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모중석 스릴러 클럽 6
딘 쿤츠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아 요즘 멜랑꼴리한 작품을 연달아 읽었더니 여성호르몬의 과다 분비 때문인지 아주 그냥 감수성이 폭발해버렸다. 이젠 기어가는 개미 떼만 봐도 슬프고, 광장을 돌아다니는 비둘기들도 짠하고, 그 비둘기가 개미를 쪼아대는 광경마저 멜랑꼴리하다. 소멸 직전인 나님의 남성성을 위해서라도 장르소설을 자주 읽어줘야겄다. 하여 고른 것이 딘 쿤츠의 스릴러물인데, 사실 난 이 작가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딘 쿤츠는 필력, 소재, 스토리텔링 등등 다 좋은데 결정타가 약한 게 단점이다. 아니면 마무리가 흐지부지하거나. 아무튼 ‘모중석 스릴러클럽‘을 도장 깨고 싶어서 그냥 집어 든 건데 오호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그놈의 급 마무리는 여전했다. 아 진짜 일부러 이러는 건가? 누가 좀 물어봐 줬으면.


아내를 납치한 자들이 남편에게 돈을 요구해온다. 그들은 남편 근처에 있던 행인을 총살함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남편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뚫고 있는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범인의 명령에 따라 친형에게 돈을 빌리러 간 남편은 형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알고 보니 범인들은 형의 부하였으며, 자신을 이용해서 형의 돈을 뜯어내려고 했던 것. 뚜껑 열린 형은 동생과 배반한 부하들을 잡아다 송장번호를 매기려 한다. 범인과의 약속시간은 다가오는데 몸값은커녕 당장에 요단강 건너게 생겼으니 어쩜 좋으랴. 여기에 남편을 의심하고 쫓아다니는 형사까지, 갈수록 꼬여만 가는 상황들을 어떻게 풀어낼라나.


멋없는 제목에 서사까지 올드해서 매력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읽어보면 푹 빠져드는 작품이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 했던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뻔한 플롯 중에 베스트라 할 수 있는 납치 사건은 처음부터 목적과 방향이 정해져있어 변수를 넣는 게 쉽지 않다. 독자의 예상을 깨려면 옆길로도 빠져보고 시점도 분산시키는 등 다양한 연출과 변형이 필요한데, 그게 어려운 납치 사건은 직진밖에 선택지가 없다. 그럼에도 <남편>은 이 같은 악조건을 나름 잘 극복해낸 편이라 이것만으로도 박수갈채를 받기에 충분하다. 근데 감각적인 스토리텔링에 비해 작명 센스라곤 1도 없는 작가이다. 스티븐 킹보다도 제목을 못 짓는다니. 아무리 옛날 사람들이라 해도 이건 좀 아니지라.


장르소설가마다 지닌 전매특허가 있는데, 딘 쿤츠의 경우는 밸런스 게임이다. 끔찍한 선택지를 주어서 고민하는 동안 지독한 멘붕을 선사하고, 고른 후에는 예정된 곤욕을 치르게 한다. 주인공의 고통을 독자도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데 이거 참 미칠 노릇이지. 범인의 명령을 거절하면 아내가 죽고, 시킨 대로 하면 인생 쫑파티 하는 거다. 이 같은 작가의 사디즘 성향은 아마도 어렸을 적 부친의 가정폭력 때문이지 싶다. 암튼 그럼에도 작품에 어떤 거부감이나 불편함이 들지 않는 것은 작가의 타고난 글감각 덕분이다. 노력형인 스티븐 킹에 비하면 딘 쿤츠는 확실히 재능형 작가다. 모든 소설에는 막혔다 싶은 구간이 꼭 있는데 이 작가는 살리기 힘든 장면조차 매끄럽게 넘겨서 막혔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내가 추구하는 글 타입의 좋아하지 않는 작가라니, 기분 참 멜랑꼴리하군.


전반적으로 정공법을 따르지만 주인공의 심리 변화로 개성을 갖춘 케이스이다. 엄격한 부모의 통제 속에 자라난 주인공 밋치는 여전히 부모와 소원하다. 그들은 나약한 밋치를 사냥감으로 여겼고, 사냥감에게 필요한 달아나는 법을 배우게 했다. 반면 일등 신랑감 엄친아였던 형은 완벽한 사냥꾼이었고, 부모는 그에 걸맞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런 완벽한 형이 있어 안도했던 밋치는 형의 일행에게 넘겨져 생매장 당하게 된다. 어찌어찌 탈출하고서 아내에 대한 일념으로 각성하는 수퍼맨 남편님. 평생 사냥감이었던 그는 총을 쏘고 차를 탈취하는 등, 선 넘는 행동으로 자신도 모르게 사냥꾼이 되었다. 처음과 나중의 입장이 뒤바뀐 건 주인공만이 아니다. 밋치의 친형은 아군이었다가 적이 되고, 적이었던 형사는 뒤에 가서 아군이 된다. 그 하나뿐인 아군을 기어이 적으로 만드는 주인공의 돌발행동까지. 과연 어떻게 해야 시청률이 올라갈지 잘 아는 작가일세. 여튼 사건이야 무사히 끝났지만 뒷이야기를 싹둑 잘라버려서 김이 확 빠져버렸다. 아 증말 누가 사디스트 아니랄까 봐. 자 그럼, 아내를 살리려고 저지른 남편의 범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또 범죄의 구분선은 어디까지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당신은 기꺼이 범죄자가 될 것인가. 자문자답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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