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 떠난 소년
마티외 리카르 지음, 권명희 옮김 / 샘터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한 소년이 길을 떠났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인생의 참 의미를 알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높은 산을 향해 갔다. 소년은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위대한 스승을 만나 인생에 대한 깊은 지혜를 배우며 삶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위대한 스승의 교훈은 이렇다.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 삶의 덧없음을 이해하고, 자연과 같이 순리적으로 흘러가는 삶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그건 이미 작은 육체를 벗어나 영혼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밥 한 그릇에 육신을 맡기고, 어떤 때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오로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자신 안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는 은자들. 그리고 그 곳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행복을 느끼는 수도자들. 이 책을 읽다 보면 비록 그런 삶을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자연 속에서 순리를 거슬리지 않고 살아가는 극히 단순한 삶. 머리 속에 든 온갖 생각을 다 지워버리고 주변의 모든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삶.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극도로 고요하지만 맹수조차도 함부로 덤비지 못하는 인간의 고요함을 나는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 물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몇 날동안 무념의 세계로 빠져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책에 나온 은자들의 모습과 동굴 속에서 명상 속에 잠겨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부럽기만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기에 나도 세상의 복잡함을 버리고 은자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서 일까? 아니면 고용한 산 속에 홀로 앉아 오로지 명상만을 하는 그 모습 자체가 부럽기 때문일까?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주인공 데첸이 동굴에서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간 스스로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외부 환경이나 여건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소유욕, 자기 방어, 욕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영혼 상태의 모습을 깨닫는 것은 죽음 후에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이유는 바로 세상의 모든 것을 직접 느끼고 깨닫고 배우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기쁨, 슬픔, 열정, 환희, 고통, 두려움 등의 감정을 포기하고 영적인 상태가 될 필요가 있을까?

 

언젠가 다시 영원의 세계로 돌아가면 천년 만년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태를 구지 육체를 가진 지금 이 순간에 느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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