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호텔을 나섰을 때 밖에는 비가 약하게 흩뿌리고 있었는데 이런 비는 10월의 도쿄에서 간간이 만나는 비다. - P9

멀찌감치서 봤음에도 어쩐지 몸을 가누는 자세나 걸음걸이만으로 얼굴이 확실히 분간되기도 전에 엄마임을 알아차렸다. 가까이에서 보고는 여전히 고심해 옷을 차려입는 걸 알 수 있었다. 갈색 셔츠와 진주 단추, 맞춤 바지, 자잘한 옥 장신구들. 늘 그랬다. 비싸지는 않아도 재단과 맵시와 질감의 세세한 조합을 생각해 선별한 옷을 입었다. 이삼십여 년 전 영화에 나오는 잘 차려입은 여성처럼 예스럽고도 우아해 보였다. - P10

여행 시기는 엄마도 나도 늘 선호해온 계절인 가을로 잡았다. 정원과 공원도 그때 가장 아름다울 터였다. 계절 끝자락, 대부분의 것들이 사라진 때. 여전히 태풍철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기상예보에서 여러 차례 주의를 주었고, 우리가 도착한 뒤로 비가 꾸준히 내리고 있었다. - P12

가끔은 잠시 멈추고 그간 일어난 일을 생각해도 좋은 것 같다고, 어쩌면 슬픔을 생각하는 게 정작 행복을 느끼는 길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 P24

수로의 가파른 벽에 난 식물이 아래로 줄기와 잎을 드리우고, 수면엔 물 위의 세계가 찰랑거리며 조심스러운 인상으로 번져 있었다. 거리를 따라 난 식당과 카페마다 낮고 어둑한 불빛만 각등처럼 밝히고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있는데도 작은 마을에 온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은 내가 일본에서 특히 좋아하는 경험 중 하나로,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이 또한 상투와 진실의 중간쯤 있었다. 아름답다고 내가 말하자 엄마는 웃음을 지었지만 동의하는 건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 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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