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이상적 통치자가 되려면 우선 10년간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다행히 아무도 그의 제안에 호응하지 않았다. - P15
19세기를 거치면서 유클리드의 정리들이 모두 옳지만 몇 가지 증명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이따금 유클리드의 논증은 공리에 의해 보증되지 않는 ‘자명성‘을 써먹었다. 이를테면 A, B, C가 직선 위의 세 점이고 B가 A와 C 사이에 있으면 C는 A와 B 사이에 있지 않다거나, 삼각형의 한 변과 교차하는 직선은 다른 변과도 교차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했다. 무의식적으로든, 적어도 부지불식간에든 올바르게 증명되지 않은 것들이 현실에서의 공간 추론 때문에 ‘명백‘해 보인 것이다. 이런 결함은 첫 정리에서부터 나타났다. - P34
(다비트) 힐베르트의 책은 유클리드의 『원론』에 있는 구멍 몇 개를 메우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자명성‘과 ‘직관‘을 둘 다 없애 최후의 보루인 기초 개념과 공리에서 배제했다. 힐베르트는 기초 개념에 대해 공리를 따른다는 것 말고는 어떤 의미도 부여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 P3536
유도할 수 있다면 주어진 것으로 가정할 필요가 없다. - P39
항해사와 지도 제작자의 검증된 구면기하학은 영락없는 타원기하학이다. 수학자들은 수백 년간 구면기하학을 코밑에 두었으면서도 이것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모형으로 삼을 수 있다는 발상에 대경실색했다.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기하학 지식이 아니라 점과 직선 같은 낱말을 직관에 구애받지 않고 구사하려는 마음가짐이었다. - P48
기이하게도 시각과 촉각이 대립할 때는 촉각이 우선권을 가지는 듯하다. 연필은 물에 잠기면 꺾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연필이 곧다고 말한다. 촉각이 현실을 전달하고 시각이 외양만을 전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뭇가지 사이를 잽싸게 누비며 눈과 손을 협응시켜야 했던 유인원과 원숭이의 오랜 계보에서 우리가 진화했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을까? 그런 존재에게는 촉각이 틀림없이 언제나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붙잡던 줄이 끊어지면 대가 끊길 테니 말이다. - P50
17세기 철학자들이 모두 위대한 기하학자는 아니었다. 하지만모두 그렇게 되고 싶어했다. 바뤼흐 스피노자는 『윤리학』을 유클리드방식(그의 표현으로는 모레 게오메트리코more geometrico)으로 썼다. 토머스 홉스는 원적문제§주어진 원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을 자와 컴퍼스로 작도하는 문제의 해법§을 거듭거듭 제시했다. 전부 틀리긴 했지만. - P52
양이 다른 양에 대해 음이라는 말은 다른 양 안에서 동일한 양만을 상쇄한다는 의미에서 반대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마누엘) 칸트는 이 주장을 설명하는 예를 몇 가지 제시한다. 범선 한 척이 포르투갈에서 브라질로 항해한다. 어느 날에는 12해리 전진하지만 그다음 역풍을 맞아 3해리를 잃는다. 그러므로 ‘음의 3‘해리를 총 이동 거리에 더해야 한다. 교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빚은 음의 재산으로 간주할 수 있다(이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음수가 인도에서 처음 도입되었을 때 원래 이름은 ‘빛‘이었다). - P56
빈 학파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바이스만은 『수학적 사고 입문Einführung in das mathematische Denken』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원을 품는 것을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과 혼동하면 결코 안 된다." 바이스만의 수학과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았던 노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도 동의했을 것이다. - P57
실수는 격자점을 가르는 ‘절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유리수를 크기순으로 정렬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지루하고 명백하다. (0, 0)을 지나는 각각의 선은 평면 위쪽 절반에 있는 반직선을 정의한다. (0, 0)에 달려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곗바늘이 (c, d)를 지나는 반직선에 도달하기 전에 (a, b)를 지나는 반직선을 가로지르면 유리수 a/b는 유리수 c/d보다 작다. - P61
복소수를 다루는 수학자가 자신이 실수 쌍을 다루고 있으며 각각의 실수가 유리수 집합의 쌍이고 각각의 유리수가 정수 쌍이고 각각의 정수가 자연수 쌍이라는 사실을 늘 자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문제를 곱씹기 시작하면 구두끈 묶는 동작을 머릿속에서 상상할 때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기 십상이다. 현업 수학자들은 그저 익숙한 작업을 할 뿐이다. 하지만 철학자는 점점 깊이 파고들려 노력하며, 수에 대해 당연하게 간주되는 괴상한 규약들을 맞닥뜨렸을 때 아이가(또는 칸트의 독자가) 경험하는 어리둥절함을 자각하고 싶어한다. - P62
분수는 음의 양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리수는 모든 고등 문명에서 쓰였는데, 이따금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이상한 제약을 받기도했다. 이를테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1/n 같은 형식의 단위분수와 단위분수의 합만 썼는데, 어떤 단위분수도 두 번 나타날 수 없었다. 그래서 2/3은 1/3+1/3이 아니라 1/2+1/6로 표시된다. 이상하게 우회하긴 하지만 모든 양의 유리수를 이런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 P67
유리수는 정수에 없는 신기한 성질이 있다. 크기 순으로 정렬할 수는 있지만 ‘이 수 다음으로 가장 큰 수‘는 없다. 임의의 두 유리수 사이에는 수많은, 실은 무수히 많은 유리수가 있다. 유리수는 조밀하다. 수직선 위에 있는 임의의 두 점 사이에는 언제나 유리수가 있다. 유리수는 수직선을 뒤덮어 조그만 간격조차 남기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이 성질은 치수를 재기에 안성맞춤인 듯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유리수는 수직선을 덮긴 하지만 ‘채우진’ 못한다. - P68
플라톤 시대가 되자√2가 무리수라는 사실이 더는 당혹스럽지 않았다.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에서 동명의 새내기 수학자는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3부터 17까지의 모든 수의 제곱근이 무리수임을 증명해냈다고 지나가듯 언급한다(4, 9, 16의 제곱근이 무리수가 아니라는 사실과 2의 제곱근이 무리수라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너무 명백해서 지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플라톤은√2가 무리수라는 사실을 힘주어 지적한다. "정사각형의 대각선이 변과 공약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인간이라고 불릴 값어치가 없다." 그즈음 히파소스의 충격적인 비밀은 상식이 되어 있었다. "믿음직한 헬레네인들이여, 이는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네. 알지 못하는 것은 수치요, 안다 해도 별다른 덕이 아니라는 것이지." - P69
처음 무리수를 접했을 때의 경이감을 요즘도 느낄 수 있을까? √2가 무리수라는 사실은 (0, 0)에서 출발하여 (√2, 1)을 통과하는 반직선이 x와 y가 정수인 어떤 격자점 (x, y)와도 만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평면에는 무한히 많은 격자점이 있으나, 반직선 중에는 어느 격자점에도 걸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 무한 속으로 항해하면서도 격자점을 하나도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 P69
물론 실수를 복소수로 확장하면서, 그리하여 수직선에서 복소 평면으로 이동하면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실제로 실수는 크기순으로 정렬되는 반면에 복소수는 그렇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복소수는 여러 방법으로 정렬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일반적 산술 규칙에서 말썽이 벌어진다. 이 규칙들은 제곱수가 음수일 수 없음을 함축하는데도 √-1의 제곱은 음수다. - P7879
가장 오래된 셈 흔적은 이상고 뼈로, 약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성적 학자들은 뼈에 11, 13, 17, 19개의 새김눈이 파여 있다고 주장한다(뼈에 관한 여러 주장이 그렇듯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수들은 10과 20 사이의 소수다(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 P83
귀납에 의한 증명은 수학자에게 대단한 기쁨을 선사한다. 수학자들은 이런 증명을 숱하게 보는데, 대학 1학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각각의 증명은 무한히 많은 논리적 단계의 연쇄다. 지퍼처럼 자르륵 풀린다. - P89
(주세페) 페아노에 따르면 자연수는 각 원소가 ‘후속자‘라는 다른 원소 하나에 사상map하도록(화살표로 연결되도록) 대응이 정의되는 집합이다(이 사상을 S라고 부른다). 집합의 원소는 후속자가 저마다 다르다. 후속자가 아닌 원소는 하나가 있다(수학 용어로는 후속자 사상 S가 일대다사상이 아니라 일대일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전부 뭉뚱그리면, 공리에 따라 어떤 부분집합이 후속자가 아닌 원소를 포함하고 각각의 원소에 대해 그 후속자도 포함하면 이 부분집합은 전체집합이어야 한다. 이게 전부다. 산술에 필요한 공리들은 이게 다다. 후자가 아닌 원소가 하나뿐일 수밖에 없음은 쉽게 알 수 있다. 그 원소의 이름은 1이다. - P91
(게오르크) 칸토어의 생각에서 관건은 어떤 통찰이었다. 우리는 집합 A의 원소 개수가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하면서도 집합 B만큼 많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의 원소와 B의 원소 사이에 일대일대응이 존재한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면 두 집합은 원소 개수(수학 용어로는 기수)가 몇 개인지와 상관없이 같다. 이것을 대등하다라고 한다. 마라톤을 구경할 때는 선수의 인원수를 세지 않아도 왼발 개수와 오른발 개수가 같음을 알 수 있다. 거실에서 모든 찻잔이 받침에 놓였고 빈 받침이 하나도 없으면 찻잔 개수와 받침 개수가 같음은 세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P9697
지금까지의 결과는 모든 무한집합이 가산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하지만 칸토어가 발견했듯 그렇지 않다. 그의 집합론은 이 지점에서 신기원을 열었다. 무한의 크기가 하나뿐이라면 재미없을 것이다. 칸토어는 구간에 있는 실수(이를테면 0과 1 사이의 실수)를 열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칸토어 스스로 여러 증명을 고안했는데, 마지막 증명은 하도 기막히게 기발해서 자신의 논증이 빈틈없는지 몇 번이고 의심했을 정도다. 그는 (다비트) 힐베르트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걱정 어린 편지를 보내어 자신이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증명은 어이없을 만큼 쉬워 보였다. 오늘날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은 충분히 검증된 친숙한 도구로, 간접적 방법을 활용한다. 0과 1 사이의 모든 실수를 열거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이 실수들은 0.5000・・・ 이나 0.333・・・처럼 맨 앞에 0이 오고 다음에 점이 오고 그 뒤에 무한한 숫자 연쇄가 오는 십진법의 전개식에 대응한다. 실수가 위의 가정처럼 정말로 열거 가능하다면 우리는 이 목록을 전부 줄줄이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크기별로 배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이제 다음과 같은 전개식으로 수 하나를 구성해보자. n번째 자리에 있는 숫자에 대해 위의 목록에서 2번째 실수를 골라 n번째 자리에 있는 숫자를 다른 숫자로 바꾼다. 그러면 계단을 내려가듯 대각선을 따라 차례로 내려가면서 2번째 계단에서 만나는 모든 숫자가 다른 숫자로 바뀐다. 이렇게 하면 0과 1 사이의 실수에 대한 전개식을 얻는다. 그런데 이 수는 우리의 목록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실제로 n 자리에 있을 수 없다. n번째 숫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n에 대해서도 성립한다. 방금 구성한 0과 1 사이의 실수는 우리의 목록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모든 실수를 나열했다는 가정과 모순된다. 그러므로 실수는 열거 가능하지 않다. 실수는 비가산적으로 많다. - P99100
칸토어는 연속체보다 큰 기수(원소 개수)가 많음을 증명했다. 이를테면 ‘직선의 모든 부분집합의 집합‘ 크기가 있다. 실제로 그는 무수히 많은 무한 기수를 발견했으며 이내 수학자들이 그 기수들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계산 규칙은 놀랍도록 괴상하다. 하지만 연속체의 기수보다는 작지만 자연수의 기수보다는 큰 기수가 있는지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모든 비가산 실수 집합은 연속체 전체의 크기를 가져야 할까? 이 주장을 ‘연속체 가설‘이라고 한다. 칸토어의 혁명적 발상은 많은 반발을 샀으며 그는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다. 칸토어가 논쟁을 찾아다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칸토어는 수학을 연구하지 않을 때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진짜 저자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가설을 옹호했다. 이 주장은 실무한 못지않게 평생을 허비할 수 있는 논쟁거리다. 베이컨 가설과 달리 집합론은 인정을 받았다. 칸토어는 할레에 있는 군소 대학에서 일생을 보냈음에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1897년 (자신이 출범에 큰 역할을 한) 제1회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했을 때 그는 많은 강연에서 자신의 이론이 기정사실로 취급되는 모습을 보았다. 한 세대가 채 지나지 않아 집합론은 모든 수학 분야의 공통 기초가 되었다. - P103
대부분의 수학자는 칸토어를 확고히 지지했으며 오리가 물을 좇듯 집합론을 좇았다. 언제나 카리스마가 넘쳤던 다비트 힐베르트는 이렇게 포효했다. "누구도 우리를 칸토어가 창조한 낙원으로부터 내쫓지 못하리라." - P104
자연수에 대한 (고틀로프) 프레게・(버트런드) 러셀 접근법은 수학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은 집합론에서 자연수를 도출하는 상향식 방법이 프레게・러셀 접근법을 대체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방법은 요한 폰 노이만이 제시한 것으로, 그가 갓 스무 살(영재가 은퇴하는 시기)이 되었을 때 발견했다. - P105
기수는 집합의 크기를 나타내며 서수는 배열을 묘사한다. 유한집합에서는 기수와 서수가 대략 같다. 기수는 "일, 이 삼"으로 세고 서수는 "첫째, 둘째, 셋째"로 센다는 것만 다르다. 무한집합은 사정이 달라서 기수적 무한의 산술 규칙과 서수적 무한의 산술 규칙이 따로 논다. 집합을 배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전문용어로는 정렬이라고 한다. 이 말은 모든 원소가 선형적 순서로 놓였다는 뜻이다(임의의 서로 다른 두 원소 x와 y에 대해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작다. 또한 x가 보다 작고 y가 2보다 작으면 x는 2보다 작다). 이와 더불어 정렬 집합의 모든 부분집합에는 가장 작은 원소가 있다(가장 큰 원소가 있을 필요는 없지만). 이를테면 자연수 집합은 ‘자연적‘ 방식으로, 말하자면 {1, 2, 3, ・・・}으로 정렬되며 ω에 대응한다. 1을 맨 뒤로 보내 다시 배열할 수 있는데, 그러면 {2, 3, ・・・, 1}이 된다. 이 정렬은 ω+1에 대응한다. - P109
이 ‘생각의 표현법‘ 중에서 논리적으로 옳은 것은 열다섯 가지로 밝혀졌다. 전통적 설명에는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이는 고대인의 용법 중 일부가 오늘날 수학자들의 용법과 약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A는 B다"라는 명제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A라는 성질을 가지는 대상이 존재함을 함축하는 데 반해 현대의 수학적 규약에 따르면 A라는 성질을 충족하는 것이 전혀 없어도 무방하다. 말하자면 대응하는 집합이 공집합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용은 귀엽다"는 애초에 용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옳은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마도) 대부분의 일반인은 이 명제를 거짓으로 여기거나, 만일 참으로 받아들인다면 용의 존재를 함축한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이 용법은 우연한 회심conversio per accidens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스콜라철학자들의 골머리를 썩였다. - P114
아래의 열 가지 전제가 성립한다고 가정하자.
1. 이 집에 있는 유일한 동물은 고양이다. 2. 달 바라기를 좋아하는 모든 동물은 애완동물로 적합하다. 3. 나는 동물이 혐오스러우면 멀리한다. 4. 어떤 동물도 밤에 돌아다니지 않는 한 육식동물이 아니다. 5. 어떤 고양이도 생쥐를 죽이는 일에 실패하지 않는다. 6. 이 집에 있는 것 외에 어떤 동물도 내게 사근사근하지 않다. 7. 캥거루는 애완동물로 적합하지 않다. 8. 육식동물을 제외한 어떤 것도 생쥐를 죽이지 않는다. 9. 나는 내게 사근사근하지 않은 동물이 혐오스럽다. 10. 밤에 돌아다니는 동물은 언제나 달 바라기를 좋아한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논리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나는 캥거루를 멀리한다(힌트: 달빛에 혹하지 말 것). 이 삼단논법 연쇄를 고안한 옥스퍼드대학교의 논리학자는 찰스 도지슨이다. 그는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썼다. - P115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놀라운 통찰은 논증을 순수한 형식 계산으로 기술한 것이다. 명제의 내용은 진위와 무관했다. 그가 수학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규칙은 형식화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 P116
(영국의 조지 불 이후) 영국의 오거스터스 드모르간과 존 벤, 미국의 찰스 퍼스, 독일의 에른스트 슈뢰더, 이탈리아의 주세페 페아노가 진행한 연구를 통해 논리학은 점점 수학과 비슷해졌다. 이와 나란히 수학도 점점 논리학과 비슷해졌다. 수학 추론은 점점 엄밀해졌으며 수학 증명은 고생스러울 만큼 명시적으로 바뀌었다. 이런 발전이 (무엇보다 해석 과정에서) 절실히 필요한 곳은 새롭고 더 명시적인 논증이 놀라운 결과를 밝혀내는 분야였다. 그 놀라운 결과란 이를테면 연속함수 수열의 극한은 불연속적일 수 있다거나, 몇몇 연속함수는 어디서도 미분 가능하지 않다 등이며, 그 밖에도 비슷한 문제들이 밝혀졌다. 새로운 엄밀성을 앞장서서 옹호한 사람은 오귀스탱 루이 코시와 카를 바이어슈트라스였다. 훗날 프라하에서 베른하르트 볼차노라는 저명한 성직자이자 철학자이자 수학자가 이 발전들 중 상당수를 예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가톨릭교회는 그의 책들을 금서로 지정했다. 공교롭게도 수학에 집합 개념을 도입한 사람도 볼차노였다. 그는 집합을 부분의 배열에 의존하지 않는 다수로 정의했다. - P117118
이를테면 함수(더 일반적으로는 두 항 사이의 관계)는 영락없는 쌍의 집합이다. - P119
어떤 학문도 모순을 반기지 않는다. 모순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신호이니 말이다. 하지만 형식적 수학 이론에서의 모순은 훨씬 고약하다. 더는 가망이 없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무너진다. 실제로 A와 A 아닌 것이 둘 다 참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A의 타당함은 임의의 명제 B에 대해 "A이거나 B가 참임을 함축한다. "A거나 B가 참이고 A 아닌 것도 참이기 때문에 B는 무조건 참일 수밖에 없다. 이러면 모든 것이 올스톱된다. - P128
힐베르트 프로그램은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발전했으며 힐베르트 자신과 여러 제자가 실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느닷없이 암초를 만났다. 쿠르트 괴델이라는 박사후 연구원이 빈에서 철학과 수학을 공부하고 힐베르트의 노선을 따라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뒤, 힐베르트 프로그램이 결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같은 증명으로 괴델은 수학적 참과 형식적 증명의 간극이 메워질 수 없음을 입증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정합적인 형식적 수학 이론에서 성립하는 모든 것이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정합성 자체가 이론 안에서 형식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괴델의 첫번째 불완전성 정리와 두 번째 불완정성 정리인 이 두 명제는 철학적으로 의미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수학적 정리이지 결코 ‘한낱‘ 철학적 진술이 아니다. 20년 뒤 하버드대학교에서는 괴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면서 불확정성 정리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수학적 진리‘로 천명했다. - P131132
현대에 들어 동료 평가는 새로운 수학적 생산물의 양에 짓눌리고 있다. 해마다 수천수만 명의 수학자가 수십만 개의 새 정리를 발표한다. 수학계에서는 동료 평가 학술지에 게재하여 정리를 검증한다. 이렇게 하면 각각의 새 논문은 적어도 한두 명의 평가자가 (바라건대) 비판적으로 읽었음이 보장된다. 하지만 평가자는 대체로 익명에 무보수여서 열심히 평가할 동기가 부족하다. 많은 오류가 걸러지지 않는다. 그러면 다른 수학자들이 그 잘못된 결과를 이용하고 전파하게 된다. 증명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데는 몇 달, 아니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현업 수학자가 독창적 연구를 하고자 한다면 다른 수학자가 발표한 이전 결과를 검증 없이 활용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피하다. 궁극적으로 오류가 생길 것이 뻔한 사회적 과정에 의존하는 격이다. - P163
동료 평가에 따르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그에 따라 정리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것은 증명 보조기의 존재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나머지 이유는 더 심오하다. 증명 보조기는 수학 전체를 완전하게 형식화하여 논리적으로 정당화한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HOL 라이트의 핵심 프로그램을 이루는 500행의 컴퓨터 코드는 의심할 여지 없이 힐베르트를 놀라게 하겠지만 그의 인정을 받기에 족한 ‘기초‘다. 이 기초는 철학적 이상을 실현할 튼튼한 확실성을 선사한다. 그 도움을 받아 수많은 정리가 검증되었는데, 그중에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같은 가장 이름난 기념비적 결과도 허다하다. - P166
아르키메데스는 십진수를 쓰지 않았지만 원주율을 무한히 정확하게 구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그는 지름이 1인 원에서 출발하여 원에 외접하는 가장 작은 정육각형을 그렸다. 그 둘레 길이는 2√3이다. 이번에는 원에 외접하는 가장 작은 정12각형을, 그다음에는 정24각형을 그렸다. 이쯤 되면 변의 길이를 계산하는 일이 고약해진다. 제곱근을 어마어마하게 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끈기와 의지를 발휘하면 해낼 수 있다. 아르키데메스는 원에 외접하는 가장 작은 정48각과 정96각형의 둘레를 계산하고 그만두었다. 기진맥진해서exhaustion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원리는 명확했으며(‘실진법exhaustion principle‘이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계산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 P184
극한에 도달하면, 거리의 계산은 무한히 작은 길이들을 무한히 많이 더하는 것과 같다. - P205
확률론은 종종 무작위성의 수학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볼테르는 무작위성을 부정했다.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가 우연을 이야기하는 것은 원인을 무시하고 결과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볼테르가 자신의 기이한 복권 당첨을 의미심장하게 암시하려는 문장이 아니었다. 모든 근대 철학자의 확립된 견해였다. 적어도 뉴턴 시기에 이르자 세계관은 확고히 결정론으로 기울었다. 사실 수백 년 전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때는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따라 결정되었고 지금은 과학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만 다르다. (지난 100년을 거치며 인과율과 결정론에 대한 견해가 또 다른 변화를 겪었는데, 이번에도 물리학 때문이었다. 무작위성은 양자역학에서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나는 독자 여러분을 저 지뢰밭에는 데리고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 P213
인간은 우연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도록 생겨먹었다. - P214
베르누이 법칙(그는 애정을 담아 ‘황금 정리‘라고 불렀다)은 다음과 같다. "실험을 충분히 자주 반복하면 어떤 사건의 상대빈도는 그 확률과 무작위적으로 작은 차이가 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그럴 확률이 무작위적으로 크다." (중략) 그의 법칙은 무슨 뜻일까? 원하는 만큼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는 실험(이를테면 동전 던지기)과 P(A)의 확률로 일어나는 사건 A(이를테면 50퍼센트의 확률로 일어나는 ‘앞면‘ 사건)를 생각해보자. 무작위적 정확도(이를테면 5퍼센트)를 하나 정하고 우리가 바라는 만큼 1에 가까운 확률(이를테면 99퍼센트)을 정하자. 베르누이의 황금 정리에 따르면 실험을 독립적으로 반복하는 횟수 N이 충분히 크면 사건 A의 상대빈도 N(A)/N와 그 확률 P(A)의 차이는 5퍼센트 미만이다. 달리 말하자면 상대빈도가 44퍼센트와 55퍼센트 사이에 있을 확률이 99퍼센트다. 충분히 여러 번 시도하기만 하면 된다. 이 법칙은 여러 번 반복하는 시도에서 사건의 빈도 N(A)/N를 추정하여 그 확률, 말하자면 P(A)를 구할 수 있다는 뜻으로 곧잘 해석된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베르누이의 큰수의 법칙은 A의 확률이 알려져 있을 때 A의 빈도에 관해 말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 P224225
모든 보험 상품도 도박이며, 심지어 불공정한 도박이다. 어차피 보험 회사도 살아야 하며, 심지어 떵떵거리고 싶어하니 말이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주택 보험에 가입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멍청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작은 확률로 큰 손실을 당하기보다는 큰 확률로(실은 확실히) 작은 손실, 말하자면 보험료를 감당하고 싶어한다. - P230
하나의 원리가 리하르트 폰 미제스를 인도했다. 그것은 우연을 이기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장기적으로 이길 수 있는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은행을 이기는 시스템을 발견했다고 믿은 무수한 도박꾼이 처참하게 실패한 것에서 보듯 이 원리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최대한 경험적인 듯하다. 영구 운동 기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박 시스템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유치한 ‘소원 원리‘가 현실에 무릎 꿇는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는 과학에 유익하다. 영구 운동 기계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열역학의 토대다. 도박 시스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확률론의 토대다. 적어도 이것이 리하르트 폰 미제스의 취지였다. - P244245
고려할 만한 기술적 요소(이를테면 어떤 유형의 컴퓨터를 선택할 것인가)들이 있긴 하지만, 악용할 수 없는 연쇄, 규칙 없는 연쇄, 압축 불가능한 연쇄는 사실상 모두 동일하다. 세 가지 접근법은 리하르트 폰 미제스가 자신의 콜렉티프로 얻고자 했던 목표를 달성한다. 무작위성의 이 모든 규정이 활용하는 개념은 무작위성의 정반대, 말하자면 연산 가능성이다. 연산 가능성은 어떤 확률론적 맥락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발전했다. 무작위 연쇄 개념은 연산 가능성 이론뿐 아니라 확률론 개념들도 근거로 삼는다. 이 말은 명백하면서도 실은 얼토당토않은 듯하다. 무작위성이 확률과 잘도 관계가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확률론은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콜모고로프의 측도론 공리에 기초한 확률론이다. 사실 측도론은 확률이 100퍼센트나 0퍼센트인 결과의 집합에 관한 모든 수많은 진술에 필요하다. 이는 역설적 결과다. 리하르트 폰 미제스는 확률론을 무작위 연쇄라는 토대 위에 놓고 싶어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무작위 연쇄를 이해하는 데 확률론이 필요했던 것이다. - P250251
이론상 무작위 문자열은 온전한 동전을 여러 번 던지거나 방사성 원자의 붕괴를 관찰하거나 전력망의 변동을 측정하여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물리적 방법으로 무작위성을 생성하려면 대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효율도 낮다. 이런 까닭에 대부분의 난수는 가짜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이런 난수는 유사난수라고 부른다. 유사난수는 알고리즘으로 생성하며, 따라서 무작위성의 의미와 정반대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 P252
지금은 유사난수를 생성하는 방법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술邪術에 가깝다. 유사난수를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기대만큼 무작위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당혹스러운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유사난수를 이용하는 것은 여전히 불법의 냄새를 풍기는 도박이다. 요한 폰 노이만은 이런 농담을 남겼다. "난수를 생성하는 산술적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죄인의 처지에 있다는 사실은 두말할필요가 없다." - P252
(프랭크 플럼프턴) 램지의 어머니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이 오점을 제외하면 램지는 뼛속까지 케임브리지인이었다. 아버지는 수학자로, 모들린대학교 학장이었다. 프랭크는 트리니티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금세 그를 자신의 품 안에 맞아들여 비밀에 싸인 엘리트 토론 모임 사도회에 입회시켰다. 사도회에서는 독일어로 쓰인 얇고 신비스러운 논리학 책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어떤 교수는 제목으로 ‘논리·철학 논고‘를 제안했는데, 향후 판매 실적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했다. 이 소책자는 엄청난 부자로 알려진 빈 출신의 전직 사도회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적군의 참호에서 복무하는 동안 썼다. 프랭크 램지는 독일어를 배워가며 소책자를 번역했다. 학부생이던 그는 『논고』의 몇몇 표현이 꽤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니더 외스터라이히를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이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몇 주간 오후마다 책을 한 줄 한 줄 읽어갔으며 놀랍게도 둘은 평생 친구가 되었다. 유일한 시빗거리는 지크문트 프로이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였다. 프랭크는 프로이트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및 비트겐슈타인과 동급에 놓았다. 루트비히는 자존심이 상했다. - P256
어떤 면에서 믿음은 틀릴 수 없다. 매번 관찰의 결과로 믿음이 갱신되더라도 이는 믿음이 올바르게 교정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애초에 틀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 P269
이것이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 이면에 숨은 교훈이다. 개인이 가진 의지와 같은 의미에서의 의지를 집단이 가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콩도르세 후작으로 돌아간다. 그는 여느 계몽주의 사상가와 마찬가지로 장 자크 루소의 사상에 깊이 감화했다. 루소에 따르면 집단은 일반의지에 인도받아야 한다. 이 일반의지는 고귀한 개념이지만 콩도르세는 꼼꼼히 뜯어보니 일반의지를 명확히 규정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반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경우에 따라 현저히 부재할 수 있다. 이 통찰은 루소의 추종자들에게는 뼈아픈 타격이었다. 프랑스혁명의 광기 어린 시기에 얻은 현실적 교훈이 환멸을 키웠다. 결국 젊은 나폴레옹이 권좌에 오르자 ‘일반의지 volonté generale‘는 ‘장군의 의지volonté du général‘에 밀려났다. - P287
선거는 우세한 의견을 결정하는 측량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앞에서 보았듯 ‘우세한 의견‘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선거는 제의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참여의 제의다. 투표자들은 좋게든 나쁘게든 직접 참여한다. 선거에는 제의적 측면이 있다. 이 성질은 통계에 근거한 여론조사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표본이 (티코크라시tychocracy적으로 설계된 독재자의 경우에서처럼) 작든 크든 상관없다. 심지어 대표성이 가장 큰 여론조사조차도 총선거라는 참여 방식을 대체할 수는 없다. - P289
반박될 만큼 정밀해질 수 있다는 수학의 특징은 결코 사소한 미덕이 아니다. - P301
두 실험에서 대부분의 사람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면 당신은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다. 실제로 첫 번째 실험에서 당신은 흰색 공이 나올 가능성이 회색보다 크다고 추측했다. 그러므로 ‘흰색이나 검은색’ 공이 나올 가능성이 ‘회색이나 검은색‘보다 커야 한다. 이 실험은 우리가 확률을 다루는 방식이 기이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니얼 엘스버그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데,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70년대 초 화제의 펜타곤 문서를 유출한 것이다. 장년층은 이 사건을 여전히 똑똑히 기억하며 젊은 층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더 포스트>를 보고 알게 되었다. 펜타곤 문서는 미 행정부의 치부를 드러냈으며 엘스버그는 내부 고발자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방첩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15년형을 구형받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닉슨의 ‘배관공들‘(문서 유출에 대처하는 업무를 맡아서 붙은 별명)이 엘스버그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의 사무실에 침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부의 중대한 부정행위를 이유로 소송이 기각되었다. 훗날 ‘배관공들‘은 다른 시급한 업무를 하달받았는데, 이번에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파견되었다가 또다시 일을 망쳤다. 한편 엘스버그는 MIT 교수가 되었으며 시민으로서의 용기와 학문 연구 양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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