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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4세 1
하인리히 만 지음, 김경연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피레네는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품고 있는 새파란 하늘, 나무들, 그리고 냇물 속에서 그 푸르름을 온 몸 가득 채운 소년이 자라고 있었음을...... 하지만 소년이 자리잡은 곳은 그 빛깔에 걸맞지 않은 음침한 속박 속이었다. 어미니의 종교적 야망과 카타리나 태후의 정치적 권모의 틈새가 유년 시절 그의 위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기 상반된 여인들에게 유효적절하게 이용당하던 그 시절부터 소년 앙리의 탈출구가 여인의 아름다움이었다는 데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화려한 로맨스는 일찍부터 들어왔었지만 그 시작이 이렇게도 빨랐을 줄이야. 물론 앙리는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그 한 과정으로 '종교의 화신'인 잔느의 아들인 앙리가 열렬한 믿음의 길이 아니라 카타리나 태후의 냉정한 현실의 길을 선택한 것은 결국에는 어머니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뜻이었으리라. '프랑스의 왕', 그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유럽 제1의 군주를 자처하던 펠리페 2세의 스페인과 맞닿은 땅, 나바르의 왕위 계승자인 앙리는, 신의 계시를 받은 듯한 어머니와는 달리 자신이 프로테스탄트로서 프랑스의 옥좌에 오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 피를 불러올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 모자(母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음모의 화신' 카타리나 태후의 천적이자 그녀를 능가하는 이가 다름 아닌 펠리페 2세이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가엾은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따르는 신앙의 동지들과 신이 그들을 선택하시리란 믿음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 믿음이 아니고서야 한 어머니의 모든 것을 지닌 어린 소년을 적의 소굴에 홀로 남길 수는 없었을 테니. '어린 소년' 앙리에게도 그 믿음이 있었을 지는 별문제일지라도 말이다.
앙리는 그 곳에서 카타리나 태후의 충실한 카드였다. 위대한 발르와 가문과 그녀의 아들 아래 전 프랑스가 무릎 꿇었다는 상징이 바로 갓 열 살의 앙리였으니 말이다. 이런 소년이기에 바다 건너 엘리자베스의 눈길까지도 받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나이 차이는 도버해협보다도 넓었다. '하나의 프랑스'는 이제 겨우 나라의 번영을 만끽하려는 그녀에겐 느닷없는 돌출변수였다고 해도 말이다. 과거, 미래를 불문하고 프랑스는 국내가 안정되면 '필연적으로' 영국과의 충돌을 겪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지 발르와의 사고뭉치 공주와 나바르의 양치기 국왕의 결혼만으로 종교를 넘어선 하나의 프랑스가 되리란 위대한 여왕의 걱정이 단지 기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로 사랑하는 결혼 당사자들과 메디치 가의 카타리나 태후, 심지어는 나이 어린 누이 카트린과 끝없는 투쟁과 음모 속에서 눈감은 잔느 여왕까지도.
이 '미완(未完)의 통일'은 두 왕족의 장엄하고 화려한 결혼식에서 절정을 이룬다. 앙리와 그가 대표하는 신교도들에게 이 의식의 뜻은 언제 붉은 피로 물들 샤를 국왕의 미래에 보다 가까워졌다는 것뿐이었지만, 앙리로써는 이 포동포동한 공주를 먼저 손에 넣은 기즈와의 인연을 잊을 수 없으리라. 이 결혼을 계기로 드높아질 왕실 속의 자신의 위상에 빠져드는 청년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악연과 음모의 2중주, 그리고 아스라이 들리는 피의 합창이. (2000∼1. 18∼31, 2000. 2. 3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