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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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나도 그런 게 몇 가지 있다. 고스톱을 비롯한 각종 도박과 잡기, 그림그리기, 그리고 각종 운동... 내가 남들과 비슷하게 잘 할 수 있는 운동은 줄넘기 뿐이다. 나는 아직도 축구의 오프사이드가 뭔지 잘 모르고, 야구에서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할 줄 모른다.

그 때문인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나는 무척이나 재미없게 읽었다. 물론 야구 규칙을 훤히 알아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야구를 전혀 모르는 내가 그 책을 읽는 건 한글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철학책을 읽는답시고 붙들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탁구는 좀 다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탁구 특기자를 키우는 학교였다. 그 유명한 유승민이 내 중학교 후배다. 게다가 내가 모교로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당시 3학년이던 유승민이 마침 무슨 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상 받으러 온 녀석과 악수까지 한 적이 있다. 어쨌든 중학교 3년 내내, 학교건물과 붙어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연습하는 탁구부들을 늘상 봐온 탓에 탁구를 할 줄은 모르지만 다른 운동과는 달리 탁구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편이다.

<핑퐁>은 그 탁구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탁구를 치는 왕따 중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탁구를 치는 왕따 중학생을 통해 본 요지경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아니,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요지경 인간군상이 살고 있는 이 지구를 두 명의 왕따 중학생이 '언인스톨'하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지구를 그대로 둘 것인가 언인스톨할 것인가를 두고 두 중학생과 탁구로 내기를 하는 대상은 '쥐'와 '새'이다. 스키너박스에서 철저한 강화와 처벌을 통해 훈련된...

왜 그냥 중학생도 아닌 '왕따' 중학생이, 호랑이나 사자 혹은 용 따위가 아닌 '쥐'와 '새'와 지구의 운명을 건 내기를 벌이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그러다가 내 맘대로 결론을 내버렸다. 작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건 뛰어난 2%가 아니라 소외되고 외로운, 그늘진 곳에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법이라 했다. 지금은 못 같다고, 모아이 같다고 얻어맞는다 해도, 낮 말과 밤 말을 몰래 듣는 하찮은 짐승 취급을 받아도, 그런 사람이 모여 모여 학교를 만들고, 마을을 만들고, 나라를 만들고, 인류를 만드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눌리고 눌리다 폭발하여 부당한 세계를 언인스톨하기도 하는 법이다.

언인스톨된 새로운 세상에서 두 아이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한 아이는 마술가로서의 재능을 살려 스푼을 구부리며 살아가는 삶을, 또 한 아이는 아무도 없을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삶을 선택한다. 모든 게 사라져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일상은 그렇게 흘러가기 마련인가 보다.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의 뒤를 따라가며 책 속의 세상이 보다 온화하고, 정감있는 세상으로 인스톨되길 바래보았다. 그리고, 내가 딛고 있는 이 세상이 언인스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잠겼다. 아니, 어쩌면 이 더러운 세상, 빨리 언인스톨되라고 기도해야 하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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