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연예신문들과 중앙 일간지에 일제히 하얀거탑의 인도주의 의사 최도영을 맡고 있는 이선균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같은 날 같이 인터뷰를 한 탓인지 비슷비슷한 내용의 인터뷰가 동시다발로 인터넷 시장에 출시되었는데 제목 또한 매우 비슷하다. 그러니까 배우조차 최도영의 행보가 당위성이 없고 답답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건 배우로써 매우 위험한 발언일 수 있다. 아니, 역을 맡고 있는 배우가 그 캐릭터를 이해 못하겠다고 한다면 보는 시청자는 뭐란 말인가?
캐릭터가 천하의 말종이거나 악당이라고 해도 역을 맡은 배우는 일단 그 사람 편이다. 적극적으로 변호하거나 감싸며 그것도 안 되면 이해를 구한다. 그런데 이선균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우선은 제 연기가 부족함을 탓하고는 캐릭터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캐릭터를 그저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고 따지고 개연성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는 배우만이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배우 이선균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하얀거탑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에 매우 기뻤다. 그런데 막상 막이 오르고 회가 거듭되면서 정말 최도영이 주인공이기는 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아뿔싸.... 배우조차 답답해하고 있었구나...
단도직입적으로 하얀거탑의 최도영이 많은 시청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역을 맡고 있는 배우에게조차 이해되지 않게 그려지고, 그 결과 이름만 주연일 뿐 조연급 캐릭터에 머물고 있는 까닭은 전적으로 작가와 감독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들의 한계는 우리 사회 개혁 진보 세력이 가진 힘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최도영이 답답한 것은 배우 이선균이 연기를 잘 하지 못하거나 능력이 딸려서가 결코 아니다. 이선균은 자신이 너무 일차원적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최도영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하얀거탑의 열렬한 '본방사수파' 시청자가 보기에 이선균 아니라 국민 배우 안성기가 그 역을 한다 해도 지금 이선균이 하고 있는 것 보다 낫게 최도영을 연기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연기가 뛰어나다고 해도 연기로 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대본과 연출력이다. 현재의 대본과 연출이 최도영이라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해주는 '이야기'를 제대로 배치하지 못하며, 최도영을 설명할 시간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판 하얀거탑은 최도영이라는 인물을 입체적 캐릭터로 구축하는데 실패했다.
이선균의 말대로 최도영은 "장준혁의 화려한 이력에 견줄만한 내적인 힘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실제 일본의 원작 소설과 일본판 하얀거탑에서 최도영은 장준혁 못지않은 강인하고 소신에 찬 인물로 그려진다. 권력에 대한 태도가 사뭇 다르기는 하지만 둘 다 야심만만에 자신만만하다. 둘의 이런 면모는 에피소드를 통해 동등하게 ,충분히 제공된다. 최도형은 드라마 내내 장준혁의 야망의 카리스마 못지않은 꼿꼿하면서도 따뜻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이렇듯 장준혁과 최도영의 대립이 팽팽히 균형을 이루면서 긴장을 배가 시키고 시청자로 하여금 선택을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 드라마에서 최도영은 그렇지 못하다. 이선균이 말한 바로 그 '내적 힘'을 발휘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선균이 자신에게 할당된 대사량이 부족하다는 말을 다 할까? 대사가 없다는 것은 주인공을 주인공답게 해주는 그럴듯한 '서사'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내가 보기에 작가와 감독이 최도영에게 별로 관심이 없거나, 원작에서 최도영에게 부여된 역할 즉, 휴머니즘 인도주의 또는 이에 상당하는 어떤 가치들, 예컨대 개혁이나 진보 양심 등등과 이런 가치들을 옹호하는 사람 또는 세력들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너무 과한가? 그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실제로 한국판 하얀거탑에서는 장준혁의 오진으로 죽음에 이른 환자가족과 변호인, 그들을 돕는 시민운동가 이윤진(송선미 분)에 대한 묘사도 너무 단조롭고 안이하다. 왜 그 변호사는 승산 없는 소송대리를 자처하며, 왜 이윤진은 난데없이 변호사와 한 팀이 되어 백방으로 뛰며, 간호사 윤미라는 막판에 증언대에 서서 '양심적 시민'의 상징이 되는가? 처음부터 그들이 어떻게 해서 한 팀으로 묶여지는지 조차도 모호하기만 하다.
이는 장준혁과 그의 변호사의 행태가 매우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그려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은 입막음을 위해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자리를 보장해주며, 아낌없이 돈을 쓸 뿐만 아니라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을 알려주며 그대로 행동한다. 설령 그것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반면 장준혁의 대립점에 있는 최도영을 비롯한 이쪽 사람들은 재판에 이기기 위해 하는 일이 없다. 수북이 쌓인 서류를 뒤적이거나 피하는 사람들을 겨우 겨우 만나서 그야말로 '양심'과 '정의감'에 호소하는 뻔한 대사를 반복할 뿐이다. 증언 할지를 놓고 갈등하는 윤미라 간호사가 최도영을 찾아와 어떡하면 좋으냐고 묻지만 최도영이 내놓는 대답은 고작 "내가 뭐라고 하겠습니까?"가 다다.
최도영과 같은 인간들이 약자에 대한 배려와 희생을 감수하는 높은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형편없이 매력 없으며 우유부단하며 무기력하게 보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들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권모술수와 음모를 마다하지 않는 부도덕한 인간이면서도 거짓 행동 사이사이 선택의 고민에 빠지는 장준혁이 훨씬 더 인간답게 느껴지면서 시청자들을 제 편으로 만들고 지지하게 만드는 힘을 행사한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 속 역학관계는 드라마 밖 현실에서 개혁 진보 양심 세력들이 아니라 보수 수구꼴통들에게 형편없이 기운 세상 힘의 균형추를 떠올리게 한다.
하얀거탑에서 두 주인공에 대한 시청자들을 반응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준혁과 같은 인간들의 생리와 행동의 패턴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장준혁에게 훨씬 더 감정을 이입하고 동정하는 것 같다. 즉 최도영이 아니라 장준혁에게서 구차한 현실의 내 모습과 닮은 구석을 더 많이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최도영 처럼 저항하기 보다는 설령 쫄딱 망할지언정 한번 크게 저질러 보고 싶은 욕망을 장준혁에게 투사한다.
반면 장준혁이 판치는 세상, 돈과 조직의 논리가 압도하는 가운데 사표를 각오하는 최도영은 드물다. 비주류다. 그런 식으로 사는 사람을 별로 본 적 없다. 작가도 감독도 그리고 시청자들도 이 비주류들의 고민과 번민을 속속들이 생생히 알지 못한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잘 모르니 에피소드는 피상적이 되고 그 자리를 대사 없는 영상으로 매워진다. 그 결과 장준혁의 모습은 소름끼치게 리얼하지만 최도영의 존재는 희미하고 맥이 없다. 결국 드라마는 장준혁과 최도영이 상징하는 가치들이 충돌하고 그 속에 갈등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야망에 불타는 한 인간의 성공과 몰락이라는 뻔 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원작과 일본판 하얀거탑에서 최도영이 장준혁 만큼 비중 있게 공감 가는 인물로 그려졌다면 그것은 원작의 작가와 일본 사회가 최도영을 최도영 답게 하는 가치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소설이 처음 출판되었던 1960년대 말 일본은 최도영이 대변하는 휴머니즘과 같은 진보적 가치들이 폭넓게 공유되었기에 장준혁에 꿀리지 않는 당당하고 할 말 하는 최도영을 중량감 있게 형상화하고 독자와 시청자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우리의 최도영은 그렇지 않다. 사실 전혀 꿀릴 것 없고 오히려 당당할 것 같은데도 장준혁 앞에서면 작아지고, 제대로 반박조차 하지 못하며, 버벅대거나 주저한다. 나는 이런 최도영이 못마땅하다. 이렇게 밖에 최도영을 그리 줄 모르는 작가와 감독에게 불만이 많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작가와 감독이 그리는 최도영이 우리 국민들 눈에 비친 우리 사회 양심 진보 개혁 세력의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게 우리의 본 모습이라는 생각이 미치니 화가 난다.
그러니까 2007년 한국의 인도주의자들은 아직도 비주류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다. 제가 하는 말이 옳은지 조차 헷갈린다. 처참한 지지율에 반성을 주워 삼키지만 도대체 뭐가 틀렸는지도 감을 잡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 일군의 집단들은 자기가 걸어온 길을 부인하며 보수적 가치들에 아부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혀 현실감 없는 얘기로 무모한 선동을 일삼는다.
시청자들은 혼자서 결심하고 혼자서 희생을 감수하는 최도영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당당한 것이었다면 양심을 따를지 조직의 논리를 따를지 고민하는 후배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답을 알려주는 최도영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최도영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고 능력도 있다.
마찬가지로 자칭 진보 개혁세력이 국민들에게 할 바도 그것이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혼자 독야청청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제 소신의 정당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설득하는 힘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실현 가능한 비젼이다. 행동의 지침이지, 번민이 아니다.
"니가 옳다면 옳다고 나에게도 그 답을 말해줘봐~~ 나더러 알아서 하라고 하지 말고 니 길이 옳으니 같이 가자고 해 보란 말이야~~!"
하얀거탑의 최도영의 실패가 주는 교훈은 바로 이거다.
by 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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