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2 - 초회한정판
강우석 감독, 설경구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설날에 아버지와 함께 공공의 적2를 보았다. 공공의 적 1도 아버지와 함께 보았었는데 당시 아버지께서 너무 잔인하다고 싫어하셨었는데 어쩐 일인지 아버지께서 먼저 보자고 하셔서 인터넷을 통해서 예매하여 일산에 있는 롯데 씨네마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에 관해 쓰기 전에 극장에 대한 한마디. 내가 일산, 그것도 롯데 백화점에서 무척 가까운 곳에 1년 넘게 살았지만 나도 극장이 몇관에서 몇관까지는 롯데백화점 본관에 있고 나머지는 라페스타 근처의 롯데 씨네마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예매번호와 영화관의 관수만 적어간 아버지와 나는 롯데 씨네마에 가서 주차를 해 놓았다가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롯데백화점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면 적어도 인터넷에서 예매할 때라도 설명을 해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나마 내가 그 주변 지리를 잘 알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영화시작 시간을 놓칠 뻔 했다. (지금 기억으로 7관까지는 롯데백화점에 있고 8관부터는 별관격인 롯데 씨네마에 있는 것 같다.)

공공의 적 2의 줄거리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정말 빤하다. 공공의 적으로 대표되는 아주 나쁜 놈과 그에 맞서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우리의 주인공 강철중 검사. 주인공 강철중 검사의 캐릭터는 사실 공공의 적 1의 주인공 강철중 형사의 이미지와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정말로 형사에서 직업을 검사로만 바꾸었을 뿐, 모든 면에서 강철중 검사는 1탄의 강철중 형사와 똑같고 심지어는 실제로 잠복근무를 하여 형사질(?)을 하는 검사답지 못한 검사로 그려진다. 하긴, 일반적인 판에 박힌 검사라면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어렵겠지만...

그리고 우리의 기대대로 강철중 검사는 공공의 적인 한상우(정준호 분)를 패주고, 법의 심판대에 세운다. 모든 관객들이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는 것은 감독이 숨기지 않고 드러내듯이 이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갖추고 온갖 악을 행하는 안티 히어로가 철저히 짓밟히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욕구를 이 영화를 통해서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틀에 박힌 류의 스토리와 대리만족을 위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그러한 카타르시스는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어느정도 성공한 것 같다. 그리고 1탄에서 공공의 적이 특별한 목적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유영철과 비슷한 류의(다만 더 상류층이고 지적이긴 하지만) 살인마라면 공공의 적 2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응징해야 하지만 응징하기 어려운, 응징되지 않고 잘 사는 타락한 가식적인 사회 지도층(?)을 공공의 적으로 선택해서 카타르시스를 더 높였다.(물론 한상우의 캐릭터에서도 1탄에서의 살인마적인 캐릭터가 드러나기도 한다.) 물론 강철중 역을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듯한 설경구의 연기는 여전히 감칠맛난다. 정준호도 크게 어색하지 않게 상류층 악역의 역을 잘 소화해 냈고 1탄에서도 직속 상관으로 나오는 강신일은 외풍을 막아주는 인간적인 부장검사의 캐릭터를 멋지게 구현해냈다.(사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맘에 드는 캐릭터는 강신일이 맡은 부장검사역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판에 박힌 스토리, 특히 현실적인 사회에서 있기 힘든 무식하게 원칙대로 정의만 추구하는 강철중의 캐릭터와 공공의 적의 비리에 대한 증거를 잡기 전에 이미 대본을 통해서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상대방의 비리와 머릿속을 훤히 알고 있다는 투의 강철중의 대사는 좀 거부감이 든다. 마지막에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에 앞서 공공의 적과 맞짱을 떠서 비록 주인공이 많이 맞기는 하지만 공공의 적을 멋지게 패주어 카타르시스의 극대화를 노리는 것도 너무 눈에 보이는 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영화가 꽤 마음에 들었다. 일단 1탄에 비해 불필요하게 잔인한 장면은 거의 없어졌고, 거부감이 들도록 이유없이 상대방을 해하는 비논리적인 스토리는 대폭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 이것은 내가 법조인이라서 그런 영향이 크겠지만 - 주인공 강철중의 직업인 검사를 멋지게 그려서, 지나치게 이상화하지도 않고 검사들의 실생활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특히 부장검사가 기러기생활을 하면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경제적인 사정으로 변호사 개업을 고민하는 장면과 계층적인 검사조직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는 멋진 검사상을 구현해 내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비록 내가 검사는 아니지만 내가 속해있는 직역도 저렇게 보니 멋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 강철중 검사라는 캐릭터는 좀 과장된 면이 많이 있지만 단순화시켜 본다면 영화에서 그려지는, 아니 진정으로 멋진 검사는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검사가 해야할 본분에 충실한 검사가 아닐는지. 물론 그것이 쉬운 것처럼 보이면서도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강철중 검사와 같은 캐릭터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나도 그렇게 멋진 법조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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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셜록 홈즈 추리 걸작선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박지현 옮김 / 꿈과희망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셜록홈즈 추리소설 몇 개를 모아 놓은 단편집이다.

전에 홈즈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몇 편 읽어 보았는데 이 단편집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소재나 상황, 의뢰내용 등에서 무척 다양하고 흥미도도 높았다. 스파이잡기, 사기결혼 저지하기, 실종자 수색 등등...

뭐 '걸작선'이니 당연히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읽으면서 이런 내용으로도 추리의 소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했다.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코넌 도일의 소설이 옛날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홈즈의 추리 전개 부분에 있어서는 좀 아쉬운 점이 많았다. 단편의 한계 때문이기는 하겠으나 홈즈가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단서나 그로 인한 추론에 독자가 공감할 만한 연결고리가 부족하다고나 할까?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독자에게 거의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홈즈가 서건을 해결하고 추리과정을 설명할 때 비로서 단서가 되는 조사 결과들이 제시되는 식이니 나만 그랬을 지는 모르겠으나

 '아, 그래서 그 넘이 범인이구나..'라는 느낌보다는 '그런 단서를 내가 어떻게 아냐? 그래, 너 잘났다!'라는 느낌을 받은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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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쿠자누스 > '사고 착오' 또는 '사고의 게으름'
메가테러리즘과 미국의 세계질서전쟁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0
구춘권 지음 / 책세상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에 따르면 <9.11>과 같은 <메가테러>란 <충격과 공포>를 극대화하여

미국 사회 내부에서 미국 정부의 패권 전략 수정을 요구하는

압력이 일어나는 것을 노린다고 한다.

정말 그런 걸까 ?

 

부시 정부는 플로리다 주의 부정선거를 통해

더우기 미국 정치사상 보기 드문 대법원 판결에서 한표 차이로 대통령이 되었기에

치명적인 정통성 위기를 안고 있었다.

 

게다가  냉전이 끝난 후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미국경제의 호황이

한갓 분식회계로 치장한 거품경제로 드러나는 파국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9.11>은  부시를 한순간에 미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지도자로 돌변시겼다. 

그는 유례없는 지지율을 만끽하며 두 차례에 걸친, 아무 근거도 없는 침략 전쟁을

자행하고는 지난 해 또 다시 의혹에 쌓인 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하기에 이르렀고 

 ( http://www.peacemaking.co.kr/news/news/view.php?papercode=PEACE&newsno=1085&pubno= )

 

절박했던 미국 경제의 구조 개혁은 <국가 비상사태 >에 휩쓸려  실종되었다.   

 

<9.11>은 미국의 패권 전략 수정을 강요하는 압력이 되기는 커녕

부시 정부를 정통성 위기에서 구출하고 미국의 고질적인 정경 유착과 권력 남용에

면죄부까지 던져 주었다.  

 

<9.11> 이후에 미국 밖에서 벌어진, <알카에다>가 꾸몄다고 알려진 테러도 마찬가지다.

아랍권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고 이라크 파병에 대한 동맹국(영국, 호주, 한국, 일본 등등)의

지지 여론이 일어나는 데 한 몫을 했다.


저자의 분석이 현실에 어긋나는 이유는 무얼까 ?

 

저자는 <9.11>같은 사건을 벌일 능력이 있는 반미 테러조직이 실재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다 보니 ' 이 사건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라고 묻고 범인을 추적하는

극히 상식적인 '수사 절차'를 밟는 대신에

 

'오사마는 왜 그에게 돌아갈 비난을 무릅쓰고 <9.11>을 감행했을까'라고 묻게 되고

여기서 실제 현실과는 무관한 저자의 '희망사항'이 '정답'으로 제시된 것이다. 

     

"<9.11>이 반미 테러조직의 작품'이라는 믿음은 저자로 하여금 

 

 <9.11공식 버전>의 진위를 가리는 정밀한 고증작업에 눈을 감게 만든 대신 

<오사마 빈 라덴 >이 이끄는 '알라바마의 도적들'이 신출귀몰하는 것은   

미국의 수사망에 걸리지 않는 유연한 조직 구조를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마치 미국 중앙정보국의 발언을 연상케 하는 해설을 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국제 정세의 현 시기는 <메가테러>와 미국의 패권 전략이 충돌하는 시기'며

미국이 패권 전략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미 테러 역시 지속될 거라는

지극히 피상적인 결론에 이르게 만들었다.   

저자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9.11>을  분석하는 작업은

전세계의 비판적 지식인과  언론인

( http://www.blessedhopebaptists.or.kr/trumpet/terror.mht )

 

그리고 <9.11> 희생자 유가족들 ( http://www.911citizenswatch.org/ )에 의해

사건 직후부터 맹렬히 진행되었다.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저자가 말하는) <메가테러>가 사실은

 

‘위기에 처한 권력이 그들의 숨겨진 정치 경제적 목적 (Secret Agenda)을

관철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조작하는 심리전의 기술’이다.

 

( 자세한 내용은 http://www.911truth.org :

   http://globalresearch.ca/articles/CHO409D.html ) 

 

여기서 <정치 경제적 목적>이라 함은

 

권력이 처한 매 시기의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허약한 정통성의 보강, 경제위기의 폭력적 해결, 권력의 재창출,

대외 침략 전쟁 따위를 말한다. 

 

이러한 목적 실현에는 대중의 사고력을 마비시켜 

자발적 지지와 동의, 참여를 유도하거나

대중의 저항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사회 심리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충격과 공포의 극대화>가 달리 필요 하겠는가 ?

 

어떤 권력이든 그것이 한 사회의 소수 과두 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

다수의 동의와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 공학적 기술이 필요한데

 

그 권력이 절대 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면

그 정치 공학적 기술 또한 대단히 비열하고 잔인해지기 마련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최근에야 ‘이제는 말할 수 있다’(MBC)나‘

 

그것이 알고 싶다’(SBS)같은 영상매체를 통해서 드러난

 

<육영수 피살 사건>이나 <김현희/KAL 858기 실종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사건의 배후에 <국가 속의 국가 권력>이 개입해 있고

 

모든 언론이 권력이 건네주는 공식버전을 받아썼다는 거

 

이젠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이같은 정치공학이 유독 한국에서만 일어난 걸로

착각하는 지식인들이 의외로 많은 듯하다.


시야를 넓혀보면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널려 있다.  

 

예를 들면 지난 60년 대 부터

유력한 정계, 경제계 요인들에 대한 암살 사건. 폭파 사건이 줄을 이었다. 

 

미국의 J.F. 케네디 대통령,

 

이탈리아 기민당 당수 모로,

 

독일 드레스덴 방크 총재 폰토, 

 

도이체 방크 총재 헤어하우젠

( http://peacemaking.co.kr/news_view.php?no=277 )

 

독일 신탁관리청 대표 로베더

 

<정치 테러>의 전형적인 희생자들이다.

 

케네디 암살은  일개 정신불안자의 단독 범죄로

또 유럽에서의 사건은 극렬 좌익 테러단의 범죄로 알려져 있으나 

 

희생자들은 예외 없이 투기 금융자본의  이해를 거스르고 있었고

  

그들이 제거된 후 국제 정세에는 전쟁과 경제 불황이 엄습했다.

 

<9.11>은  사건 현장이 CNN을 통해 전세계에 실황 중계되었다는 점에서 유별나지만

각본의 기본 골격은 앞에 열거한 사건과 큰 차이가 없다.

 

2천 명이 넘는 불특정 다수를 무차별 살상하는 테러를

특정 개인을 제거하는 테러와  같은 유형으로 보는 데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겐

 

육영수 개인의 피살과 민간 여객기 (KAL 858기) 승객의 무차별 희생이라는 두 사건의

공통점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네로 황제가 로마를, 히틀러가 국회의사당을 불지르고

정적을 제거한 후 '천년 왕국'의 야욕을 불태우다가 거꾸러진 역사도 떠올려 보면 좋겟다. 

 

많은 지식인들이 <9.11 공식 버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제국의 가신'이 아니라면 

 

국제 정치테러의 역사와 그 실체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거나

 

권력과 언론이 유포하는 화두와 가상 현실 (virtual reality)의 이면을

투시하는 감각이 부족해서

 

또는 미국의 정치/금융 권력의 위기구조와 그들의 생존전략에 대한  이해가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다시 <육영수 피살>과 <김현희 사건>을 예로 들면 매 단계 권력이 직면했던

위기와 관련해서만 이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독일에서 공부한 저자가  <9.11공식 버전>을 뒤집는 독일에서의  연구 성과

http://peacemaking.co.kr/news_view.php?no=1348 )나

 

유럽에서 보도된 대단히 중요한 기본 정보를 외면하고 있는 것도 아쉽다.

 

예를 들면 <9.11>을 두 달 앞두고 <오사마 빈라덴>이 두바이 미군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현지 미 중앙정보국 요원 <래리 미첼>의 방문을 받은 후 파키스탄 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보도다.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와 프랑스 국영 국제 방송이 현지 외교 정보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한 이 사실은 러시아 <프라우다>,  독일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이탈리아 <라 레푸블리카> 등 16개 국의 주요 언론에서 인용 보도했다.  

http://peacemaking.co.kr/news_view.php?no=102 )

 

정치 테러의 본질을 정확히 보는 것은 한 사회의 위기와

국제 정치 동학을 분석하는 사회과학자에겐 외면할 수 없는 과제이지만 

자칫 <사고의 착오>나 <사고의 게으름> 에 빠지면

알게 모르게 권력의 심리전을 대리 수행하는 병사가 될 수도 있다.

                    허 광 (전 시사저널 독일 주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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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에 달린 잎새들

문득 파스칼의 명언이 생각난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인간은 천사처럼 행동하려고 하면서 짐승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진작 부끄러운 몸짓의 사람은 내 자신이었던 것을. 위선의 갑옷을 하나하나 벗어 봐야겠다. 더러는 살점이며 피가 묻어 나오리라. 뭣인가에 얽매이고 갇힌 내 자신을 풀어 주고 열어 줘야겠다. 내 심혼 깊숙히 자리한 또 하나의 나에게 내 몫의 삶을 알아보고 본시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다. (p48)

마음의 면류관

보여 주는 것이 어디 겉모습뿐이랴. 그 속에 숨어 있는 섭리의 묘리도 함께 보여 줘서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 겸양 없는 권세, 하심 모르는 지위, 나눔 없는 부, 겸손 모르는 학식이 어느 날 갑자기 파멸했을 때 비로서 깨닫고 뉘우치고 통곡하는 개인과 단체와 권력도 많이 봐 왔다.(p63)

토굴가

권좌에 올랐다는 것, 재물을 태산같이 끌어 모았다는 것, 명성을 천하에 드날린다는 것....이것 또한 한고비 넘기고 돌아보면 옷자락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 붙잡아 보는 것과 뭣이 다르랴.(p80)

연대암을 찾아서

뛰어난 사람이 지도자의 자리에 있으면 무리들은 그가 존재함을 알 따름입니다[太上 不知有之]. 그보다 못한 지도자이면 무리들은 그를 친근히 여기고 그를 기립니다[其次, 親之譽之]. 그보다 못한 지도자이면 무리들이 그를 두려워합니다[其次, 畏之]. 그보다 못한 지도자이면 무리들이 그를 업신여깁니다 [其次, 侮之]. 김거사님께서도 한 집단의 지도자이신데 지금 어느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참 지도자가 되려면 금욕이라는 무서운 칼 한 자루 가슴에 지니고 있어야 됩니다.(p107)

학산 새벽산책

은혜로운 말 한마디가 길을 열어 준다.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준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희망을 준다. 즐거운 말 한마디가 용기를 준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된다.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한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싹이 된다.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을 붕괴시킨다.(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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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 항쟁의 실체(p103이하)

삼별초는 원래 최이가 조직하였다. 최씨 무신정권 시기에 도둑떼와 농민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나자 최이는 개경 경비를 위해 용사들을 뽑아 야별초를 조직하였다. 치안상황이 오히려 악화되자 최이는 야별초를 확대하여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었고 강화도로 조정을 옮기고 몽골과 전쟁을 벌일 때 몽골에 잡혔던 장정들이 강화도로 들어왔는데 최이는 이들로 군대를 조직하여 신의군을 만들었다. 신의군과 좌별초, 우별초를 통틀어 삼별초라 하였다.

삼별초는 선택된 군대로 국가에서 많은 봉급을 주었고 공을 세우면 죄인들의 재산을 나누어받는 등의 특별대우를 받았다. 삼별초는 1980년대의 육군보안사령부와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p104)

삼별초는 대몽항쟁 기간에 수백 명 단위로 출전하여 지방군과 농민군을 이끌고 몽골에 맞서 싸우기도 하였으나 삼별초의 주력부대는 강화도에서 무신정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정권의 비호를 받는 이들은 다른 군사들에게 횡포를 부리기 일쑤였으며, 백성들을 침탈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따. 또한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하수인이었으나 주인을 내무는 일에도 동원되어 최이, 김준, 임연, 임유무를 축출할 때 중간 지휘자들은 삼별초를 동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유무를 죽인 뒤 삼별초는 구심점을 잃었고 새로운 무신정권이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에게 주어졌던 특권도 사라지게 되었다. 삼별초 지휘관들은 무신정권이 사라진 뒤에 그 하수인 노릇을 한 일로 처벌을 받을까 두려웠고 몽골군에 대항해 싸웠기 때문에 몽골에게도 자신들이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와같은 배경에서 삼별초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조정에서 개경환도를 결정한 뒤 강화도에서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배중손, 노영희 등은 '오랑캐 군사들이 대거 밀려와 인민을 살육하니 무릇 나라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은 구정으로 모이라.'고 선동하였고 이에 속아 모인 사람들을 강제로 강화도에 가두며 강화성을 지키다가 형세를 보고 배 1천 척을 모아 재물과 군사와 가족을 싣고 진도 쪽으로 향하였다.  삼별초군은 진도 일대에서 고을과 성을 점령하여 세력을 떨쳤다.  한때는 창원, 김해, 마산, 동래, 황해, 탐라 등을 석권하기도 하였으나 끝내는 고려와 몽골 연합 토벌군에게 밀려 진도에서 대패하여 위왕인 승화후와 배중손은 죽음을 당하고 김통정은 남은 세력을 이끌고 탐라로 가서 끝까지 항쟁하였으나 1273년 4월 28일 토벌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끝내 김통정이 자결을 함으로써 삼별초는 종말을 고했다.

삼별초는 몽골에 반감과 원한을 지닌 민중들의 호응을 받아 세력 범위를 넓히고 민중들의 호응도 어느정도 얻었다. 그러나 삼별초의 역량으로서는 강력한 몽골에 끝까지 맞설 수 없었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고려의 30년 대몽항쟁이 고려인의 의지와 정신을 드날렸다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그로 인한 피해는 그에 비례하여 높았고 삼별초의 항쟁도 그와 같았다. 삼별초의 항쟁은 민족 정신사에 남을 뿐 현재적 실익은 아무것도 없었다.

1970년대 군사 독재정권 아래에서 어용학자들은 무신정권을 민족적이고 진취적인 정치세력으로 높이 평가하고, 삼별초군의 활동을 국난극복 사례로 꼽았다. 이는 군사 독재 정권의 민족주의적인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역사 조작의 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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