분이 졸라 안 좋아서
그후론 졸라는 좀...
그런데 말씀하신 사항은 졸라만 그런 건 아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옛날 작가들은 페이지 수에 따라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나 뭐라나 그래서
도스토예스키도 그렇고 여타의 작가들이 그렇게 악마적으로 길게 글을 썼다더군요.
졸라도 그렇지 않을까요?

물감 2024-04-10 22:56   좋아요 1 | URL
이 책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전 졸라를 좋아합니다. 그러고보면 스텔라 님과 저의 작가 취향은 겹치질 않네요, 천명관 작가 빼면요ㅋㅋㅋ
말씀하신 원고료를 저도 감안하는 편인데요, 리뷰에 적었듯이 이 책은 정말 내용과 상관없는 문장이 많았어요. 다른 작품에서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stella.K 2024-04-11 11:36   좋아요 1 | URL
ㅎㅎ 기다려 보십시오. 분명 겹치는 작가가 천명관 말고 더 있을 거예요. ㅋㅋ

아참,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제르미날을 영화로 본 적이 있네요. 원작은 아니지만 졸라가 이런 작품도 썼구나 좀 경탄했지요. 근데 물감님은 작품이란 소설은 읽어보셨을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졸라가 글은 잘 쓰는 것 같기는한데 너무 무겁고 칙칙하다 뭐 그렇다는 거죠. ㅋ

물감 2024-04-11 12:18   좋아요 1 | URL
목로주점, 제르미날, 인간짐승, 나나 총 4권 읽었어요. 작품은 나중에...ㅋㅋ 제르미날 영화가 있었군요. 참고하겠습니다.
확실히 졸라의 글은 묵직하고 자비 없긴 해요ㅋㅋㅋ그래서 텀을 길게 두고 읽어야만 합니다😅😅😅

은오 2024-04-11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목로주점도 읽다 덮은 기억이.... 전에도 물감님께 배경묘사 상상 안된다고 말씀렸다시피 전 배경묘사 세세하게 하는 자연주의 작가들 소설 너무 힘들더라고요. ㅠㅠ 실컷 설명해놓고 금방 극단 때려치운거 너무 열받는다!!!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4-04-13 18:42   좋아요 1 | URL
저도 세세한 묘사는 질려요ㅋㅋㅋ옛날 사람이라 그런가보다 하는거지, 현대 작가였으면 바로 손절했습니다😩 각자 본인한테 맞는 거 읽어야죠ㅋㅋㅋ
 
죄와 벌 지만지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시리즈 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정아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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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독서를 게을리했다. 핑계를 대자면 올해 들어서는 독서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하고 있어서 그렇다. 나날이 바뀌어가는 몸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것이 독서의 재미를 훌쩍 뛰어넘고 있어서 어차피 자주 못 읽을 거면 벽돌책이나 읽자 싶어 고른 게 <죄와 벌>이다. 심사숙고한 끝에 ‘지만지‘에서 나온 번역본으로 골랐는데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지간해선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편인데, 김정아 역자의 글은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다. 뭐 그건 그거고, 사실 지금 리뷰쓰기가 너무나도 막막한 상태다. 맨날 야금야금 읽어대서 그런지 메인 스토리만 기억나고, 그밖에 서사들은 부분적으로 떠올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도스토옙스키의 리뷰만큼은 신경 좀 많이 써주자 했었는데 안되겠다. 빠른 포기.


워낙 유명해서 요약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적어보자면, 법대생 R군이 전당포 노파와 동생을 살해하고 도망친 뒤에 평범한 시민인 척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주인공이 쭉 양심의 고통을 받다가 큰 시련을 겪고 개과천선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는데, 도스토옙스키는 주인공을 교만한 다크 히어로와 마음만은 따뜻한 츤데레 빌런의 중간지점에 놓아두었다. 그리하여 정신이 왔다 갔다 해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가 탄생된다. 그는 잘못된 사상과 헛된 정의감에 심취하여 본인의 행적을 정당화하기에 바쁘다. 물론 이런저런 고뇌에 빠지긴 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선과 악의 대립하고는 모양새가 많이 달라 아쉬웠다. 듣자 하니 성경 속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온 터라 어쩔 수 없었겠구나 싶다. 빠른 납득.


노파의 살인 사건이 초반부에 나와버려, 이 많은 분량을 대체 무엇으로 채웠을까가 가장 궁금했다. 근데 어랍쇼, 사건의 후폭풍 장면은 금방 사라지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와버리는 게 아닌가? 난 뭔가 살인자의 위태로운 양심고백과 선에 대한 집착 같은 내면의 고군분투를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근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R군이 구제불능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도 아니며, 오히려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를 생각하는 썩 멀쩡한 청년으로 나온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의 태연함과 고상함이 흡사 물과 기름처럼 느껴졌달까. 딱히 두 자아의 공존까지는 아닌데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이 더 큰 것도 아니었으니, 고것 참 저자의 의도가 아리송송했다. 그러다 제2의 주인공인 소냐가 등장하면서 R군이 누군가의 도약을 위한 촉매제 역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려 1866년 작품이던데 어떻게 이런 구도를 짤 생각을 다 했을까. 그저 놀라운.


가족들을 먹여살리려 매춘부가 된 소녀. 자신의 등골을 뽑아먹는 가족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소냐는, 이 거칠은 러시아 땅에서 홀로 남은 신실한 기독교인이라 하겠다. 술독에 빠진 소냐의 부친이 사고로 죽자, R군은 없는 돈 다 털어서 장례비를 마련해 주고, 이를 계기로 소냐와 가까워지게 된다. 소냐의 남다른 심성을 구원의 빛줄기로 받아들인 R군은 마침내 커밍아웃을 시도한다. 이로써 매춘부가 된 기독교인과 살인한 법대생의 동맹 비스무리한 감정이 생겨나고, 비록 말은 안 했지만 서로가 자신의 유일한 출구임을 인지한다. 그러는 한편, 자신의 허물을 모조리 받아주는 소냐를 보며 ‘이건 또 아니다‘ 싶었는지, 다시 소냐를 밀어내고 전처럼 고독한 은둔자로 돌아가 세상을 왕따시키는 주인공. 대체 그녀에게서 뭘 얻겠다는 거냐면서 계속 멘붕과 현타를 반복하는 그의 원맨쇼가 쭉 같은 패턴이라 솔직히 질려버렸다. 이게 다 원고량이 많을수록 돈을 더 벌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니 이해는 한다만, 분량 조절 실패의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R군은 자신이 짊어진 죄의 형벌에서 어떻게든 해방되고 싶어 안절부절이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였고, 자수할 마음을 먹다가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이렇듯 그에게도 선한 양심은 남아있었지만 생존본능과 방어기제가 모든 걸 누르고 앞질렀다. 그렇게 자신의 범죄가 인류의 진보를 위한 첫걸음이자 밑거름으로 여겼다. 또한 그는 국가의 혁명을 위해 적들을 죽여나간 나폴레옹과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그런 사상에 입각하여 자기가 ‘이(벌레)‘를 제거했다고 생각한다. 죽은 노파가 무슨 사회의 악이라도 된다는 것마냥. 그러나 죄 없고 선한 노파의 동생의 죽음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죽은 동생과 친했던 소냐한테라도 사죄해서 해방감을 느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소냐의 심성이 성직자 뺨칠 정도로 거룩하고 정결해서, 이거 잘못 건드렸다간 무신론자인데도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할 것만 같았으니 그냥 발뺌할 수밖에 없는, 참으로 모양 빠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쯤 되면 결말은 다 정해져있는데 계속해서 겉도는 상황들이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몇 번 더 재독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으려나.


두 주인공이 저지른 죄에 대해 말해보자. 해설에서 R군의 죄는 법률·법규를 위반한 ‘Criminal‘이고, 소냐의 죄는 도덕·윤리를 배반한 ‘Sinner‘로 분류했다. 명백히 전자가 더 악랄하다고 할 수 있는데 <죄와 벌>은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있어, 자칫 논란거리가 되기 쉬운 작품이다. 물론 끝에 가서는 R군이 자수하고 시베리아로 가서 수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죗값을 치르는, 나름의 권선징악이 실현되기는 한다. 죄에 빠진 R군이 소냐로 인해 교화되고 거듭나는 이 과정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얻고 구원에 나아감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R군의 죄와 고통을 함께 감당하고 짊어진 소냐는, 인류를 구원하러 나타난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서사가 탄생된 배경에는 도스토옙스키가 실제로 수년간 유배생활을 하였고, 그 기간 동안 읽었던 신약 성경에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성격은 <죄와 벌> 전과 후로 나뉜다고 했다. 이전까지도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며 삶을 움직이고 결정짓게 하는 요인에 대해 다뤄왔지만, <죄와 벌> 이후부터는 그의 세계관이 현실을 벗어나 영의 세계로 뻗어감을 알 수 있다. 표현 그대로 신들린 듯한 글쓰기가 시작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죄와 벌>에는 두 사람 말고도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글이 길어질까 봐 다른 내용들은 리뷰하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R군보다 여동생의 혼사 이야기 쪽이 더 흥미로웠다. 아무튼 손가락 가는 대로 끄적거리긴 했는데 영 실망스러운 글이 돼버렸다. 훗날 재독하게 되면 제대로 칼을 간 리뷰를 써봐야겠다. 근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장담은 못 하겠다. 자 그럼 다시 쇠질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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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02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맘 알 것 같습니다. 같은 경우는 아니겠사오나 전 오랫동안 다리 관절이 안 좋아서 이러고 살아야하나 좀 우울했는데 요며칠 전부터 스트레칭 효과를 보는지 정말 오랜만에 내 다리로 걷는 기분입니다. 저한테도 이런 때가 오다닛! 그러니 물감님은 어떠시겠습니까? ㅎㅎ
홍대화 거로 오래 전에 읽었는데 채수동 것도 좋다고 해서 사 놓고 읽지는 않고 있습니다. 저란 인간은 참...ㅠ
이 번역본은 그냥 눈에만 담이둬야 할 것같습니다.

물감 2024-04-02 16:57   좋아요 1 | URL
저도 교통사고 때문에 몸이 진짜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요, 이 악물고 살을 빼고 근육을 키워놓으니 정말 살맛 납니다! 체력도 급 늘었어요ㅎㅎㅎ 그래서 독서랑 멀어지고 있지만요...

번역본이 많을수록 오히려 고르기가 어렵더라고요. 게다가 싸지도 않으니 더 신중하게 되더라는ㅎㅎ 언젠가는 읽지 않을까요? 계속 눈팅은 해두셔요😎😎😎

페크pek0501 2024-04-16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죄와 벌을 두꺼운 전집으로 30대 초반에 읽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었죠. 전당포 노인 같은 사람을 죽이면 모든 빚이 청산되니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 주는 일이 되는 것이 그럴 듯해 충격, 결국 주인공이 구원을 받는 대상이 매춘부라는 사실에 충격. 신선했어요. 그때만 해도 제가 젊고 순수했는지라 감흥을 느꼈죠. 저에겐 이 책이 재독할 책 리스트에 있어요. 그 두꺼운 분량을 무엇으로 채웠는지 다시 살펴보고 싶어서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4-04-16 22:33   좋아요 0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완독에 서평까지 오래걸린만큼 보람도 있네요 ㅎㅎ
저는 성경이 모티브인 작품들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이 작품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서사 자체만으로도 인상적이긴 하구요. 이 책을 포함해 많은 고전들이 젊어서 읽기엔 절반도 흡수하지 못할 듯해요. 그래서 꼭 재독했으면 싶지만 읽어야 할 책들이 넘쳐나므로, 저는 나이들고 읽어서 차라리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자주해요 ㅋㅋㅋ 페크님 재독한다면 요 지만지 버전으로 하세요. 번역이 정말 훌륭합니다!
 
바다와 독약 창비세계문학 28
엔도 슈사쿠 지음, 박유미 옮김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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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활동을 해온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다독가는 아니지만 공백기 없이 활동했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몇 차례 얘기했듯이 나님은 쓰기 위해 읽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많고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들 할 텐데 글쎄, 나는 인풋을 꼭 책으로만 집어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풋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쓸만한 아웃풋이 나오는 건 맞는데, 그 출처가 반드시 책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글쟁이들은 잘 알 텐데, 글이 안 써지는 원인은 사고의 확장이나 발상의 전환이 부족한 탓이 크다. 그러니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습득하여 유연성과 개방성을 길러야만 한다. 개인적으로는 프레임을 넓히는 것보다 깨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한편 꾸준하게 쓰는 데도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분들을 자주 본다. 욕심도 있고 진정성도 느껴지는데 발전이 없는 분들을 보노라면 딱한 마음이 든다. 대개 이런 분들은 평범한 걸 선호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하는 흔한 문장과 표현을 못 버린다는 게 특징이다. 단지 쓴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모를까, 나름 글쓰기에 진심인데도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하니 이 얼마나 속상한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근육통이 싫어서 힘들지 않을 만큼만 훈련하는 선수한테 무엇을 기대하겠느냐고. 따라서 모든 글쟁이들은 평범함을 거부하고 좀 더 치열하게 써야 한다. 남들이 자신의 글에 ‘기대감‘을 갖고 클릭하게끔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하여 기계적으로 좋아요를 받기 보다, 즐겁고 유익하게 느껴져서 좋아요를 받는 글과 문장이 되어야 한다. 나 역시 그렇게 되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며, 당신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참 오랜만에 일본 고전문학을 읽었다. 나쓰메 소세키, 마쓰모토 세이초, 다자이 오사무 등등 옛 일본의 문학 감성들은 영 안 맞아서 손 뗀지도 한참 됐다. 대체로 건조한 문체인데다 지루한 문장 구사가 많은 탓이었다. 아니면 스토리텔링에 높낮이가 없다거나. 그냥 한 번 더 속아주자는 마음으로 고른 <바다와 독약>은 전혀 예상 못 한 잭팟이었지 뭔가. ‘신‘에 대해 일평생 연구했다던데, 생각보다 종교의 색채가 짙지 않았고, 내적 고통을 넘어선듯한 저자의 아웃풋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처럼 한 주제에 천착하는 작가들은 완성도와 작품성 그리고 대중성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경우가 많은데, 잘 생각해 보니 이들만큼 치열하게 쓰는 타입도 없는 듯하다. 이와 같은 자세가 아니라면 1만 시간의 법칙조차 말짱 도루묵일 것이다. 그러므로 평범함에 익숙해지지 말자.


<바다와 독약>은 생체해부실험을 한 의료진의 민낯을 다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경, 공습이 빗발치는 한 도시의 대학병원에는 매일같이 응급환자들이 실려온다. 진료 한 번 못 받고 죽어가는 환자들과, 감정이 거세된 직원들 사이에서 혼자 괴로워하는 스구로 의사. 동기의 말대로 의사에게 감정놀음은 한낱 사치일지 모른다. 더구나 지금은 전시상황이지 않은가. 결국 될 대로 돼라였지만 비인간적인 의료진의 만행은 참으로 못 봐줄 지경이었다. 수술 도중에 죽은 환자를, 수술 성공 후에 죽은 것으로 위장한 것도 그렇고, 공습으로 죽을 바에야 실험체로써 사회에 공헌하는 편이 더 낫다는 말들도 가증스러웠다. 그 와중에 윗사람들은 의학부장 선거를 생각하느라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다. 환자들의 목숨보다 중요한 밥그릇 싸움이라니. 그러나 이것이 의료계의 현주소였고, 한배를 탄 스구로 또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가슴속의 무수한 적신호들을 외면한 채로.


2부에서는 한 간호사의 수기가 나온다. 중국인 남편에게 버림받고 간호사로 복귀한 그녀는, 종종 병원을 들리는 부장 의사의 백인 아내를 보게 된다. 간호사 출신의 사모님은 이것저것 환자들을 챙겨주곤 했는데, 정작 그 수고와 배려가 모두를 불편케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반대로 이 천사표 사모님의 남편은 환자를 위하기는커녕 죽든지 말든지 선거만 생각하는 냉혈한이다. 이렇게 전혀 다른 성질의 두 사람을 한 세트로 묶어놓다니, 이것 또한 신의 장난질일까. 만약 신이 존재치 않는다면 이런 아이러니를 대체 무슨 수로 설명한단 말인가.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늘 변함없이 나를 지켜보는 저 검푸른 바다. 어쩌면 신은 그곳에 서서 우리를 비웃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스구로의 동기인 T가 쓴 수기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들의 점수를 따내는 일에만 움직여왔다. 계산된 행동 하에 결과만 괜찮다면 비양심적, 비도덕적일지라도 상관없었다. 그러다 자신의 ‘척‘을 발견한 전학생의 비소에 그만 무너져버린다. 전학생이 이사가고 본 캐릭터로 돌아온 T는, 아무렇지도 않던 계산된 행동들에 허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내용은 일본인에게 결여된 ‘죄책감‘을 꼬집어주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해설에서도 얘기한 바, ‘죄의 문화‘를 지닌 서양인이 죄의식에 따라 행동하는 반면에, ‘수치의 문화‘를 지닌 일본인은 발각되지 않은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슈사쿠는 일본인의 결함이 신의 부재로 생겨난 것처럼 보고 있다. 그러니까, 신의 손길을 뿌리친 민족의 당연한 결과라는 얘기다. 아무튼 종교를 떠나서 욕먹을 각오로 자국민을 디스 한 저자에게 삼삼칠 기립 박수를 보낸다.


이제 다 끝났으니 조금만 더 참아주시라. 대망의 3부에서는 미군 포로들을 데려다가 생체해부실험에 들어간다. 그리고 스구로는 어영부영 참여했다가 뒤에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한다. 이 실험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 생명이 언제쯤 끊어지는가를 알아내는 게 목적이었다. 말 그대로 의학 발전에 공헌하는 일일 진대, 저 바깥양반들은 수술 장면을 보면서 왜 낄낄대고 있는 걸까. 무언가 한참 잘못됨을 느꼈지만 그래봐야 자신도 저 무리 중 하나란 사실에는 변함없었다. 혹여 피해 갈 수 없다면 차라리 동기처럼 기회를 잡고 라인 타는 게 맞을 수도 있다. 허나 이런 생각의 결과가 오늘날의 일본을 만든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생각해 보라. 지금도 일본은 과거의 만행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모든 바탕에는 나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사고가 깔려 있는데, 이것마저도 일본을 따라가는 한국 사회의 앞날이 걱정되기는 한다. 아무튼 잘 읽었고, 슈사쿠의 작품들은 좀 더 둘러볼 생각이다. 것보다 의사 파업이 한창인 때에 읽어서 그런가, 기분 참 멜랑꼴리 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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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3-03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평가 10년의 물감님 대단합니다~!! 글을 잘 쓰시는 비법이 있으시군요~!!
전 그냥 책이나 읽는걸로 해야겠습니다...

엔도 슈사쿠는 그저 사랑입니다 ㅋ 이 책에서 나오는 생체실험 내용 때문에 읽기 힘들더라구요...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감 2024-03-04 10:41   좋아요 1 | URL
저도 초반에는 10줄도 안쓰던 사람이었는데ㅋㅋㅋ제가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하게 될 줄 정말 몰랐어요. 그래봐야 서평에 한해서지만요 ㅋㅋ

한 때 서재에서 슈사쿠 붐이 일었었죠? 왜 열광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느낌있는 작가네요. 근데 이 책은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던데요ㅋㅋㅋ 다른 책들도 궁금해집니다.

은오 2024-03-04 2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이랑 저도 취향 은근 다르군요. ㅋㅋㅋㅋㅋ 물감님이 다자이오사무랑 소세키 감성 안좋아하시는거 처음 알았읍니다. 저는 최근에 다자이오사무 사양 좋게 읽었고 인간실격은 다시 읽어도 좋더라고요. 소세키 마음도 좋았어서 다른 작품들 읽어보려고 드릉드릉 ㅋㅋㅋ
그리고 10년 대단하시네요. 말이 10년이지 진짜 저도 속으로 박수..🫢🥹 쓰기 위해 읽으긴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전 읽는게 너무 재밌어서 읽기만하고싶어요!!ㅠㅋㅋㅋㅋㅋ

물감 2024-03-05 15:10   좋아요 1 | URL
은오 님 뿐만 아니라 누구와도 취향이 겹치지 않을걸요ㅋㅋㅋㅋ 이곳 분들은 다들 교양있고 점잖으셔서 저 혼자 좀 튀어보일 때가 많아요. 그냥 돌연변이인갑다 하세요 ㅋㅋㅋ
읽기만 하는 것도 당연 좋죠. 글쓰기는 안 해도 되지만 독서를 안 하는 건 죄악입니다 ㅋㅋㅋ 그리고 10년 그까이거 별거 없어요.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걸 즐기다보니 여기까지 온거죠 뭐. 저보다 오래된 고인물이 이곳에 얼마나 많습니까 하하하.
은오 님의 재능을 알지만, 저는 은오 님한테 글 쓰라고 압박하지 않을 거에요. 자기가 원해서 하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지금처럼 열독하고 댓글러로 지내셔도 충분합니다 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24-03-19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읽고 느낀 점 : 좋은 책을 읽으면 서평을 잘 쓴다는 것.
글을 잘 풀어가셨습니다.(감히 내가 평가해도 된다면.)
물감 님이 이렇게 잘 쓰시는 분이었나, 새삼 깨달음.
책도 훌륭하네요. 시점을 달리해서 쓰는 것,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고 흥미롭거든요.
서재 운영 10년 되셨군요. 저는 15년째예요. 제가 선배임. 하하~~

물감 2024-03-19 20:35   좋아요 1 | URL
글을 올렸으면 칭찬이든 비난이든 달게 받아들여야죠. 감히 되고 안되고가 어딨나요ㅋㅋ 말씀대로 좋은 책을 만나야 좋은 글이 나오더라고요. 평소 품고있던 생각과의 교집합이 클수록 풍성한 글이 만들어지는데, 이 재미 또한 글쟁이들만 아는 것이겠죠😀 그나저나 페크님도 오래 계셨네요. 이런 선배님들이 있어주셔서 저도 실력이 늘은 거겠죠? 언제나 건필하시길요🤩
 
파문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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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지앙과는 이번이 첫 만남인데 영 좋은 인상이 못되었다. 독자들의 찬사와 출판사의 소개 글에 또 속았다. 예전 같았으면 눈 뒤집혀서 팩폭하고 까대기 바빴을 텐데, 이제는 기력도 없고 시간도 아깝고 해서 혹평은 잘 안 하게 된다. 물론 비평도 좋지만 매번 삐딱한 눈으로 작품을 대하기도 썩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나 <파문>은 좋게좋게 넘어가 줄 수 없는 수준이어서, 오랜만에 전투 모드가 되어 잘근잘근 씹어보겠다.


50대의 문학 교수인 마르크. 원나잇 파트너가 다음날 죽어있자, 자신만 아는 산속 동굴 속에 시신을 유기하는 것으로 서막을 연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가 눈에 훤했으나, 내 예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진행되어 대략 낭패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왔고, 실종된 학생(파트너)에 대한 내용도 쏙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이야기는 학과장과의 신경전과, 친누나의 들들 볶음, 그리고 파트너의 계모와 눈 맞음, 이 세 가지 내용으로 굴러간다. 마르크는 학과장의 계속된 경고에도 교칙을 어기며 학생 및 학부모와 몸을 섞어댄다. 그는 섹스만큼이나 작법을 중요시하고 있는데, 통제 안되는 수컷 짐승이 그런 말 해봤자 와닿지도 않고 말이다. 여튼 살인 용의자로 몰린다거나, 추문으로 학교서 쫓겨나게 되는 전개를 바랐는데 그냥 섹스 신으로 질질 끌다가 끝나버렸다. 어이 상실.


범죄현장이 된 동굴은, 자신을 구해준 누나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써, 아직도 시스터 콤플렉스에 매인 마르크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온다. 정말 그게 다여서 실망스러웠다. 이어서 죽은 학생을 수소문하던 경찰도 결국 죽어, 마르크가 동굴에 또 집어넣는다. 헌데 두 사람이 대화하다가 다음 장에서 갑자기 죽어있는데 이 무슨 황당함인가. 파트너도 그렇고 경찰의 죽음도 그렇고, 저자는 가장 중요한 장면을 죄다 생략하고 있다. 이런 의도적인 장치가 몇 번 더 반복되는데, 그렇게 싹둑 잘라내니까 맥락이 계속 틀어져 버린다. 때문에 번역자도 고생 좀 했나 보더라. 난 이처럼 독자한테 습관적으로 떠넘기는, 무책임하고 불친절한 스타일을 아주 경멸한다. 사실 작가보다도 무조건 오냐오냐해주는 독자들이 더 문제지.


부모의 학대, 포기한 소설가의 꿈, 사랑을 못 느끼는 옴므파탈 등등. 주인공을 끝없이 방황하는 위태로운 캐릭터로 묘사 중인데, 하나같이 진부한 설정뿐이라 영 와닿지가 않는다. 게다가 머릿속은 온통 섹스로 가득 차있어, 방황이고 나발이고 간에 조금도 감정이입이 되질 않는다. 읽는 내내 프랑스판 하루키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 아무튼 성격이 되게 어중간한 작품이었다. 차라리 범죄 스릴러 쪽으로 밀고 가던가, 아니면 불안한 자신과의 투쟁으로 가던가, 또는 아슬아슬한 스캔들 끝에 추락하는 스토리여도 좋았을 건데. 쯧쯧. 좀 더 쓰고 싶지만 졸려서 안되겠다. 영양가 없는 작품에 이만큼 썼으면 과분하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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