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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 - 당신이 날아오르지 못하는 이유
신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5월
평점 :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귀찮은 일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럴 때 우리의 태도는 둘 중의 하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나는 이래서 안돼’ 또는 ‘구지 그것을 할 필요는 없어’하며 일을 회피한다. 지나고 나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핑계에 맞장구치며 태도와 행동을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주로 무슨 핑계를 댈까?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내 머리는 조금이라도 편하고 싶어 매일같이 수 많은 핑계거리를 만들어 낸다. 항상 새로운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아 머리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의 핑계. ‘피곤한 데 억지로 일어나면 오늘 하루 졸면서 시간을 보낼 거야. 그럴 바에는 좀더 자는 게 좋지 않겠어?’
운동하기 싫을 때의 핑계. ‘어제 비가 와서 분명히 등산로가 질퍽 할거야. 그러나 땅이 마른 다음에 운동하자.’
어제도 먹고 오늘도 술 마실 때의 핑계. ‘몸이 피곤할 때는 술을 좀 먹어야 잠이 잘와. 오늘 마시고 이번 주엔 안 먹으면 되지 뭐.’
눈 앞에 놓여있는 일이 하기 싫을 때의 핑계. ‘내가 편히 살려고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지금 도 이렇게 하루 종일 일만해야 하나? 좀 쉬면서 하자.’ 등
지나가면 후회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핑계를 댄다. 어제는 물론이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핑계거리를 찾고 있고, 내일도 당연히 새로운 핑계거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지겹고 따분하고 힘든 것은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의 모습이다.
이런 핑계는 정신과의사인 스캇 펙박사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나 시기, 질투가 아니라 ‘게으름’이라고 정의할 정도니 인간 마음 속에 뿌리 박힌 모습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눈감아 줄 수 있는 핑계들. 뻔히 알면서도 '그래. 좀 쉬지 뭐' 하며 휴식거리를 만들어주는 게으름정도라면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핑계가 자신의 모습 자체를 가리고, 삶의 방식을 바꿔 버릴 정도면 그건 좀 심각한 상황이 될 것 같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때문에 일에 대한 도전 자체를 포기하는 상태, ‘나는 가진 것이 없어’라는 마음으로 무엇인가 시작할 때부터 실패를 예상하는 태도. ‘나는 남에게 줄 것이 없어’라는 생각 때문에 아예 남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자세 등이다.
한 때 나도 귀 문제 때문에 스스로 많은 것을 포기했던 경험이 있고, 아직까지도 완전히 핑계로부터 자유롭게 못하기에, ‘핑계’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핑계들이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핑계를 버리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위대해 질 수 있는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말해 주고 있다.
책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마도 그 이야기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생인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남자는 반드시 뒤를 돌아본다. 허리까지 늘어진 생머리는 바람에 나부끼고, 날씬한 팔과 다리는 눈부시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장술도 너무 좋아 무척 고상한 분위기를 준다. 다만, 남과 어울리지 싫어하고 쌀쌀 맞기는, 도리어 그것이 남성들에게는 그녀를 매력적으로 보게 만드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이면서도 연예인처럼 짙은 화장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같은 과 남학생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졸업여행을 가게 되었다. 스키장에서 신나게 스키를 타던 그녀. 코스를 내려와 모두 함께 매점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그녀는 '악' 하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매점 거울을 통해 자신의 뺨에 있는 커다란 흉터가 겉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스키를 타다 넘어지는 바람에 화장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 방으로 뛰어 들어 온 남학생은 그녀에게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도 그 동안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그는 우연히 그녀의 뺨에서 흉터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을 하고 저렇게 예쁜 얼굴에 흉터를 안고 사는 너는 어떤 마음일까. 내 상처가 가장 크다고 믿었던 건 잘못이 아닐까. 난생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바라보게 됐어, 너로 인해…”
그리고 그는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 역시 그의 손길을 치우지 않았다. 오래도록 남아 있던 상처의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거울을 저주하던 그녀. 그녀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 혹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린 적 있니? 난 매일 그래. 세상의 모든 거울을 다 깨뜨리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야. 나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단 한번만이라도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이제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살아갈 것 같다. 정말 보기 싫은 흉터는 알고 보면 자신의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찾는 독서]
나는 어떤 핑계를 대고 있는지 살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주로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 어떤 핑계거리를 만들고 있는지 알면, 그것을 서서히 줄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오랜 시간동안 ‘그것이 바로 나야’라고 정의해 버린 핑계거리가 아닐까? 그것은 은연중에 내 삶을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가두어 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