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사랑 -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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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부터 펴놓고 지난하게 읽은 책들을 12월이 끝나갈 무렵이 되서야 겨우 마무리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나의 단골 책, 이슬아 님의 책이다. 아이들 이야기로 꾸며졌다 해서 1차로 걸렀던 책. 글쓰기를 업으로 삼지 않기에 2차로 걸렀던 책. 3차에 못 이기고 결국 내 품으로 오게 되었다.
 나도 아이들을 가르쳤던 적이 있다. 사실 아이들이 아니라 다 큰 성인에 가까운 학생들이었다. 잠깐이지만 초딩들도 가르친 적이 있다. 다루는 언어가 다르고 아이들 나이가 달라 분위기는 무척 달랐지만 그때 생각이 조금 났다. 창의성 넘치고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내 마음까지도 함께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지도하면서 다시 흑화된다는 게 함정이지만 ;))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아이들의 글이 그대로 쓰여있어서 그런 느낌이 잘 전달되는 책이다.
 이슬아 님에게는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녀의 장점으로 꼽는 건 아마 대부분의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기본기 닦기의 어려움과 자신이 지닌 강점을 보다 자연스럽게 강조하며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이렇게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고 싶다 느낀다. 내 글에는 남길 것보다 덜어낼 것이 훨씬 많아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글쓰기 훈련을 최선을 대해 해보고 싶다.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이 부드러운 체력이 우리들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나는 믿는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간에 결국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내게 문학의 향기를 알려준 사람들. 사랑은 말과 몸을 버무려 완성하는 거라고 말해준 스승들.

글은 사실 머리도 가슴도 아닌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쓰기를 반복적으로 훈련한 손만이 안정적이고 탄탄한 문장을 써낸다고.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니까. 보이면 헤아리게 되니까.‘

‘생각나는 것을 죄다 말하지 않는 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신중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나는 글쓰기만큼 재능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 반복하면 거의 무조건 나아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2014)에 따르면 욕망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해진다. ... 어떤 사랑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기보다 내 안의 결여를 인지하도록 이끈다.

‘일기 같다‘는 피드백은 글쓴이를 부끄럽게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는 자신과 거리를 둘 줄 모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자위적인, 객관화에 게으른, 자기 세계 안에 갇힌, 오로지 본인을 위해서만 쓴 글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의 글은 일기 이상이어야 한다는 걸.

솔직함과 글의 완성도는 상관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솔직하지만 별로인 문장들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내 일기장에서 쉽게 찾을 법한 문장들이었다. 어떤 솔직함은 끔찍했다. ... 위험하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 지옥 같을 게 분명했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더라도 작가가 먼저 울어서는 안 된다고 나의 글쓰기 스승은 말하곤 했다. 그럼 독자는 울지 않게 될 테니까. 작가가 섣부른 호들갑을 떨수록 독자는 팔짱을 끼게 될 테니까.

나는 치유를 위해 글을 쓰지 않지만 글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그 연습을 계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거나 지나치게 어여삐 여기지 않은 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자기 연민의 늪과 자기애의 늪 중 어느 곳에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완성하여 독자와 관객에게 슬픔과 재미를 준다. 혹은 두 가지를 동시에 준다. 자신 말고 타인이 울고 웃을 자리를 남긴다. 그것은 사람들을 이야기로 초대하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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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2-02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뽕님 덕분에 이슬아님이 친근하게 느껴지네요ㅎ 많은 문장들이 와닿지만.. 꾸준함. 결국 뭔가 결말을 맺어야 제목을 붙일 수 있단걸 다시 느껴봅니다. 뽕님두 많이 써 주세요^^

milibbong 2021-02-11 01:07   좋아요 0 | URL
^^ 제가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책 읽으면서 엄청 뜨끔했거든요. 끔찍하게 솔직한 이야기.. 너저분한 낙서 혹은 일기 그즈음의 어떤 것들 같은 거... 너무 다 제 얘기잖아요...ㅎㅎ 두부님은 보살... 아니면 천사... ㅎㅎㅎㅎ
 
따라하면 수익이 따라오는 ETF 투자
이재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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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F'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자꾸 그 상품 얘기가 나오니 도대체 그게 뭔데? 하는 심정으로 찾아보게 된 책이었다. 서점에서 보긴 봤지만 대충 훑어봐선 아무것도 모르겠다 싶어서 포기했는데, 너무 궁금해서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은 편) 교보문고 이북으로 읽게 되었다. 이북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잘 읽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오늘로써 ETF와 이북이라는 언덕을 간신히 넘은 것 같다.
 정치, 경제, 수학, 과학, 이 쪽으로는 아예 담을 쌓았다. '도대체 ETF가 뭔데?'라는 물음에 답해줄 사람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수고는 없었을 텐데. (검색조차 해볼 생각을 안했다니..)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을 읽으면서 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근데 과연 내가 원하는 답을 찾았는가? 반은 그렇기도 하고 반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게 되기 시작하자마자 (살짝 답답한 마음에) ETF를 직접 매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ETF가 뭔지 알고 싶어서 책을 읽었는데, 책은 ETF의 정의 대신 투자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주고 있어서 그냥 내가 체험하는 게 빠르겠다 싶었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ETF 자체는 심플한 혁신 그 자체! 결과는 그랬다. 물론 실질적으로 ETF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몰라 이런 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나는 답 대신에? 답으로써? ETF를 얻었고, (지나고 나면 또 까먹겠지만) 그동안 잘 몰랐던 주식 용어에 대해서도 다시 익히게 되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는데, ETF에 대해 잘 모를 때 덜컥 종류별로 사놓은 것들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식겁하기도 했다. (무식해서 겁 없는 편..ㅋㅋ) 앞으로도 내 투자 포트폴리오에 꾸준히 ETF를 담아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정말 좋은 시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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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2-01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그 많은 월가와 자유시장의 적폐라는 파생 상품들 속에 검증된 상품, 좋은 상품이라는데.. 레버레지나 인버스 말고 노멀한 상품으로 길게 가는게 가징 좋은 상품이라고 알고있는데 어쩜 뽕님 스탈에 잘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많이 많이 수익이 나셨으면 좋겠어요~

milibbong 2021-02-11 01:10   좋아요 0 | URL
와우 ㅎㅎ 전 탐욕(?)덩어리라 ETF... 아... 감질나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막상 투자를 해보면 돈 날라가는 건 겁내하면서... 성향은 백퍼 주식형.. 위험추구 90%의 이상한 종자입니다 ㅎㅎ 전 인버스가 뭔지도 아주 나중에 알았는데 역시... 두부님은 투자를 안하셔도 넓은 방면으로 두루두루 깊이감을 나타내시네요 ^^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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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준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처음 읽었던 책은 『소란』. 너무 좋았었다. 가끔은 너무 깊이 있거나 작가님의 세계 느낌이 짙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 책이 주는 느낌 자체가 좋았다. 부드럽고 연한 분홍빛 살결 같은 느낌. 아기 볼 피부, 혹은 입술 같은 느낌, 그래서 미세한 떨림이 감지되던 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 책은 다소 힘을 빼고, 작가님다운 느낌을 전하며 편하게 쓰신 것 같다. 각을 잡고 모양을 만들어 고운 것들만 골라서 내야지 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편한 느낌은 좋아하지만, 그래서 다소 평이해진 느낌도 없잖아 있다. 이야기 자체가 편하게 쓰여진 걸 다듬지 않다보니 조금 길어진 느낌도 있다. 일단 모든 책은 책 자체로 충분히 좋고, 다양한 책을 읽어보자는 느낌에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내 취향에 맞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작가가 쓴 또 다른 책을 읽어보는 건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러니까 최소 두 권은 읽어야 하는 셈이다. 작가가 맘에 들거나 다소 맘에 들지 않더라도, 두 권의 책은 읽어보면서 판단을 보류해두고 작가의 세계에 이해를 더해보면 좋지 않을까. 난 그 일을 이번에 하게 된 느낌이었다. :)
  이야기 중에 친구 윤과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가 너무 공감되서 친구들에게 읽어주고 싶어졌다. 결혼과 육아로 멀어진 친구가 한 명이 아니니 모두에게 들려주긴 어려웠다. 책 글귀를 옮겨적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인스타 피드에 올릴 만한 이미지를 만들어봤다. 모든 내용을 다 옮길 수도 없었고, 처음이라 아주 조잡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자애로운 손길로 내 얼굴과 머리카락, 이마를 쓸어주는 게 좋았다. 마치 내 존재 전부를 쓸어주는 것 같았다. 가능하다면 더 불쌍해지고 싶었다. 할머니의 주문 같은 말이 멈추지 않길 바랐다. 행여 주문에서 풀려나 할머니가 손길을 거둘까봐, 눈을 감고 더욱 불쌍해 보이도록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후 오랫동안, 할머니는 내 이마를 짚어줄 때마다 이가 살짝 나간 그릇을 만질 때처럼 혀를 찼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다. 사랑에는 언제나 한 방울의 연민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숨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인생을 이완시키는 것도 경직시키는 것도 숨쉬는 자세에 달려 있다. 무리하지 않고 나답게, 편안한 자세로 사는 일. 좋은 삶을 꾸리는 열쇠라고 믿는다.

슬픈데 눈물조차 나지 않을 때, 그리하여 마음 가장자리가 수분 부족으로 균열을 일으키며 메말라갈 때, 슬픔의 가뭄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고 있을 때는 분명히 떠나야 한다. ‘여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다. 그냥 상처가 나를 데리고 가는 일에 몸을 맡기면 된다.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 건강하고 강하게 이겨내는 방법으로 슬픔이 자신을 비껴가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멍울진 감정이나 체한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슬플 기회를!

무언가 때문에 상심해 있다면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슬픔을 피하지 말고, 같이 여행을 가자. 상처가 나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 끝날 무렵, 딱지 앉은 상처를 이제 내가, 데리고, 돌아오면 된다.

다정함은 자세다. 뭔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내가 도와줄게‘라고 몸으로 말하는 것. 그것도 ‘미리‘ 말하는 것. ... 내게 다정한 사람, 그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선물 자체가 아니다. 선물(마음)을 주고 싶어하는 상대의 ‘자세‘다. 네가 좋아하는 것, 그거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데! 이런 말. 말이 전부다. 그게 선물의 시작이다. ‘말이면 다가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이도 있겠지만, 글쎄. 나는 어기더라도, 우선 다정한 말을 건네는 이에게 마음이 간다. 내겐 말이 다다. 쏘아붙이거나 소리치지 않고, 나쁘게 말하지 않는 것. 말로 사람을 우선 끌어안는 것, 그게 다정함이다.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엄마를 가진다는 것.
그것은 세상 무엇과도 싸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랑을 나무라는 시대를 산 어른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말‘은 잉여다.
사족, 팔불출, 주책, 남세스러운 말.

절제하다 사라져버린 능력.
하지 않으면 지워지는 언어.
아끼면 사랑은 불능이 된다.

스마트폰은 실시간으로(정말 실시간이다) 무지막지한 양의 새로운 정보를 공급하는 공장이고, 나는 공장 안에 채워진 세상 정보를 두루 살펴보느라 늙어가는 일꾼이었다. 이제 퇴직했다! 야호! 그동안 남의 삶에 ‘끼인‘ 내 삶을 살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할 수 없는 게 많아졌다. 할 수 없는 일은 바로,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 시대에 ‘진짜 어른‘, ‘진짜 시인‘이 얼마나 귀한지, 얼마나 고픈지 모르겠다.

모든 사랑은 먹어보기 이전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없다. 가끔은 먹고 난 후에도 구분이 어렵고 똥인 줄 알면서 꾸역꾸역 먹을 때도 있다.

사랑은, 그게 단지 하룻밤의 사랑일지라도 ‘우연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책이 사는 일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면, 소설은 한 편에 한 번씩 삶을 ‘살게‘ 한다. 한 권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한번 더 살아본 기분이 든다.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소설은 ‘사실‘만을 담고 있지 않지만,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을 담고 있다(때때로 우리는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야!‘라고 부르짖지 않는가). 삶이 일부로 숨기거나 어떤 이유 때문에 보여주지 않은 것, 불확실함 속에 깃든 징후를 소설은 보여준다. 소설은 ‘모호함을 형상화‘하는 장르다. 갖가지 방식으로, 우아하게. 따라서 소설은 삶의 거울이자 라이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가들은 거울을 통해 "완벽하게 알고 자세히 관찰한 것"을 기록한다.

좋은 문장은 독자를 피로하게 하지 않는다. 좋은문장을 읽을 때면 좋은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 든다. 편해서,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전진하는 기분.

사랑에는 크고 작은 포탄이 숨어 있다. 불시에 날아들어 상처를 내는 포탄.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닐지라도, 사랑은 관계를 굴러가게 하는 윤활유다. 사랑이 과도하거나 부족하거나 사라지면 관계가 틀어진다. 연인 관계뿐 아니라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우정은 ‘사랑‘에 가까웠다가(죽이 잘 맞는 친구를 사귀게 됐을 때 설렘!),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여 끈끈해지고, 어느 순간 권태기를 맞는다. 권태기를 지나 우정은 살(아나)거나 죽는다. 사랑처럼, 우정도 죽는다.

우정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왜‘, ‘갑자기‘ 서로 멀어졌는지, 명료하게 알 길은 없다.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한 원인들이 흙속 나무뿌리처럼 얽혀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섣불리 뭐라 말할 수도 없는 상황. 멀어진 친구를 미워하냐고 묻는다면? 천만에. 오히려 나는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 그러나 관계는 늘 ‘사랑을 제외한 것‘들 때문에 어려워진다. 멀어진 친구를 생각하면 한밤중에 갑자기 가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을 탈탈 털린 기분.

지나치게 가까워 ‘거리‘를 잃어버리면 ‘관계‘도 잃어버린다. 밀착되어 있지 않으면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없기에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다. 둘 사이에 조화로운 틈이 생기며, 격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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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0-12-29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뽕님 블로그에서 읽은 그 책이네요. 좀전에 강남 미팅끝나구 역 근처 영풍문고에 들러 이 책을 샀어요ㅎ 한번 찬찬히 읽어볼께요.. 낼 엄청 춥다는데 따뜻히 잘 보내요 뽕님ㅎ

milibbong 2020-12-30 19:57   좋아요 0 | URL
^^ 전 책 홍보대사가 되었군요 ㅎㅎ 두부님 덕분이네요 ㅎㅎ
괜히 맘에 들지 않으시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네요 ㅎ
그래도 여유롭게 천천히 읽어나가기에 적합한 책인 것 같아요.
돌아다니기에 날씨가 너무 추웠죠? 전 외출을 삼간지 하도 오래 되서
추위가 어떨지 가늠이 안되는데 ㅠㅠ 부디 집에서 따뜻하게 쉬시면서
마음과 몸 잘 녹이시길 바랄게요 ㅎㅎ 내일이면 정말 한해의 마지막 날이네요.
두부님의 마지막 날에 기쁨과 다짐과 평안이 가득하길 바랄게요.
미리미리 Happy New Year ! :)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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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하다. 이 책을 서점에서 만나기 이전부터 장류진이라는 이름에 주목했었다. 이후 책이 출간되자마자 사보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정말 현대적이고, 말끔하게 군더더기 없는 모습의 소설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사람의 시선을 가지고 그려낸 책이기에 더욱 와닿는 것 같다. 그리고 단편 소설이라면 일단 짧은 이야기 자체로 독자를 휘어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그 점에서도 합격이었다.
 책의 첫 작품이자 재밌게 읽었던 '잘 살겠습니다', 얼마전 드라마 스페셜로 방영된 작가의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책을 읽다가 무서워서 소름까지 끼쳤던 '새벽의 방문자들'을 비롯한 여러 편이 있다. 모두 제목만 봐도 무슨 이야기였는지 또렷히 기억난다. 나에게 이런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작가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언급하며, 그에게는 '소설'이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일을 하면서 소설로 도피를 했고, 소설을 쓰다가 막힐 땐 일한 만큼의 보상이 보장된 세계에서 일을 하며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노력한 만큼 이렇게 멋진 결실을 맺어준 그녀에게 고맙고 앞으로도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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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bbong 2020-12-03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KBS 드라마 스페셜도 찾아봤다. 책 기본 내용 토대로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직장인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 그들의 애환... 이런 것들이 담겨있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11/21 방영) :-)

artcode 2020-12-06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헛 뽕님: 오랫만에 소설 소개인듯해요ㅎ 소설을 잘 찾아읽지 못하는 저는 뽕님께 좋은 책들을 소개받곤 하는데 이번 책두 읽어볼께요^^: 드라마로도 나왔다니ㅎ 요즘 잘 지내구 계시죠? 이러저러한 일들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기회들이 최근 있었는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살아도 돼나 싶은게 점점 모르겠다 싶구.. 그렇네요. 뽕님두 주말 차분히 보내구계시죠? 오늘은 외출하려다 그냥 하루 뒹굴거렸어요. 잠두 자구. 집에서 마시던 것 말구 머신에서 내린 커피 생각이 나 좀전에 슬슬 걸어 편의점 아아를 샀습니다ㅎ 요즘 편의점 커피머신에서 내린 맛이 좋은데요^^.. 편히 잘 주무시구 낼두 좋은 주말 돼세요.. 뽕님

milibbong 2020-12-15 19:10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네요. 두부님 첫눈 재밌게 잘 즐기셨나요? ㅎㅎ
요새 좀 춥다고 하는데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시구요 ㅎㅎ
주말엔 역시 뒹굴거리는 게 맛이죠 ^^ 밀린 휴식 충전! 넘 좋은데요 ㅎㅎ
요새 편의점 커피도 맛있어요 ㅎㅎ 편의점 음식이 많이 발전했죠 ㅎㅎ 커피도 ^^
제가 책을 지지부진하게 읽다보니 영 리뷰를 올릴 수가 없네요. 음... ㅠ
그나저나 다시 확진자수 폭증과 추위에 더 집콕모드로 돌아왔어요.
이래저래 조심하라는 인사뿐인 요즘이네요 ㅠ ㅎㅎ
조만간 새책 리뷰로 다시 두부님의 답글을 기다리겠어요! 호호
화이팅 넘치는 한 주 보내시구요! 연말 같진 않지만 12월 알차게 시간 보내시고
잘 마무리 하시길요 ~ ^^
 
깨끗한 존경 - 이슬아 인터뷰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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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님의 인터뷰집이다. 어쩌다보니 (혹은 계획 하에) 이슬아 님이 쓰는 글을 계속 읽고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재미 반, 읽기 쉬워서 반 정도의 이유였다. 책을 계속 읽다 보니 '읽기 쉬운 책'이 되려면 생략과 축약, 다듬는 기술 및 기타 기본 자질이 많이 필요하단 걸 느끼게 됐다. 그래서 이젠 약간 배우는 마음으로도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이 책은 인터뷰집이다 보니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겠다 싶어 인터뷰한 사람의 이름만 살펴보고 패스했었다. 유진목 시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결국 찾아 읽게 되었지만, 편하게 읽은 것 치곤 내가 듣거나 읽을 수 있는 범위 이상의 것을 느낀 것 같았다. 이슬아 님이 인터뷰한 정혜윤 님, 김한민 님, 유진목 님, 김원영 님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그녀가 바라보는 세계, 그녀가 그녀의 외부로 확장시키는 시선, 타인을 존경의 마음으로 대하는 방법 같은 걸 기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내겐 너무 큰 책인 것 같다. 자꾸 다시 펼쳐서 읽게 된다.  


정혜윤 : "미치오, 그렇게 추워?"
저는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 지방에선 나무가 귀하거든요. 더 추워지면, 사람들에게 그 나무가 더 절실하게 필요하겠죠. "그렇게 추워?"라고 물으면 순식간에 쪼그라들지요. 저도 가끔 저에게 물어요. "그렇게 힘들어?" 그럼 저절로 이 대답이 나와요. "그렇게는 아니고." 그러니까 "그렇게 추워?"도 저를 형성한 말 중에 하나에요.
이슬아 : 그래서 힘들다는 말을 안 하시는 거군요.
정혜윤 : 네, 안 하려고 해요. 이건 저하고 한 약속이에요.
이슬아 : 누가 ‘그렇게 힘들어?‘라고 물어보면 갑자기 염치라는 게 생길 것 같아요. 내가 필요 이상으로 징징댔구나, 이럴 때가 아니구나, 하고요.

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행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옥타비아 버틀러, 『야생종』

한 집에 있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남의 좋음을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 혼자서도 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는 것. 그러다 혼자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망설임 없이 부르는 것. 노브라로 무대에 서는 것. 닮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에 따라 밥을 먹는 것. 사랑 속에서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낮과 밤을 보내는 것. 기쁨과 슬픔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셔터를 내리는 것. 떠나는 것. 불행한 시간에 굴복하지 않는 것. 때로는 삶에 대해 입을 다물며 그저 계속 살아가는 것. 울다가 웃는 것.
이런 성취들을 나는 ‘작은 전지전능‘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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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0-11-16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뽕님 주말 밤 어찌보내구 계실까요. 짐쯤 주무실까요ㅎ 저두 슬슬 자려구하는데.. 늘 그렇듯 이것저것 뒤적이고 찾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할일이 많은 한 주. 그런 시간의 반복. 그렇게 시간이 누적되고 올해도 낙엽처럼 스르륵 조용한 이별을 준비하는 듯 합니다. 그래두 올해 잘 버텨가고 있는거겠죠?^^
이슬아 님 글을 여러차례 뽕님 서재에서 접하고 있는데.. 흠. 제가 들여다보기엔 좀 다른 결이 느껴지는것 같아요
뽕님이 번역해 전달해주시는 느낌을 느끼고 있습니다ㅎ
따뜻하게 푹 주무세요.. 뽕님

milibbong 2020-11-20 22:55   좋아요 0 | URL
두부님이 보시기엔 어떤 결이 느껴지시나요?
질문 뒤에 말줄임표도 없이 흠으로만 사라져버린 두부님의 긴 생각이 궁금해지네요 ^^
벌써 20일이에요. 어제는 따져보니 20일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더라구요;
그 말은 즉... 이제 올릴 글이 없다는 ㅋㅋㅋㅋㅋ
조금 해이해진 것 같아요. 서점 대출 서비스도 종료되고... ㅋㅋㅋㅋ
10일 안에 네 권의 분량은 어려울테니 읽던 책이라도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다시 주말이 돌아왔네요. 책상 달력에 다음달 포인트들을 체크하다보니
벌써 ...? 12월이고 25일도 보이더라구요. 새삼... 마음이 ... 벙찐?
그런 느낌이었네요 . 다시 코로나도 확산세고... 백신 뉴스가 종종 나오는 것 같지만
내 팔에 놔질 때까지 상용화라는 느낌은 와닿지도 않을 것 같고...
이제 예전같은 예전은 정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다시금 뼈에 박히는 기분이었어요. 하하... 그러거나 어쨌거나...
그래도 삶은 지속되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므로 ㅎ
주말은 기쁘고 알차게 보내기로 해요. ^^ 한주간도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