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발견 - 5,000년의 사랑 이야기
이수현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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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맨 마지막 장에 나오는 말이다.

“작은 크로마뇽인 소녀 릴라와 소년 루가의 만남은 인류와 사랑의 만남이었다. 그들은 지구에서 사랑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들이었다. 아무도 몰랐던 사랑의 감정을 발견하고, 배우고, 가꾸며 혹독한 빙하기를 견뎠다. 그리고 살아 남았다.”

이 책의 전체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한 내용이다. 여자를 의미하는 물가에 사는 부족의 소녀와 남자를 의미하는 바위산에 사는 부족의 루가가 우연히 만나 서로를 알아가면서, 싸우고, 헤어지고, 그리워하다 다시 만나 서로를 사랑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 책을 처음 알았는데, 나는 2007년 이탈리아의 한 유적지에서 발견된 얼굴을 바라보며 포옹한 두 남녀 유골 사진을 봤다. 그들이 살아있는데 어떤 감정으로 서로를 대했기에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이토록 다정하게 서로를 껴안은 채 죽어갔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이 책을 통해 풀 수 있었다. 남자와 여자간의 관계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두 아이가 얼음의 세계를 떠나 태양의 나라로 가는 과정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남녀간의 관계는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상대의 언어와 행동을 잘 모르기에 자주 싸운다. 서로가 다르기에 상대방의 모습에 화가 날 수 밖에 없고, 결국엔 헤어지게 된다.그러나 남녀관계에서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예견한다. 헤어지는 순간부터 서로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신이 억지로 갈라온 인간이기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일인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러나 어느 날 회색늑대의 공격을 받는 릴라를 구해준 루가. 그 일로 인해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때는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이제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서로의 말투와 행동이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차이를 사랑으로 감싸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엔 두 사람의 힘을 합쳐 결국엔 태양의 나라에 도착하게 되고, 거기서 행복하게 산다. 즉 두 사람의 관계는 만남과 다툼, 헤어짐, 다시 만남, 그리고 사랑의 순서를 밟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 그들은 왜 진작 물가부족과 바위부족이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살지 못했는지 안타까워 한다. 어찌 보면 일반적인 사랑이야기 같지만 그저 서로를 탐하고 질투하는 통속적인 개념보다는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해 가는, 그럼으로써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충실히 전해준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든다.

사랑이 무엇인지, 남녀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서로 다른 종족이나 마찬가지인 남녀간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한번 일독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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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 불타는 쾌락에 기꺼이 온몸을 던지다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6
사이먼 블랙번 지음, 남경태 옮김 / 민음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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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욕.
단어 자체가 부정적으로 와 닿는다.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마음 속에서 버려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다. 욕심이 많고, 사리 불변력이 없고,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몰래 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TV 드라마에서 인기를 끄는 불륜내용의 기본 감정이고, 도벽이나 중독증과 같은 수준의 행동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이를 성행위와 그 쾌락을 위해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열정적인 욕망이다. 라고 정의한다. 즉 성욕을 말한다.


우리가 섹스를 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식을 낳기 위해, 성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배우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등등. 그러나 이 책에서 문제시 하는 것은 젊은 남녀가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목적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성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유명한 철학자부터 현대의 버트런드 러셀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의 생각과 의견을 인용하면서 바로 앞에서 말한 정욕의 부정적인 측면을 재미있게 전달해 준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수의 이야기는 무척 관심있게 읽었다. 아마도 천주교에서 자주 듣는 성인의 이름이라 그런 것 같다.

 

저자는 정욕에 대한 그의 생각을 성혐오증이라고 정의한다. 십대 시절부터 동거했고 아들까지 낳아준 여인과의 인연을 끊으면서, 그들을 버렸다는 죄의식을 성행위에서 비롯되는 사악한 쾌락으로 치환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바울이 보낸 편지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과거의 방탕한 생활을 반성하게 혐오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원죄개념에 바탕을 준 가공할 신학을 꾸며냈다. 바로 아담이 모든 인간에게 죄를 물려준 탓에 누구나 정욕의 죄악에 물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천주교 교리의 핵심 논리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살던 시대는 정욕이란 어둠이며, 악의 자식이라는 개념이 성행할 때였다. 극단적으로는 금욕만이 악의 세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줄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던 시절이기도 했다. 결국 이런 세상에서 구지 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겠는가 물으며 섹스 자체를 포기하고 성령과의 행복한 결합만을 추구하라고 외칠 때였다. 어떤 사람은 성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개념을 세상에 퍼뜨린 종교 중 하나가 바로 마니교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현실적인 존재를 악으로 보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성교시간 자체를 정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마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별로 바쁘지 않아 아무 때나 성교를 했던 것 같다.

  

그럼 정욕이란 나쁜 것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단지 모든 것은 과잉 상태가 나쁜 것이다. 자신이 그것을 통제하지 못할 때 문제가 될 뿐이다. 정욕, 성욕 등에 대한 개념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는 식의 표현으로 독자 스스로가 판단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역시 수 많은 철학자들의 의견 중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개념을 말하고 있다. 17세기 철학자인 토머스 홉스의 생각이다. 정욕도 음악을 함께 만드는 것과 같다는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을 쾌락과 대응의 교향곡을 함께 만드는 순수한 상호성이라 말하며 홉스식 결합이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성적 취향이 번식을 위한 의식적인 욕망과 거의 관련이 없음은 확실하다고 한다. 정욕은 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성교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수음, 동성애, 노년의 섹스, 피임상태에서 하는 섹스, 오럴 섹스 등에 열중할 뿐 유전자의 투여라든가 경쟁, 자본 지출에 대한 수익이라는 관점에서 사고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나름대로의 결론을 제시한다.


그의 결론은 보자.


정욕은 타인의 정신을 정복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핵심은 홉스식 통합을 실현하려는데 있다. 홉스식 통합은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결코 사악한 의도를 품지도 않는다. 그 과정이 순조롭게 풀린다면, 우리의 요구에 상대방도 역시 기뻐할 것이다.


정욕도, 성욕도, 섹스도 우리 자신의 일부다. 본능 속에 감춰진 소중한 감정과 욕구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할 것가에 달려 있다. 즉 그것을 통해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기쁨을 상대방과 나눌 수 있는 것인지에 달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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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처방전 정신의학 -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에게 드리는
고시노 요시후미 지음, 황소연 옮김, 표진인 감수 / 전나무숲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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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음이란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기쁘게도 만들고 우울하게도 만드는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다 보니 문제가 생겨도 그저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넘어가기 일쑤다.

 

만약 몸에서 열이 나고 춥다면 어떻게 할까? 아마도 당장 병원으로 뛰어가거나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을 것이다. 그러나 우울하거나 이유없이 불안하다면? 아마 기분전환 한다고 드라이브를 하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태는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에 열이 나는 것보다 기분이 우울한 것이 덜 중요한 증상일까? 나는 얼마 전에 미국에서 벌어진 총기사건을 생각해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문제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이상하거나 아픈 것은 나 혼자의 일이지만, 정신이 이상한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까지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의 뇌와 정신간의 관계를 정신의학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 수 있도록 쉽게 정리한 책이다. 뇌의 구조와 각각의 뇌가 하는 일, 해당 뇌가 손상을 입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증상, 그리고 이러한 뇌와 우리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특히 마음의 병에 대한 부분은 정신의학이 무엇인지, 인간의 심리가 불안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기분장애, 불안장애, 정신분열병과 같은 정신증상과 우울증에 대한 설명과 치료 방법, 공황, 사회공포증, 사회공포증, 범 불안장애와 같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당장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증상과 이에 대한 조치 방법을 알고 있다면, 문제가 생기기 전에 사전 예방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기존의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신적인 문제를 다룬 책으로. 정신과 심리에 대한 가정 상비책처럼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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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 떠난 소년
마티외 리카르 지음, 권명희 옮김 / 샘터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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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길을 떠났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인생의 참 의미를 알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높은 산을 향해 갔다. 소년은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위대한 스승을 만나 인생에 대한 깊은 지혜를 배우며 삶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위대한 스승의 교훈은 이렇다.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 삶의 덧없음을 이해하고, 자연과 같이 순리적으로 흘러가는 삶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그건 이미 작은 육체를 벗어나 영혼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밥 한 그릇에 육신을 맡기고, 어떤 때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오로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자신 안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는 은자들. 그리고 그 곳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행복을 느끼는 수도자들. 이 책을 읽다 보면 비록 그런 삶을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자연 속에서 순리를 거슬리지 않고 살아가는 극히 단순한 삶. 머리 속에 든 온갖 생각을 다 지워버리고 주변의 모든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삶.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극도로 고요하지만 맹수조차도 함부로 덤비지 못하는 인간의 고요함을 나는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 물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몇 날동안 무념의 세계로 빠져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책에 나온 은자들의 모습과 동굴 속에서 명상 속에 잠겨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부럽기만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기에 나도 세상의 복잡함을 버리고 은자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서 일까? 아니면 고용한 산 속에 홀로 앉아 오로지 명상만을 하는 그 모습 자체가 부럽기 때문일까?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주인공 데첸이 동굴에서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간 스스로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외부 환경이나 여건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소유욕, 자기 방어, 욕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영혼 상태의 모습을 깨닫는 것은 죽음 후에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이유는 바로 세상의 모든 것을 직접 느끼고 깨닫고 배우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기쁨, 슬픔, 열정, 환희, 고통, 두려움 등의 감정을 포기하고 영적인 상태가 될 필요가 있을까?

 

언젠가 다시 영원의 세계로 돌아가면 천년 만년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태를 구지 육체를 가진 지금 이 순간에 느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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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 - 당신이 날아오르지 못하는 이유
신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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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귀찮은 일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럴 때 우리의 태도는 둘 중의 하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나는 이래서 안돼’ 또는 ‘구지 그것을 할 필요는 없어’하며 일을 회피한다. 지나고 나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핑계에 맞장구치며 태도와 행동을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주로 무슨 핑계를 댈까?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내 머리는 조금이라도 편하고 싶어 매일같이 수 많은 핑계거리를 만들어 낸다. 항상 새로운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아 머리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의 핑계. ‘피곤한 데 억지로 일어나면 오늘 하루 졸면서 시간을 보낼 거야. 그럴 바에는 좀더 자는 게 좋지 않겠어?’

 

운동하기 싫을 때의 핑계. ‘어제 비가 와서 분명히 등산로가 질퍽 할거야. 그러나 땅이 마른 다음에 운동하자.’

 

어제도 먹고 오늘도 술 마실 때의 핑계. ‘몸이 피곤할 때는 술을 좀 먹어야 잠이 잘와. 오늘 마시고 이번 주엔 안 먹으면 되지 뭐.’

 

눈 앞에 놓여있는 일이 하기 싫을 때의 핑계. ‘내가 편히 살려고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지금 도 이렇게 하루 종일 일만해야 하나? 좀 쉬면서 하자.’ 등

 

지나가면 후회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핑계를 댄다. 어제는 물론이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핑계거리를 찾고 있고, 내일도 당연히 새로운 핑계거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지겹고 따분하고 힘든 것은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의 모습이다.

 

이런 핑계는 정신과의사인 스캇 펙박사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나 시기, 질투가 아니라 ‘게으름’이라고 정의할 정도니 인간 마음 속에 뿌리 박힌 모습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눈감아 줄 수 있는 핑계들. 뻔히 알면서도 '그래. 좀 쉬지 뭐' 하며 휴식거리를 만들어주는 게으름정도라면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핑계가 자신의 모습 자체를 가리고, 삶의 방식을 바꿔 버릴 정도면 그건 좀 심각한 상황이 될 것 같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때문에 일에 대한 도전 자체를 포기하는 상태, ‘나는 가진 것이 없어’라는 마음으로 무엇인가 시작할 때부터 실패를 예상하는 태도. ‘나는 남에게 줄 것이 없어’라는 생각 때문에 아예 남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자세 등이다.

 

한 때 나도 귀 문제 때문에 스스로 많은 것을 포기했던 경험이 있고, 아직까지도 완전히 핑계로부터 자유롭게 못하기에, ‘핑계’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핑계들이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핑계를 버리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위대해 질 수 있는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말해 주고 있다.

책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마도 그 이야기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생인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남자는 반드시 뒤를 돌아본다. 허리까지 늘어진 생머리는 바람에 나부끼고, 날씬한 팔과 다리는 눈부시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장술도 너무 좋아 무척 고상한 분위기를 준다. 다만, 남과 어울리지 싫어하고 쌀쌀 맞기는, 도리어 그것이 남성들에게는 그녀를 매력적으로 보게 만드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이면서도 연예인처럼 짙은 화장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같은 과 남학생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졸업여행을 가게 되었다. 스키장에서 신나게 스키를 타던 그녀. 코스를 내려와 모두 함께 매점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그녀는 '악' 하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매점 거울을 통해 자신의 뺨에 있는 커다란 흉터가 겉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스키를 타다 넘어지는 바람에 화장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 방으로 뛰어 들어 온 남학생은 그녀에게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도 그 동안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그는 우연히 그녀의 뺨에서 흉터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을 하고 저렇게 예쁜 얼굴에 흉터를 안고 사는 너는 어떤 마음일까. 내 상처가 가장 크다고 믿었던 건 잘못이 아닐까. 난생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바라보게 됐어, 너로 인해…”

 

그리고 그는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 역시 그의 손길을 치우지 않았다. 오래도록 남아 있던 상처의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거울을 저주하던 그녀. 그녀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 혹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린 적 있니? 난 매일 그래. 세상의 모든 거울을 다 깨뜨리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야. 나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단 한번만이라도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이제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살아갈 것 같다. 정말 보기 싫은 흉터는 알고 보면 자신의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찾는 독서]

 

나는 어떤 핑계를 대고 있는지 살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주로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 어떤 핑계거리를 만들고 있는지 알면, 그것을 서서히 줄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오랜 시간동안 ‘그것이 바로 나야’라고 정의해 버린 핑계거리가 아닐까? 그것은 은연중에 내 삶을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가두어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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