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세종서적, 2009. 2. 9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사오정, 오륙도의 삶




386, 사오정, 오륙도. 예전부터 자주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단어지만, 이것들이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나이 45세 때였다. IMF시절 당시에도 나는 무척 바빴다. 회사에서 인터넷사업 몇 개를 동시에 진행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온오프라인모델이 어쩌니 하며 머리를 쥐어짜며 보냈다. 시장경제가 어려우니, 돈이 안도니, 직장인들이 무더기로 잘리느니 하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꼈다. 그때 나는 신문의 ‘명퇴 천국. 대한민국’,이란 헤드카피를 보며 “자식들. 그러게 평소 뭔가 실적을 보여줬으면 나처럼 큰소리치며 직장생활 할 것 아냐!” 하며 살아남은 자의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나도 사오정이란 말을 비켜나갈 수는 없었다. 45세 때다. 하루는 임원과 점심을 함께 하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내가 진행하던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이 안 난다는 이유였고, 그로 인해 담당리더의 능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더 이상 회사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없다는 통보와도 같은 것이었다. 다행히도 보직을 바꿔 직장생명을 연장했지만 그때 이미 내 가슴속에는 시한폭탄 하나가 들어앉아 있었다.




‘방 부장. 다시 시작하는 거야. 회사에서 기회를 준거니까.‘ 언뜻 듣기엔 행복한 말 같지만 내가 갖고 있던 결재권, 인사권, 예산집행권한에 족쇄를 채운 채 더 열심히 해서 회사에 끼친 손실을 만회하라는 말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쫓겨난 놈들도 있는데, 나는 행복한 편이지(내 보직이 변경되는 동안 몇 명의 팀장이 울며 나가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리고 그때부터 내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학교졸업하고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이 직장인이었으니, 그것도 거의 20년 동안 회사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살았으니 직장인이 아닌 삶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마도 386, 475세대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퇴사 후 내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4년 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 문을 나섰다. 4년이란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한 평생과도 같은 시간이지만 그 동안 나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주위사람들에게 줬던 상처를 후회하고, 나에게서 마음이 떠난 가족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연옥에서 죄 사함 받는 것 같았다. 아내는 직장에 가고, 아이는 공부한다고 학원에 간 토요일. 부엌에는 설거지거리가 쌓여있고, 가구위에는 먼지만 수북이 쌓인 아무도 없는 집에(회사는 주 5일 근무니까) 혼자 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인생 끝인가’하는 개똥철학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남은 게 뭔지, 직장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지 고민할 때면 평소의 자신감과 삶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조차 나를 버린 듯했다. 당시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퇴사 후 3년이 지난 지금, 선배 도움으로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강의하며 개인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 달 수입은 직장 생활할 때의 20~30%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무척 행복하다. 그리고 ‘나도 집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더욱 나를 풍요롭게 만든다. 예를 들면 청소, 설거지, 빨래, 장보기, 아이 밥 차려주기 같은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는 두렵기도 하다. 강의하는 것도 평생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지금 수준의 수입만으로 계속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내 것이 아닌, 남이 준 것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지 않겠는가. 직장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현재에 대한 만족이 더 크고, 또 이런 상황은 회사에서 퇴사할 때 준 주유소 사장 자리를 그만둘 때 각오한 것들이다.(그때도 주위사람들은, 어머니를 포함해서, 나보고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평생 직장생활만 하던 사람이 회사를 그만둬야 할 때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분명히 안다. 이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 그 이상의 것이다. 매달 일정급여가 들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는 한 개인의 신분을 의미하고, 개인생활의 보호막이 되어주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평생 직장인에게 퇴사는 사회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고, 동시에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볼펜 한 자루를 구입하고, 서류 하나 복사하는 것까지도 말이다.




근데 이런 사람들에게 잘 다니는, 아니 잘 다니지는 못할지라도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삶을 찾으라고? 나는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사람, 그것도 자신의 잘남을 떠들면서 강의한답시고 폼 잡고, 책 써서 큰소리치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 직장생활 얼마나 해 봤어? 그만 사기치고 너나 잘하세요!“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 동안 나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직장인의 모습도 많이 사라졌고, 일이 되던 안 되든 내가 할 수 있는, 내 앞에 놓인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이루는 것도 보람찬 삶이겠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전’이 없으면 어떤가? 삶의 목표가 없으면 또 어떤가? 이런 것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잖는가 라는 깨달음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하지만 최근에 내가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놓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내가 간직하고 있는 삶의 기준이 아직도 과거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는 ‘이 나이에 내가....’ ‘과장급이나 하던 일을 지금 내가...’ ‘저건 단순 업무니 나이어린 친구들이...’ 뭐 이런 생각들이다. 그러다보니 일 자체를 상중하로 나누고, 나는 당연히 상급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토록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나는 이런 모습을 <땡큐! 스타벅스>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진정한 인생 3막을 살고 있는 마이클 게이츠 길




이 책 <땡큐! 스타벅스>는 평생 직장생활로 한 평생을 보낸 저자가 회사에서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이게 다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회사에서 쫓겨난 후 인생3막을 위해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요즘 흔히 보는 스토리텔링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 스스로 겪은 이야기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나와 비슷하게 나이 50대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거의 20년 동안 가족들을 버려둔 채 오로지 직장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았건만 자신이 뽑아 키운 사람에게 회사 밖의 음식점에서 통보받았다. 그녀는 짐을 싸서 집으로 보내줄 테니 회사에 다시 들어갈 필요조차 없다고 말하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당시 주인공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특히 주인공처럼 직장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마도 세상에서 퇴출당했다는 무력감, 자신을 보호해 줄 보호막도 없이 험난한 사막으로 쫓겨난 듯한 두려움, 혼신을 다해 충성을 바친 회사에 대한 배신감, 게다가 남은 몇 십 년의 삶을 살아갈 방법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느껴야하는 공포심 등 자신의 인생과 직장을 맞바꾼 사람만이 겪어야하는 그 무엇을 느꼈을 것이다. 단순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게다가 그는 평생 일했던 광고 업무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세상은 그에게 다시 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결국 퇴사 후 10년 동안 재산, 가족, 친구, 위신 등 오랜 세월동안 간직했던 것들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자포자기 순간, 호주머니에 든 커피 한 잔 살 돈이 모든 것이었던 그에게 스타벅스의 매니저가 손을 내밀었다. “스타벅스에서 일해보지 않으시겠어요?” 저자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예. 일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마음속에서는 ‘내가 그따위 커피 점에서 일한 사람으로 보여?’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스타벅스와 함께 모든 것을 훌륭히 딛고 일어섰다. 그것도 남들은 이제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나이라고 하는 64세에 말이다. 몸이 힘들고 머리조차 잘 안돌아갈 나이에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온갖 청소에,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하는 커피 점 파트너. 게다가 집에서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매장까지의 거리까지 모든 것이 무척 힘든 상황에서였다.




나는 아직도 2.5막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만약 내가 저자의 입장이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생각해봤다. 저자처럼 “예”라고 했을까? 글쎄다. 요즘 컨설팅보고서를 쓸 때도 기초적인 자료정리부분은 하기 싫어 ‘내가 왜 이런 초보적인 것을 해야 돼?’ 라고 투덜되는 사람이 커피 점에서 커피 파는 일을 하겠다고? 아마도 매니저에게 이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이봐요.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요? 내가 커피 점에서 일당 받으며 커피나 나를 사람으로 보여요? 나원 참 오늘 일진이 안 좋다보니...”




당신은 어떤가? 나이 50 넘어 저자처럼 커피 점에서 일하라고 제안 받으면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건 수중에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다. 먹고 살려면 뭐는 못해? 라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뭐’라는 일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시쳇말로 쪽팔리지 않는 일이다. 나도 이들 중에 한 사람이었고. 물론 이런 태도는 개인문제를 떠나 사회 자체가 나이든 사람을 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한다.




나는 이 책을 보며 바로 이 점이 부끄러웠다. 나이 들었기에 대접받아야 하고, 업무경력이 있기에 그것에 맞는 일을 해야 하고, 과거의 직급이 있기에 좀 더 고상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의식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풀지 못한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저자의 행복한 모습이었다. 다국적 광고회사에서 임원까지 했던 사람이 커피 점에서 일하면서, 그것도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며 자신의 인생3막을 무척 만족해 한다? 게다가 과거 직장에서 큰소리치고, 편안하게 살아가던 모습보다 더 자랑스럽다? 아이들 앞에서도 떳떳하고? 왜?

......?

......?

......?

......?




하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행복한 이유는 삶 자체를 소중이 여기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매니저가 손을 내밀 당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직장도, 자기 사업도, 사랑하는 가족도 다 곁에서 멀어진 상황이었다. 당시 남은 것이라고는 지난 삶에 대한 후회와 패배의식, 그리고 자멸감 뿐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인생의 회복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간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두 번째는 그에게는 삶을 함께 할 사람이 필요했다. 지시와 복종, 합리적인 사고, 효율지향주의에 밀려 황량한 사막에 서 있는 그에게 목을 축일 물 한잔 갖다 줄 사람이 필요했고, 곁에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던져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얼마나 함께 할 사람을 그리워했는지는 평소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흑인, 그것도 나이도 어리고 여자이기까지 한 매니저를 상관으로 받아들인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아마도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 과거와는 달리 스스로 직접 움직여 완수해낸 일들, 지시와 복종관계가 아닌 믿음과 신뢰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스타벅스의 관리시스템이었을 것이다.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주인공의 성격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스타벅스만의 인력관리 시스템과 문화 덕분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훌륭하게 바꿨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점이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을 가장 부끄럽게 만든 부분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기존 직장에서 일정직위가 되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존재하는 건가? 글쎄다. 아마도 우리 문화자체가 과거 60살 인생의 모습을 아직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이 50세에 정년퇴직하면 사회생활을 마감할 나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생 3막’이란 말 그대로 새로운 ‘막’이다. 2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나리오에,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다시 무대에 서는 ‘막’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모습을 속 시원하게 내던질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우선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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