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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101인의 가상유언장
도종환.황금찬 외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오늘의 유언장은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삶의 목표이다
나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이모님이 한 분계셨다. 이모님은 결혼한 지 2년 만에 이모부를 전쟁터에서 잃고 오랜 세월 동안 하나뿐인 딸을 키우며 살아 오시l면서, 장사 때문에 새벽에 나가 밤중에 들어오시는 어머니 대신 우리 형제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곁에서 어머니가 되어 주신 분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형제는 이모님을 엄마라고 부르며 자랐다. 어떻게 보면 우리 형제는 어머니가 두 분이나 계셨던 복 받은 형제이었다. 우리는 두 어머니를 구분하기 위해 친어머니는 시장에 나가기에 시장엄마, 이모님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기에 ‘성당엄마’라고 부르면서 함께 살았었다.
이모님을 생각할 때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모님의 치마끈을 잡아야만 잠이 들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다. 그 당시 내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모님의 치마끈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금자리처럼 느껴졌고, 치마끈 밑으로 느껴지는 이모님의 숨결이 나에게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이모님이 10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져 움직일 수 있는 건 눈과 입술, 그리고 약간의 손놀림 정도, 그러다 보니 움직이는 건 당연히 못하고, 자신의 감정 표현도 소리치는 것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한 상태로 오랜 시간 동안 힘들게 살아 오시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이모님을 만나게 되면 제일 먼저 뛰어가 반가워 어쩔줄 모르던 내가 그 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은 바로 그 때부터였다. 이상하게 이모님 곁에 가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고, 누구보다도 그 분 곁에서 돌봐주어야 할 내가 항상 이모님 주변만을 빙빙 맴돌면서 지낸 것이다. 나를 그토록 사랑해 주시고, 나에게는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분이었는데 왜 그토록 이모님을 피하게 되었는지?
나는 그 이유를 [사후 생]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는 나와 같은 상태를 보고 죽음을 두려워 하기에 죽음 곁에 가고자 하지 않는 인간의 근본 심리라고 한다. 어쩌면 이모님은 자신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사신의 그림자 때문에 내가 당신 곁에 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생각하시곤, 그런 내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아 주면 그 분은 희미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우시기만 했으니까.
나는 올해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모님을 찾아 뵙고 그 분 곁에서 오랫동안 그 분의 눈물을 닦아 드리며 함께 지내겠노라고.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과 몸이 불편한 이모님을 돌보는 것과는 다르지 않냐고 나를 설득하면서. 그러나 이모님은 그런 내 모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영안실에 앉아 이모님의 사진을 보며 흘러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난 간 세월에 대한 후회와 마지막 가시는 그 순간만이라도 곁에 있어 주지 못한 안타까움때문에. 그러나 내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바로 이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후회를 가슴에 끌어 안은 채 앞으로 남은 몇 십년을 살아 가야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었다.
나에게 단 한시간만이라도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모님이 돌아가신 후, 영안실로 많은 신도들이 찾아 와 오랜 시간 기도를 해 주었다. 한 팀이 가면 또 다른 팀이, 그 팀이 가면 또 어디 선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와 기도를 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 내용 중에 빠지지 하는 기도 “(망자는) 이 세상에 남은 아들, 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이 책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 날]을 읽어보면, 세상에 무엇인가 남기고자 열심히 살아 온 문인들이 자신의 마지막 날에 세상에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마지막 그 순간에 주로 어떤 말을 하게 되는지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그들은 죽음을 앞에 둔 자기 자신보다도 아직 이생에 남아 있을 아내와 자식,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먼저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남은 삶을 제대로 살아 갈 수 있을 지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남은 자들에게 서로 사랑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뜨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죽을 것을 슬퍼하지 마라’., ‘돈이나 재물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남아 있는 아내, 남편을 위해 줘라.’,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
나는 문인들의 유언 내용을 보면서 만약 이모님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 분은 뭐라고 말씀하셨을 지 궁금했다. 오랜 세월, 자신보다는 딸과 우리 두 형제를 위해 살아 오신 당신. 인간사의 고통보다는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 분 곁에 가고자 기원했던 이모님이라면 세상에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무슨 말을 하셨을까?
입관하기 전, 이모님은 수녀 복을 입으셨다. 자신이 태어 난 그 곳으로 가기 바로 직전, 천사의 날개와 같은 옷을 입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생의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찬란한 빛을 발하시며 하느님 곁으로 날아가신 것이다. 아마 그 분은 그 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다. “너희들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너희들을 기억할 것이다. 내 아들, 딸들아.”
나는 나와 함께 살아 온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뭐라고 이야기 할까 생각해 봤다. 특히 가족들에게. 별로 길게 할 말은 없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은 있다. 아내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라고. 그리고 아직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는 두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져 줄 것 같다. 다시는 느껴 볼 수 없는 그녀만이 간직한,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그녀의 체온을 느껴 보기 위해.
아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너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어. 사랑한다. 내 아들아”라고 말하며 뜨겁게, 내 몸에 남아 있는 모든 애정과 사랑을 다해 꼭 끌어 안아 주고 싶다.
그러나 지금,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엔 나의 마지막 날에 지나 온 삶을 되돌아 보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오직 한 번뿐인 이 삶을 더욱 값지게 살기위해, 그리고 나의 유언이 지나간 날들에 대한 후회와 안타까움의 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이 순간부터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남은 시간동안 내 가족과 내 이웃을 더욱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고자 한다.
모리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