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말 힘들게, 힘들게 다녔다. 중고등학교 자체가 타인의 취향에 대한 배려 같은건 안중에도 없는 가장 전체주의인 - 내게는 가희 폭력적이라고 느꼈던-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지금 생각해보니 결론이 났다. 물론 그때는 잘 몰랐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뭘 잘 몰랐는데, 뭐 지금도 뭘 아는건 아니지만, 분명 그런 함께 우르르 움직여야 하고, 모두가 비슷해야만 했던 그 시절을 벗어난게 내게는 꽤 감사한 일이다. 음, 분명 그 시간은 별로 아름답다거나 추억이 많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던거 같다.

난 몰랐는데 회사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중고등학교의 정체를. 왜 이러냐 하면 중고등학교가 지극히 폐쇠적인 또래문화와 모두가 비슷해야 한다는 그런 관성이 자리잡은 곳이라는걸 난 회사에 들어와 보고서야 알았다. 회사라는 곳이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 곳이더라.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정도로 그리 넉넉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라는게 본질에 가깝겠지만 정말 회사는 너는 너, 나는 나인 곳이다. 아마도 회사 생활 초장기 내가 만난 사람들이 굉장히 이런 면이 많아서 행운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회사생활을 5~10년 정도 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랬다.

사실 회사에서는 일만 잘하면 정말 서로 터치하지 않는, 정확히는 관심이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나에게는 썩 잘 맞는 것 같다. 고 어제까지만 해도 생각했다. 회사에서 딱히 부딪히는 사람이 없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일 수도 있는데 신입사원이 하나씩 하나씩 들어올수록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거다. 아직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일만 잘하면 뭐 큰 문제 없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어서 일단은 사람 자체를 보게 되는데 으아 정말 부담스러운 면을 느끼게 되는거다. 으아으아.

나도 회사생활을 오래 하지 않아 뭐라 말할수는 없지만 마냥 애기같은 그들은 어찌해야 할까.
부딪히지 않는게 상책이지 싶다. 싫으면 이쪽에서 건드리지 않으면 부딪칠 일도 없을거 같은데.  

+음, 그리고보면 상사가 나에게 꾸중을 하는 것도 이런 귀찮음을 극복하고 하는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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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읽고 있다. 새삼스럽게 '그럼 신문 읽지 않는 사람도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요즘은 전혀 신문을 단 1장도 읽지 못하고 있었다. 9시 뉴스를 챙겨보는 것도 아니고, 동생의 MP3로 주인에게 돌아가서 라디오를 들을 수도 없다. 정말 세상과 단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요즘이다.

잘 몰랐는데 회사 건물 1층에서는, 이 건물은 23층짜리 건물이다, 신문을 공짜로 가져다가 볼 수 있었다. 메이저 급 신문은 아니고 석간신문 하나와 내일신문이라는 하나인데, 너무 두텁지도 않고 적당히 얇아서 집에서 30분 정도면 쑥 읽을 수 있다. 보통 당일신문을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하나씩 읽어 나간다. 역시 신문은 지하철에서 요리조리 작게 접어가면서 읽는게 재맛이다.

신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지하철을 타고 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다음날 신문은저녁 6시 정도면 일단 깔리기 시작한다. 간밤에 사건과 사고가 터지거나 수정을 하면서 판갈이는 되겠지만 일단 큰 맥락에서는 내일 신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거의 이 신문이 9시 뉴스 소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지하철을 타기 시작한건, 걷기도 할겸 다음날 신문도 미리 사서 저녁에 읽을 겸이다.

이 신문을 잘 들고 와서 집에서 한장씩 한장씩 그날 있었던 일을 읽는건, 꽤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이유는 사실 신문을 사기 위해서 라는거 아무도 몰랐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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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모든 일에 2%쯤은 여유가 있게 마련이다. 사실 그 2%쯤의 여유는 목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셈인데, 덕분에 친구에게 오랜만에 주저리주저리 편지를 썼다. 사실 딱히 어떤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건 아니었는데, 편지를 쓰다보니 펜이 저 혼자 달려 버려 써놓고 보니 4장이 넘는다. 학교에 다닌다고 지방에 내려가 있는 친구에게 할 말이 많았나보다.

편지를 쓰고 났는데 잠은 오지 않고 지난 주 아팠을 때 자리에 누워서 읽은 <채링크로스 84번지>가 생각난다. 음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친구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편지에 근 2주나 답장도 써주지 못했으니 몸이 나으면 편지부터 써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주말에 읽을 요량으로 책을 추려서 주문했는데 그 중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은 입소문으로 화제가 된 소설인데, 그 덕분인지 엄한 표지로 책이 개정되어 나오는 바람에 이만저만 아쉬운게 아니다. 저번 판본이 훨씬 아름다웠는데 갑자기 절판이 되어 버려서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이렇게 빨리 개정되서 새판으로 내놓을 줄 알았으면 그 전에 사두는건데. 아참, 인터넷으로 보는 것보다 실물을 보면 훨씬 충격적이다. 도대체 왜 이런 표지를 쓴걸까. 혹시 디자이너가 안티인걸까.

이 책을 읽다가 <키다리 아저씨>가 생각나서 한권을 또 내쳐 읽었다. 아 정말 <키다리 아저씨>는 명작이다. 어머니와 내가 책에 관한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이라고 해야하나. 난 <빨간머리 앤>까지는 범접할 수 없는지라 <키다리 아저씨>가 딱 어머니와의 접점이다. 아참, <키다리 아저씨>는 속편이 있다. 주디의 친구가 주디의 요청으로 고아원을 운영하게 되면서 고아원 근처의 의사와 두탁거리는 내용으로 역시 서간채 소설인데, 음 역시 재미나다. 

친구에게 못 한 말이 있었는데, 편지를 다시 써야겠다.

아참, 요즘 우표값은 250원이다. (대부분이 모르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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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은 2010-05-02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표값이 궁금했는데 고맙습니다
 
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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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나라는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다. 다민족과 다인종이라는 국가의 특성에서 오는 그 독특함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이다. 태생적이라고 해도 좋을 인종갈등, 슈퍼 파워로 인한 전쟁 피해자들, 경제력에 의한 사회의 분열, 거대한 담론이 아닌 파편화된 각 개인이 서로에게 가지는 불신과 위선, 편견으로 들어찬 지금 현재 미국의 자화상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휴먼 스테인>은. 이토록 적절한 제목이라니, 인간의 오점이라고 해야할까?

 

미국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압축한 인물들.

테나 대학과 그 지역 사회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2000년대 미국, 빌 클린턴이 한 여직원과의 성추문으로 나라라 들끓던 시간이 배경이다. 아니 사실 이 소설은 2000년이란 시간은 현재 등장인물이 있는 시간일 뿐,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나라의 특징을 아우를 수 있는 시간과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 화자는 네이선 주커먼으로 소설 속 주인공인 콜먼 실크와의 만남부터 그의 죽음까지를 전하는 인물이다. 이 화자는 실제 필립 로스가 직접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난할 정도로 작가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아테나 대학의 학장이었으나, 인종차별적 발언을 계기로 대학 사회와 지역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된 콜먼 실크이다.

 

그는 그 발언을 계기로 자신이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 대학을 사임해야 했으며, 오래된 동료이자 아내였던 부인은 그와 함께 부당함을 투쟁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2년이 넘도록 자신을 부당하게 매도하는 모든 소문과 사건들에 투쟁하던 콜먼은 그 투쟁에서 손을 놓게 되며,  30대 초반에 불과한 포니아와 연인 관계가 된다. 포니아 에게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남편 레스터 팔리가 있고, 결국 콜먼과 포니아는 레스터 팔리와 관련된 교통사고로 함꼐 죽는다.

 

간단한 요악한 줄거리지만, 이 줄거리안에는 담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각 인물들의 과거이다. 그들은  각자 미국의 과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흑인이었으나 자신의 가족과 인연을 끊고 백인, 그것도 유태인으로 살고자 했던 콜먼, 어린 시절 의붓 아버지에게 괴롭힘을 당해 집에서 뛰쳐 나와 방황해야 했던 포니아, 베트남 전쟁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팔리. 또한 이들 외에도 자신이 흑인이지만 백인을 옹호한다는 비판에 두려워 하는 흑인 등 이들은 모두 미국의 과거이자,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미국의 현재이다.

 

미국의 현재는 ... 한국의 현재는

<휴먼 스테인>은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만들었고 만들고 있는 사건들을 각 인물에 부여해서 촘촘하게 소설을 구성했다. 인종, 전쟁과 같은 거대한 담론이 미국의 과거를 만들었다. 문제는 이 과거가 과거로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단어 하나에도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매장될 수 있는 그래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인종문제와 지금도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미군 병사들. 거기에 더불어 진실과 소문의 경계가 모호한 사회. 누구도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은 지금의 현재를 말한다.

 

콜먼 실크와 포니아의 죽음으로 아테나 대학과 지역 사회는 과거의 잘못이 치유되고 모든 것이 눈 아래로 덮인 듯이 보인다. 하지만 화자인 네이선은 포착하고 있다. 과연 이 사회가 이 미국이 진정으로 콜먼 실크와 포니아의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과거의 계급, 노예제도, 인종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 이해와 공감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면 상관 없다. 나와는 모두 상관없는 이야기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이 미국을 만들었고,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들었다.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겪으면서 지금의 우리의 사고 방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콜먼 실크의 사퇴와 콜먼 실크의 죽음이, 소문이 진실을 뒤덮은 그런 현실에 말이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일까? 버릴 수 없는 인간의 오점(human stain)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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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어느 가족이 안 그렇겠는가 싶지만,
우리 가족은 약을 참 많이 그리고 오래 달고 살았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어머니가 주로였고, 동생도 잠깐 1년 정도 함께 했었고,
지금은 아버지와 어머니 정도가 함께이다.

그래서 내게는 어머니가 아버지 약을 챙겨주시는 풍경이,
그리고 어머니가 내게 영양제 같은걸 챙겨주시는 풍경이
참 익숙한 그야말로 소위 일상이라는 풍경이다.

음 그래, 일상.

그런데 참 재미있는건, 가족의 약을 챙기시는 어머니는
정작 당신의 약은 잘 드시지 못한다는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사람들 먹는 약은 잘 챙기지만, 본인 약을 챙기기는
참 어려운 일이니 그러려니 싶지만. 그게 또 어머니인 것 같아서 항상 그렇다.

요즘은 일주일치 약을 미리 넣어 놓어놓고 요일 별로 확인이 되도록 된 약통이 있다.
꽤 편리한 도구인데, 일요일 저녁 설거지를 하면서 난 어머니 일주일치 약을
저 통안에 하나씩 하나씩 요일별로 채워넣는다.

이런게 나이가 든다는건가 싶기도 하다.
내게 어머니의 약통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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