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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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보수화에 분노하라는 이 시대의 지성의 외침이다.

과연 우리 사회에는 이런 지성인이 있는가? 조국의 독립투사로서 민주주의의 열사로서 그리고 이 시대의 진보를 외치는 지성으로서 스테판에셀같은  지식인을 우리는 갖지 못했다. 물론 민주주의 투사도 있었고, 독립투사도 있었지만.

 식민의 잔재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스테판에셀같은 지성인은 나올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그것역시 역사 청산을 제대로 했기에 가능한 얘기일 수도 있다.아직도 친일의 잔재에서, 군사독재의 잔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참 부러운 일이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평등, 자본에 대한 비판,소수 권력과 부에 대한 배격, 분배, 복지등을 얘기할 수 없다. 보수(?) 세력은 견고하게 기득권을 보호하는데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1%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마저도 중산층(?,아마도 중하층으로 볼 것이다. 상위1%는)에게 뒤집어 씌우는 전략을 쓴다.

 그래서 중산층 논리를 만들어낸다. 중하층, 하층도 중산층으로 느끼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제도적인 복지를 통한 분배의 평등을 이루려고 하지 않고 개인적인 양심과 기부등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유도한다. 자신들은 잘 먹고 잘 쓰는 죄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 분노할까?

 시대의식에 반응하여 분노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언로가 왕조시대보다도 더 막혀버린 사회에서 분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고립되어가고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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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으로 충분하다 - 정신과의사 정혜신의 6주간의 힐링톡
정혜신 지음 / 푸른숲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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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것 그대로의 자신의 감정과 숨겨진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읽으면서 나와 나이도 성별도 상이한 사람들이 숨겨진 상처와 있는 그대로를 놓쳐버린 감정들이 나를, 나의 감정들은 어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했다. 그리고 나와 나의 주변사람들과의 대화나 관계들은 어떻했는지 자꾸만 자문하게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래 나도 어떤 감정들이 있었어'하는 생각들이 자주 들게하는 글들이다.

 공감하는 대화를 일상에서는 거의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고, 나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공감하는 상대가 절대 못되고 있음을 그리고 그러한 관계속에서 나도 상처받고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제대로 된 공감이 진정한 힐링임을 정혜신 박사는 강조한다.

이러한 상담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공감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래도 자신의 열린 감정을 조금이나마 보게 될 것이다라고 기대한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참 모습을 어쩌면 이렇게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다. 애써 외면하면서 살고자 하는 자신의 숨겨진 감정들을 조금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데 혹시나 그 상처가 더 도드라져 보이고  아파하게 될까봐 꼭 꼭 숨기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책 속에 들어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거의 공감하는 대화를 하지 못하며 살고 있구나.피상적인 일상에서 점점 더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과 느낌이 어떤건지 알지 못하는 일상이 진짜 나의 일상이자 감정과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살아간다.

 어느 순간 빈 껍데기같은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려면 지금 자신의 감정을 화를 잘 들여다보기를...

외롭다고 종종 느끼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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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살해사건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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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이 500년의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중에 하나가 언쟁기관의 독립성과 역사 기술의 철저한 보장과 독립이었다. 그런 조선시대에도 사초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예들이 있다. 조선에서 사초를 열어 본 사례가 연산군이었다. 연산군은 사초를 통해 정적들과 자신의 어머니의 사사에 관련된 사항을 사초를 통해 확인하고 관련자들을 모조리 사형에 처한다. 이후 훈구세력은 거기서 더 나아가 사림의 정적들을 제거하는데 절대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사관들의 사초의 비평들을

이용한다. 연산군의 선례에 의해 명종대에 다시 한번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사초가 또 다시 불법적으로 이용된다. 

 사관의 독립성이 훼손되면서 정권을 견제할 언간이 살아지고, 민생은 극도로 피폐해지게 된다. 그리고 훈구 집권세력은 부폐의 극단을 달리고, 연산의 경우에는 극단의 폭압 정치로 공신들의 권력이 약화되고 극도의 왕권이 강화되지만, 폐위후에는 신하들의 의해 택군이 되는 극단의 상황이 펼치지게 된다. 연산의 선례를 만듬으로서 이후에는 집권세력들이 정적을 없애기 위한 도구로 사초를 이용하게 되는 역사이 퇴보를 가져오게 된다.

 그런데 지금의 NLL 대화록이 정략에 의해 선거에 이용되고 나서 그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사초를 정략에 이용하기 위해 무단으로 열람되고 이용되었다는 것이 그 논란의 핵심이 아니고,즉, 철저한 독립성과 신분보장인데, 그것은 뒷전이고 대화록이 있냐 없냐, 대화록의 내용이 맞냐 안 맞냐 등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필요한 내용들로 논라인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 기록물법의 거의 무력화 된 상태고, 이후부터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정략적인 필요에 의해 역사의 기록들이 이용될 것이다.그렇기때문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국가 정책 결정이나, 의사 결정에 관한 내용들은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이전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결정이 나중에 크게 문제가 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정책의 지속성, 그리고 이후 정권의 정치적 판단의 일관성이나 의사판단의 준거를 마련해주기위해 기록물의 중요도나 필요에 의해 기록물 관리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국가 기록물법을 설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전 정권의 몇배에 달하는 국정 전반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정권이 그 기록을 정략적으로 선거에 이용하고, 그 선례를 숨기기 위해 다른 논란들을 만들고 부풀려서 노무현 정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논란은 분명 다른 사초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조선은 왕권과 신권이 적절히 균형을 이룸으로서 500년 왕조를 만들어냈다. 그 가장 큰 배경은 간쟁이 자유루웠고, 사관의 독립성이 보장되었기 때문도 하나의 이유이다. 그런데 현대 대한민국의 역사인식이 조선시대보다 못하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연산군이 제일 무서워한 것이 역사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의 위정자들이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집권세력들이 역사가 무서운줄을 모르는 것 같다.

일제 식민의 역사가 얼마나 후대의 정치와 삶, 사회를 규정하는지도 그들은 무시하고 싶은것 같다.

역사는 진실을 영원히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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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새끼입니다 - 국민이 광고주인 카피라이터 정철의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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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사회의 아픈곳을 보며 살 줄아는 사람의 이야기네요.역사가 만들어지는것은 소수의 승자들만의 힘은 아닐 것입니다. 다수의 약자들과 분노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역사는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고 아직은 믿고 싶게하는 책입니다.아마도 정철도 그 믿음을 아직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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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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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보수화에 분노하라는 이 시대의 지성의 외침이다.

과연 우리 사회에는 이런 지성인이 있는가? 조국의 독립투사로서 민주주의의 열사로서 그리고 이 시대의 진보를 외치는 지성으로서 스테판에셀같은  지식인을 우리는 갖지 못했다. 물론 민주주의 투사도 있었고, 독립투사도 있었지만.

 식민의 잔재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스테판에셀같은 지성인은 나올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그것역시 역사 청산을 제대로 했기에 가능한 얘기일 수도 있다.아직도 친일의 잔재에서, 군사독재의 잔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참 부러운 일이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평등, 자본에 대한 비판,소수 권력과 부에 대한 배격, 분배, 복지등을 얘기할 수 없다. 보수(?) 세력은 견고하게 기득권을 보호하는데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1%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마저도 중산층(?,아마도 중하층으로 볼 것이다. 상위1%는)에게 뒤집어 씌우는 전략을 쓴다.

 그래서 중산층 논리를 만들어낸다. 중하층, 하층도 중산층으로 느끼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제도적인 복지를 통한 분배의 평등을 이루려고 하지 않고 개인적인 양심과 기부등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유도한다. 자신들은 잘 먹고 잘 쓰는 죄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 분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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