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우리 몸속에서는 끊임없이 산소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폐에서 98% 정도의 산소 포화도로 시작된 혈액은 몸을 돌며 산소를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75% 정도의 포화도로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약 25%의 산소만이 사용되는데, 이는 우리 몸이 위급 상황에 대비해 여유분을 남겨두는 생리적 안전장치와 같다. - P282

많은 사람들이 산소 포화도가 80%대로 떨어져도 숨이 가쁘다거나 위급한 느낌을 받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조용한 저산소증Silent Hypoxemia’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이전 코로나19 환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의료진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환자들은 겉보기에 편안해 보였지만, 그들의 산소 포화도는 위험 수준까지 떨어져 있었다. 당시 다른 말로 ‘행복한 저산소증Happy Hypoxia’이라고도 불렀다. 사람들이 일반적인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산소 포화도에도 불구하고 호흡 곤란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다. 이는 자동차의 연료 게이지가 고장났는데 운전자가 모르고 그냥 운전하는 것과 같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인체는 산소 부족보다 이산화탄소 축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숨이 가쁘다고 느끼는 것은 주로 혈액 내 이산화탄소 수준이 올라갔을 때다. 일부 질환에서는 산소는 감소하지만 이산화탄소는 정상적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환자는 호흡 곤란을 느끼지 못한다. - P283

병원에서 환자의 산소 포화도가 일정 수준(보통 90%) 아래로 떨어지면, 의료진은 마약성 진통제 투여를 즉시 중단한다. 의사의 지시가 아닌 표준 프로토콜이다. 진통제를 계속 투여하면 호흡 억제가 더욱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단하면 회복될까? 대부분의 마약성 진통제는 체내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사된다. 투여를 중단하면 몸은 점차 약물의 영향에서 벗어나 호흡 기능을 회복할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이는 환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갑자기 진통제가 중단되면 통증이 다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환자들이 진통제 중단에 불만을 표하는 이유다. 하지만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필요한 안전 조치다. 현대 의학에서는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다중 모드 진통multimodal analgesia이라는 접근법을 사용한다. 다양한 종류의 진통제를 병용하여 마약성 진통제의 용량을 줄이면서도 적절한 통증 완화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 P284285

펄스 옥시미터Pulse Oximeter는 단순한 의료기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주는 창이며,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이 작은 장치는 물리학, 생물학, 의학, 그리고 공학의 경이로운 융합을 보여준다. 빛이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 혈액의 생화학에 대한 지식, 그리고 신호 처리 기술의 발전이 어우러져 탄생한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펄스 옥시미터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 몸의 상태는 항상 우리의 주관적 느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괜찮다고 느낄 때도 몸은 조용히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호를 읽을 줄 아는 것이 현대 의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 P286

수술 후 환자들이 인스파이로메타inspirometer를 사용하는 이유는 깊은 호흡을 통해 폐의 모든 부분, 특히 하부 폐염을 팽창시켜 허탈된 폐포를 열어주고 심호흡 훈련을 통해 정상적인 호흡 패턴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수술 후 통증 때문에 환자들은 깊은 호흡을 꺼리게 된다. 복부 수술 환자의 경우, 횡경막의 움직임이 복부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얕은 호흡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함정이다. 통증을 피하기 위한 얕은 호흡이 폐 허탈을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산소 포화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 P293

환자들은 종종 자신이 정규분포의 양 끝, 즉 평균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통계는 냉정하다. 인스파이로메타를 열심히 사용하지 않은 채, 산소 포화도 감소를 경험하지 않을 확률은 매우 낮다. 정규분포의 꼬리 부분에 위치하기를 바라는 것은 단순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벗어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는 보아뱀의 머리와 꼬리에 해당하는 운이 좋은 환자일지 모른다는 근거없는 우연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사실 모호한 통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부질없다. 회복을 위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살펴보는 게 더 유익하다. - P293

장은 길이가 긴 소장과 상대적으로 짧은 길이의 대장이 있는데, 음식물의 소화 속도는 소장이 훨씬 빠르다. 대장은 상대적으로 음식물이 오래 머물고 대장에 여러 미생물이 살게 된다. 유해균과 유익균이 동시에 공존하는 전쟁터로 염증도 잘 생긴다. 여러 이유로 유전적 변이도 잘 발생한다. 소장암은 흔치 않지만 대장암이 흔한 이유다. 대장 세포는 대략 4~5일마다 교체된다. 그렇다고 모든 세포가 새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 P298

암은 자연의 섭리이나 인류에게는 여전히 비극이다. 항암제 개발 분야에 헌신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자연의 법칙을 잘 알고 있음에도 가족처럼 가까운 이들의 상실이라는 개인적 동기가 연구와 암 치료 혁신에 깊은 영향과 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CAR-T세포 치료는 기존 치료법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공하며, 혈액암 뿐만 아니라 고형암 및 기타 질환으로 적용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P332

1994년 폴리 마츠링거Polly Matzinger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그녀의 ‘위험 모델Danger Model‘은 면역계가 단순히 ‘낯섦‘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손상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방출되는 ‘위험 신호‘에 반응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국경 수비대가 여권을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소방관이 화재에 출동하는 것에 가깝다는 비유였다. 마츠링거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반려견 스키Ski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키는 우리집에 들어오는 수많은 낯선 사람들—비자기—을 태연히 무시했지만, 친구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기 시작했을 때—위험 신호—는 즉시 경계 태세를 갖췄다." 이는 면역계가 ‘외국인‘을 무조건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혼란’에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적절한 비유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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