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사회 - 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
미우라 아츠시 지음, 이화성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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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일본인들의 '하류인생'을 여러 각도에서 재구성하면서, 일본의 계층문제를 전통적인 사회학이 아닌 계층구성원의 행동양식과 의식의 측면에서 접근한 독특한 책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하류계층'은 곧 '하류세대'. '하류의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본의 베이비붐 열풍을 타고 풍요 속에 자라난 젊은이들(즉 '단괴 주니어 세대') 중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책은 하류에 속하는 이들이 중류나 상류로 상승하려는 의욕이냐 야심이 없고, 오히려 하류 인생에서 개성을 찾으며 행복하다고 여기는 현상을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단적인 예로 나이가 들어도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의 집에 살고, 100엔짜리 가게와 패스트푸드를 애용하며, 직업을 가지기보단 프리터가 되거나 도박, 복권 당첨 같은 엉뚱한 희망에 열중하는 젊은이들의 세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상류가 무엇인지, 하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책을 읽으면 높은 소득과 좋은 차, 사회적 지위의 차지 등을 상류의 요소라고 생각하는 듯 한데, 그것이 정말로 상류를 규정짓는 요소가 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개성을 살리고, 자기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과연 하류로 낙인찍힐 만큼 반사회적인 행태인가?

물질이 마치 신처럼 추앙받는 사회에서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돌연변이처럼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계층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여겨지고, 그것이 당연한 듯 책에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건 사회현상이라기보다는 가진 자의 지나친 오만과 독선, 계층을 더욱 고착화시키기 위한 음모로까지 여겨진다.

물론 저자는 계층화와 계층 고착화가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국립대학교 학비를 무료화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여 계층화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그리고 만약 실현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계층 고착화를 해소시키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국립대 학비를 무료화하기 위해선 세금이나 기부에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을 텐데, 세금으로 충당하자면 그 조세저항을 어찌 감당할 것이며, 기부에 의지한다면 결국 돈있는 상류층에 국립대의 재정을 의존하겠다는 것밖에 안되는 것 아닌가? 또 노블레스 오블리주 역시 필요성이나 방법을 몰라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순전히 기득권 측의 이기심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자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이 책은 우선, 상류와 하류 계층의 의미부터 새롭게 정립한 뒤 내용을 전개했어야 옳다. 무엇이 상류이고, 하류인지 규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물질을 추구하지 않고 나다움을 추구한다고, 또한 물질을 추구할 마음이 없다고 하류로 취급하는 것은 아무리 통계자로로 포장하여 공정과 객관을 유지하는 척 한다 해도 온당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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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최재천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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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제목과 초록빛의 표지가 너무 상큼해 보여 내용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구입했던 책이다. 하지만 읽어보니 깊이 생각했더라면 오히려 구입하지 못했을 책인 듯 싶기도 하다. 워낙 자연과학 분야에 관심이 없는지라... 그러니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겉모습에 이끌려 구입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개미박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저자가 개미를 비롯해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여러 동물들에 대한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담아낸 책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과 인간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전해주고 있다.

특히 "알면 사랑한다."는 그의 믿음에는 큰 공감이 갔다. 사실 이 말은 동물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역시 "알면 사랑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가슴으로 경험하게 된다.

학생의 어려운 가정형편이나, 그 아이만 갖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면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때로 단호하게 꾸중해야 할 일이 있어도 그러기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많이 아는" 게 두려워지기도 한다. 공정하지 못하게 될까 봐,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되어 오히려 상처를 주게 될까 봐...

그러나 때로는 사랑에도 절제와 단호함이 필요한 법. 동물들이 종종 그악스럽다 싶을 정도로 매정하게 새끼를 독립시키는 것처럼, 부모도 교사도 때로는 독한 맘 먹고 제 자식을, 제 제자를 꾸중할 수도 있어야 하리라.

인간도 짐승의 일부, 동물의 생활을 통해 인간을 돌아보는 것은 분명 삶을 반성하고 새롭게 하는 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무척 기쁘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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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에게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59
최영미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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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예쁜 언어로 시를 쓰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이번 시집엔 특히 그녀의 화난 목소리가 더욱 크게 담겨있는 듯 하다. 이전의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에서 잠시나마 느꼈던 소녀같은 감상은 완전히 걷히고, 세상을 향한 불만과 불화의 목소리만 가득해 시집을 읽는 동안 목구멍이 칼칼해지기까지 했다.

그녀는 "잔치가 끝난 뒤에도 설거지 중인 내게 죄가 있다면, 이 세상을 사랑한 죄밖에"(52p) 없는데, "한 번도 제대로 저지르지 못했으면서 평생을 속죄하고 살았다."(52p)며 "제기랄"(52P) 욕설을 씹고,

요즈음의 진보에 대해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도취와 감상적 애국이 연구실에서 광장으로,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가 종이에 인쇄되어 팔리는"(91p) 처지로 전락했다며 "이것이 진보라면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91p)고 일갈한다.

시집 앞부분의 "돼지"와 "여우"에 대한 시들이 분명 누군가를 염두에 둔 듯 하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험해지는 시인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가 그 돼지와 여우 때문인 듯도 한데, 정치의식 부족하고 문학적 센스까지 결여된 나로서는 그게 무엇인지, 누구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 시를 읽어내기가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58p)며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따위가 시냐고 책장을 사납게 덮는 비난 속에서도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시를 나는 믿지 않는다."(97p)고 당당하게 외치며 계속해서 싸우고 사랑하고 화냈으면 좋겠다.

그녀의 곁에, 겁 많아 함께 화내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같은 독자도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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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에게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59
최영미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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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끝난 뒤에도 설거지 중인
내게 죄가 있다면,
이 세상을 사랑한 죄밖에.....

한 번도 제대로 저지르지 못했으면서
평생을 속죄하며 살았다.

비틀거리며 가는
세기말, 제기랄이여.-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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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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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난 툭하면 책을 읽다가 울곤 했었다. 그 당시 나를 울렸던 책들의 제목은 이제 몇 개 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며 울고 웃던 그 때의 기억들은 메말라 가는 나의 감수성을 반성하게 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언제부턴지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세상살이의 팍팍함 때문인지, 세상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기막힌 일들도 많고, 그 일들이 나에게도 비켜갈 수 없다는 진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인지...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다시 10대로 돌아간 듯 눈물을 찔금거릴 수 있었다. 아마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허삼관의 매혈기가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란 인물이 자신의 피를 팔아 삶을 꾸려나가는 이야기다. 농사로는 근근이 풀칠만 할 수 있었던 가난한 시절, 그는 피를 팔아 번 돈으로 장가를 간다. 큰아들이 이웃집 아이를 다치게 해 치료비가 필요할 때도, 가난하여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는 식구들에게 맛난 음식을 사주고 싶을 때도, 병들어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야 할 때도, 그는 피를 판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많은 에피소드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어찌 그렇게 쉬운 단어로 지루하지 않게 책 한권 분량의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배고픔에 지친 아들들에게 상상으로나마 음식을 만들어주던 부분이다. 아직은 부모라는 역할을 맡아보진 못했지만 그게 부모 마음 아닐까? 상상 속에서나마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큰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매혈 여로를 걷는 허삼관의 모습 역시 진한 감동을 준다. 자신은 인생의 재미를 다 보았지만 아직 아들은 젊은데다 장가도 못가봤으니 자신이 피라도 팔아 살려야 한다는 그의 말에 어찌 무덤덤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까?

소설은 허구지만 소설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사람의 진리는 결코 허구가 아니다. 이 책에는 몇 십억의 로또 당첨금으로도 살 수 없는 인생의 진리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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