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력이란 무엇인가. 애석하게도 그것은 ‘병든 것‘이다. 저 회화나무는 죽음과 부활이라는, 병듦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호소력으로 우리에게 ‘견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승리나 극복보다 더 참되고 진실한 말, ‘견딤‘을. (이응준, 서문: 저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다) - P20

‘점선면체‘의 개념처럼, ’수직적 시선: 신(왕/과거)의 시선‘과 ‘수평적 시선: 인(민/현재)의 시선‘이 교차하며 입체적 시선이 완성되듯,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를 그린다는 개념이 본 전시의 기본 틀이다. 이 터가 조성되기도 훨씬 전부터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던 회화나무는 유독 부침이 심했던 우리 근현대사를 제 자리에서 묵묵히 지켜본 증거다. (이명호, 회화나무, 덕수궁…)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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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개의 자귀 폐하가 이 전쟁을 지휘하라고 야오틀렉으로 임명했을 때, 최소한 아홉 송이 부용은 자신의 배를 기함으로 삼을 수 있었다. 이 장교들은 전부 그녀가 함께 일하고 함께 충성을 바치며 지휘한 테익스칼란인들이었다. 그들 하나하나를 카우란 행성계에서 승리로 이끌었던 게 아직 석 달도 지나지 않았다. 장교들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러니 신뢰는 좀 더 이어질 것이다. 활동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칼끝호가 갖고 돌아와 제약을 조금 더 풀어 줄 수 있을 때까지. 외계 함선의 종말에서 피어오르는 약간의 피와 약간의 먼지, 불길을 맛보게 되리라. 함대는 오랫동안 버티며 설탕물 같은 폭력을 들이마실 것이다. 야오틀렉이 뭘 하는지 잘 안다고 믿는 한은. - P18

바퀴의 무게호 함교 바로 옆에 회의실 두 개가 있었다. 큰 쪽은 전략 회의를 하는 곳이고, 작은 곳은 문제 해결을 위한 곳이었다. 아홉 송이 부용은 처음 함대 사령관이 되었을 때 보조 무기 통제실을 작은 회의실로 바꾸었다. 당시 함내에 은밀한 ‘공식’ 대화를 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결정은 대체로 옳았다. 작은 회의실은 인사 문제를 해결하고, 함내 카메라로 녹화가 되면서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최적의 장소였다. - P2122

아홉 송이 부용은 몇 번쯤 정치에 발목이 잡힌 적이 있었다. 함대 사령관이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함대 사령관이 되어 그 자리를 유지하며 군단을 위해서 승리를 가져오려는 사람은, 음, 그런 테익스칼란인은 적을 만든다. 질투하는 적들을.
(하지만 전에 정치가 관련된 때에는 매번 전쟁부에 아홉 번의 추진이 최후의 위협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새 전쟁부 장관 세 개의 방위각은 누군가와 딱히 친구가 아니었다. 적어도 아홉 송이 부용의 친구는 아니었다.) - P25

"그럼 제가 명령서를 작성할까요. 원하신다면 제24군단의 근무를 변경하여, 우리 행성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보이드를 향해 고함을 질러 대게 할 수 있습니다."
스무 마리 매미의 문제 중 하나는 정확하게 아홉 송이 부용이 원 하는 바를, 그게 나쁜 생각임을 그녀가 깨달을 정도로 뜸을 들여 제안한다는 거였다. 이런 문제를 비롯한 수천 가지 이유 때문에 아홉 송이 부용은 그를 좀 더 제국에 동화된 행성계에서 온 병사로 대체하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 P2526

그때 통신장치에서 두 개의 거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오틀렉, 칼끝호의 모습이 잡혔습니다. 세 시간 빠릅니다. 빠르게 오고 있습니다. 빠르게 돌아······ ‘제기랄’."
"피 흘리는 ‘별들이여’." 아홉 송이 부용은 자신과 스무 마리 매미에게만 들리도록 빠르게, 본능적으로 욕설을 내뱉고서 통신 주파수를 연결하라고 클라우드후크에 신호를 보냈다. "가는 길이야. 꼭 쏴야 하는지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쏘지 마." - P27

문이 열려서 마히트는 자신이 말했던 위험한 거짓말에 대한 생각을 멈췄다. 생각하지 않는 게 거짓말을 숨기는 데에 더 쉽다. 제국 어딘가에서 그것을 배웠다. - P34

"오늘 오후 기분은 어떠십니까, 큐어Cure?"
여덟 가지 해독제가 선대- 황제에게서 배운 것이 몇 가지, 현 황제이자 설령 죽는 한이 있어도 그를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한 열아홉 개의 자귀에게서 배운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널 기분 좋게 하지만 왜 그러려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자를 믿지 마라‘일 것이다. - P5354

열아홉 개의 자귀, 즉 황제 폐하는 여덟 가지 해독제가 터널을 통해서 첫 번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에 ‘전쟁부는 전략가들의 정원’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녀는 여덟 가지 해독제의 방으로 혼자 와서 시티가 만든 홀로그래프 영상, 눈이라는 그물 속에 있는 밝은색의 새처럼 소년이 전쟁부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덟 가지 해독제는 자신이 가지 않는 편이 좋겠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전략가와 정원에 대한 얘기를 하고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신중하게 말한 다음에 방을 나갔다.
가끔 여덟 가지 해독제는 항상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그를 믿어 줄 누군가가 있을까 궁금했다. - P55

"함대 사령관인 아홉 송이 부용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 사람에겐 이런 평판이 있더군.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병사들이 뭐든지 할 거라고. 모든 함대 사령관의 병사들이 사령관을 사랑한다는 수준이 아니고, 그냥 시적인 표현도 아니야. 이전 원정에 대해 찾아봤는데, 그 사람 부하들은 내가 보기엔 수많은, 음, 멍청한 짓거리까지 할 것 같아, 차관. 그 사람이 요청만 한다면." 열한 그루 월계수는 수십 년 전이었다면 웃음이라고 여겨졌을 만한 소리를 냈다.
"정말 찾아보셨군요. ‘멍청한 짓거리’라는 건 꽤 잘 맞는 설명입니다. 계속하세요. 그녀가 카우란에서 병사들에게 어떤 멍청한 짓을 시켰을까요?" - P5758

"정답에 아주 가까웠어요. 잘하셨습니다."
"내가 뭘 빠뜨렸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가까운’ 것으로는 부족하니까. 그가 한밤중에 ‘난 알아, 이해했어’라는 깨달음의 빛을 받으며 ‘그들은 발포하지 않았다’는 답을 떠올린 이상. 혀 위에서 꽉 터지는 과일처럼 깨달음을 느끼며 일어난 이상. - P58

"······아니야. 아홉 송이 부용은 그런 명령을 내릴 허가를 받지 않았어. 그래도 어쨌든 그 부하들은 그렇게 했지."
"전하는 마저 자라면 아주 끝내주는 전략가가 되실 겁니다." 열한 그루 월계수의 말에 여덟 가지 해독제는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였다. "맞습니다. 그녀는 허가를 받지 않았죠. 그냥 ‘결정했고’, 부하들 중 아무도 거기에 질문 하나 던지지 않았던 겁니다."
텅 빈 지도 테이블이 갑자기 무겁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어? 카우란 이후로 어떻게 되었지?"
"오, 우린 그녀를 야오틀렉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열한 그루 월계수는 이게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도 되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테익스칼란과 황제 폐하를 위해서 최대한 빨리, 용감하게 죽을 수 있는 곳으로 보냈죠." - P59

〈정말로 산소는 머리를 맑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니까.〉
갑자기 끼어드는 밝은 남자, 첫 번째 이마고의 잔해,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오로지 테익스칼란에서 지낼 수십 년의 인생을 기대하던 걸 기억하고, 거대한 야망과 마히트가 갖고 소유하고 자신의 안에 받아들이고 싶은 영리함을 지닌, 사보타주당한 이스칸드르.
‘고마워.’ - P62

다시금 마히트는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르셀로 돌아온 이래로 내내 잠에 빠져 있다가 ‘깨어난’ 듯한 느낌. 깨어난다는 건 두려움, 그리고 상쾌함과 비슷했다. 마히트의 적성과 이스칸드르의 적성이 위험 추구형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굉장히 비슷했다. 마히트는 그게 자신의 문화를 천천히 집어삼키는 문화와 사랑에 빠지는 일종의 제노필리아에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항상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간단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난 어떤 것도 혼자 내버려 둘 수가 없어.’
〈아, 결국에 정치적이 되기로 결심했군. - P63

열네 개의 못은 실제로 그녀의 ‘스파이 유형‘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진짜 스파이는 아니었다. 스원 본인을 제외한다면 그녀의 부하 중에 스파이는 없었다. 세 번째 손바닥 소속, 흔히 쓰는 말로 ‘정치장교’들인 전쟁부의 첩보 부서는 함대 사령관이 일부러 곁에 둘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열네 개의 못은 조용한 카리스마와 언어 기술, 근처에 있는 누구에게든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능력 때문에 뽑힌 병사였다. 대체로 쿠에쿠엘리후이 계급은 지휘 분야가 아니라 비장교 특수 군인의 최고 등급이었다. 부서지지 않고 구부러지는 금속처럼, 독립적으로 작업할 만큼 유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충성심을 유지할 만큼 강인했다. 가끔 그런 자들은 아주 소통을 잘해서 야만인에게 너무 늦을 때까지 그들이 테익스칼란인이라는 걸 잊게 했다. 열네 개의 못의 상대는 야만인이었다. 외계 종족이 아니었다. 문명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조차 아닌 것들 상대는 안 된다. - P66

세 가닥 해초가 손바닥을 위로 해서 한 손을 내밀었다. 거기에 아직 흉터는 없었다. 영구한 흉터가 남을 정도로 중대한 맹세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두 달 전에 마히트랑 열아홉 개의 자귀와 맹세했을 때 남은 것도 다 나아서 보이지 않았다. 육체가 신경 쓰는 건 약속의 크기가 아니다. 상처의 크기일 뿐.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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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몸속에서는 끊임없이 산소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폐에서 98% 정도의 산소 포화도로 시작된 혈액은 몸을 돌며 산소를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75% 정도의 포화도로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약 25%의 산소만이 사용되는데, 이는 우리 몸이 위급 상황에 대비해 여유분을 남겨두는 생리적 안전장치와 같다. - P282

많은 사람들이 산소 포화도가 80%대로 떨어져도 숨이 가쁘다거나 위급한 느낌을 받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조용한 저산소증Silent Hypoxemia’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이전 코로나19 환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의료진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환자들은 겉보기에 편안해 보였지만, 그들의 산소 포화도는 위험 수준까지 떨어져 있었다. 당시 다른 말로 ‘행복한 저산소증Happy Hypoxia’이라고도 불렀다. 사람들이 일반적인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산소 포화도에도 불구하고 호흡 곤란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다. 이는 자동차의 연료 게이지가 고장났는데 운전자가 모르고 그냥 운전하는 것과 같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인체는 산소 부족보다 이산화탄소 축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숨이 가쁘다고 느끼는 것은 주로 혈액 내 이산화탄소 수준이 올라갔을 때다. 일부 질환에서는 산소는 감소하지만 이산화탄소는 정상적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환자는 호흡 곤란을 느끼지 못한다. - P283

병원에서 환자의 산소 포화도가 일정 수준(보통 90%) 아래로 떨어지면, 의료진은 마약성 진통제 투여를 즉시 중단한다. 의사의 지시가 아닌 표준 프로토콜이다. 진통제를 계속 투여하면 호흡 억제가 더욱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단하면 회복될까? 대부분의 마약성 진통제는 체내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사된다. 투여를 중단하면 몸은 점차 약물의 영향에서 벗어나 호흡 기능을 회복할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이는 환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갑자기 진통제가 중단되면 통증이 다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환자들이 진통제 중단에 불만을 표하는 이유다. 하지만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필요한 안전 조치다. 현대 의학에서는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다중 모드 진통multimodal analgesia이라는 접근법을 사용한다. 다양한 종류의 진통제를 병용하여 마약성 진통제의 용량을 줄이면서도 적절한 통증 완화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 P284285

펄스 옥시미터Pulse Oximeter는 단순한 의료기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주는 창이며,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이 작은 장치는 물리학, 생물학, 의학, 그리고 공학의 경이로운 융합을 보여준다. 빛이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 혈액의 생화학에 대한 지식, 그리고 신호 처리 기술의 발전이 어우러져 탄생한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펄스 옥시미터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 몸의 상태는 항상 우리의 주관적 느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괜찮다고 느낄 때도 몸은 조용히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호를 읽을 줄 아는 것이 현대 의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 P286

수술 후 환자들이 인스파이로메타inspirometer를 사용하는 이유는 깊은 호흡을 통해 폐의 모든 부분, 특히 하부 폐염을 팽창시켜 허탈된 폐포를 열어주고 심호흡 훈련을 통해 정상적인 호흡 패턴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수술 후 통증 때문에 환자들은 깊은 호흡을 꺼리게 된다. 복부 수술 환자의 경우, 횡경막의 움직임이 복부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얕은 호흡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함정이다. 통증을 피하기 위한 얕은 호흡이 폐 허탈을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산소 포화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 P293

환자들은 종종 자신이 정규분포의 양 끝, 즉 평균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통계는 냉정하다. 인스파이로메타를 열심히 사용하지 않은 채, 산소 포화도 감소를 경험하지 않을 확률은 매우 낮다. 정규분포의 꼬리 부분에 위치하기를 바라는 것은 단순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벗어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는 보아뱀의 머리와 꼬리에 해당하는 운이 좋은 환자일지 모른다는 근거없는 우연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사실 모호한 통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부질없다. 회복을 위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살펴보는 게 더 유익하다. - P293

장은 길이가 긴 소장과 상대적으로 짧은 길이의 대장이 있는데, 음식물의 소화 속도는 소장이 훨씬 빠르다. 대장은 상대적으로 음식물이 오래 머물고 대장에 여러 미생물이 살게 된다. 유해균과 유익균이 동시에 공존하는 전쟁터로 염증도 잘 생긴다. 여러 이유로 유전적 변이도 잘 발생한다. 소장암은 흔치 않지만 대장암이 흔한 이유다. 대장 세포는 대략 4~5일마다 교체된다. 그렇다고 모든 세포가 새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 P298

암은 자연의 섭리이나 인류에게는 여전히 비극이다. 항암제 개발 분야에 헌신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자연의 법칙을 잘 알고 있음에도 가족처럼 가까운 이들의 상실이라는 개인적 동기가 연구와 암 치료 혁신에 깊은 영향과 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CAR-T세포 치료는 기존 치료법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공하며, 혈액암 뿐만 아니라 고형암 및 기타 질환으로 적용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P332

1994년 폴리 마츠링거Polly Matzinger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그녀의 ‘위험 모델Danger Model‘은 면역계가 단순히 ‘낯섦‘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손상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방출되는 ‘위험 신호‘에 반응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국경 수비대가 여권을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소방관이 화재에 출동하는 것에 가깝다는 비유였다. 마츠링거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반려견 스키Ski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키는 우리집에 들어오는 수많은 낯선 사람들—비자기—을 태연히 무시했지만, 친구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기 시작했을 때—위험 신호—는 즉시 경계 태세를 갖췄다." 이는 면역계가 ‘외국인‘을 무조건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혼란’에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적절한 비유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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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Mr. 버돗은 미국 대공황기 시절, 캔턴의 지역 신문인 〈캔턴 리파저토리〉에 작은 광고를 낸다. 그는 이 광고를 통해 어려움을 겪는 75가구에게 10달러씩을 주겠노라 제안한다. 이 익명의 기부자는 처음에는 10달러씩 줄 계획이었으나, 너무나 많은 안타까운 사연을 외면할 수가 없어 수혜자를 두 배로 늘리고 각 가구당 5달러씩을 보냈다.
1933년 미국의 대공황기에 5달러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따지면 100달러 정도가 되는 돈이었다. 당시에는 빵 한 덩이가 7센트, 달걀 12개가 29센트였다. 버돗이 보내 준 5달러로 어떤 집은 석탄을 사서 집을 훈훈하게 데웠고, 아들의 소아마비나 딸의 황달, 늙은 아버지의 결핵을 치료해 주는 의사에게 밀린 진료비를 지불하는 가정도 있었다 - P56

버돗에게 편지를 보낸 이들 중에는 샘 스톤이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도 샘 스톤을 알았다. 샘은 거리에서 그들을 지나쳤고, 그들과 같은 식당과 상점에 드나들었으며 자식들을 같은 학교에 보냈다. 샘 스톤은 자기 옷 가게에서 그들의 소매 길이를 재고, 바짓단을 줄이고, 어깨를 고쳐 주고, 작업복을 팔았다. 따라서 그 일을 실행하는 것은 샘이 익명이어야만 가능했다.
이웃들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었기에 자신들의 처지에도 민감했다. 그러니 얼굴을 알고 다시 만나야 할 사람에게 자신의 처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편지를 쓰는 일이 마음 편할 리 없었다. 그들이 버돗에게 쓴 편지는 단순한 구제 신청이 아닌 슬프고 힘든 현실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였다. - P31

외할아버지는 마술사이기도 했다. 25센트짜리 동전을 내 귀 뒤나 배꼽에서 꺼내기도 하고 손짓 한 번으로 사라지게도 했다. 그는 사람들은 늘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가 항상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은, 그래야만 타인의 관심을 조종할 수 있고 그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 P33

외할아버지는 종종 그의 낙천성과 과거를 놓아 버리려는 각오가 담긴 금언과 경구를 인용하곤 했다. 1959년 외할머니가 병들자 그는 아내에게 이런 글을 써 주었다.
"아침마다 영혼이 새로 태어나므로 나는 매일 밤 오늘의 기록을 묻는다. 오늘이나 어제의 실망이 내일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게 하지 않는다." - P34

높은 지위를 누리다 빈털터리로 전락한 사람들 중 일부는 그런 처지를 견디지 못했다. 그것은 재산을 불시에 잃어서도, 일하고 희생한 세월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려서도 아니었다. 대공황과 어쩌지 못할 상황으로 인해 곤두박질친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실패에 따르는 굴욕감이 모든 것을 악화시켰다. - P74

미국에 온 지 20여 년 후인 1920년, 쉰여덟 살인 아버지 제이콥과 아들들인 데이비드, 이사도레, 모세스는 여전히 같은 집에 살았다. 그들은 아직도 ‘핀켈스타인‘ 으로 불리며 담배를 말았다.
샘이 새 직장, 새 이름, 오하이오 주 캔턴에서의 새 삶을 약속하며 스스로를 구제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평생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캔턴은 다양한 이민자들과 뜻 있는 자에게 많은 기회가 있는, 힘겨운 중서부 철강 도시 피츠버그의 축소판이었다. - P109

토요일이면(유대인의 안식일로 1주일의 7일째 되는 날) 거시는 딸을 데리고 피츠버그에 막 도착한 유대 이민자들의 집에 갔다. 셜리는 (어머니 거시에게 그러했듯) 그들에게도 글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종종 음식으로 보답했지만, 셜리는 배가 고파도 배고프지 않다고 말하도록 미리 교육을 받았다. 셜리가 그걸 잊으면 엄마가 꼬집어서 알려 주곤 했다. 셜리는 잔돈조차 예의 바르게 거절할 줄 알았다.
그것이 으스대는 어머니가 미국인인 딸을 자랑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히브리어로 ‘계율‘을 뜻하는 ‘미츠바‘일 뿐 아니라 친절을 베푸는 행위를 뜻하기도 했다. - P110

자존심을 접고 가족복지부에 구제를 신청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수치스러운 상황들이 모든 것을 악화시켰다. 가족복지부는 자금이 워낙 부족해서 지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도 구제금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합한 지원자를 골라내기 위해 심사 과정이 점점 길어지고 훨씬 더 꼬치꼬치 캐묻게 되었다. 사정이 악화되어 간절한 이들에게 서커스라도 하듯 더 많은 후프를 통과하라고 요구했고, 그럴수록 그들의 자존감은 줄어들었다
그 과정의 의도는 사람들을 겁주어 구제금 신청자를 줄이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았다. 가족복지부는 인원 초과된 구명보트처럼 이미 침몰하고 있었다. 그 무렵 가족복지부는 악명이 높았고, 지원자를 선별하는 과정이 너무 무례해서 그런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말하는 이도 많았다. 일부 관료들은 큰 원한을 샀다. 그들은 오만하고, 누가 먹고 누가 굶을지에 대한 결정권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것 같았다. - P118

(전략)
저는 구호품을 받거나 누구에게 불평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선생님의 제안을 읽은 후 그저 처지를 말씀드리는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생님이 주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대단히 감사할 것이며 아들들과 저를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 쓰겠다고 말씀드립니다.
신의 축복이 임하시길 바라며, 복된 크리스마스와 번성하는 새해를 맞이하세요.

레이철 드호프 드림. - P126

(전략)
저는 갖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않을 테니, 제가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면 다른 사람에게 주세요.

에디스 손더스 올림. - P134

1914년 당시 스물여섯 살이던 샘 스톤은 위스콘신 주의 커노샤에 살며 블록 브러더스 백화점에서 판매 사원으로 일했다. 백화점 주인인 블록 형제가 유대인 이민자들이었다. 2년 후 그는 같은 도시의 ‘S&J 고틀리브 포목상 이라는 곳에서 일했다.
그 시절의 문서는 단 한 가지가 남아 있다. 구두 상점의 편지지에 샘은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출신의 시인 에드먼드 밴스 쿡의 시를 옮겨 적었다. 제목은 ‘당신은 어떻게 죽었습니까?’이다. 첫 연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앞을 막아서는 고난을
단호하고 즐거운 심정으로 공략했는가?
아니면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
환한 낮으로부터 얼굴을 숨겼나?
아, 고난은 1톤 혹은 고난은 1온스,
혹은 고난은 당신이 만드는 그대로이니.
중요한 것은 그대가 상처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고난을 어떻게 감수했는가가 중요할 뿐. - P138

샘의 인생에 있는 많은 모순 중에는 과거를 감추려는 의지가 강했으면서도 언제나 과거를 안고 살았다는 것도 있다. 그는 지속적으로 과거를 지혜의 창고로 이용하면서, 초라한 시작과 힘든 인생 고비, 교육 부족에 대해 항변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새로 만들었을지 모르지만(이름, 원래 국적. 생일을 바꾸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 P140

본래 모습이 되고 싶으면 먼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샘 스톤의 유일한 모순이었다. - P141

샘 스톤은 형제들과의 골 깊은 갈등을 헤치고 인생을 개척해 나갔다. 하지만 전혀 상처받지 않은 게 아니었다. 돈에 대한 태도, 어린 시절과 출생지를 지우려는 결심, 반유대주의와 나치에 대한 과민 반응은 초년에 입은 상처의 흔적들이었다. 또 오늘까지 내가 모르는 상처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과 연민이나 유머 감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런 장점들을 보존하기 위해 그는 자신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미국 태생이라는 주장만이 아니었다. ‘B. 버돗‘은 그가 타인들에게 준 선물이었지만 자신에게 준 선물이기도 했다. 그것을 통해 두 번째 기회를 얻고, 다른 사람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을 국가와 아버지라는 두 독재자 휘하에서 보냈다. 어릴 때와 사춘기에는 끔찍한 결핍과 불의에 휩싸여 무기력했다. 마침내 남을 도울 위치가 되었다는 것은 그의 삶에서 큰 변화를 의미했다. 그가 갈구한 것은 바깥의 인정이 아니라, 그런 베품이 주는 내적인 확인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선언이었다. 또 다른 세상에 살지만 많은 것을 공유한 이들의 가치에 대한 선언이기도 했다. - P146147

피츠버그의 〈유대인의 기준〉에 실린 그의 부고 기사에 유자녀들의 이름이 실렸다. 아들들의 이름은 ‘새뮤얼 J., 맥스, 데이비드, 알 핀켈스타인‘ 이었다. 모두 오하이오 주 캔턴에 거주했다. 그리고 형제가 한 사람 있다고 나와 있다. 부고 기사이기는 하지만 ‘핀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다시 쓴 것은 고인에게 한 마지막 인사요. 양보였을 것이다.
그즈음 네 아들 모두 ‘스톤‘이라는 성을 쓴 지 이미 오래였다. 아들들은 원래 성에 담긴 부담을 멸시했지만, 아버지 제이콥은 가짜 성을 쓰는 것을 욕했다. 샘은 마지막 반항으로 아버지의 사망 신고서에 ‘핀켈스타인’이 아닌 ‘샘J. 스톤‘으로 서명했다. - P151152

샘 스톤과 민나 아돌프의 결합은 샘이 모든 기대를 초월해서 일어섰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또 그가 재산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얻기 어려운 ‘계급‘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 시절 캔턴에서는 샘과 민나처럼 큰 사회적 격차를 뛰어넘는 만남이 드물었다. 계층 간에 선이 명확했고 대부분 그 선을 지켰다. 캔턴에서는 재산보다는 문화나 매너, 가정 교육 같은 무형의 자산으로 사람을 구분했다.
샘과 민나의 교육 배경과 나이 차이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딸이 더 세련된 배우자를 얻기를 소망했던 민나의 부모는 몹시 실망했고, 벼락부자를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 상류층에서는 비난을 했다. 하지만 이런 난관은 서로를 더욱 끌리게 만들었다. 또 샘은 부족한 세련미를 매력으로 채웠다. - P159

(조지프, 매티 리처즈 부부가 이룬) 가족은 엄격한 생활을 했지만 금요일 밤에는 아이들이 동네 친구들과 만화를 볼 수 있었다. 케네스는 사냥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탄알을 아껴야 했고 오발하면 아버지에게 총을 1주일간 몰수당했다. 조지프는 "난 그보다는 더 잘 가르쳤다"고 말하곤 했다. 과연 그랬다. 케네스는 나중에 특수 부대의 저격수로 명사수가 되었다. - P166167

75년이 흐른 후까지도 혈연, 사랑, 고난으로 연결된 브라이엄과 번브라이어 집안의 후손들에게 대공황은 멀리 있지도, 추상적인 일도 아니다. 모드의 손자인 예순여덟 살의 토머스 번브라이어는 집안에 내려오는 대공황기의 교훈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는 할머니가 고무줄을 버리지 않고 문 손잡이에 걸어 모은 일이며 할아버지가 나뭇조각을 버리기 전에 나사못을 빼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 역시 대공황의 유산이다. - P177

그(존 기시너)는 또 평화로운 사람이었다. 1930년대를 거치며 그는 지붕 사업을 잘하려 애썼지만,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다른 기회가 생겼다. 듀퐁 사에서 군수품 공장을 짓는 일에 참여하라는 제의를 받은 것이다. 기시너는 군수 산업에 기여한다는 게 불편해서 사양했다. 대신 그는 아들 칼과 함께 고향인 테네시 주의 대규모 건설 현장으로 갔다.
(중략) 전쟁이 끝난 후에야 기시너는 자신이 일하던 시설의 목적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원자 폭탄에 쓰이는 농축 우라늄을 제조하는 곳이었고, 그 폭탄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다. 군수 산업을 꺼리던 그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 P182183

‘충분함‘은 대공황기의 대표적인 표현이었다.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의 척도였다. 그것은 소비가 아닌 보존에 대한 말이었다. ‘충분함‘은 전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말이고, 신뢰의 몸짓이었다. 또 반항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것은 축복을 크게 헤아리고, 영혼을 굳건하게 하고, 절망이 틈타지 않게 하는 말이었다. - P217218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샘의 18번 건배사를 떠올렸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헤매지 않았고,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가정부와 키스한 일도 없었습니다.
또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보험금은 지급이 거절되었습니다.
보험사 측은 그는 산 적이 없기에 죽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이 샘의 건배사를 수십 번 들었고, 그때마다 가장으로서의 눈빛을 보았다. 우리 손자들에게 그 건배사는 환영사요. 훈계할 수 있는 가장의 권한이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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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호텔을 나섰을 때 밖에는 비가 약하게 흩뿌리고 있었는데 이런 비는 10월의 도쿄에서 간간이 만나는 비다. - P9

멀찌감치서 봤음에도 어쩐지 몸을 가누는 자세나 걸음걸이만으로 얼굴이 확실히 분간되기도 전에 엄마임을 알아차렸다. 가까이에서 보고는 여전히 고심해 옷을 차려입는 걸 알 수 있었다. 갈색 셔츠와 진주 단추, 맞춤 바지, 자잘한 옥 장신구들. 늘 그랬다. 비싸지는 않아도 재단과 맵시와 질감의 세세한 조합을 생각해 선별한 옷을 입었다. 이삼십여 년 전 영화에 나오는 잘 차려입은 여성처럼 예스럽고도 우아해 보였다. - P10

여행 시기는 엄마도 나도 늘 선호해온 계절인 가을로 잡았다. 정원과 공원도 그때 가장 아름다울 터였다. 계절 끝자락, 대부분의 것들이 사라진 때. 여전히 태풍철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기상예보에서 여러 차례 주의를 주었고, 우리가 도착한 뒤로 비가 꾸준히 내리고 있었다. - P12

가끔은 잠시 멈추고 그간 일어난 일을 생각해도 좋은 것 같다고, 어쩌면 슬픔을 생각하는 게 정작 행복을 느끼는 길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 P24

수로의 가파른 벽에 난 식물이 아래로 줄기와 잎을 드리우고, 수면엔 물 위의 세계가 찰랑거리며 조심스러운 인상으로 번져 있었다. 거리를 따라 난 식당과 카페마다 낮고 어둑한 불빛만 각등처럼 밝히고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있는데도 작은 마을에 온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은 내가 일본에서 특히 좋아하는 경험 중 하나로,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이 또한 상투와 진실의 중간쯤 있었다. 아름답다고 내가 말하자 엄마는 웃음을 지었지만 동의하는 건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 P2425

결국 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딸이 며칠이고 같은 옷을 입게 두고, 필요할 때 아랫단을 꿰매 달아주고, 저녁때 따뜻한 음식을 해 먹이고, 부족한 이해심으로 딸을 바라보고, 온갖 불충분한 방법으로 위로해주는 것뿐이라고 했다. - P33

나는 딱히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어쩐지 이제 와 그 안에 깃든 정겹고 공교한, 한 편의 시와 같은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다. - P35

그리고 아직 기운이 남았다면 같이 가봤으면 하는 미술관이 또 있다고, 한참은 아니고 몇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 사실 이 미술관은 그보다 멀었다. 엄마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걱정 말라고, 오늘은 충분히 봤으니 이만 호텔에 돌아가 쉬자고 하면 그만일 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제안을 돌이키는 대신 공기 중에 떠 있게 둔 채로 살갑고도 단호한 압박을 가했다. 잠시 후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그릇을 정리했다. - P42

그 강의에도 나는 늘 해왔던 대로 대처했다. 희곡 작품을 모두 찾아 읽었고 이어 그 작품을 다룬 책을 줄줄이 찾아 읽었으며 그 책에 대한 다른 책까지 찾아 전부 섭렵했다. 영화를 찾아보고 예술가와 감독과 시인에 대해 읽었다. 그럴 때마다 빛의 속도로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평생 한 차원에서 살아왔는데 그 차원의 직물 자체가 문득 부욱 찢어지며 전혀 다르고 전혀 별개인 우주가 드러난 것만 같았다. 텍스트 하나를 끝낼 때마다 이제 됐다. 끝에 다다랐다 싶었지만 그다음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어 어느새 내 사고의 원단이 터지고 사방으로 공기가 불어닥치고 모든 감각이 압도되는 가운데 막대하고 낯선 공간으로 또다시 낙하하는 경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앎이란 정말 영약이고 또 중독성 강한 약물이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기어이 손에 닿지 않는 것이 있었다. - P4748

하루는 지난 주말에 자기 아버지 집이 태풍의 여파로 물에 잠겼다고 공언했다. 모든 걸 잃었다고 했다. 어떻게든 구할 게 있나 싶어 함께 책과 가보, 사진 앨범 같은 걸 찾아 물을 가르며 잔해를 살폈다고 했다. 아버지와 아버지 반려자를 난민을 맞아들이듯 집에 들였고 친구들에게서 옷가지와 침구를 얻었다고 했다. 강사의 얼굴에 상실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설움이기도 할 자신의 설움을 숨기려 들지 않았고 나로서는 이 점이, 그러니까 어떻게든 그런 감정을 감추려 들거나 우리 가족이라면 부끄럽게 여겼을 소동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원통함과 슬픔으로 오롯이 누리는 것이, 갓 잡은 큰 짐승의 가죽처럼 몸에 두른 그 태도가 몹시 놀라웠다. - P49

나는 강사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과제 글을 쓸 때는 점수를 잘 받겠다는 생각에서 나아가 강사를 염두에 두며 어느 때보다 깊이와 다층적인 음영을 더하려 노력했다. 그런 한편 이런 성실함이 과한 건 아닐지, 좋은 인상을 남기는 대신 되레 이렇게 애쓰는 나를 강사가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도 돼, 열심히 애쓰는 동시에 겉으로는 내게 제법 어울리는 외관임을 그사이 알아챈 차분하고 절제된 모습을 유지했다. - P4950

우리는 춤추듯이 대화를 나눴고, 의식이 혼미해질 때까지 춤을 췄다. 모든 게 더없이 아름답다고 저녁 내내 생각했고 어쩌면 입 밖에도 냈는지 모르겠다. 이런 세계가 존재하고, 내가 어쩌다 거기 발 들이게 되었다는 게 통 믿기지 않았던 것 같다. - P52

현관에 가방을 내려놓 고 방방을 오가며 구경했다. 대낮에 보고야 집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한쪽 창을 통해 빛발이 쏟아져 들어와 벽을 치는 모습이 현대 미술관의 덩그렇게 비워 둔 벽감과 얼마나 닮았는지 알 수 있었다. - P5455

과학 실험 방법을 상세히 정리한 매뉴얼을 따르듯 요리책에 적힌 조리법을 조심히 따라가며 매일 저녁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고, 손에 쥔 묵직한 팬과 젓개의 무게와, 물이 끓으면 수증기를 어찌나 말끔히 흡입하는지 마법이 따로 없다 싶고 워낙 조용해 전원을 안 켰나 착각하게 만드는 배기팬에 쾌감을 느꼈다. - P56

그곳에서의 생활은 넉넉하고 포근했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집이 점차 편해졌다. 마지막날 밤에는 커다란 욕조 가득 살을 델 정도로 뜨거운 물을 채우고 호박색 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개가 욕실 바닥에 누워 쉴 동안 욕조에 몸을 담갔고, 물이 식으면 발로 온수 꼭지를 틀어 수온이 오를 때까지 물을 보충했다. 이렇게 두 시간 가까이 반복하며 수위가 욕조 가장자리까지 차올라 물이 넘쳐흐를 지경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마개를 당기고 욕조에서 나왔다. - P5859

강사 집에서 내가 실험 삼아 해본 것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매일 저녁 와인 한 잔을 곁들여 퇴폐적이다 싶을 고독 속에 앉아 그날의 일과를 되새겼던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쩐지 내 인생을 안에서 밖으로가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 P60

엄마는 늘 젊어 보였는데, 그 앳됨이 내가 품은 엄마의 상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이제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행 중간중간에 엄마의 옆모습을, 피곤해하거나 쉬고 있는 옆얼굴을 바라보며 이제 엄마도 할머니임을 깨달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다시 이 사실을 잊었고, 어린 시절 내내 지녔고 이상하게도 고정되어 있는 엄마의 상과 동일한 모습밖에 보지 못하다가 며칠 뒤 다시 그 상이 깨지는 경험을 되풀이했다. - P9495

시중보다 격식에 방점이 찍힌 방식으로 손님 앞에 놓인 그릇과 접시 외 식기를 거둘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뒤치다꺼리하는 것에 다름 아닌 업무 특유의 극심한 고통이 누그러졌다. - P102

삶에 있어 최선은 욕망받는 것이라고, 내가 욕망하지 않더라도, 나를 욕망하는 사람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만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게 최선이라는 가르침을 어떤 경로로든 받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내가 어디서 배웠는지는,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 P104

나는 빈병을 들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내내 식당 뒤쪽에 혼자 남은 동료와 그가 혼자 곡예를 하듯 쌓고 내놓고 치우고 있을 그릇과 내가 놓치고 있는 다른 주문을 생각했다. 이 남자가 내 행동과 내 감정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실정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더욱이 그쯤 되자 맹렬하다 못해 순수한 지경에 이른 내 여러 감정이 걷잡을 수 없는 열기처럼 뻗어 나가고 있었다. 남자가 드디어 말을 멈췄고, 나는 주방으로 돌아가 빈병을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그때 느낀 감정을 당시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는데. 그 사람이 내게서 무언가를 앗아간 기분이었다. 수영장에서 홀로 누리는 행복감과 맞닿는 무엇. 그 그림을 보며 느낀 기분의 언저리에 있는 무엇을. 이런 것들은 소중했고 내게는 아직 신비였는데, 이제 그로부터 내가 더 멀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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