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들도 대부분 동료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작되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나는 책을 모두에게 (적어도 그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로 생각하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내게 서간체는 (이러한 의미에서) 글쓰기와 소통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교수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네요. (올리버 색스/O) - P1314
우리의 발걸음이 우편함 앞에 멈춰 설 때마다 만년의 우정이 한 뼘씩 자라났다. (수전 배리/S) - P14
저는 도서관에 가서 과학 논문을 뒤졌습니다. 찾을 수 있는 입체시 검사를 모조리 다 해 봤고 전부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수술 이후에 선물받은 장난감 입체경에선 원래 3차원 이미지가 보여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부모님댁에서 그 오래된 장난감을 찾아 들여다봤지만 3차원 이미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볼수 있었는데도요. (S) - P20
2005년 1월 3일
배리 교수님께,
(STS-72 임무가 있기 전날이었던) 그날 밤과 몇 년간 두 분께 (또는 두 분의 가족 분들께) 크리스마스/새해 축하 카드를 받았던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죄송하게도 제가 답장을 보낸 적은 없었지요. 그러나 교수님의 29일 자 편지를 받고 저는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새로 만난 (시각적) 공간의 ‘세계‘를 이토록 열린 마음으로 경탄하며 맞이하고—비록 카우아이에서는 고소공포증을 느꼈지만—그 경험을 이토록 섬세하고 시적이고 정확하게 설명하시다니요. (O) - P33
양안 체계가 양쪽 눈에서 얻은 이미지를 융합하려면 두 눈이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시여서 양쪽 눈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봤다. 양 눈의 입력값을 동시에 처리하면 복시 증상이 나타났으므로, 어릴 때부터 한쪽 눈에 입력된 정보를 무시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 결과 나에게 있었을지 모를 양안 세포들은 한쪽 눈에서는 강한 입력값을, 다른 한쪽 눈에서는 매우 미약한 입력값을 얻었다. 그러나 시력 훈련에서 양안 통합 운동을 하면서 두 눈의 초점을 동시에 같은 곳에 맞추는 법을 배웠다. 이로써 양안 세포에 상호 연관된 입력값이 전달되었다. 이제 양안 뉴런은 양쪽 눈에서 얻은 정보를 융합할 수 있었고, 나는 세상을 3차원으로 보기 시작했다. (S) - P52
박사님은 대다수 사람이 입체시의 가치를 모를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죠.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한 안과 의사처럼 비운의 사건으로 입체시를 잃은 후에야 그 중요성을 깨달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은 그저 이 세상 자체가 3차원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세상이 3차원으로 보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끈 이론을 논외로 치자면요). 자신의 뇌가 2차원 망막에서 얻은 정보를 해석하고 처리해서 3차원 이미지를 구성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유클리드와 뉴턴, 다빈치 같은 초기 광학의 위대한 연구자들조차 입체시를 발견하거나 기술하지 않았죠. (S) - P5455
게다가 올리버의 편지에는 아주 솔깃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그는 내 사례를 노벨상 수상자이자 시각 발달 분야에서 "결정적 시기"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장본인인 허블David H. Hubel 박사와 비셀Torsten Wiesel 박사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올리버의 말마따나 두 과학자가 정말로 "생각이 활짝 열린 사람"이라면 용기를 끌어모아 편지를 써 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2005년 5월 7일, 데이비드 허블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허블 박사는 5월 27일에 답장을 보내 늦어서 미안하다고, 이제 막 대상포진에서 회복했다고 썼다. (중략) 허블은 이렇게 썼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자면, 교수님에게는 줄곧 입체시 능력이 있었지만 안구 부정렬 때문에 그 능력이 발휘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구가 정렬 되어 이미지가 융합되자 입체시가 발현된 것이지요. 그리고 훈련을 계속하면 입체시가 개선될 거라고도 말했다(정말로 그랬다). 허블은 올리버에게도 편지가 와서 같은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편지를 마무리하며 내게 막 출간된 저서 《뇌와 시지각Brain and Visual Perception》을 보내 주겠다고 했다. 허블 박사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어느 정도는 결정적 시기를 발견한 공로 덕분이었다. 나의 시력 변화는 이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례였는데도 그는 내 말을 믿어 주었다. 이메일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을 때 내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S) - P7576
또 그는 내가 스스로 좀 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오로지 내 시각적 경험이 특이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밤늦게까지 정보를 찾고 편지 폭격을 퍼부은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대답했다. 네, 제가 좀 집요할 때가 있죠. 나는 올리버의 질문이 아무렇지 않았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동족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 (S) - P77
저는 책을 더 폭넓게 읽고 다른 분야의 개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환원주의 과학을 거부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저 왕좌에서 끌어내리기만 하면 됐죠. 이렇게 저의 환멸은 해방감으로 변했답니다. (S) - P80
다음 날 아침, 올리버는 일찍 일어나 있었다. 식탁 한가득 종이를 펼쳐 놓고 만년필 쥔 손으로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에게 가장 처음 읽은 그의 책이 《깨어남》이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파킨슨병을 앓았기에 그 책에 담긴 사연들이 대단히 감동적이었고 올리버의 글에도 푹 빠져들었다. 올리버는 그 책을 주의 깊게 읽으면 어깨 부상으로 직접 글을 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쓰게 했던 부분을 아마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S) - P91
그리고 올리버는 내게 (올리버 색스가 수전 배리의 입체시 획득 경험을 써서 《뉴요커The New Yorker》에 기고한 〈스테레오 수〉에서) 혹시 이름을 가명으로 바꾸고 싶은지 물으며 "개인적으로는 ‘스테레오 수‘가 마음에 들지만 교수님을 난처하거나 불쾌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스테레오 수라는 이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올리버에게 말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이름은 통통 튀는 데다 그 유명한 베토벤 5번 교향곡의 첫 소절과 리듬이 비슷하다! (S) - P9394
올리버의 앞선 편지는 2005년 12월 13일에 쓰였고 14일 자 소인이 찍혀 있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그의 오른눈에 커다란 암점과 섬광이 나타났다. 결국 올리버의 시력을 빼앗고 10년 뒤에는 목숨까지 앗아간, 망막에 생긴 종양의 초기 증상이었다. 내 시력이 놀라울 만큼 향상되는 동안 올리버는 반대로 시력을 잃고 있었다. (S) - P104
올리버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서 그는 자기 책상에 앉고 나는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올리버가 1856년에 처음 출간된 데이비드 브루스터 경의 책 《브루스터의 입체경 연구 Brewster on the Stereoscope》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나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대답 없는 질문The Unanswered Question》을 선물했는데, 당시 올리버가 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지를 더 주고받은 뒤 올리버가 번스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올리버가 덤덤하게 암에 걸렸다고 말했다. 내 표정이 겁에 질렸었는지, 올리버는 암이 거의 전이되지 않았고 오른눈에 시력이 남아 있어서 아직 입체시로 볼 수 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직후에 《뉴요커》의 올리버 담당 편집자인 존 베넷이 도착했다. 내가 곧 나올 《뉴요커》 기사의 핵심 주제였기 때문에 나와 편집자가 만날 수 있도록 올리버와 케이트가 미리 초대해 둔 것 같았다. 베넷의 은근한 텍사스 억양이 놀라웠다. 그가 자신이 키우는 잭 러셀 테리어의 우스운 일화를 들려주었는데, 왜인지 나는 《뉴요커》의 편집자가 은은하게 남부 억양이 섞인 말투를 쓸 거라고는, 또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S) - P112
그리고 《뉴요커》 최신호를 집어 들고 긴 특집 기사를 펼쳐 (2002년 여름 당시, 17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전직 역사학 교수인) 어머니께 소리 내어 읽어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사는 사람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포착해 그들의 생각과 의도를 알아차리는 비상한 능력을 지닌 남자에 관한 것이었어요(이 기사는 2002년 8월 5일 자 《뉴요커》에 실린 맬컴 글래드웰Malcom Gladwell의 〈벌거벗은 얼굴The Naked Face〉이었다.). 어머니는 주의 깊게 들으며 이따금 끼어들어 방금 들은 구절을 평했습니다. 저는 천천히 기사를 읽고 개는 코를 골면서 그날 오후는 그렇게 즐겁게 지나갔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몸에서 서서히 긴장이 풀리면서 운동이상증이 사라졌고, 움직임이 다시 우아하고 자발적으로 변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힘들었던 말년에 함께한 가장 행복하고 좋은 기억이고, 그때 이후로 《뉴요커》를 떠올리면 늘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S) - P117118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댄과 저는 가능한 한 책을 많이 읽어 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책 읽는 시간을 정말 좋아했어요. 제니에게 처음으로 읽어 준 진짜 ‘이야기책‘은 E. B. 화이트가 쓴 《샬롯의 거미줄》이었습니다. 어린애들이 대부분 그렇듯 제니도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듣고 싶어 해서, 한때 댄과 저는 이 책을 거의 통째로 외우고 있었어요.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도 마지막 문장은 암송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화이트는 지혜롭고 재주 많고 용감무쌍한 거미 샬롯뿐만 아니라 자신의 좋은 친구를 가리켜 그 문장을 썼다고 합니다. 동화 속 거미에 자신을 비유하는 것이 싫지 않으시다면, 이 마지막 문장에서 "샬롯"을 "올리버"로 바꿔 읽어 주세요. 그러면 제 마음을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누군가가 진정한 친구이면서 뛰어난 작가인 경우는 흔치 않다. 샬롯은 둘 다였다." 사랑을 담아, (S) - P118119
우리는 ‘연구자‘와 ‘연구 대상‘이 아닌 좋은 파트너였습니다—정말로요. 제게도 전례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사랑을 담아, 올리버 - P124
〈스테레오 수〉가 《뉴요커》에 실리기 두 달 전인 4월 27일, 미국공영라디오(NPR)의 과학 전문 기자인 로버트 크럴위치Rober Krulwich에게 깜짝 이메일을 받았다. "아주 오래전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시절부터" 올리버, 케이트와 친하게 지 낸 사이로, 가끔 올리버의 이야기를 라디오 콘텐츠로 만든다고 했다. 그는 올리버가 보여 준 〈스테레오 수〉를 읽고 NPR에 내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원고 작성을 위해 올리버를 비롯한 이야기의 핵심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싶어 했다. 그는 내게 물었다. "그전에 먼저 전화를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NPR의 열렬한 청취자였던 나는 NPR 과학 전문 기자의 전화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잔뜩 신이 났다. 5월 15일에 맨해튼에 갈 일이 있어서 그때 맨해튼에 있는 NPR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그날 아침,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로버트는 나와 악수를 나눈 뒤 길 건너에 있는 편린도너츠에서 간단히 뭘 좀 먹자고 했다. 나는 쫄딱 젖은 우산을 보여 주며 바깥에 비가 퍼붓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길 건너로 달려갔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로버트는 도넛을 몇 개나 허겁지겁 해치우며 대학 때 사귄 애인 이야기로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나는 처음에는 긴장해서 도넛을 깨작거렸지만, 로버트가 워낙 친절하고 재미있어서 서서히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아마 애초에 이것이 던킨도너츠 습격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 P127128
시모조(시모조 신스케Shinsuke Shimojo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실험심리학과의 거트루드 볼티모어 기금 교수로, 인간의 지각과 인식, 행동을 연구한다.) 박사는 (벨라) 율레스의 무작위 점 입체화를 보고 나서 지각 능력을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하지만 막상 과학자로 자리 잡고 대형 연구소와 글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연구비까지 생기고 나니 연구의 마법 같은 매력을 잃어버렸었다고 해요. 그런데 박사님(올리버 색스)이 보낸 〈스테레오 수〉 초고를 읽고서 자신이 애초에 왜 지각 연구를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네요. (S) - P132
그러나 이 편지에서도 나는 마냥 솔직하지 못했다. 올리버의 표현을 살짝 바꿔서 말하자면, 우리는 어린 시절을 빠져 나오지만 결코 그 시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실패자라고 생각했다. 눈이 사시였고, 그 탓에 글 읽기와 자전거 타기, 운전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든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올리버에게 하소연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깨어남》에 나온 것처럼 수십 년 간 신체와 정신이 마비된 환자들을 돌본 사람이니까. 사시가 내 평생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그들에 비하면 내가 겪은 어려움은 사소해 보였다. (S)
*올리버 색스, 〈화학의 시인, 험프리 데이비〉. 먼저 《뉴욕리뷰오브북스》(1993년 12월 4일 자)에 실렸다가 나중에 축약된 형태로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 재수록되었다. - P151
편지로 제 공감각을 설명해 달라고 하셨지요. 다음 주에 휴가를 갈 예정이어서 그 전에 편지를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공감각은 어렸을 때부터 쭉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대략 8년 전입니다. 그때 저는 신경생물학과 학생들과 연구실에서 긴 오후를 보내며 다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자기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지로 이야기가 흘러갔습니다. 저는 당연히 이름의 빛깔이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한 학생이 크게 관심을 보이면서 다른 것들에서도 색을 연상하냐고 묻더군요. 저는 글자와 숫자, 단어, 사람 이름 같은 고유명사, 월과 요일의 이름에서 색을 연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학생은 라마찬드란 박사*의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게 공감각이 있다고, 라마찬드란 교수가 그 현상을 연구했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의심하면서 그냥 색채 연상이 좀 강한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학생은 공감각이 정말 존재한다고, 자기가 증명해 보이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그 학생이 단어와 글자, 숫자 목록을 적은 클립보드를 들고 제 방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목록에 적힌 내용을 소리 내어 읽을 때 어떤 색상이 보이는지 말해 달라고 했어요. 제가 ‘보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자니 약간 바보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알파벳 ‘C‘는 연분홍빛이 감도는 순백색이었고, 알파벳 ‘N‘은 색과 결이 참나무 원목 바닥과 똑같은 아름다운 황갈색이었습니다. 한편 알파벳 ‘H‘는 진녹색이었는데, 이 축축한 글자에서는 어느 집 지하실의 습한 콘크리트 세면대에 쌓인 냉하고 눅눅한 곰팡이가 떠올랐어요. 저는 그 학생에게 단어는 보통 첫 글자와 같은 색상을 띤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S‘는 초록색이고, ‘공감각synesthesia‘이라는 단어는 초록색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노란빛이 도는 주황색과 뒤섞이는데, 장음 E가 노란빛 도는 주황색이기 때문입니다. 숫자 3은 새순과 같은 색이고, 13은 색과 맛이 익힌 시금치와 똑같습니다. 저는 시금치를 정말 좋아해서 숫자 13도 좋아합니다. 그 학생은 다른 학생 다섯 명에게도 똑같이 질문한 뒤 대답을 꼼꼼하게 기록했어요. 그리고 2주 뒤에 다시 클립보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저는 전체 항목에서 대답이 지난번과 완벽하게 일치했던 반면, 다른 학생들은 대답이 중구난방이었어요. (S)
*V. S. 라마찬드란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의 저명한 심리학 교수다. 공감각을 비롯해 인간의 뇌를 다각도로 연구해 왔으며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 (인간 의식으로의 짧은 여행A brief Tour of Human Consciousness》 등 여러 대중 과학서를 썼다. - P156158
내가 방문했을 때 올리버는 《뮤지코필리아》 집필을 마치고 음악과 뇌에서 시각과 환각으로 관심사를 옮기는 중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 전, 올리버는 오른눈의 종양 때문에 시력이 왜곡되어 오른눈 망막 중심부를 레이저로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문제없는 왼눈을 감고 오른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시야 한가운데가 검고 불투명했다. 길을 걸을 때면 오른눈으로는 사람들의 하반신만 보였다. 오른눈의 중심시를 잃자 입체시도 거의 사라져서, 우리의 대화는 입체맹의 삶이라는 공통의 경험으로 흘러갔다. 예를 들면 나는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전체가 유리창과 같은 평면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정말로 그래요!" 올리버가 이렇게 맞장구치더니, 얼마 전 유리창 앞에 앉아 있는 피아노 선생님을 보는데 창문 바깥의 나뭇가지들이 선생님 머리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S) - P188189
제 경험은 대부분 요즘 교수님이 하는 경험과 정반대입니다—거울에 비친 교수님의 모습이 앞뒤로 움직이는 것을 볼 때의 기쁨을 글로 아름답게 표현하셨지요. 저는 제 양복에 묻은 얼룩을 지우려다가 그 얼룩이 거울 표면 위에 묻은 것임을 발견합니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거울 표면 위에 있어요—제 모습이 거울 속에, ‘거울 너머에‘ 있다는 감각이 전혀 없습니다. (O) - P201
우리가 움직일 때 멀리 있는 사물보다 가까이 있는 사물이 우리 시야에서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며, 이러한 상대운동 또는 운동 시차에서 원근감—무엇이 앞에 있고 무엇이 뒤에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발생한다. 나도 언제나 운동 시차를 사용해서 원근감을 추론하곤 했으나, 실제로 운동 시차를 통해 사물 사이의 공간감을 느낀 것은 입체시를 얻은 뒤였다. (S) - P202
프레드는 6개월 뒤 다시 찾아와서 피아노를 조율하고 이번에도 일주일 뒤에 전화를 걸어서 피아노가 어떻느냐고 물었습니다.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저는 만족스러워하며 뭘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죠. 프레드는 정음 작업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번에 프레드가 왔을 때 정음 작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건반마다 연결된 해머의 펠트를 조정하는 방법을 보여 주었어요.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하시잖아요." 프레드가 (언제나처럼 기계 같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니 소리를 부드럽게 만들어야지요?" 저는 깜짝 놀라서 제가 그런 소리를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조차 제가 어떤 소리를 좋아하는지 몰랐거든요.) "아." 프레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눠 보고, 어떤 곡을 연주하시는지 보고, 피아노의 어떤 부분이 닳았는지 보면 알 수 있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피아노를 조율하려면 연주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해요." 잘 조율된 마음을 담아, (S) - P212
"제 생각에 [어린 시절의] 이 입체시 경험은 제게 늘 입체시를 습득할 잠재력이 있었고, 그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두 눈을 제대로 정렬할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며칠 뒤인 2010년 2월 4일, 올리버에게서 답장이 왔다.
교수님의 (탁월한!) 편지를 이제 막 읽고 (제대로 된 편지지도 없이) 서둘러 답장을 보냅니다.
편지는 노란 리갈패드 종이에 쓰여 있었다.
교수님 주장에 전부 동의하고, 이렇게 깊이 고민해 주셔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사소한 점을 제외하고) 제안해 주신 내용을 모두 반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사소한 점"은 무엇일까? 올리버에게 단어는 무척 중요하고 강력한 것이었다.
(그 한 가지 사소한 점은 바로 "정렬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posture"라는 단어입니다. 교수님이 여러 차례 쓰시고, 또 제게도 권하신 단어이지요.) 이 단어를 대신할 다른 단어를 찾아보겠습니다. (제가 나이 많은 영국인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제게 이 동사는 거짓되게 행동하고 가식적으로 군다는 의미가 훨씬 큽니다—"사칭imposture"이라는 단어와 가깝달까요. 전문적인 측면에서는 교수님의 단어 선택이 옳겠지만, 저는 이런 느낌의 단어를 차마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올리버는 "posture"를 "position"이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 P261263
2010년 5월 4일
수에게,
(언제나처럼) 근사한 편지(4월 19일 자)에 감사드립니다—교수님은 편지를 참 잘 쓰십니다—모든 편지에 새롭고 신선한 것이 담겨 있어요. 진심으로, 교수님이 (수전 배리가 앞 편지에서 자신이 읽었다고 전한 책, 《우정의 미적분학》의 저자인) (스티븐) 스트로가츠에게 편지를 보내 보면 어떨까요—스트로가츠는 재능도 무척 뛰어나지만 매우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기도 합니다—교수님의 개인적 감상을 전하는 것이지요. 교수님은 스트로가츠의 이상적인 독자입니다. ··· 아름다운 조개껍질과 그 안의 깜짝 선물까지,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스트로가츠에게 편지 꼭 쓰세요. (O) - P272
그리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제 어머니가 이스라엘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셨습니다—그래서 저도 그렇게 될 거라는 미신적 느낌이 있었지요—(상당히 비이성적이지만) 이것이 제가 그간(1955~1956년에 몇 달간 머무른 뒤로, 2014년까지) 이스라엘을 찾지 않은 여러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O) - P346
2015년 2월 5일
수에게,
슬픈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달에 저의 안구 (포도막)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암은 원래 잘 전이되지 않는 편이지만, 저는 이 괴물이 몸에 퍼지기 전에 9년간 좋은(그리고 생산적인) 나날을 보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전이된 암은 치료가 쉽지 않은데, 몇몇 처치로 속도를 지연시킬 수는 있습니다—아마도 ‘생존‘ 기간을 6~9개월에서 15~16개월로 늘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늘린 몇 달이 좋은 시간이라면, 그 동안에 글을 쓰고(일부 또는 거의 다 쓴 책이 여러 권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고, (조금) 여행을 다니고, (철없이 군다거나 하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제가 이 상황에‘적응‘하고,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과 대상에게 ‘작별‘을 고하고, 내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이 갑작스러운 ‘시간의 끝‘ 앞에서 평정심을 구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지난 삶을 돌아보는 짧고 굵은 에세이(제목은 〈나의 생애〉)를 쓸 생각입니다. 흄이 (1775년에)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음을 깨닫고 하루 만에 쓴 글처럼요. (후략) (O) - P361
2015년 5월의 만남은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아니었다. 2015년 7월 9일, 82세 생일을 맞이한 올리버는 늘 그래왔듯 자기 아파트에서 생일 파티를 열었다. 이번이 올리버의 마지막 생일임을 본인도 알고 우리도 모두 알았지만, 그는 연민의 대상이 되거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중략) 대화를 나눈 직후 댄과 나는 시간이 늦기도 했고 올리버가 다른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조용히 아파트에서 나왔다. 올리버는 눈물 젖은 작별 인사를 원하지 않았다. (S) - P372373
올리버는 세상을 떠나기 겨우 3주 전에 내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그때 그는 빠른 속도로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지만 케이트와 사무보조원 헤일리 파커, 연인 빌리 헤이스의 도움을 받아 친구들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보냈다. 2010년 이후로는 내게 늘 손 편지를 썼으나 이제는 그럴 수 없을 만큼 약해져서, 이 마지막 편지는 다른 사람에게 받아쓰게 했다. 편지는 ‘수에게"가 아니라 "친애하는 수에게"라는 말로 시작했다. 이 인사말을 보니 2009년 12월에 올리버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올리버는 "친애하는"이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친애하는"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일반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만 쓰는 표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리버가 "친애하는 수에게"라는 말로 운을 뗐을 때, 나는 여기에 진심이 담겨 있음을 알았다. (S) - P380381
이 편지가 마지막 작별 인사는 아니지만, 그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이번 달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간 교수님과 나눈 깊고 고무적인 우정은 지난 10년간 제 삶에 추가로 주어진 뜻밖의 멋진 선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을 가득 담아, (O)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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