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세제, 밀가루, 휘발유, 휴대전화 통화료….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된 담합 품목들이다.
최근 3년간 담합으로 적발된 건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으나 처벌은 ‘솜방망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공정위 출범 후 25년 동안 검찰에 많은 담합 사건이 고발됐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기업인은 단 한 명도 없어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8일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시정조치가 이뤄진 담합은 모두 31건, 부과된 과징금은 총 1105억원에 달한다.
국내에서 적발된 담합 사건은 2004년 21건(288억원), 2005년 28건(2493억원)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반면 미국 등 외국은 담합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이면서 적발건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미 법무부가 기소한 담합 건수는 2004년 42건, 2005년 32건, 2006년 33건으로 감소 또는 정체상태다. 유럽연합(EU) 경쟁총국은 2004년 6건, 2005년 5건, 2006년 6건의 담합을 적발했다. 일본도 2003년 29건, 2004년 25건, 2005년 15건으로 감소했다.
국내에서는 매년 수십 건의 담합이 적발되고 있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적발되는 담합은 전체 담합의 3∼5%밖에 안 될 것이라는 게 각국 경쟁당국의 대체적인 의견”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적발된 31건을 전체 담합의 약 5%로 추정하면 국내에서 벌어지는 담합은 600여건에 이르는 셈이다. 이를 단속하려면 공정위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재계의 반발과 법무부의 비협조로 수년째 미뤄지고 있다.
담합 적발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의 ‘비도덕성’ 역시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는 물가 안정이 최대 과제였던 1970∼80년대 정부가 행정지도 등의 방식으로 물가를 관리했는데 이것이 업계 관행으로 굳어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담합이 적발될 때마다 업체들이 ‘행정지도를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처벌도 미지근하다. 단 2개월 담합으로 2400억원대의 폭리를 취한 정유업계에 부과된 과징금은 526억원에 불과하다. 공정위 인터넷 게시판에는 “지하철 무임승차도 요금의 30배를 벌금으로 물어야 하는데 담합은 남는 장사”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공정위가 담합 사건을 고발해도 검찰은 약식기소처분을 내리는 게 고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 출범 이후 담합 관련 기업인이 징역형을 산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2005년 한 해에만 담합 기업인들에게 총 1만3157일(36년)의 금고형을 내렸다.
참여연대 박근영 경제개혁팀장은 “검찰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관행이 오히려 밀약을 조장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시장 규율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법원과 검찰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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