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 - 영악한 자본주의 뒤집기
전병길.고영 지음 / 꿈꾸는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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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요즘 주변에서 가끔 듣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업의 지상과제는 이윤 창출이었고, 주주를 행복하게 해 주는 기업만이 시장에서 대접받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업도 이윤만 챙길 것이 아니라 기업이 활동하는 사회를 생각하고, 소외받은 계층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상이 왔다.




존 나이스비치, 유명한 학자로 메가트렌드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가 쓴 2000년대의 메가트렌드 책을 보면 예전 1990년대에 쓴 것과는 다른 대목이 눈에 띈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장하는 양심적인, 선한 기업의 모습이다. 그는 이제 세상 사람들이 과거 돈만이 최고라고 주장하던 마음가짐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가고자 하는 의식이 성장하고 나눔의 기업, 봉사의 기업, 사랑의 기업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람의 마음이 점차 착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수준이 높아지는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미래 이기주의, 즉 현재 방탕하면 미래에 피해를 보기에 지금 이 순간 자제하며 미래의 행복을 유지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커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의 책에서 두드러진 기업의 모습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이고, 이런 기업이 주가도 높고, 수익률도 높아진다고 한다. 증거자료도 있다.




이 책은 그 동안 출간되었던 사회적 기업 관련도서들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사회, 책임, 기여와 같은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분야의 여러 갈래, 즉 사회적 기업, 사회책임투자, 공정무역 등 많은 사람들이 일정분야에 대해 중점적으로 써 냈던 개별 분야, 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들 간의 역할조합을 통해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 지 구체적으로 정리해 놨다. 각각에 대해 알고 있었던 사람이 이 책을 보면 이들 간의 관계와 서로가 돕고 도와주는 상생 구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핵심 단어는 ‘새로운 자본주의’다. 과거 수익과 효율성 중심으로 성장해 온 자본주의가 이제는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했기에 이제는 변해야 하는 데 그 방법이 바로 사회책임, 공존의 태도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통해서만이 우리의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정무역 하나만을 봐도, 과거에는 힘 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대상으로 거의 착취와 같은 수준으로 ‘부’를 자기 나라로 이동시켰다. 최소한의 급여,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기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천박한 근로조건과 환경 속에서 거의 공짜와 같은 수준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이를 고가로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챙겼다. 그들은 자신들을 비난하는 주위여론에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것이 나쁘다고만 하지 말고 자신들이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나라 사람들은 굶어죽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답변하지 못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래서 그들이 예전보다 더 행복해 졌나요?”




마이크로 크레딧은 또 어떤가? 가진 것이 있는 사람에게만 돈을 주고, 실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한 푼도 대출해 주지 않은 금융시스템.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새롭게 만든 금융시스템을 우리는 마이크로 크레딧이라고 한다. 이런 시스템은 보증이나 담보가 없지만, 일하고자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으로 뭔가 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저렴한 이자로 빌려줌으로써 그들의 생활을 도와주는 이와 같은 시스템이기에 기존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대표라고 하는 미국조차 결국엔 인도에서 만들어진 마이크로 크레딧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았는가!




사회적 기업과 이를 중심으로 지원하는 사회책임투자, 공정무역, 그리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마이크로 크레딧과 같은 새로운 비즈모델은 기업으로서 이윤을 얻고, 동시에 사회에 기여한다는 멋진 기업모델이다. 다만, 기존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시장 논리로 인해 그들보다 더 효율적이고, 독특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울 뿐이다.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여러 곳에서 배우고, 알고, 느꼈던 사회책임과 관련된 기업, 지원자조직 등의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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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섹스 - 일하는 뇌와 사랑하는 뇌의 남녀 차이
앤 무어.데이비드 제슬 지음, 곽윤정 옮김 / 북스넛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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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간의 차이. 예전에는 ‘여자란 말이지...’하고 말을 시작하면 남성들은 환호했고, 여성들은 성차별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다못해 직장에서 어쩌다 ‘자네는 여자인데....’라고 말하면 옆에 있던 여직원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부장님. 지금 성차별하시는 건가요?”




내 입장에서는 일부러 성차별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은 다르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보니 그렇게 표현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실제로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니잖는가? 아무리 사람들이 공평하고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같지 않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교육 때문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남자는 힘을 쓰고,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훈련받았고, 여성은 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하면서 살림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러다보니 여성주의자들은 교육 환경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아이들은 인형이나 부엌에서 쓰는 도구를 갖고 놀게 하고, 남자들은 총이나 탱크, 자동차 같은 것을 갖고 놀게 했다. 어쩌다 남자아이가 인형을 갖고 놀면 어른들은 지나가면 한마디 던진다. ‘저런 바보 같은 놈.....' 남자라면 당연히 여자아이와는 다른 뭔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관심이 많다. 남자와 여성 간의, 즉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고,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새로운 시장을 찾고, 고객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고객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다보니 평소에도 매장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고, 그곳에 모인 남성과 여성의 행동을 관심 있게 바라본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같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다르다. 예를 들어 신발가게를 가보면 남성은 일단 특정 신발 하나를 잽싸게 고르고는 보고 바로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가 있는지 찾아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성은 신발 자체보다 그것과 함께 어울리는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을 자주 본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것을 한꺼번에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주 자세히 나와 있다. 마케팅 책에서는 ‘아마도 이럴 것이다’ 또는 ‘조사 결과 이와 같은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한다....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표현된 것을 구체적인 증거자료와 함께 ‘이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라 구지 통계수치를 대고, 말을 돌려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며 그 동안 느낌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책 저 책에서 눈동냥으로 봐 왔던 남, 녀 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남, 녀의 문제는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차이이며, 이를 활용하는 뇌 구조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결론은 우리가 엄마 뱃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순간부터 남자와 여자는 다른 육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지, 이는 사회적인 활동이나 교육을 통해 완전히 개조시키기 어렵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마치 동일한 종이이지만 포장을 위해 만든 종이와 기록을 위해 만들어진 종이간의 차이처럼 말이다. 이 둘은 모두 기록할 때나 포장할 때 사용가능하다. 그러나 각각의 용도에서 볼 때 어느 쪽이 더 나을까? 만약 두 개가 다 내 앞에 있다면 말이다. 남자와 여자 간의 차이는 어떤 것을 어느 용도에 사용할까 의 문제와 같은 것이다.




여성마케팅을 보면, 전문가들은 여성들은 남자들처럼 뭔가를 살 때 그것만을 향해서 직선으로 달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상당히 다양한 변수들이 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남자들의 결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냉장고를 사겠다고 가전매장에 간 주부가 에어컨을 사 갖고 오는 일도 자주 있고, 이런 결과는 남자가 볼 때는 앞뒤가 안 맞는 것이지만 여성의 눈으로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의 행동을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수준은 지난 것 같다. 그 행동의 원인이 무엇이며, 그것의 본질은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분석력을 갖고 있다. 인간의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조금 심하게 말하면 신만이 알고 있는 블랙박스를 우리 스스로가 바라보며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수준에 와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발견이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사용되기를 바란다. 어떤 알 수 없는 ‘빅브라더’가 인간을 조정함으로써 자신의 이기를 위해 우리를 이용하는데 사용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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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뇌 사용설명서 - 천재적인 뇌를 평범한 습관에 방치하지 마라
샌드라 아모트.샘왕 지음, 박혜원 옮김 / 살림Biz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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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마음이란 것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아마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감정)이란 뇌와는 달리 심장 부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머리는 느낄 수가 없었고, 게다가 계산하고, 측정하고, 판단하고, 따지는 데 사용하는 컴퓨터와 같은 것이란 생각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성은 머리요, 감성은 가슴이란 말이 별 무리 없이 사용되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일이 바로 그런 말 아닌가.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기본지식이 늘면서 인간의 뇌를 투영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했다. 사람 몸 속에 빛을 발하는 어떤 물질을 삽입할 필요도 없이, 마치 투시경처럼 두개골을 뚫고 인간의 뇌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어떤 느낌, 감정이 발생할 때에는 인간의 뇌도 함께 활성화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도 특정부위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변연계. 우리는 크게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부위인데, 이곳을 이루는 부분에서도 ‘편도’라는 부분을 특히 강조한다. 인간의 감정 중 본질적인 두려움은 물론이고, 즐거움도 함께 느끼는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부분이 손상되면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판단하는 거의 대부분은 이성이라고 말하는 논리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란 것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한다. 오랫동안 천박하고 무지한 사람만이 사용한다고 믿었던 바로 그 감정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다양한 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잘 알게 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가치판단과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결정이 바로 뇌의 특정부분, 편도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따라서 아무리 합리적인 판단이라 해도 감정에 의거해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감정.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의사결정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단 하나의 기준이 있는데, 바로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강화하고, 괴로움을 주는 것은 제거하자는 기준이다. ‘즐거움’ ‘괴로움’ 이 모든 것이 바로 감정 아니겠는가? 특히 뇌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과거에 기억해 둔 뭔가를 이용하여 의사결정을 하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감정기준, 즉 즐거움을 줬던 것과 괴로움을 줬던 것을 갖고 간단히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 무척 실용적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뇌 연구 책을 보면 뇌가 무엇이고, 뇌의 각 부분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설명하는 데 그친 책이 많다. 그러다보니 그 자료를 활용하는 것은 독자의 의지이다. 하지만 이 책은 뇌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을 배경으로 우리가 평소 궁금했던 내용들을 누가 봐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놨다.




그 중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행복’에 대한 내용이었다. 행복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우선, 긍정적인 사건들에 집중하라고 한다.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그 날 일어났던 세 가지 좋은 일들을 기록하고 그 일들이 각각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이 연습을 통해 수 주 내로 행복감을 높이고 가벼운 우울감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강점을 활용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한다. 우선 최고의 강점 다섯 가지를 확인한 후, 일주일동안 매일 새로운 방식으로 그 감정들 중 하나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항상 감사하라고 한다. 매일 고맙게 여기는 일 다섯 가지를 기록해 놓고, 이 과정을 수 주 동안 실천했던 사람들은 겉 치례 말을 하고 다녔던 사람들보다도 긍정적인 감정이 더 많아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적어졌다고 한다. 다만 이러한 행동의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 가의 문제인데 저자는 이 방식이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방법보다는 지속기간이 짧았다고 한다. 즉 한 달 정도다.




뇌는 우리가 가진 보물 중에서도 보물이다. 생물, 포유류가 아닌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게 만든 것도 뇌이고, 사랑, 감사, 고통, 희망, 보상심리 등 수 많은 감정들을 느끼고 깨닫게 하는 것도 뇌다. 또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게 만드는 것도 뇌다. 뇌를 알면 나를 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왜, 무엇을, 어떻게 좋아하고, 특정한 일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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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션 - 생각의 연결이 혁신을 만든다, 세계를 바꾼 발명과 아이디어의 역사
제임스 버크 지음, 구자현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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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타본 자동차로 새나라자동차와 시발택시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 집이 후암동에 있어 다른 곳으로 가려면 자주 남산 쪽의 언덕을 넘어갔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차가  언덕을 오르다가 중간에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엔진 힘이 약해서이다. 그러다보니 운전사들은 언덕길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속도를 높인다. 앞으로 달려가던 추진력으로 고개를 넘어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이 추우면 엔진을 덮힌다고 최소한 30분 동안 엔진을 미리 켜놔야 했다. 지금은 별 신경을 안 쓰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차를 타면 나도 모르게 엔진을 미리 가열했는지(그렇지 않으면 달리다가 엔진이 커지니까), 언덕길을 만나면 혹시 차가 올라가다 서지나 않을지 걱정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컴퓨터. 내가 처음 사용한 컴퓨터는 삼보에서 만든 88, 286컴퓨터였다. 아니 더 과거로 돌아가면 대학생일 때 학교 전산실에 있던 대형컴퓨터였다. 덩치는 집에 있는 장롱 몇 배만하고 일반사람들은 손도 댈 수 없는 곳에 들어있어 마치 박물관 유리 안에 있는 것 같은 물건이었다. 그것에 자료를 입력하려면 컴퓨터가 데이터를 읽을 수 있게 종이카드에 펀치를 해야 했다.




당시 컴퓨터는 지금 학생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속도가 느렸다. 통계소프트웨어로 조사 자료를 분석하려면 하루 종일 걸렸으니까 말이다. 내가 쓰는 컴퓨터, 요즘 세상에서는 아주 구형인 센트리노를 달고 있는 이것도 5분 정도면 처리하는 자료를 처리하는 데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 아마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내가 말하는 것 자체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상상이 안 되는 모습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인생을 50년 정도 살고 보니(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 중에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무척 많았다. 앞에서 말한 자동차의 성능, 컴퓨터의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당연히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조차도 바로 10년 전만해도 특정의 전문가들만 쓸 수 있었던 매우 어려운 통신방법이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네스케이프라는 것, 전화선으로 연결하여 대화하던 과거의 채팅서비스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인간이 살아오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는지 이야기처럼 써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현대로 돌아오는 것 같다. 관광열차를 타고 미지의 과거세상을 한 군데씩 지나면서 말이다. 몇 명이 모여 살던 가족집단이 먹을 것을 찾아 동물이 많이 있는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식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정착하게 된 것. 이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거기서 인간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물주가 준 고도의 뇌기능을 통해 자연을 관찰하고 고유한 법칙을 깨닫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면서 점차 더 부유해지고, 풍요로워졌다.




먹을 것이 남으니 다른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사람이 늘어나니 누군가 관리를 해야 했고, 관리가 필요하다보니 생산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계층이 생겨났고, 관리를 좀 더 편리하게 하려다보니 종이와 글을 쓰는 먹이 필요했고, 잉여농산물을 나누면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으려다보니 교환할 수 있는 증표가 필요했고, 그게 돈이 되었고, 그 돈이 어음으로 변하고, 다시 수표 같은 것으로 변했다. 당연히 돈(동전 같은 것)이 있기 위해서는 광물을 깨는 기술, 이를 제련하는 기술, 그리고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뭐 이런 식으로 세상은 하나씩 한 발자국씩 변했다.




세상의 변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이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여 좀더 나은 삶을 위해 기존에 있던 것들을 조합한 역사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먹을 것이 많으니 비만이 생기고 이를 해소하려고 돈 주면서 운동하고(예전엔 돈 받고 하던 것을 말이다), 의사가 큰 소리치고, 약이 생기고, 다이어트식품이란 게 별도로 만들어지고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며 항상 불만에 차 있다. 우주여행을 간다고 좋아하지만 한 곳에서는 산이 불타고 이산화탄소 문제 때문에 난리를 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인 발전. 분명 우리를 위한 발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대단한 발전이라고 환호를 치는 순간부터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을 갉아먹는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변화시킨 것에는 완전한 것은 없다는 말인가? 마치 신이 우리를 보며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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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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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세종서적, 2009. 2. 9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사오정, 오륙도의 삶




386, 사오정, 오륙도. 예전부터 자주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단어지만, 이것들이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나이 45세 때였다. IMF시절 당시에도 나는 무척 바빴다. 회사에서 인터넷사업 몇 개를 동시에 진행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온오프라인모델이 어쩌니 하며 머리를 쥐어짜며 보냈다. 시장경제가 어려우니, 돈이 안도니, 직장인들이 무더기로 잘리느니 하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꼈다. 그때 나는 신문의 ‘명퇴 천국. 대한민국’,이란 헤드카피를 보며 “자식들. 그러게 평소 뭔가 실적을 보여줬으면 나처럼 큰소리치며 직장생활 할 것 아냐!” 하며 살아남은 자의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나도 사오정이란 말을 비켜나갈 수는 없었다. 45세 때다. 하루는 임원과 점심을 함께 하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내가 진행하던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이 안 난다는 이유였고, 그로 인해 담당리더의 능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더 이상 회사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없다는 통보와도 같은 것이었다. 다행히도 보직을 바꿔 직장생명을 연장했지만 그때 이미 내 가슴속에는 시한폭탄 하나가 들어앉아 있었다.




‘방 부장. 다시 시작하는 거야. 회사에서 기회를 준거니까.‘ 언뜻 듣기엔 행복한 말 같지만 내가 갖고 있던 결재권, 인사권, 예산집행권한에 족쇄를 채운 채 더 열심히 해서 회사에 끼친 손실을 만회하라는 말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쫓겨난 놈들도 있는데, 나는 행복한 편이지(내 보직이 변경되는 동안 몇 명의 팀장이 울며 나가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리고 그때부터 내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학교졸업하고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이 직장인이었으니, 그것도 거의 20년 동안 회사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살았으니 직장인이 아닌 삶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마도 386, 475세대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퇴사 후 내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4년 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 문을 나섰다. 4년이란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한 평생과도 같은 시간이지만 그 동안 나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주위사람들에게 줬던 상처를 후회하고, 나에게서 마음이 떠난 가족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연옥에서 죄 사함 받는 것 같았다. 아내는 직장에 가고, 아이는 공부한다고 학원에 간 토요일. 부엌에는 설거지거리가 쌓여있고, 가구위에는 먼지만 수북이 쌓인 아무도 없는 집에(회사는 주 5일 근무니까) 혼자 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인생 끝인가’하는 개똥철학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남은 게 뭔지, 직장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지 고민할 때면 평소의 자신감과 삶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조차 나를 버린 듯했다. 당시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퇴사 후 3년이 지난 지금, 선배 도움으로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강의하며 개인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 달 수입은 직장 생활할 때의 20~30%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무척 행복하다. 그리고 ‘나도 집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더욱 나를 풍요롭게 만든다. 예를 들면 청소, 설거지, 빨래, 장보기, 아이 밥 차려주기 같은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는 두렵기도 하다. 강의하는 것도 평생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지금 수준의 수입만으로 계속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내 것이 아닌, 남이 준 것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지 않겠는가. 직장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현재에 대한 만족이 더 크고, 또 이런 상황은 회사에서 퇴사할 때 준 주유소 사장 자리를 그만둘 때 각오한 것들이다.(그때도 주위사람들은, 어머니를 포함해서, 나보고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평생 직장생활만 하던 사람이 회사를 그만둬야 할 때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분명히 안다. 이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 그 이상의 것이다. 매달 일정급여가 들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는 한 개인의 신분을 의미하고, 개인생활의 보호막이 되어주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평생 직장인에게 퇴사는 사회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고, 동시에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볼펜 한 자루를 구입하고, 서류 하나 복사하는 것까지도 말이다.




근데 이런 사람들에게 잘 다니는, 아니 잘 다니지는 못할지라도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삶을 찾으라고? 나는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사람, 그것도 자신의 잘남을 떠들면서 강의한답시고 폼 잡고, 책 써서 큰소리치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 직장생활 얼마나 해 봤어? 그만 사기치고 너나 잘하세요!“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 동안 나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직장인의 모습도 많이 사라졌고, 일이 되던 안 되든 내가 할 수 있는, 내 앞에 놓인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이루는 것도 보람찬 삶이겠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전’이 없으면 어떤가? 삶의 목표가 없으면 또 어떤가? 이런 것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잖는가 라는 깨달음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하지만 최근에 내가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놓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내가 간직하고 있는 삶의 기준이 아직도 과거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는 ‘이 나이에 내가....’ ‘과장급이나 하던 일을 지금 내가...’ ‘저건 단순 업무니 나이어린 친구들이...’ 뭐 이런 생각들이다. 그러다보니 일 자체를 상중하로 나누고, 나는 당연히 상급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토록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나는 이런 모습을 <땡큐! 스타벅스>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진정한 인생 3막을 살고 있는 마이클 게이츠 길




이 책 <땡큐! 스타벅스>는 평생 직장생활로 한 평생을 보낸 저자가 회사에서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이게 다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회사에서 쫓겨난 후 인생3막을 위해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요즘 흔히 보는 스토리텔링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 스스로 겪은 이야기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나와 비슷하게 나이 50대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거의 20년 동안 가족들을 버려둔 채 오로지 직장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았건만 자신이 뽑아 키운 사람에게 회사 밖의 음식점에서 통보받았다. 그녀는 짐을 싸서 집으로 보내줄 테니 회사에 다시 들어갈 필요조차 없다고 말하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당시 주인공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특히 주인공처럼 직장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마도 세상에서 퇴출당했다는 무력감, 자신을 보호해 줄 보호막도 없이 험난한 사막으로 쫓겨난 듯한 두려움, 혼신을 다해 충성을 바친 회사에 대한 배신감, 게다가 남은 몇 십 년의 삶을 살아갈 방법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느껴야하는 공포심 등 자신의 인생과 직장을 맞바꾼 사람만이 겪어야하는 그 무엇을 느꼈을 것이다. 단순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게다가 그는 평생 일했던 광고 업무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세상은 그에게 다시 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결국 퇴사 후 10년 동안 재산, 가족, 친구, 위신 등 오랜 세월동안 간직했던 것들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자포자기 순간, 호주머니에 든 커피 한 잔 살 돈이 모든 것이었던 그에게 스타벅스의 매니저가 손을 내밀었다. “스타벅스에서 일해보지 않으시겠어요?” 저자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예. 일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마음속에서는 ‘내가 그따위 커피 점에서 일한 사람으로 보여?’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스타벅스와 함께 모든 것을 훌륭히 딛고 일어섰다. 그것도 남들은 이제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나이라고 하는 64세에 말이다. 몸이 힘들고 머리조차 잘 안돌아갈 나이에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온갖 청소에,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하는 커피 점 파트너. 게다가 집에서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매장까지의 거리까지 모든 것이 무척 힘든 상황에서였다.




나는 아직도 2.5막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만약 내가 저자의 입장이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생각해봤다. 저자처럼 “예”라고 했을까? 글쎄다. 요즘 컨설팅보고서를 쓸 때도 기초적인 자료정리부분은 하기 싫어 ‘내가 왜 이런 초보적인 것을 해야 돼?’ 라고 투덜되는 사람이 커피 점에서 커피 파는 일을 하겠다고? 아마도 매니저에게 이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이봐요.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요? 내가 커피 점에서 일당 받으며 커피나 나를 사람으로 보여요? 나원 참 오늘 일진이 안 좋다보니...”




당신은 어떤가? 나이 50 넘어 저자처럼 커피 점에서 일하라고 제안 받으면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건 수중에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다. 먹고 살려면 뭐는 못해? 라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뭐’라는 일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시쳇말로 쪽팔리지 않는 일이다. 나도 이들 중에 한 사람이었고. 물론 이런 태도는 개인문제를 떠나 사회 자체가 나이든 사람을 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한다.




나는 이 책을 보며 바로 이 점이 부끄러웠다. 나이 들었기에 대접받아야 하고, 업무경력이 있기에 그것에 맞는 일을 해야 하고, 과거의 직급이 있기에 좀 더 고상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의식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풀지 못한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저자의 행복한 모습이었다. 다국적 광고회사에서 임원까지 했던 사람이 커피 점에서 일하면서, 그것도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며 자신의 인생3막을 무척 만족해 한다? 게다가 과거 직장에서 큰소리치고, 편안하게 살아가던 모습보다 더 자랑스럽다? 아이들 앞에서도 떳떳하고? 왜?

......?

......?

......?

......?




하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행복한 이유는 삶 자체를 소중이 여기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매니저가 손을 내밀 당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직장도, 자기 사업도, 사랑하는 가족도 다 곁에서 멀어진 상황이었다. 당시 남은 것이라고는 지난 삶에 대한 후회와 패배의식, 그리고 자멸감 뿐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인생의 회복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간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두 번째는 그에게는 삶을 함께 할 사람이 필요했다. 지시와 복종, 합리적인 사고, 효율지향주의에 밀려 황량한 사막에 서 있는 그에게 목을 축일 물 한잔 갖다 줄 사람이 필요했고, 곁에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던져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얼마나 함께 할 사람을 그리워했는지는 평소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흑인, 그것도 나이도 어리고 여자이기까지 한 매니저를 상관으로 받아들인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아마도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 과거와는 달리 스스로 직접 움직여 완수해낸 일들, 지시와 복종관계가 아닌 믿음과 신뢰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스타벅스의 관리시스템이었을 것이다.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주인공의 성격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스타벅스만의 인력관리 시스템과 문화 덕분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훌륭하게 바꿨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점이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을 가장 부끄럽게 만든 부분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기존 직장에서 일정직위가 되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존재하는 건가? 글쎄다. 아마도 우리 문화자체가 과거 60살 인생의 모습을 아직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이 50세에 정년퇴직하면 사회생활을 마감할 나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생 3막’이란 말 그대로 새로운 ‘막’이다. 2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나리오에,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다시 무대에 서는 ‘막’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모습을 속 시원하게 내던질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우선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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