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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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지금 내가 참으로 편한 생활을 하고 있고, 또 대단히 나태하고 안일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그 당시에도 가장 하층민에 속한 전태일의 삶과 평면적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그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러한 시련과 매일매일이 지옥과 같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한가닥의 희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움켜잡고, 주어진 상황속에서 정말로 최선을 다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온 몸으로 실현하기 위해 산화한 그의 삶만큼 강렬하고 뜨거운 것이 어디 있으랴만은 전태일이 분신하기 전의 삶도 정말로 치열하고 뜨겁고 또한 따뜻한 것이었다. 장기표씨가 쓰신 것처럼 전태일은 정말로 단순한 투사가 아닌 성자였다. 그가 온몸을 불사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투철한 신념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넘치는 사랑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평전은 조영래 변호사가 지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개인적으로 그 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또다른 방식으로 전태일이 살다간 그러한 삶을 실천하신 분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이 전태일평전이 읽고 나서 더 가슴속 깊이까지 울리는 것 같다. 이 글 속에는 전태일이 처음에는 자기 주변의 시다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에서부터, 근로감독관에 노동현장의 실태를 고발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단계를 거쳐, 홀홀단신으로 사회의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이러한 사람들만 있어도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첫단계로 만족하거나 둘째단계까지 가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만다. 그러나 전태일은 그 단계를 뛰어 넘었고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모든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불사른 것이다.

전태일이 조직한 단체의 이름이 '바보회'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조영래 변호사가 잘 묘사하고 있듯이 부조리가 가득한, 그리하여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모순 덩어리의 사회는 그러한 삶을 거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거대한 벽이다. 그리고 스스로 비인간화되고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러한 사회에 정면으로 대항하려는 것에 대해 조소를 보낸다. 전태일을 포함한,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 본연의,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사회에 의해 바보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스스로 바보라 칭하는 전태일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진정으로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고 스스로 바보라고 칭하는 것은 소위 똑똑한 사람들에 대한 비웃음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태일이 살던 시대의 어두운 면을 겪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당시의 노동상황을 알 수 있었고,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는 급격한 경제성장의 어두운 이면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전태일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이말에 내 자신이 떳떳할 수 있도록 열심히, 올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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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길
이철환 지음 / 삼진기획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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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설마 이런 일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많을 꺼라고. 그러나 모두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라고...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말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하나의 장편 이야기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 글은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종류의 글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글을 읽으면 가슴속에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 정확히 말로 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세상에는 아직도 우리가 바보라고 여기는, 그렇게 순수하게 또는 어떤 가치에 모든 것을 다 받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도 살만하다..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영원한 사랑을 믿고 싶다. 아직은 그런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단정짓지도 못한다. 그런 것이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세상은, 또는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것이 어디 있냐고, 그런 것을 믿는 건 내가 아직 세상을 모르고 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말이 맞을까 두렵기도 하다. 내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세상을 알게 될까봐' 두렵다. 나이를 먹고 세상을 경험하면서도 이 글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마음이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을 추구하고 다른 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바보'로 머물러 있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만이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 나오는 이야기는 사실 잘 믿기지 않는다. 우연적인 요소도 너무 많다. 그러나 왠지 믿고 싶고, 또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정말로 믿는다. 그런 이야기를 잘 믿지 못하는 내가 어쩌면 사회에서는 잘 적응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진정한 행복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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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의 제국
에릭 슐로서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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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패스트푸드 산업과 관련된 제반 문제에 대해 자세한 자료와 저자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 원인과 현 실태 그리고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는 어떻게 현재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패스트푸드 산업이 시작되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 역사적 배경을 다룬다. 이 산업의 놀라운 성장을 가능하게 한 핵심적 요소는 조리를 간단하게 하여 미숙련 노동자-특히 저임금의 청소년들-도 간단히 음식을 만들 수 있게 한 점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 더욱 간단히 말하자면 비용의 최소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시말하면 무리하게 비용을 줄이려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반사적으로 패스트푸드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통계수치-맥도널드사가 미국에서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90%를 책임지고 현재 점포가 28000개에 이르며 매년 2000여개의 점포를 새로 열고 있다는 사실-는 거의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러한 말도 안될 정도의 성장 배경에는 피라미드식 구조에 따는 시장지배자들의 횡포와 그에 따른 군소 사업자들의 도산, 패스트푸드점, 정육사업장 노동자들의 착취와 어린이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비만, 그리고 우리들의 건강에 대한 치명적 위협등이 있다.

이 책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리고 패스트푸드 음식이 우리 건강에 미칠 수 있는 해악보다는 산업 전반의 문제점-노동, 환경 문제 등-에 대해 더 치중해서 쓴 글이다. 이 책을 읽고 우선 새로웠던 점은 가장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이처럼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극소수 업체, 또는 그 경영자들의 이윤극대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로비를 통해 정치인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결국 사회전체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내가 먼저 패스트푸드점을 가자고 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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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국가 - 미국의 세계 지배와 힘의 논리
노암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 두레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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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는 대단한 사람이다. 미국의 석학이면서 자기 나라의 온갖 만행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제3세계 국가의 학자가 썼었더라면 훨씬 설득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노암촘스키 스스로가 최강대국 미국의 대학 교수이기에 그의 글은 더욱 신뢰를 얻는다. 그만큼 그의 숨겨진 역사적 진실에 대한 폭로는 어려운 일이고 찬송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글은 우리를 경악하게 만든다. 믿기지 않는, 믿기 싫은 역사적 진실들 앞에 우리는 망연자실해지고 분노하게 된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가 민주주의 또는 그 나라의 인권을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자국의 이익추구를 위해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한 짓을 해왔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 결과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치적인 민주주의(진정한 의미에서의) 전복과 극소수 군부엘리트와 자본가 계급의 사회지배를 통한 대다수 민중의 착취와 인간이하의 삶의 강요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가 폭로하는 사실은 정말이지 믿기 싫은 것들이다. 그의 말들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너무도 끔찍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객관적 자료, 그리고 우리가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지나쳐버리고 있는 공개된 사실들은 종합해보면 그의 말을 부정하기 어렵게 된다.

그토록 엄청난 역사적 진실이 은폐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이순간 까지도 민주주의 또는 善 그 자체로 둔갑되어 자행되고 있는 국가적 테러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까지 무지하고 무감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촘스키의 외로운 투쟁은 호수에 돌맹이 하나를 던져넣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역사적 진실을 폭로하고 있으나 아직도 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돌맹이 하나의 파동을 거대한 물결로 변화시키는 것은 그의 글을 읽은 우리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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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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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는 전혀 배울수 없었던,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벌어졌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사건들이 소설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일어난다. 해방직후에서 6.25직후까지를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격변하는 사회속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과 자신들의 당연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자들 사이의 투쟁이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룬다.

1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만큼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며 몇몇 인물은 군자 자체로 묘사되고 또 어떤 자들은 속물 그 자체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인물이 존재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 하지는 않고 대다수의 인물들은 비교적 입체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여러 스펙트럼에 걸친 인간 군상들이 시대적 배경에 따라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구체적 선택의 순간, 즉 자신에 대한 이익여부를 자로 재어보아야 하는 순간에 있어서의 인물의 심리 묘사는 좀 지나치다 싶을만큼 직설적이면서도 시원하다.

작가가 역사적 정당성을 갖는 것으로 설정한 인물의 입을 통해 작가의 역사의식을 표출하는 듯한 인상이 드는 것은 약간 아쉽기도 했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과거를 드러내는 소설에서는 약간은 어쩔 수 없는 점이라고도 생각된다.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남한 사회의 지배층의 더러운 과거 전력과 미국의 추악한 의도, 그리고 약삭빠른 자본가 계층이 혼란한 사회를 틈타 어떻게 치부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생지옥과 같은 시대에서 민중들이 빨치산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등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도 막연히 빨갱이나 빨치산은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던 골수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소설 태백산맥은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작가가 제기한 여러가지 역사상의 문제점들 중 지금에라도 해결된 것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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