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죽어가던 나의 까칠함이 이 책 덕분에 다시 부활했다. 내가 질색하는 일명 ‘이과‘소설이다. 온통 수학, 과학적인 내용으로 가득하여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는 건지 구분이 안된다. 그만큼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보다는 온갖 잡다한 지식과 설명으로 도배되어있다. 문학적인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는 이런 무채색의 작품을 나는 너무 싫어한다. 전 세계에서 400만 부 이상이 팔린 책이라는데, 대체 이 책의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인 거임? 나 빼고 세상 전부가 수학 과학 마니아들이신가.


옆집 푸들이 쇠스랑에 찔려 죽어있었다. 마침 근처에 있던 소년이 용의자가 되었다가 풀려나고, 이 사건의 범인을 찾기로 한다. 그러나 소년이 사건에 엮이길 원치 않는 아빠는 아들의 탐정놀이를 강제 중단시킨다. 소년은 자폐증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빠의 옷장을 뒤지던 소년이 엄마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들을 발견한다. 심장병으로 죽었다던 엄마는 멀쩡히 런던에서 살고 있었다. 아빠와의 트러블이 있은 후 소년은 엄마를 찾으러 런던에 간다. 하지만 동네를 떠나본 적 없는 이 어린 영혼은 가는 곳곳마다 어려움에 봉착하는데...


​전에 읽었던 ‘아몬드‘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편도체가 손상되어 감정을 못 느끼던 소년. 이 책의 주인공은 행동 장애를 가지고 있어 끝없이 ‘왜요?‘를 반복하는 5살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머리는 또 좋아서 패닉이 올 때면 머릿속으로 근의 공식이나 방정식 같은 수학 문제를 푸는 등 상당한 괴짜 기질을 보인다. 물론 이 캐릭터를 만든 건 작가이므로 이 작가 또한 괴짜라는 뜻이다. 아무튼 내 스타일은 아님. 나중에 엄마를 찾으러 간 다음부터는 분위기가 전환되길 바랐다. 그러나 소년의 여정은 반지원정대처럼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게 아니라서 어떤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영양가 없는 문장도 많아 맥 빠지는 것도 여러 번이었다. 이쯤이면 작가가 일부러 이러는 거 같기도 하고.


​제목만 보면 개에게 일어난 사건을 둘러싼 스토리인 듯한데 그 내용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추리하는 장면은 없고 소년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한다는 자기소개를 디테일하게 늘어놓는 내용이 더 많다. 캐릭터가 그러하니 이해를 해야겠지만 그런 횡설수설하는 듯한 글로 내 아까운 시간을 왜 날려야 하는가. 범인 또한 맥빠지게 밝혀진다. 아빠가 감정 조절 실패로 홧김에 죽인 거였다. 참고로 이건 스포가 아니다. 어차피 이 책은 범인 잡는 탐정 소설이 아니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뭔가 어그로성 제목에 낚인 듯. 차라리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나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같은 정직한 제목으로 지었으면 욕이나 덜먹지. 작가가 문학 형식을 빌려서 본인의 똑똑함을 자랑하고 싶은 거로밖에 안 보인다.


​이 분위기 산만한 작품에 그나마 집중할만하면 자꾸 딴 길로 샌다. 할머니와 대화하던 중 갑자기 우주 천체의 법칙을 설명하질 않나, 지도교사와 상담 중 갑자기 수학공식을 설명하질 않나. 챕터마다 스토리로 시작해서 온갖 공식 내용으로 끝난다. 요즘 말로 엄청난 설명충이다. 나는 문학에 이런 내용들로 분량이 채워지는 것을 싫어한다.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물리학, 원자학, 수학, 천체학 설명을 내가 왜 들어야 함? 그게 알고 싶었으면 전공서적을 읽었겠지. 주인공한테 애정이든 동정이든 감정이입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불필요한 내용들 때문에 도저히 정이 안 든다. 싫어하면 안 될 캐릭터를 이런 식으로 싫어지게 만드는 건 작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만든 캐릭터를 혼자만 좋아하면 어떡하냐, 독자들이 사랑하게 만드셔야지. 아무튼 베스트셀러는 나랑 안 맞아.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19-05-09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큰일이네요. 오래전에 사놓고 아직 안 읽었는데 물감님 리뷰를 보니 읽기 싫어... 졌다고 하기에는 이미 안 읽고 있은지 아주 오래되어서 ㅋㅋㅋ 🤣 제가 이걸 헌책방에서 사는데 계산할 때 어떤 사람이 오 그 책 좋은 책이다 그래서 잘 골랐나 으쓱하며 계산하고 나왔는데 ㅎㅎㅎ 언제 한번 읽기는 읽어 봐야 겠어요.

물감 2019-05-09 15:42   좋아요 1 | URL
어째 제가 잘못한것만 같군여...ㅋㅋㅋ
그치만 진짜 별 하나도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한 50p 읽어보시고 느낌안온다 싶으면 다시 되팔아버리셔요ㅋㅋㅋ

잠자냥 2019-05-09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평소에 궁금했는데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절대 안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물감 2019-05-09 17:10   좋아요 0 | URL
네 진짜 비추입니다. 알라디너 분들께 도움이 되어서 참 다행입니다....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5-10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칠한 물감님! 이런 매력이 넘넘 좋네요 ㅋㅋㅋㅋ

물감 2019-05-10 09:15   좋아요 1 | URL
성질 좀 죽여야 하는데 저랑 너무 안 맞는 책이라...ㅋㅋㅋ
역시 본성은 어쩔수 없나봅니다 ㅋㅋㅋㅋ

coolcat329 2019-05-10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진짜 싫은 책이네요. 눈에는 안 띄었는데 혹시 봐도 바로 고개를 돌리겠습니다.

물감 2019-05-10 17:53   좋아요 1 | URL
넵 저 빨강 표지를 꼭 기억하십시오ㅋㅋㅋ

hymoon 2019-10-0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이걸 연극으로 먼저보셨으면 좀 달랐을 텐데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 내 감정을 똑바로 보기 위한 신경인류학 에세이
박한선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경인류학자가 정신과 의사로서 집필한 감정 탐구 에세이다. 솔직히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알찬 내용이었다. 게다가 읽기 좋게 글까지 잘 쓰셨는데, 아무래도 숱한 환자들을 상대하며 다듬어진 온유한 성품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저자의 말대로 인간의 마음은 여리고 연약하다. 게다가 내 마음인데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문명과 과학이 발달해갈수록 마음의 질병은 점점 더 커져가고 상처는 깊어만 간다. 마음에는 설계도도 없고 설명서도 없어서 어떻게 다스릴지 몰라 방황하는 현대인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아프고 슬프고 우울한 감정은 오히려 마음이 고장 없이 잘 작동 중인 증거라고 했다. 누구나 기쁨과 행복의 감정만을 원하겠지만 고통과 외로움의 감정을 신께서 뜻 없이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게 과하거나 컨트롤이 안되면 좀 문제인 거지. 아무튼 이 책은 해결방안을 제시하기보다, 다양한 사례와 연구 결과와 과학적 근거를 총망라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 책이다. 네 가지의 카테고리로 정리해본다.


1.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
이 서평 도서를 받은 당일, 나는 직장에서 종말의 날을 맞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 격해져있었다. 그래서였는지 ‘감정‘에 대한 글들이 유독 쏙쏙 들어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들이 눈과 귀와 혀를 스쳐지나 끊임없이 교차해댄다. 그런데 현존하는 감정의 상당수가 부정적, 불행적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나쁜 감정에 더 많이 노출되어있다. 그중에 가장 강력하고 원초적인 감정은 ‘불안‘이며, 이 감정이 근심, 걱정, 두려움, 공포를 지배하는 기본 베이스가 된다. 그러나 이 불안이 오히려 인류의 진화를 가져오고 개인의 마음과 정신까지도 성장시킨다. 따라서 불안도 슬픔도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부러 슬픈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이 비정상일까? 슬픔은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재설정하게 하며 모든 관계를 돌아보게 해준다. 이런 건 기쁨의 감정이 줄 수 없다. 우리 몸에는 불필요한 것은 없으며 전부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어보신 분들은 금방 이해될 것이다.

서양은 죄의 문화를 가졌고, 동양은 수치의 문화를 가졌다는 말이 있다. 서양에선 별거 아닌데 동양에서는 수치스럽고 낯 뜨겁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뭐가 다른 걸까? 죄책감은 내면에서 나오고, 부끄러움은 외부에서 오는 차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외부에서 오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양은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행동범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혐오스러운 시선을 받는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약간 특이한 행동을 해도 ‘빌런‘이라 부르며 SNS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당사자는 부끄러운 줄 알아라‘ 하는 심정으로 저격을 해댄다. SNS에는 이런 글들이 하루에도 수만 개씩 올라온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수치심을 주고받으며 산다. 그러다 보니 멀쩡한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정신병자가 되기 쉽고, 어느 날 갑자기 곪았던 상처가 터지면서 마음에 장애를 입기도 한다. 이처럼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와 집단에서의 고립은 깊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유발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감정은 심각한 강박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광적으로 집착하거나, 결벽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는 사람도 있다. 조절이 안되는 감정을 조절해보라는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못하는 나 자신은 지극히 정상이며 그 감정들이 내가 인간일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라고 권장한다. 너무 지나치거나 과도한 사람은 조금씩 나를 내려놓으며 유연성을 기르는 연습을 하면 된다. 어쨌거나 삶은 편안한 쪽이 더 좋지 않겠나.


2. 가끔 터무니없이 이상한 이성

자신을 과하게 어필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인기를 위해서 창피함도 무릅쓰고 관심을 끌거나, 혹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어그로를 자청하는 경우도 많다. 누가 봐도 ‘왜 저래?‘란 말이 나올 만큼 주목받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 말이다. 저자는 한국이 타인 지향적인 사회라서 관심을 추구하는 게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라 한다. 그러나 거기에만 매달리면 내면은 점점 공허해진다. 최근 마약 하고도 부인하고 거짓말하던 모 연예인을 보면 이성적인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똑같이 교육과정을 밟았는데 왜 그의 태도는 대중의 생각과 다를까? 어째서 기본적인 옳고 그름의 판단조차 못할까? 정상인이 비정상으로 바뀌는 건 어쩜 이리도 간단할까. 감정이야 설명이 불가하다고 하면 그러려니 할 텐데, 이성도 그러하다니 참 난해하다. 하여튼 인간이란...

최종 목적을 결혼과 인생 성공 중 한쪽에만 올인하는 것도 예를 든다. (둘 다 잘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보통은 하나를 택한다. 일찍부터 얼굴을 가꾸고 몸을 관리하고 이성에게 사랑받기 위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연애 감정은 억누르고 스펙 쌓기에 투자한 사람은 이른 나이에 유명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양쪽 다 후회가 드는 시점이 온다. 왕년에 공부 좀 해둘걸, 왕년에 이성 좀 많이 만나볼걸 하면서.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후회할 필요는 없다. 무의식적으로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고 판단했던 것일 뿐, 이제야 자원 할당의 원칙을 바꿀 때가 된 것이므로.

이렇듯 개개인도 선명하게 다른 사회 속에 외국인까지 섞여 살고 있는 게 오늘의 한국이다. 그만큼 사는 건 더 힘들어지고 있으며, 각종 불안과 근심과 강박이 작든 크든 누구나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다 ‘생존‘과 연관되어있다. 오히려 걱정 가득한 사람이 위험에 더 많은 대비를 하기 때문에 더 오래 생존한다. 그니까 그런 사람들을 너무 병자 취급할 필요도 없고, 본인 스스로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3.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공감
타인을 움직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당근, 채찍, 그리고 공감이다. 비용도 안 들고 효과는 만점인 공감대를 잘 사용하는 사람이 다방면에서 살아남는다. 어느 조직이든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혼자만의 시간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말수가 없거나 수다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어쩌다 입이 트이면 신나서 떠드는 사람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을 잘 들여다보면 공감 좀 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얼마나 공감 받을 일이 없었으면 그렇게도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낼까. 같은 공감대를 가지게 되면 서로는 안심한다. 그러나 그게 잘 안되니까 대화가 단절되고 자발적으로 고립되어 상처받는 통로를 봉쇄해버린다. 가끔씩 살갑게 말좀 붙여보면 그렇게나 어색해하고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를 몰라 난처해하는 걸 쉽게 본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꼭 술이 목구멍에 들어가야만 말문이 열리는 걸까. 다들 마음이 너무 닫혀있다.

저자는 너와 내가 ‘같다‘라고 느낄만한 동기애를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은 경쟁 사회라서 동기애를 갖기 어렵다. 동기애는 다른 말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믿음은 의심 생기기가 너무 쉽다. 내 기준과 맞지 않거나, 저 사람은 이럴 것이라는 편견으로. 간혹 별 내용도 없는 글에 ‘좋아요‘가 많은 걸 볼 때면 이해가 안가지만 다들 공감을 해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분위기에 휩쓸려 억지로 공감을 하고, 나도 그 범주 안에 드는 사람임을 무의식적으로 어필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걸 비정상적 공감능력이라고 하며, 과도하게 감정이입이 되기가 쉽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안정된 곳에 소속감을 가지기 위함이다. 요즘 ‘인싸‘가 되기 위해서라면 죽는 거 빼고 다 할듯한 학생들을 자주 본다. 단지 관심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공감해주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깐의 쇼맨십으로 얻는 공감은 얼마 못 가 나를 야위게 만든다. 공감 얻기에 목마르면 위험하고 자극적인 행동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이런 걸 공감의 역설이라고 한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다.


4. 불완전하기에 기대되는 삶
아이들은 뛰어놀면서 크는 거다. 그런데 이제는 노는 것까지 돈 주고 시간을 내야만 놀 수 있다. 그렇게 자라서 성인이 되고 몸은 성숙해졌어도 정신은 십 대에 계속 머무는 미성숙한 모습을 간직하게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 빼고 모두가 완벽해 보인다. 공부도 잘하고 재능도 있고 집도 잘 살고 인기도 많은 사람들. 내가 경쟁에서 밀린 게 아니라 시작부터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고 느낄 때가 온다. 부모가 없거나 가족이 부재중인 집의 자녀들은 이른 나이에 몸도 마음도 성숙해져버린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불안정 혹은 결함이 항상 가까이에 붙어있다. 그러면 우리의 몸에서 나쁜 유전자들과 감각기관을 제거해버리고, 좋은 유전자만 강화시키면 무조건 좋아질까? 그런 것도 아니다. 걱정 하나 없는 사람은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고 위험한 상황도 인지 못한 채 사고를 당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유전자라도 과다하면 치매 같은 질병을 일으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해진다.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희망을 노래하고 미래를 움직일 수 있는 존재 또한 사람이 유일하다. 스스로를 정상이 아니라고 여기는 자들이여, 자책하지 말라.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갈 뿐, 우리는 모두 정상인 혹은 비정상인이다. 저자는 위로를 하지 않으니 나라도 위로해주리라. 정 힘들면 나랑 같이 이선희 노래 들으며 마음을 달래자. 나도 최근에 펑펑 울었다우.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나무 2019-05-07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안이 나를 키우기도 하고 힘들게도 하고... 결국은 나하기 나름이지 않나 싶네요.

이선희의 어떤 노래로 마음을 달랬을까나요. 한바탕 웃음으로가 문득 떠올랐어요. ^^

물감 2019-05-07 18:25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해요^^
저는 그중에 그대를 만나-뮤직비디오 보고 오열했습니다. 가사도 좋지만 영상속 스토리가... 흑흑

목나무 2019-05-07 18:28   좋아요 1 | URL
그 노래 정말 좋죠. 인연과 함께 가장 즐겨듣는 노래에요. ^^ 뮤비 저도 오늘 봐야겠어요

물감 2019-05-07 18:48   좋아요 0 | URL
ㅎㅎㅎ사실 이선희 노래는 뭘들어도 위로를 받아요. 꼭 뮤비 보셔요^^

coolcat329 2019-05-07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너무 잘해주셔서 제가 책을 읽은 기분이네요.나에게 안좋다고 생각했던 감정들도 살아가는데 역시나 필요한 것들이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이 위안이 되는 글 같습니다.잘 읽었습니다.

물감 2019-05-07 19:10   좋아요 1 | URL
제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니, 황송하네요^^ 그만큼 마음이 약해져있었겠죠. 저랑 같이 나쁜감정을 받아들이는 연습해요ㅎㅎ

나비종 2019-05-07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몸에는 불필요한 것은 없으며 전부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라는 문장을 몇 번이나 읽어봅니다. 우리 마음에도 같은 맥락으로 존재의 의미가 있는 감정들이 담겨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지금 제 안에서 출렁이는 슬픔도, 우울함도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겠죠. 위안이 되었습니다. 많이 지치는 날을 보냈거든요. 감사합니다..

물감 2019-05-07 21:56   좋아요 1 | URL
계절은 여름이 되가는데 마음은 아직도 겨울인 이웃들이 많네요. 한명 한명 위로해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독서도 좋지만 가끔은 야외에서 햇빛도 쐬고 그늘에서 바람도 맞으면서 여유를 찾으시길...^^
 
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라딘 이웃 나비종님과 둘이서 단출한 고전문학모임을 결성하여 같이 독서하기로 했다. 첫 번째 선정도서는 제인 오스틴의 ‘설득‘이다. 오만과 편견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나는 고전문학과 친하지 않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내게 고전문학은 스포츠카랑 비슷하다. 스포츠카는 시동을 켜고도 예열 시간이 길어서 바로 운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예열이 마치면 폭발적인 주행이 가능하고 일반 차량과는 다른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고전문학 역시 마찬가지로 예열시간이 길어서 기다리는 동안은 답답해죽겠지만, 그 시간만 지나면 현대문학과는 다른 깊이의 재미와 깨달음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경우는 전체 분량의 3분의 2 정도가 예열시간이다. 솔직히 특별한 이슈랄 것도 없는 무난한 이야기뿐이라 지루해서 혼났다. 진정 고전문학은 매번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가 싶다가도, 간간이 터져 나오는 그레이트한 문장 속에서 오는 깨달음 때문에 다들 이 맛으로 고전을 읽는구나 한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들군요.


준남작 월터 엘리엇 경은 아내를 떠나보낸 뒤 세 딸과 살고 있다. 그중 차녀인 앤 엘리엇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장녀는 어머니의 권한과 지위를 물려받아 가문의 안주인이 되었고, 막내는 제일 먼저 결혼하여 출가했다. 그러나 앤은 27살까지 어떠한 남자도 못 만나고 있다. 사실 8년 전에 사귀던 해군 대령이 있었는데 대모인 레이디 러셀의 결사반대로 강제 이별을 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연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막내의 시댁에는 죽은 군인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상사가 하필 앤의 첫사랑이었다. 게다가 대령은 아버지의 세놓은 집을 산 해군 제독의 처남이었다. 제독의 집에서 잠시 머물던 대령은 앤과 재회하지만 이미 감정은 식어버린 상태였다. 앤은 대령이 다른 여자들과 이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티 내지 못하고 한숨만 짓는다. 멀어질 대로 멀어진 두 사람의 거리는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얼핏 보면 로맨스물 같지만 사회적 계급과 지위를 중시하는 허영심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품 해설처럼 격식과 예절 뒤에 숨겨진 온갖 졸렬함과 이기심, 질투, 편견 등의 내용이 더 많다. 과거 영국의 젠트리 계급사회가 배경이라서 그런지 다들 겉치레와 허례허식만 쫓고 있었다.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가문의 체면 때문에 지출 항목을 줄이지 않았던 아버지와 장녀. 레벨이 안 맞는다고 대령과 앤의 교제를 반대한 대모. 자신을 걸맞게 대우해주지 않아 불평하면서도 자존심을 꺾지 않는 철부지 막내. 이외에도 각자 잘난 듯 떠들어대는 상황이 잔뜩 나온다. 그렇게 이기적이고 한 성깔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앤 혼자만 온화한 성품을 지니고 컸는지 의아하다. 그보다도 일단 주인공의 매력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거의 테레사 수녀에 가까운 성격이라 캐릭터의 재미는 전혀 볼 수 없다. 아무튼 계급사회가 아니어도 이처럼 지위만 추구하고 내세우는 속물들을 현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인간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피차일반이다.


네이버에 설득을 검색하면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함‘이라고 나온다. 말 그대로 설득하는 상황이 자주 나오는데 자잘한 건 무시하고 주인공 두 남녀만 놓고 보자. 레이디 러셀이 대령과 헤어지도록 앤을 설득했던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대령은 사회적으로도 높은 지위가 아니었고, 딱히 성공할만한 인물 같지도 않았으며, 앤이 더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이 모든 게 앤을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앤이 아닌 러셀 자신을 설득한 것 밖에 되지 않았다. 러셀은 대령을 반대하던 것과 달리, 앤에게 안성맞춤의 남자를 어떻게든 교제하게 하려고 앤을 설득한다. 과거에는 러셀에게 설득을 당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설득해나가는 앤이었다. 새 남자는 내 타입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했지만, 이미 대령에게 다가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얼마든지 다른 여자들을 사랑할 수 있는 대령의 위치를 비교하며 본인을 달래고 설득했다. 두 남녀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지만 현재의 체면을 생각하며 멀쩡한 척을 한다. 답답하기도 한데 이해되기도 하고 참 거시기 허여. 아무튼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하나가 된 이들이 참으로 부럽스므니다.


등장인물이 많지도 않은데 구글 번역기 돌린 것처럼 어색한 번역 때문에, 안 그래도 복잡한 구도가 더 복잡하게 느껴졌다. 또한 서로 간에 자잘한 감정 마찰도 많아서 어수선했다. 특히 집안 내외의 분쟁은 거의 ‘왕좌의 게임‘ 축소판 수준이다. 왕겜은 미드로 1기까지 보다가 너무 복잡하고 진도가 안 나가서 하차했는데, 이 책은 근성으로 완독해냈다. 진짜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어 작가의 의도가 뭔지 잘 모르겠다만, 레이디 러셀을 보며 약간 알겠더라. 자신의 사고방식과 맞지 않는 사람은 위험한 것이고, 맘에 드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올바른 정신을 가진 자라고 속단하는 그녀. 잠깐의 그릇된 판단으로 자신이 그토록 아끼는 앤의 행복을 수년간 뺏어버린 결과를 낳았다. 설득이란 게 보통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 하는 건데, 꼭 좋은 결과만 있는 건 아님을 알게 됐다. 신선하군.


인물 간의 관계도 가족과 가족의 지인 정도로 폭이 좁고, 무대 배경도 이웃집과 시골 무도회 정도로 제한되어있고, 본격 로맨스보다는 영국 계급사회의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가 대부분인 이 작품은 아무리 봐도 독자의 이목을 끌만한 장면은 없어 보였는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품이라 하니 그런가 보다 해야지 뭐. 두껍지도 않은 책을 한 800 페이지 읽은 것처럼 오래 걸렸다. 고생한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6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5-07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국 드라마로도 있는데 재밌더군요...

물감 2019-05-07 11:48   좋아요 1 | URL
고전작품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던데요, 글보다 영상이 더 나으려나요... 그보다 레삭매냐님은 진짜 모르는게 없으신 분 같으심🤔

나비종 2019-05-07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해냈습니다! 박!수!! 이제 어떤 종류의 무재미도 웬만하면 극복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ㅋㅋ

물감님의 리뷰를 읽고 추가하고 싶은 제 의견을 몇 가지 적습니다.

1. 두번째 단락 : 앤과 재회한 대령의 감정이 과연 식어버린 상태였을까요? 아무와나 결혼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은 상처입은 마음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2. 네번째 단락: 두 주인공이 여전히 사랑하지만 현재의 체면을 생각하여 멀쩡한 척 했다고 표현하셨는데, 체면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혹여 그것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스스로 상처받기 두려운 마음이 더욱 크지 않았을까요?

3. 다섯번째 단락: 이미 물감님께서 세번째 단락에서 ‘러셀 자신을 설득한 것 밖에 되지 않았다.‘라 언급을 하신 것처럼, ‘설득이란 게 보통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로 쓰신 문장의 ‘좋은 결과‘ 앞에 ˝나에게˝라는 말을 추가하면 이 모든 상황이 설명될 것 같습니다. 나에게 좋은 결과가 반드시 상대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상의> 고전문학 2탄! 이어서 뛸까요? 아님 지친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다른 책으로 놀러갔다 올까요? 결정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물감 2019-05-07 18:20   좋아요 2 | URL
1. 제가 남자라서 그런지 같은 남자입장에서 적어보았습니다. ‘식었다‘라고 적긴했지만 사실은 두마음이 엄청 싸우고 있겠죠. 저도 이거 무슨 기분인지 알거든요...하하. 남자들은 대령처럼 차도남 컨셉잡고 센척이라도 해야합니다. 안그러면 와장창 무너질테니까요^^;

2. 이것 역시 1번 대답과도 이어지는데요, 속마음이 들키지 않게 체면과 입장을 생각하는 ‘척‘이라고 봅니다. 두사람의 감정선을 보면 후반에는 상처받기 두려운 마음이 맞는 듯해요. 그런데 초중반에는 그정도까지는 아니었을거라는 짐작을 해봅니다.

3. 이 의견은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일단 ‘나에게 좋은 결과‘란 러셀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일텐데, 러셀이 본인 좋고자 앤을 설득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분명히 앤을 사랑하고 아껴서 그랬을거에요. 그러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러셀은 의도치 않게 앤을 슬픔으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해요. 아마 본인은 끝까지 이 사실을 모르겠죠.
나에게 좋은 결과가 상대방도 좋을 수 없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러셀은 자신을 위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결과를 가져왔기에 그런 표현을 적어봤습니다 ^^


일단 한달에 한 권씩 읽는걸로 진행해보는건 어떨까요ㅋㅋㅋ저는 멀티태스킹이 안되어서 여러권을 못읽어요 ㅠㅠ 나중에 속도가 붙으면 월 2회 하는것으로...ㅋㅋ

나비종 2019-05-07 19:46   좋아요 1 | URL
1. 차도남 컨셉잡고 센척..에서 빵터졌습니다.ㅎㅎ
2. 물감님의 답변을 보고 생각해보니 님의 생각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이런 관점은 얼마 전부터 갖게 되었습니다. 종교에서 기도를 하거나 불공을 드릴 때가 있잖아요. 그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생각을 해봤거든요. 다른 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행동이 표면적으로는 기도하는 대상을 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더 깊게 파고 들어가면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렇게 해야 본인의 마음이 편해지니까. 다른 사람의 행복으로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 자체가 이타적인 면이 다분히 있지만. 맘껏 비뚤어질테다!도 아닌데 마음 한켠에 그런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음..아직도 답을 잘 모르겠습니다..

콜입니다~ㅎ 저 역시 멀티가 안되는, 한 번에 한 우물만 디립다 파는 인간인지라, 당분간은 월 1권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것 같아서 뭉클하네요..

카알벨루치 2019-05-07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열 너무 긴데 제인 오스틴이라 용서합니다 사놓고 묵히고 있는 중인 <설득>되겠습니다 ^^

물감 2019-05-07 18:22   좋아요 1 | URL
아 이작가는 원래 예열이 긴가요? 오만과 편견읽고 싶은데 겁나네요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5-07 18:43   좋아요 1 | URL
제가 <오만과 편견>을 대학때 레포트 때문에 읽었는데 넘 좋더군요 명작입니다 그땐 읽어야하기에 예열이나 뭐시고 없이 읽어 느낌이 말씀드리기가...쩝!ㅋ

물감 2019-05-08 08:59   좋아요 1 | URL
명작이면 이해해줘야죠ㅎㅎ
언젠가 읽어보겠습니다^^
 
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껏 참여했던 서평단 책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드럽게 까탈스러운 나에게서 별 5개를 뽑아먹은 슈퍼 그뤠잇한 작품이다. 몇 년 전, 아바타 조종으로 소개팅을 하던 예능프로그램이 기억난다. 직접 소개팅에 나가는 사람은 아바타가 되어 주인의 통신 명령을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 예능이라 그저 웃고 넘겼지만, 그 시스템이 평생 유지된다면 과연 어떨까? 내 삶의 모든 과정과 결과가 나 스스로 정하고 이뤄낸 게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이끌었고 나는 그대로 따르기만 한 거라면 정녕 나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김호연 작가는 그에 대한 질문을 이 작품으로 대답해주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하는 투수 박준석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실에서 만난 최경에게 빅뉴스를 듣게 된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거머리가 나의 감각정보를 누군가에게 전달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되자 주인공은 자신을 해킹한 X맨을 잡기 위해 그녀와 손을 잡는다. 그녀에게 들은 바로는 자신들을 조종하는 ‘파우스트‘와 그들을 운영하는 ‘메피스토‘라는 단체가 있고, 조종당하는 자신은 ‘파우스터‘로 불린다고 했다. 준석은 자신의 스폰서를 추궁해 메피스토가 정부와도 연결되어있음을 알게 되고, 파우스트의 최종 목적이 자신의 메이저리그 진출이었단 것도 알게 된다. 준석은 자신의 꿈이 파우스트의 꿈으로 이뤄지기 전에 그를 찾아내어 결판을 지으려 한다. 그러나 파우스트들의 권력은 어마어마했고, 메피스토의 시스템은 너무도 견고해서 함께 맞서는 자들이 전부 죽어나갔다. 과연 준석은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고서 진정한 자유의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인가.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의 이 작품은 정유정 작가와 장용민 작가의 스타일을 합쳐놓은 듯했다. 사건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과, 딱 필요한 문장만으로 채우는 것과, 제 삼자가 내레이션 읽듯이 감정을 절제해가며 쓰여진 문체는 정유정 작가를 닮았다. 기발한 상상력과, 거대한 스케일의 무대와, 빠른 진행 속에 묵직함과, 리얼한 팩션 기법은 장용민 작가와 닮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는 영화나 책들도 허구의 이야기로 와닿을 때가 많은데, 이런 팩션 문학은 다큐멘터리 방송 같은 현장감이 들게 한다. 진짜 장점이 눈에 띄게 많은 작가다.


작품 속 메피스토 회사는 젊음을 누리고 싶은 노인들을 위한 첨단 시스템이다.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은 노인들은 파우스트가 되고, 젊은 육체의 인간을 선택해 자신과 동화시켜 청춘의 기분을 느끼고 대리만족하는 변태들이었다. 하필 준석의 파우스트는 메피스토 한국지사의 창립 멤버여서 주인공을 옥죄는 내공이 다른 이들보다도 더 뛰어났다. 노인들은 파우스터의 가족과 지인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파우스터를 도와주었고, 날마다 승승장구하는 파우스터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줄 착각한다. 그러다 진실을 마주한 파우스터는 지난 수고와 노력들에 대해 보상을 받은 게 아니었음을 알고 크게 절규한다. 자신이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느꼈던 감정들이 실은 그렇게 느끼도록 조종당한 것이라면, 나의 감정들은 정녕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나의 선택과 판단들이 내 뜻이 아니었다면 ‘나‘라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게 아니고 뭐겠는가. 어쩐지 조지 오웰의 1984가 생각난다.


젊음을 조종한다는 게 노인들이 청춘의 육체를 얻는 건 아니고, 파우스터가 느끼는 기분과 감정들을 똑같이 느껴서 젊은 감각으로 사는 것이었다. 이게 뭐가 좋은 걸까 싶다가도, 내 몸이 10대, 20대 시절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보니 미친 듯이 좋을 것만 같았다. 스무 살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군대조차 재입대 할 의향이 있다. 30대가 이러한 생각일진대 하물며 노인들은 얼마나 젊음을 원할까. 파우스트들의 그릇된 욕망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는 게 참 씁쓸하다. 그건 그렇고 작품 속 노인들은 대부분 갑부에다 자식농사도 성공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집안 사정도 비슷비슷했는데 유독 자식들과 틀어진 관계의 내용들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 자식보다는 본인의 꼭두각시를 더 사랑하고 줄기차게 매달리고들 있었다. 준석의 파우스트는 말하길 ‘자식들은 부모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지만 파우스터는 그게 된다‘고 했다. 이 생각 또한 기성세대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장면이었다. 젊은 날에 뼈 빠지게 고생한 만큼 자신의 권위가 당연하다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아랫사람들과의 벽을 쌓고 건강한 소통을 단절한다. 이렇게 자신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누구라도 무참히 짓밟는 기성세대의 현실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김호연 작가였다.


부패한 사회의 이모저모를 다양하게 풍자했는데, 그중 베스트는 준석과 타락한 목사의 대화 장면을 손꼽는다. 세속에 물든 목사는 준석의 할머니를 사주하고 컨트롤한 것을 부인하기 바빴고, 종교라는 그림자에 숨어 끝까지 발뺌하려고 했다. 그 와중에 돈 밝히는 습성은 여전하여 준석은 물질로 목사의 배후를 추궁하는데 성공한다. 현대의 종교계를 비판하는 따끔한 장면이다. 스토리와 메시지의 힘을 동시에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두 번째는 둘째 오빠와 최경의 대화 장면이다. 기성세대는 아집으로 제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심에서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위치라고 오빠는 말한다. 아마도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요즘에 꼰대 기질을 가진 젊은 친구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 그게 다 윗사람들 보고 배워서 그런거다.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 어떻게 깨끗하랴.


결국 준석과 그의 파우스트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미국으로 건너갔고, 메피스토 본사에서 엄청난 진실을 마주한다. 나는 이 반전을 정통으로 맞아버렸고 눈과 뇌가 몇 초 동안 굳어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거였는데, 워낙 푹 빠져 읽느라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정말 여러 번 반하게 만든다. 만약 메피스토 회사가 무너지지 않고 파우스터들이 해방되지 않고 배드 엔딩으로 끝나면 어땠을까. 디스토피아식의 결말도 나쁘지 않았을 듯? 쓴맛 가득한 이 책은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의 추악한 말로를 보여준다. 인간은 절대 전지전능할 수 없으며, 고생 없는 성공 또한 불가능하다. 인간은 대가를 감당해내고 얻은 기회만큼만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까지 탄생했다. 그 말에 해당되지 않도록 독서 많이 하고 견문을 넓혀서 정도의 길을 걷는 현자들이 되시길 바란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6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4-25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김호연 작가의 책 재밌게 읽었던
기억입니다.

이번에 나온 책도 기대가 되네요.

물감 2019-04-25 17:34   좋아요 0 | URL
저는 이게 처음인데요, 원래 굉장한 작가였군요. 전작들을 역주행 해봐야겠습니다. 국내에 보물같은 작가들이 은근히 많네요.

카알벨루치 2019-04-26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별5개 , 은근히 또 땡깁니다 ㅎㅎ

물감 2019-04-26 08:42   좋아요 2 | URL
저는 원래 책추천은 잘 안하는편인데요,
이 책은 강추합니다ㅎㅎ

coolcat329 2019-04-26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신청했어요. 처음 듣는 작가인데, 국내 진주처럼 묻혀있는 작가 덕분에 알게 되서 기쁘네요

물감 2019-04-26 13:26   좋아요 1 | URL
저도 좋은 작가를 알게되어 기쁩니다ㅎㅎ 쿨캣님도 저랑 같이 역주행하시죠!

나비종 2019-04-29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가시가 떠올랐습니다. 비슷한 현상들이 실제 생물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니, 소설 속 이야기도 언젠가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될까요? 살짝 섬뜩했습니다. 나날이 발전해간다는 AI도 생각나구요. 이 모든 혼란들 속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할 정체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네요.

물감 2019-04-29 22:23   좋아요 1 | URL
읽어보시면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지실겁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손에 움직여진다죠. 그런데 개인 또한 누군가에게 움직여진다 생각하면 진짜 답이 없더군요.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매드 매드 시리즈
클로이 에스포지토 지음, 공보경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정도면 흔한 병맛 B급이 아닌 프리미엄 C급 소설이다. 교양과 기품이 전부인 영국인에게도 이렇게 확 깨는 감성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부디 앞으로도 이 스타일을 잃지 마시옵서예... 라고 하려다가 취소했다. 왜 그랬는지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일단 ‘왕자와 거지‘의 현대판 이야기이다. 물론 재해석도 이런 재해석이 없지만 말이다. B급은 좋아하지만 이런 막장 스토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가 미쳐버린 한 여자만을 다루고 싶었던 걸까? 독자들은 이 작품에 시간 쏟지 말고 다른 책 읽으시길 바란다.


일란성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이 언니를 시기 질투해 언니의 삶을 뺏는 내용이다. 인생 탄탄대로인 언니와 달리 막장 인생으로 세상만사에 불만 가득한 동생은 직장에서 야동 보다가 걸려서 퇴직한다. 마침 지내던 집에서도 쫓겨나 할 수 없이 이탈리아의 언니 집으로 간다. 언니는 잘생긴 갑부 남편을 만나 관리 잘 받은 귀부인이 돼있어서 동생의 자존심은 팍팍 깎였다. 언니는 자신의 좋은 저택과 돈도 다 제공할 테니 어느 한 날에 자신과 신분을 바꾸자고 한다. 잠깐 동생이 된 언니가 외출하고 와서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있었고, 동생과 옥신각신 다투다가 저택의 수영장에 빠져버렸다. 형부가 뛰어들어 구해냈으나 이미 언니는 죽은 뒤였다. 그리고 형부가 동생에게 하는 말. ˝여기서 처제를 죽이면 어떻게 해? 계획대로 했어야지!˝ 갑자기 멘붕 상태가 된 주인공. 자신은 곧 죽을 입장이었던 걸까? 언니네의 원래 계획은 뭐였을까? 몰려드는 비구름을 온몸으로 맞닥뜨린 동생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낼까.


언니의 삶도 남편도 아이도 전부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다며 그렇게나 증오하던 언니였는데, 막상 언니의 신분이 되고 나니 이대로 살고 싶지 않아지다니. 복잡 미묘한 이 마음과 자신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두 사람이 자신을 죽일 계획이었다는 걸 알고도 언니인 척을 하고 살아야 한다니. 그러나 이런 고민들은 잠깐일 뿐, 내가 이제부터 언니다! 라고 인정해버리니 모든 게 OK였다. 전개도 빠르고, 스릴감도 넘치고, 캐릭터 표현도 좋고,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밀당 스킬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느낌이 중반 이후로는 사라지는 게 문제였다. 언니가 왜 신분을 바꾸려 했는지, 완벽한 생활에서 왜 도피하려 했는지, 자신이 왜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지 등등. 호기심 유발하는 스킬은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그런데 비밀의 정체들을 너무 허무맹랑하게 드러내니까 이건 뭐 쫄깃쫄깃한 맛이 전혀 없다. 이 작가는 템포 좀 낮추고 적당한 무게함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


제목 그대로 동생은 미쳤다. 아니, 점점 미쳐간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죽은 사람을 보고 흥분을 하더니, 마침내 본인이 총질로 죽인 사람을 보며 쾌감을 얻는다. 심지어 마피아 집단의 오른팔을 죽여놓고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인증샷을 SNS에 올리고 싶어 한다. 게다가 섹스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을 헤치려는 남자를 보고도 음란한 생각뿐이다. 등장하는 남자들하고 전부 잠자리를 가지는데 굉장히 적나라한 묘사의 문장들이 가득하다. 이쯤부터는 인물 설정에 지나친 무리수를 둔다고 느꼈다. 아무리 나사 빠진 사람이라도 이 정도로 무식하고 생각 없지는 않을 것이다. 중반까지만 해도 나름 신선한 문화 충격의 스릴러라고 여겼는데, 이건 뭐 스토리는 산으로 가고 19금 장면만 정성을 쏟다가 끝난다. 언니 부부가 죽고 난 뒤에는 딱히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형부 집안에 마피아가 개입되어있다는 게 특별한 설정도 아니고 말야. 유쾌한 코믹 에러 스릴러 장르인 척하고 있지만, 이건 그냥 냄비 받침대로 써도 될 듯.


내가 만약 저 아이돌로 살았다면, 내가 만약 저 사업가였다면 하는 상상. 흔히 하는 상상이지만 그건 단지 상대방의 껍질만 보고 판단하는 것 밖에 안된다. 상대방이 어떤 환경과 생각, 입장, 고민 중에 있는지 알고도 그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내가 지금 당장 빌 게이츠가 되고, 정우성이 되고, 방탄소년단이 된다면 무조건 행복할까? 이 책은 그런 환상을 철저히 박살 내주는 작품이다. 남의 삶을 대신 산다는 건 강호동이 M사이즈의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남의 삶을 탐내기보단 그냥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게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