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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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이 책은 어렵지 않다. 비교적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있다. 그건 아마도 연구에 직접 참여했던 학자가 번역을 맡았기 때문인 듯 하다. 번역자는 단순히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실험에 담겨있는 의도와 과정을 쉽게 풀어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려운 전문용어를 무작정 직역하여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은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동양과 서양을 갈등과 대립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기술하고자 한 점도 돋보인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아무리 균형잡힌 시각으로 쓰더라도 자신이 서양인인 이상 동양인들에게 불쾌하게 비칠 수도 있을 거라며 우려했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 불쾌함을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많은 실험을 설명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불만스러웠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가 매우 과학적인 가설과 실험, 그리고 검증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그 결과를 설명하는 방식은 모호하고 두루뭉실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아라 노렌자얀, 최인철, 그리고 나는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들이 행동의 발생 원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아래의 문장들을 제시하고 각 문장에 동의하는 정도를 점수로 매기게 했다.

((   제시 문장 1. 2. 3   ))

실험 참가자들의 반응을 분석한 결과, 성격을 중시하는 1에 대해서는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동일한 정도로 동의했으나, 상황을 강조하는 2의 성격과 상황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3에 대해서는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훨씬 더 강하게 동의하는 경향을 보였다. (117P)

적어도 이 실험이 언제 이루어졌는지,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들이 각각 몇 명씩이나 실험에 참가했는지, '훨씬 더 강하게'가 과연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지 정도는 알려주어야 정확한 정보 전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책이 전공자를 위한 학술서가 아니라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서란 점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실험의 기본 조건조차 모른 채 책을 읽어나가는 건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밖에는 될 수 없다. 

만약 개정판이 나오게 된다면 책이 두꺼워지고 가격이 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정확한 수치가 함께 표기되어 읽는 사람들이 좀 더 풍성한 정보를 얻고 책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책 값이 진짜 올라버리면 곤란한데... 사실 이 책에 하나 더 불만을 덧붙이자면, 굳이 하드커버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 책 뿐 아니라 최근 출간되는 책들 중 상당수가 하드커버인데 요즘 책들은 종이 질이 좋아서 하드커버 아니어도 충분히 오랫동안 소장할 수 있는 게 대부분이다. 하드커버만 아니면 이 책도 값을 조금은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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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창비아동문고 175
박기범 지음, 박경진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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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공동체 학교의 대표로 계시는 윤구병 선생님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린이는 세상의 아픔과 그늘을 모르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이들도 알 것은 알아야 하고 느낄 것은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감추어도 어린이의 맑은 눈에 그런 일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추천사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동화집이 세상의 아픔과 그늘을 크게, 그리고 깊게 다루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이제는 어른들도 잊어가고 있는 구사대 이야기가 나오고, 해고 뒤 복직투쟁을 벌이는 가장의 이야기, 분신으로 생을 마감한 민주투사, 가난을 극복하려 갖은 애를 썼으나 결국 노숙자로 밀려난 청년의 이야기도 나온다. 어린이들 역시 모두 가난과 주위의 무관심, 문제아라는 낙인, 선생님의 차별에 아파한다. 

그러나 그러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든 사람이 문제아라 낙인찍어도 거기에 실망하거나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줄 안다. 노숙자로 밀려난 이웃집 아저씨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성실해도, 부지런해도 부조리한 현실 때문에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품을 줄도 안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나중에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쉽사리 이 책을 읽으라고 건넬 수 있을런지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솔직히 부모의 마음이라면 내 아이가 이 책 속에 담긴 현실을 모른 채 살기를 더 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광고에서처럼 내 아이가 빠르게 자라기보다 바르게 자라기를 원한다면, 내 아이가 지금보다 좀 더 살 만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망설임을 극복하고 이 책을 건네야 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책에 대한 불만. 각 작품의 분량이 너무 짧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1인칭 시점이어서 주변 인물의 심리에 대한 묘사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 하다. 각 이야기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중편 정도의 분량으로 늘리고 시점을 바꾼다면 훨씬 짜임새있고 감동적인 동화가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적고 보니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떠든 것 같아 겸연쩍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아이들의 부모나 친구들의 맘이 궁금했고, 주변 상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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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은 알지요 일공일삼 27
김향이 글, 권문희 그림 / 비룡소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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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안고 있다. 송화는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그리워하고 무당 할머니로 인해 놀림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들었고, 송화의 할머니는 전쟁으로 남편과 헤어진 뒤 생사조차 묘연한 아들을 그리워하며 굿으로 한을 삭인다. 송화의 친구 영분이 역시 부모의 별거와 아버지의 술주정에 마음이 멍든 아이이다. 송화 할머니의 굿을 돕는 부돌이 내외 역시 자식을 잃은 아픔을 품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곱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물론 상처와 아픔이 모두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그 해결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어머니를 따라 이사한 영분이 마음엔 아버지의 죽음이 또다른 상처로 새겨지겠고,  송화 역시 아무리 아버지가 좋다 해도 자신을 찾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과 원망이 쉽사리 가실 리 없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등장인물들의 책 밖의 삶이 아무리 팍팍하고 힘겨워도 그 고운 마음을 잃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이웃의 보살핌, 친구들의 우정이 있기 때문이다. 

곱고 예쁜 이야기를 다 읽은 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가르치는 중학교 1학년 아이들 몇이 내가 이 책을 읽고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읽었다며 아는 체를 하기에 재미있었느냐고 묻자 대부분(그래봤자 서너 명) 모르는 낱말이 많고, 시골 이야기가 낯설어 별로였다고 대답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중소도시나 대도시에 살아 방학 때 찾아갈 시골조차 없는 아이들이 많은 요즘, 아이들이 이 책의 내용에 흥미를 느끼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요즘의 아이들이 이해되면서도 조금은 안쓰럽다. 

그러나 책에 담겨있는 농촌의 정서는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의식의 원형이다. 그리고 지금도 송화처럼, 영분이처럼 사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책의 내용이 낯설고 현실과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지라도 부모와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과정 속에서 송화와 영분이를, 할머니와 검둥이를 친구처럼 가족처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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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거미줄 창비아동문고 51
E.B.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경 옮김 / 창비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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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정도면 무난히 읽을 수 있을만한 동화책이다. 책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작고 병약하게 태어나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죽을 위기에 처한 돼지 윌버, 그러나 주인집 딸 펀의 애원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펀의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농장으로 보내지게 된다. 펀의 정성스런 보살핌을 받다가 낯선 환경으로 보내진 윌버는 무료한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언젠가 자신이 햄이나 베이컨이 될 운명이라는 걸 알게 된 후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게 된다. 바로 그 때 나타난 거미 샬로트, 샬로트는 재치와 기지를 발휘해서 윌버를 동네의 명물로 만들고, 박람회장에서 상까지 받게 해 준다. 덕분에 윌버는 목숨을 건지게 되고, 샬로트의 알을 보호하여 새끼 거미들이 무사히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의 시작과 끝이 돼지 윌버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동화의 진짜 주인공은 거미 샬로트이다. 저자는 샬로트를 통해 계산적이지 않은,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우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샬로트는 고민하는 윌버의 모습이 맘에 들었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단축시켜 가며 윌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윌버는 그 희생과 노력에 특별한 보답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죽어가는 샬로트의 알주머니를 입에 담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윌버가 샬로트의 우정에 보답하는 유일한 사건이다.

사실 처음에 샬로트는 윌버의 박람회장에 따라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알을 낳을 때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박람회장에 따라가게 되면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죽음을 맞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철없는 윌버는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고 샬로트에게 표현했고, 샬로트는 박람회장에 따라가 윌버를 구하는 마지막 거미줄을 만든 다음에 최후를 맞게 된다.  

나는 이러한 내용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우정이 give and take가 아닌 순수한 관계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희생만 하는 샬로트의 우정이 답답했고, 그 희생에 제대로 고마워할 줄 모르는 윌버의 천진한(?) 모습이 한심했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고서야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 해졌다. 결국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었던 것...

내가 언제 친구를 사귈 때 '공부를 잘 해서...' '집안이 잘 살아서...' '얼굴이 예뻐서...' 따위의 이유를 만든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냥 그 아이가 좋아서...' 친구가 되었을 뿐이었고, 그냥 그렇게 좋아서 잘 해 주었을 뿐이었는데, 어른이 되어 그맘때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때묻은 마음으로 윌버와 샬로트의 우정을 바라보았으니 답답하고 한심한 마음이 들었던 거고...

때로 동화는 아이가 아닌 어른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묻은 마음을 씻고,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을 되살려 조금이라고 맑은 사람이 되는 데 동화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은 나에게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알려 주었다. 윌버는 처음엔 여느 돼지와 다름없이 평범한 존재였지만, 샬로트가 '대단한', '훌륭한', '겸손한' 따위의 말을 거미줄로 만들어 주자 정말 그런 모습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을 괴물처럼 대하면, 그 사람은 정말로 괴물이 된다."는 말이 있다던가...? 한 번의 잘못으로 낙인찍어 문제아를 만들기도 하는 현실에서 샬로트가 윌버를 훌륭한 존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부모와 교사가 함께 보고 배워야 하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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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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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엽서>를 산 후 나는 행복했다. 그 크기와 무게 때문에 들고 다니며 볼 수는 없지만, 군데군데 찍혀있는 '검열 필' 도장이 가슴아프기도 하지만, 그의 글씨와 그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오늘, 나는 또 하나의 기쁨 <처음처럼>을 만났다. <엽서>의 글씨와 그림이 작고 소박한 느낌이었다면, <처음처럼>에 담긴 유려한 붓글씨와 선명한 색채의 그림은 한결 여유롭고 푸근한 느낌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그의 됨됨이... 그는 한없이 온화하고 겸손하지만 기존(旣存)과 권부(權富)에 몸을 낮추지 않겠다는 의기는 매섭기 그지 없고,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삶과 사회에 대해 사색하지만, 그 성찰과 사색의 결과가 항상 실천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참다운 변화는 우직한 사람들의 느린 한 걸음으로 만들어진다는 그의 믿음은 너무 아름다워 눈물겹기까지 하다.

<처음처럼>은 신영복의 다른 저작에서 글을 발췌하고 붓글씨와 그림을 덧붙여 놓은, 이른바 기획상품이지만 그것이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짧지만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글이 있고,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그림이 있고, 쓴 사람의 인격과 성품이 엿보이는 글씨까지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는 책을 내면서 많이 망설였고, 독자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고 고백하지만, 덕분에 이리도 아름다운 책을 만날 수 있었으니 독자인 나는 그의 망설임과 미안함이 오히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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