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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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모르나 교토의 가쓰라리큐(일본 왕족의 별장옮긴이)에는 을 본뜬 문고리가 많이 있다고 한다.

언젠가 그 문고리를 느긋하게 손질하고 싶어.”

그 장면을 상상하는지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던 형 모습을 기억한다.

나도 형 일을 돕게 된 이후 그 문고리를 사진집 등을 통해 보았다.

확실히 한자 달 월자를 본뜬 모양이나 달 형태를 그대로 모방한 모양 등 가쓰라리큐를 위해 특수 제작한 그 문고리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지금이라면 형이 넋을 잃는 것도 이해하지만, 당시 문고리라는 존재는 우리 형은 어쩌면 조금 별난지도 모르겠다라고 인식한 계기에 불과하다. -15~16

 

 20247월 말 8월 초 일본에서 이-푸 투안段義孚(중국 청말민초淸末民初의 군벌 돤치루이段祺瑞의 종손從孫이다.)공간과 장소를 다 읽고, 함께 챙겨 간 온다 리쿠의 스키마와라시를 이어 읽었다. 하필 주인공 고케쓰纐纈 형제가 골동품상에 간이주점을 운영하는 덕분에 여름 여행에서 넘긴 짧은 페이지가 더 각별했다. 게다가 하필 교토의 가쓰라 리큐桂離宮, 하필 그 문고리의 달 모양이라니. 굳이 이 이궁에 여러 번 다녀왔지만, 그곳의 장지문 문고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살펴본 기억이 없다. 달구경을 위한 노대露臺인 쓰키미다이月見台에서 보는 보름달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만 상상했을 뿐이다. 경내의 모든 건물을 공개하는 곳은 아니지만, 다시 간다면 볼 수 있는 달이라도 놓치지 않아야겠다.

 

나는 타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버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127

약속한 가게가 있는 곳은 신바시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커다란 상업빌딩이었다.

옛날에 지어진 빌딩은 어쩐지 분위기가 독특하다. 묵직한 공기, 느긋한 통로 공간. 전체적으로 만듦새에 여유가 있고 잘 닦여진 바닥이 둔탁하게 빛난다. -133~134

 

 소녀로 나타난 미지의 존재 스키마와라시와 화자인 산타散多가 지닌 미지의 능력이 이 소설의 축을 이루고, 그 특유의 미스터리적 분위기가 여름에 사뭇 어울렸다. 스키마와라시가 어느 계절에나 여름 원피스 차림에 잠자리채와 채집통인 도란胴乱을 들고 돌아다닌 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정작 내킨 부분은 단서로 쓰인 건축 자재로서의 타일, 그 타일을 만지기 위해 돌아다닌 여러 고풍스러운 건물의 묘사였다. 산타의 형 다로太郞의 취향인 문고리처럼 건축, 그중에서도 특히 작은 요소를 부각한다는 점이 마음에 내켰다. 인상적인 건물들을 만날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 이입하고 경험한 까닭이다. 다양한 건물을 감각하는 산타만의 방식이 그가 비로소 타일을 만질 때 펼쳐지는 불가사의한 복선들까지도 설득력을 부여했다. 레트로한 정취를 구현하는 온다 리쿠다운 필력이 발휘된 셈이다.

 

그녀들의 역할은 끝났다.

다이고 하나코에게 그 도란을 전해준 것으로 이제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밝은 여름이 눈앞에서 달려간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여름이라는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541

 

 가장 작은 요소에서 낡고 또렷한 환상이 펼쳐질 정도로 공들인 건물들을 정성스레 묘파한 것은, 결국 그런 건물들을 구축한 일본의 여름과 같았던 한 시대가 지나간 까닭이다. 일본 곳곳에서 이 나라가 눈부셨던 시대를 세공한 건물들, 게다가 이제는 심심찮게 철거되는 그런 건물들을 보며, 온다 리쿠는 이 여름을 전송한 듯하다. 한 시대와 기억의 소멸을 감수하는 정서의 밀도에 비해 서사가 치밀하거나 참신하지 못한 면도 분명히 있다. 이 약점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애초에 그 부분을 내가 의식하거나 기대하지 않은 덕분이다. 작가도 그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문고리와 타일 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라면 그것도 납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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