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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점까지의 마지막 고비라고 할 수 있는 6차 협상이 19일 막을 내렸다. 각 분야 협상 결과의 이해득실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시점이다. 6차 협상 때까지의 합의사항을 조목조목 따져본 결과, 우리 쪽에는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6차 협상에서 양쪽 협상단이 가장 큰 성과를 이뤄낸 분야가 공산품 관세 개방안이다. 양쪽 협상단은 품목수로 각각 85.1%와 83.9%의 공산품에 대해 관세를 협정 발효 즉시 없애기로 합의했다. 언뜻 공평해 보인다. 하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한국이 79.2%나 양보한 반면, 미국은 65.2%에 그친다. 금액 기준 철폐율이 같다 해도 한국은 손해다. 현재 상품당 평균 관세율이 한국은 11.9%로 높은 데 반해 미국은 4.9%에 그치기 때문이다. 우리 쪽 협상단은 대미수출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의 관세 철폐가 빠져서 금액 기준으로 철폐 비율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미국은 자동차 관세 철폐 요구에 대해 “먼저 한국의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를 미국에 유리하게 고쳐달라”며 두 사안을 연계하고 있다. 미국은 두 가지를 묶어서 거래를 하면 손해는 안 본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우리 쪽은 개별 공산품의 관세를 놓고 거래를 하는 반면에, 미국은 국내 세수와 재정운용 기반, 환경정책의 기조에 영향을 끼칠 사안을 내놓으라는 형국이다.
미국의 반덤핑 제재 완화 등을 다루는 무역구제 분야에서는 처음부터 우리 쪽이 공세적이었지만, 5차 협상 때부터 의약품 등 다른 분야와 연계되는 바람에 우리 쪽에 되레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외교통상부의 통계는 미국의 반덤핑 제재에 따른 피해가 연간 15억달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무역구제 분야에서 미국에 요구한 5가지 요구안 가운데 ‘비합산 조처’와 같은 핵심 사안은 이미 관철이 어렵게 되어 있다. 미국의 연방법률 개정사항인데, 미 협상단이 의회에 통보해야 하는 시한이 지난해 연말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비합산 조처가 관철되지 않으면 무역구제 분야에서 미국이 조금 양보하더라도 우리 쪽으로서는 별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수출업계의 주장이다.
반면 미국의 의약품 특허권 연장 요구를 수용할 때 국내 제약산업의 피해액은 우리 정부에서조차 연간 1200억~2000억원 선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추산으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연간 1조1600억~1조4000억원이다.
섬유와 농산물 간 ‘빅딜’도 거론되고 있지만 역시 불공평한 거래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산업자원부는 섬유수출이 에프티에이 체결 뒤 3억달러(2800억원)에서 최대 5억달러(4650억원) 증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농촌경제연구원은 협정 뒤 농산물의 생산 감소 피해는 적어도 1조1500억원, 많게는 2조28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조달 분야는 애초 지방정부까지 개방하면 한국이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방정부는 협정 의무를 지켜야 하는 대상에서 빠지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미국의 주정부는 50개나 되며 예산 등 경제력에서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보다 조달시장 규모가 훨씬 크다.
지적재산권과 통신·전자상거래, 서비스시장, 금융, 투자 등 나머지 분야도 대부분 미국이 공세적이다. 경쟁 분야 또한 미국이 ‘독점 공기업과 재벌 문제’ 등을 공개적으로 거론해 한국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전반적인 협상력에서도 계속 밀리고 있다. 미국은 무역구제뿐만 아니라 전문직 비자쿼터,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등도 법개정 사항인만큼 협상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못박고 있다. 반면 우리 쪽은 정부의 공식 집계로도 법을 고쳐야 할 게 37개 정도다. 농협보험의 금융감독기구 감독 의무화, 환경제도 변경시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절차 의무화 등 미국이 이번 6차 협상 때 갑자기 제안한 것도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밖에 부동산정책과 조세정책 등을 ‘투자자-국가 제소제도’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과, 신금융서비스(한국에 없는 미국의 금융상품)의 감독 의무화 등 아직은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지 못한 쟁점들은 정부의 정책주권과 금융시스템 안정에 필수적인 장치들이다. 미국은 이런 사안을 놓고 이전 협상에서 다뤄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협정문은커녕 ‘확인편지’ 같은 형식의 문서화에도 합의하지 않고 있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