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H -하
세노오 갓파 / 동방미디어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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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날이 맹위를 떨치던 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일방적인 국민의 희생과 무의미한 전쟁을 강요하는 군국주의자들의 외침은 기세를 더해갔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더욱 답답한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다. 만약 나라면 단 하루도 견뎌내지 못했을 시간이었음에도 나름대로 버텨낸 H는 과연 '만만찮은 그러나 순수한' 소년이었다. 만만찮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신문을 통한 군부의 간사한 발표를 보며 그에 순종하는 언론을 가차없이 비판하지만 자신의 가슴속에만 담아두는 기개와 인내였다. 순수하기도 했다. 그렇게도 미워하고 혐오하는 다모리 교관의 인간적인(?) 허물을 듣는 순간 그 난폭함의 허상을 정확히 깨치고 연민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그런 면은 H가 지나치다고 혀를 내밀 정도로 '절대' 박애주의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증거였다.

 하지만 기총소사 대공습으로 생사를 넘나들던 그의 모습은 잔잔한 호수 같이 늘 깊게 생각하고 호기심 많던 H라고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하며 현실적으로 변모했다. 그 이유가 열도 구석구석에 불어오던 전운 때문인가 싶어 한편으로는 착잡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티 없던 소년을 야누스로 조각한 전쟁의 광풍은 그들이 전쟁을 통해 지키려고 했던 '국체(國體)' 천황의 항복선언으로 끝났다. 결국 남은 것은 황량한 벌판뿐이다. H에게는 다시금 시류에 저항하는 아웃사이더의 의지를 굳혀준 동시에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던 어른들에게는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되었다. 민주주의로 바뀌기는 했지만 새로운 역겨움의 시작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전쟁 전이나 후나 선량하고 소신있는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현실에 대한 욕구불만, 자신을 돌보지 않는, 꽉막힌 듯한 '사랑'의 어머니에 대한 답답함이 뭉쳐져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몰리는 상황에서는 지난날의 '남자 언니'를 떠오르게도 했으나 그와는 달리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그는 '만만찮은' 소년이었다. 결국은 떠나고 말아서 너무 슬펐지만 그를 소중히 보살펴준 하다노 아저씨를 영화 주인공인 무호마쓰와 비교하는 순수함도 남아있었고 말이다. 처음에는 기다리던 종전 후에 정작 너무나도 변한 H의 모습에 당혹스러웠지만 역시 겉껍질만 변한 책 속의 현실에 실망한 나를 돌아보며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한 밤에 교련 사격부로서의 H의 추억이 담긴 총을 묻어버리는 상황까지 몰고 간 '백호대'는 아예 그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이었다. 이 변화를 조롱하면서 그 안에서 저항한 H는 그가 꿈꾸고 힘쓰던 그림에의 재능으로 포기했던 졸업장까지 손에 넣고 그만의 승리를 품에 안았다. 비록 구석진 아틀리에의 길은 힘들겠지만 그의 꿈은 언제까지도 꺼지지 않으리라. 아름답게 타오르는 피닉스같이……(1998. 8. 9∼11, 1998. 8. 11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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