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뱃속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 2009년 3월 고도원의 아침편지 추천도서
이케가와 아키라 지음, 김경옥 옮김 / 샨티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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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작년이었나, 내 옆자리 선생님이 다섯 살 짜리 자기 아이가 밥을 먹다 말고 뜬금없이 "난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가 맘에 들었어."라고 얘기하더라는 말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왜? 뭣 때문에 엄마가 맘에 들었어?"하고 물어보자 "노래를 잘 불러서..."라고 했다나~ 이 아이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엄마 뱃속에 있을 때, 태어나기 전 하늘나라에서 살 때)를 종종 해서 내 옆자리 선생님을 놀래켰다고 한다. 자기 아이가 혹시 신기가 있어 나중에 무당이 되려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던 선생님을 보고 "애가 농담하는 거겠지, 설마 뱃속에 있었을 때를 진짜로 기억하겠어?" 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물론 이 책에 설명되어 있는 79명의 아이에 대한 설문은 모든 아이를 대표하기 어려울 만큼 숫자가 적긴 하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정말로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지, 부모가 자기한테 해 준 얘기나 어른들끼리 하던 얘기를 자신의 경험으로 착각하고 얘기하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아기들이 뱃속의 일을 기억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기억을 하든 못 하든 중요한 건 태아가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엄마 뱃속의 열 달을 무사히 보내고, 가능하면 안전하게, 사랑을 듬뿍 느끼면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부모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산모의 정서적 안정과 행복이 중요하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막상 임신을 하고 보니 변하는 내 몸에 적응하는 것도, 날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지는 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기쁘고 행복한 만큼 불안하고 예민해질 때도 많다. 그럴 때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노력한다. 결국 최고의 태교는 아이의 두뇌를 개발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세상에서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행복하게 삶을 즐기고 때론 이겨나갈 수 있도록 그 자양분을 만들어주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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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 풀하우스 - 행복가득 태교 시리즈 1
김수경 지음, 어수현 그림 / 형설라이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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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 다섯에 첫 임신, 더구나 여러 차례의 시험관 시술 끝에 어렵게 가진 아이. 귀한 아이라는 생각에 행여 극성스런 엄마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래서 가능한 한 수선스럽지 않게, 가장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임신 기간을 보내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태교 책 한 권 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이 책 <태교 풀하우스>를 구입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아이에게 태담으로 읽어줄 태교용 동화나 수필을 원하는 사람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 어느 한 쪽에 발을 담그지 않고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쳤다고나 할까...? 임신 주수에 따른 모체와 태아의 변화, 엄마의 기도, 아빠의 태교, 전문가 칼럼까지... 너무 많은 내용을 책 안에 넣으려 한 탓인지 어느 한 쪽도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었다.

다른 책을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태교용 책이 따로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요즘에는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김용택이나 도종환, 법정스님의 글들을 소리내어 읽어주고 있는데 이 편이 아이 정서발달에 훨씬 좋지 않을까? 그래도 행여 태교용 책을 따로 구입하고 싶다면 다른 군더더기 없이 짧은 동화나 시를 모아놓은 그런 책을 고르는 게 나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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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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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홈페이지 "더불어 숲"에서 고전강독을 다운받아 짬짬이 읽던 것이 벌써 4~5년은 넘은 것 같다. 그렇게 읽던 글을 멋진 책으로 다시 읽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고전강독"이던 제목이 "강의"로 바뀐 것은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변화인 듯 하다. "강독"은 "글을 읽고 그 뜻을 밝힘"이라는 뜻이다. 아무래도 원전의 의미에서 벗어나 현대적 시각에서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있는 이 책과는 딱 부합하지 않는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 제목을 "강의"로 바꿈으로서 이 책이 갖고 있는 고전과 현대사회의 연결 혹은 고전의 현대적 해석을 보다 설득력있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동양고전을 관계론의 시각에서 읽겠다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관계론"이라는 것은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는 서양의 존재론에 반하여 세계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동양적 사고방식이다.

그렇다면 왜 고전이어야 할까? 저자는 이에 대해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p.77)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오늘날의 사회가 변하고 있고, 또 변화해야 한다면 그 단초를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고전에서 변화의 단초를 찾고 실천하는 일이 반드시 옳고 성공으로 끝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실패 없는 완성보다는 실패로 끝나는 미완성이 훨씬 더 많은 법이다. 그래서 "실패가 있는 미완성은 반성이며, 새로운 출발이며, 가능성이며, 꿈"(p.128)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모습이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저자의 고전 해석은 사실 낯설다. 주역에서 '속도'에 대한 반성을, 논어에서 광고의 지나친 과장과 상업성에 대한 비판을, 노자에서 민중의 진정한 연대를 이끌어내는 그의 해석은 우리나라의 동양철학 학자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러나 그의 강의를 따라가다 보면 그 해석이 지나친 비약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저자는 마지막, 불교를 짤막하게 소개하는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모든 생명체의 관계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 시간과 무변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되"(p.474)는 법이라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되고, 나와 너가 연결되어 우리가 연결되는 찬란한 세상...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자 했던 세상이 바로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

한결같이 단아한 경어체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단정하고 엄숙하게 한다. 우리나라에 그처럼 사유하는 학자가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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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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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미지가 없어 yes24에서 퍼왔습니다.)

책 속지를 보니 99년 12월에 구입한 책이다. <비명을 찾아서>를 너무 재밌게 읽은 뒤 복거일이란 작가에 혹해 구입했다가 실망하고 10년 가까이 구석에 쳐박아 두었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음이 동해 다시 꺼내들었다. 다시 읽어보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재미있게 느껴졌다.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책이다. 책의 맨 뒷 장에서 작가는 "기지촌에서 힘든 삶을 마감하신 부모님 영전에 바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중학교 1학년이던 주인공 재근이와 그 가족들이 30년 동안 미군부대 캠프 세네카 주변의 기지촌에서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전형적인 친미적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캠프 세네카의 사령관은 주민을 위해 학교와 고아원을 지어주고, 정부 관리들을 압박해 마을에 전기를 끌어다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마을을 돕는 선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마을 주민들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학교 뜰에 공적비를 세운다.

미군들의 성 노리개가 되는 여성들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이른바 양색시들과 관계를 맺는 미군들을 "신랑"이라고 부르고, 그들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살림집"으로 일컫는다. 미군의 행패로  여자가 사망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시체를 둘러매고 부대로 찾아가 항의하는 주민들을 근엄하게 타일러 해산시키고,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만 주민들은 아예 문제를 제기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조용하게 일을 마무리한다.

캠프 세네카가 쇠퇴하면서 미군이 있던 자리를 국군이 차지하고, 주민들을 통제하는 팻말을 붙이자 "주인"인 미군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객"인 국군이 나서서 무슨 짓을 하느냐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80년대 들어 캠프 세네카가 더욱 쇠퇴하고 미군들마저 초라해 보이자 "가장 멋진 나라", "좋은 나라"였던 미국이 예전의 미국같지 않다며 당혹해 하기까지 한다.

복거일이 처음 영어 공용화를 주장한 게 1998년이라 한다. 사실 나는 그가 주장했던 영어 공용화론에 대해 자세하게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가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기지촌 주변에서 살았던 경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의 내용이 온전히 작가의 경험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작가가 하고있는 이야기는 작가가 머리와 마음 속에서 생각하고 그려왔던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미국에 대해 이러한 이미지와 생각을 갖고있는 한 한미간의 관계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기 어려웠을 것이고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주인"을 닮아가는 첩경인 것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겠지. (이런 시각이 지나치게 편협한 것이라고 비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복거일이 최근 대학생들과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교육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보았다. (대학생 웹진 i-bait.com) 그는 아직도 자신의 영어 공용화론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영어 몰입교육에 대해 방향을 잘 잡았다고 하면서도 학교에서 억지로 몰입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엄마 품에서부터 두 개의 "모국어"로 말하는 영어 공용화론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작가가 글만 쓰며 사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지만, 작가가 사회를 향해 사람들을 향해 쓴소리를 지르는 게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그가 글 잘 쓰는 소설가로만 남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소설로만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꽤 재미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소설의 작가가 복거일이라는 것... 아무리 그냥 소설로만 읽으려고 해도 그가 주장하는 이야기들과 맞물려 그럴 수 없다는 게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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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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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나도 그런 게 몇 가지 있다. 고스톱을 비롯한 각종 도박과 잡기, 그림그리기, 그리고 각종 운동... 내가 남들과 비슷하게 잘 할 수 있는 운동은 줄넘기 뿐이다. 나는 아직도 축구의 오프사이드가 뭔지 잘 모르고, 야구에서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할 줄 모른다.

그 때문인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나는 무척이나 재미없게 읽었다. 물론 야구 규칙을 훤히 알아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야구를 전혀 모르는 내가 그 책을 읽는 건 한글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철학책을 읽는답시고 붙들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탁구는 좀 다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탁구 특기자를 키우는 학교였다. 그 유명한 유승민이 내 중학교 후배다. 게다가 내가 모교로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당시 3학년이던 유승민이 마침 무슨 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상 받으러 온 녀석과 악수까지 한 적이 있다. 어쨌든 중학교 3년 내내, 학교건물과 붙어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연습하는 탁구부들을 늘상 봐온 탓에 탁구를 할 줄은 모르지만 다른 운동과는 달리 탁구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편이다.

<핑퐁>은 그 탁구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탁구를 치는 왕따 중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탁구를 치는 왕따 중학생을 통해 본 요지경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아니,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요지경 인간군상이 살고 있는 이 지구를 두 명의 왕따 중학생이 '언인스톨'하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지구를 그대로 둘 것인가 언인스톨할 것인가를 두고 두 중학생과 탁구로 내기를 하는 대상은 '쥐'와 '새'이다. 스키너박스에서 철저한 강화와 처벌을 통해 훈련된...

왜 그냥 중학생도 아닌 '왕따' 중학생이, 호랑이나 사자 혹은 용 따위가 아닌 '쥐'와 '새'와 지구의 운명을 건 내기를 벌이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그러다가 내 맘대로 결론을 내버렸다. 작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건 뛰어난 2%가 아니라 소외되고 외로운, 그늘진 곳에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법이라 했다. 지금은 못 같다고, 모아이 같다고 얻어맞는다 해도, 낮 말과 밤 말을 몰래 듣는 하찮은 짐승 취급을 받아도, 그런 사람이 모여 모여 학교를 만들고, 마을을 만들고, 나라를 만들고, 인류를 만드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눌리고 눌리다 폭발하여 부당한 세계를 언인스톨하기도 하는 법이다.

언인스톨된 새로운 세상에서 두 아이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한 아이는 마술가로서의 재능을 살려 스푼을 구부리며 살아가는 삶을, 또 한 아이는 아무도 없을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삶을 선택한다. 모든 게 사라져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일상은 그렇게 흘러가기 마련인가 보다.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의 뒤를 따라가며 책 속의 세상이 보다 온화하고, 정감있는 세상으로 인스톨되길 바래보았다. 그리고, 내가 딛고 있는 이 세상이 언인스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잠겼다. 아니, 어쩌면 이 더러운 세상, 빨리 언인스톨되라고 기도해야 하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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