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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평점 :
마침내 토울스의 독자 반열에 들어선다. 독서가들 사이에서 꽤나 핫했다던 토울스의 데뷔작 <우아한 연인>은 2011년 작품이지만 작품 배경 때문인지 한편의 고전문학을 읽는 기분이 들더랬다. 작품 특유의 잔잔하고도 품격 있는 분위기가 제법 근사해서 다들 좋아할만 했겠다 싶었다. 토울스도 40대 후반에 작가로 데뷔했다는데, 이렇게 나이 좀 먹고 등단한 작가들은 연륜이 있어서 그런가, 하나같이 분위기가 예술이더라. 지각생인 만큼 열일해 주시길 바랍니다요.
이브와 케이티, 두 친구 앞에 어느 날 팅커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화끈한 이브의 애정공세로 그를 낚아챘으나, 사실 팅커는 차분한 케이티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셋 다 부상을 입고, 아름다운 이브의 얼굴은 심하게 손상된다. 운전자였던 팅커는 죄책감으로 이브를 평생 책임지기로 하는데, 이 일로 세 사람의 우정에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이 생겨난다. 여기까지가 출판사의 소개 글인데, 읽어보니까 막 의미심장한 계기는 아니었다. 이다음부터 이브와 팅커는 들쑥날쑥하고 케이티의 일인칭 시점으로 흘러가는, 얼추 케이티의 성장소설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서머싯 몸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자처럼, 케이티는 주인공이자 관찰자로써 뉴욕의 번영과 주변인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은행 중개인으로 잘나가는 팅커, 집에 손 벌리진 않지만 부잣집 딸인 이브. 그에 비해 흙수저인 케이티는 법률회사 직원으로 적당히 벌며 그럭저럭 자족하고 살아간다. 팅커와 인연을 맺은 덕분에, 케이티 또한 사교계에 발을 들이면서 유명 인사들을 소개받고 직장도 옮기고 더 좋은 집을 구하는 등, 제법 괜찮은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 모든 배경에는 가진 게 없어도 당찼던 그녀의 진가를 알아본 주변과 지인들의 서포트가 있었는데, 아무리 소설적 허용이라지만 끌어당김의 법칙을 남발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슬슬 약빨이 떨어지려 할 때쯤, 이브와 팅커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팅커의 마음이 콩밭에 있다는 걸 안 이브는 프러포즈를 걷어찬 뒤에 멀리 떠나버린다. 반대로 케이티는 새로 알게 된 사교계 남성과의 만남으로 미래도 그려보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그렇지만 역시 케이티에게도 팅커의 존재는 특별했던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만다. 제 본심을 찾고 이제 좀 잘해볼까 하는데, 거짓으로 쌓아 올린 팅커의 배경이 발각되자 바로 그냥 불꽃 싸다구를 날려버리는 그녀. 그러게, 사랑은 아무나 하나.
예측불허한 삶과 세월 속에서 정답과 오답의 퍼즐을 맞춰보는 케이티. 용감한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자신처럼 틀에 박혀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또한 누구나가 용서를 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의 의미도 곱씹어 본다.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모습을 감춘 팅커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독자마다 관전 포인트가 다를 텐데, 나는 똑 부러진 주인공이 자신의 미성숙함을 발견해나가는 데에 주목하였다. 엄밀히 보면 사랑도 메인 테마가 아니고, 우정을 그리는 내용도 아니었다. 원제가 ‘정중함의 법칙‘임을 생각해 볼 때, 예의와 교양 있는 케이티가 어째서 팅커의 정중함의 가면을 보고 기겁했는지를 따져봐야 하겠다. 아무튼 잘 읽었고 다른 작품들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