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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평점 :
그의 홈페이지 "더불어 숲"에서 고전강독을 다운받아 짬짬이 읽던 것이 벌써 4~5년은 넘은 것 같다. 그렇게 읽던 글을 멋진 책으로 다시 읽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고전강독"이던 제목이 "강의"로 바뀐 것은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변화인 듯 하다. "강독"은 "글을 읽고 그 뜻을 밝힘"이라는 뜻이다. 아무래도 원전의 의미에서 벗어나 현대적 시각에서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있는 이 책과는 딱 부합하지 않는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 제목을 "강의"로 바꿈으로서 이 책이 갖고 있는 고전과 현대사회의 연결 혹은 고전의 현대적 해석을 보다 설득력있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동양고전을 관계론의 시각에서 읽겠다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관계론"이라는 것은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는 서양의 존재론에 반하여 세계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동양적 사고방식이다.
그렇다면 왜 고전이어야 할까? 저자는 이에 대해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p.77)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오늘날의 사회가 변하고 있고, 또 변화해야 한다면 그 단초를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고전에서 변화의 단초를 찾고 실천하는 일이 반드시 옳고 성공으로 끝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실패 없는 완성보다는 실패로 끝나는 미완성이 훨씬 더 많은 법이다. 그래서 "실패가 있는 미완성은 반성이며, 새로운 출발이며, 가능성이며, 꿈"(p.128)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모습이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저자의 고전 해석은 사실 낯설다. 주역에서 '속도'에 대한 반성을, 논어에서 광고의 지나친 과장과 상업성에 대한 비판을, 노자에서 민중의 진정한 연대를 이끌어내는 그의 해석은 우리나라의 동양철학 학자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러나 그의 강의를 따라가다 보면 그 해석이 지나친 비약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저자는 마지막, 불교를 짤막하게 소개하는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모든 생명체의 관계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 시간과 무변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되"(p.474)는 법이라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되고, 나와 너가 연결되어 우리가 연결되는 찬란한 세상...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자 했던 세상이 바로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
한결같이 단아한 경어체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단정하고 엄숙하게 한다. 우리나라에 그처럼 사유하는 학자가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