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 나의 꿈 나의 사랑!
|
20대를 치열하게 보낸 한국 만화가들이 30대에는 돈이 아니라 예술성 때문에 계속 사회와 소통하며 만화를 만들어내는 그런 ‘문화경제’를 일구고 싶다.
|
|
|
[71호] 2009년 01월 17일 (토) 01:04:07 |
우석훈 (경제학 박사·<88만원 세대> 저자) |
|
|
|
|
|
|
ⓒ뉴시스정부가 두 가지 만화 매체에 연 20억원씩만 지원해주면 숨통이 트일 것이다. 위는 만화발전 관련 계획을 발표하는 유인촌 장관. |
지난 2주 연속 녹색 뉴딜을 다루느라 문화경제학이 잠시 쉬었다. 그동안 만화 작가 몇 사람을 만났고, 어떻게 하면 만화를 살릴 수 있을까, 꽤 농도 짙은 얘기도 나누었다. 그중 몇 사람은 나와 신작을 같이 하는 공저 관계이지만 이런 비즈니스 관계 말고 만
화 자체를 위해서 만난 사람으로 최규석이라는 분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와는 ‘존경’ 관계이다. 물론 일방적으로 내가 만화가 최규석을 존경하고, 그의 예술 세계를 동경한다. 오늘 글은 그와 그의 동료, 그리고 그와 상관없는 또 다른 만화가들과 나눈 얘기를 정리한 것이다.
먼저 나와 만화의 관계를 정리해보자. 나는 대학 시절 전형적인 딴따라였는데, 음대 수위 아저씨가 내가 졸업할 때까지 기악과 학생인 줄 알았다는 얘기가 따라붙을 정도로 악기나 만지던 인간이었다. 나의 악기는 해금이었고, 연주회 때 가끔 아쟁을 연주하기도 했다. 잔디밭에서 막걸리 마실 때에는 기타를 치기도 했다. 나는 <자본론>과 레닌의 책을 읽으면서 혁명전사의 꿈을 품기도 했다. 바로 그 시절, 내가 꿈꾼 직업이 만화 평론가였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실제로는 매주 나오는 만화를 읽으면서 이걸 직업으로 하는 그런 삶, 그런 게 대학 3~4학년 시절 내가 꿈꾸던 ‘보람된 미래’였다. 물론 대학 4학년 때, 경찰에게 쫓기면서 나의 이런 고상한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악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고, 손에서는 굳은살이 사라졌고, 먹고살기 위해서 현대그룹에 취직하면서 하룻밤을 꼬박 울었다.
지금 만화는 대학 시절의 꿈과 나를 연결해주는 다리와 같다. 내가 조금만 재능이 있었다면 나도 만화를 그린다고 했을 텐데, 불행하게도 신은 나에게 그런 재능을 주지 않았고, 나 또한 너무 일찍 그 사실을 알았다. 만화는 나에게 꿈과 같다. 그래서 이 문화경제학 시리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구분해 별도의 절에서 다루는 정도이다. 이거 내가 혁명전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던 시절에 대한 사랑과도 같은 일이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자. 기계적인 통계를 살펴보면, 2006년 기준으로 만화시장의 총규모는 4362억원 정도이다. 1조원도 안 되는 시장이다. <2007 문화산업백서>에 따르면 온라인 만화시장이 309억원 정도니, 오프라인 시장이 훨씬 크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4000억원 정도가 움직이는 시장으로 볼 수 있고, 한국 경제로 보면 보잘것 없는 규모이다. 수치로 보면, 경제학자가 움직여서 분석하기에는 좀 작은 시장이기는 하다.
잠재성은 높지만 가능성이 차단된 시장
이건 정량적 얘기이고, 만화 시장의 정성적 얘기들을 좀 하자면,
이 시장은 ‘잠재성’은 높지만 그 잠재성을 드러내지 못해 망해가는 시장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무래도 제일 큰 것은 ‘만화가게’로 형성된 유통망들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 대량으로 돈이 들어올 가능성이 차단된 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온라인에서 강풀을 비롯해 몇 명의 스타가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아직은 크지 않아서 전체 시스템을 움직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기에 김대중 대통령 시절 애니메이션 학과와 만화학과들을 만들면서 신규 인력의 만화 시장 진입 통로는 많이 확보했으나, 막상 이 사람들이 움직이기에는 시장이 너무 협소하니까, 한국의 만화 지망생들이 지닌 잠재성을 펼쳐 보일 통로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다.
|
|
|
ⓒ뉴시스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 |
이 상황에서 ‘학습만화’ 시장이 출판의 하부 시장으로 펼쳐지면서, ‘만화 장금이’를 비롯해 이미 원작이 있는 이야기들을 기계적으로 만화화하는 일에 상당한 인력이 투입되어 월 100만 원에서 150만원 정도를 어렵잖게 받을 수 있는 정말 우스운 형국이다.
그런데 한국의 만화 소비자들의 눈이 웬만큼 높은가? 나부터도 우라사와 나오키를 신으로 떠받들면서 ‘마스터 키튼’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말이다. 왜 너네는 이렇게 못해? 사실 질문은 그렇게 하지만, 속사정을 아는 나로서는 서로 속 터질 얘기를 하는 셈이다. 물론 나는 경제학자로서 한국에서도 우라사와 나오키 같은 사람이 나올 만한 구조를 만들고 싶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어낸 스튜디오 지브리 같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생기도록 정책을 디자인하고 싶다. 그런 것들을 정부에 건의하고 싶기는 하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만화산업에 기꺼이 투자하던 김대중 정부를 넘어서 10년 동안 정부도 할 만큼 했는데 말이다.
일단 일본에 비하면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늘 정답이지만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우라사와 나오키를 비롯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던 일본의 일류 만화가들이 20대를 지나 30대에도 이런 양산 시스템을 지속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부닥쳤을 때, 그들 통장에는 이미 수십억원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한국의 만화가가 20대를 치열하게 살았을 때, 그들에게는 마이너스 통장만 남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 차이는 극복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다.
20대를 치열하게 보낸 한국의 만화가들이 30대에는 돈 때문이 아니라 예술성 때문에 계속 사회와 소통하며 만화를 만들어내는 그런 ‘문화경제’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인식의 문제는 그 다음 문제로 치고, 일단 제대로 된 주간지·월간지가 너무 적다. 웹툰에서 매일 새로운 만화가 나오는데, 이런 전통 매체를 살릴 수 있을까? 별수 없지 않나, 이런 걸 살리는 수밖에. 정부가 눈 딱 감고, 매체 두 개 정도만이라도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 1년에 20억원씩 딱 두 개 정도를 지원하되 하나는 시사 만화, 하나는 예술 만화, 이렇게 주간지 두 개쯤 만들어주면 일단 20대 만화가들의 숨통이 트일 것 같다. 그러면 정부 입맛에 맞는 것만 하게 되지 않을까? 독립적인 위원회 정도로 ‘예술적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그런 길을 찾아보자.
그 다음에는
만화가의 연구 여건인데, 그들이 소통할 수 있고, 훈련받을 수 있는 그런 소통 센터가 필요할 것 같다. 좀 기이한 발상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만화가들이 시민과 만나고 동시에 학자와 과학자, 그리고 관료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시대의 이야깃거리를 찾고 동시에 고민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이런 것들은 만화가 우리 시대의 전위 매체로 맨 앞에 설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단행본은 꼭 돈 주고 사서 보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문제이다.
개개인에게는 제발 소장을 위해서라도 단행본을 돈 주고 사보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는 마치 노래방에서 그렇게 하듯이
대본소에서 건별로 비용을 물게 하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 등이 필요하다.
많은 10대 청소년 그리고 20대 문화 생산자가 만화가의 삶을 여전히 희망한다. 그들이 예술가이고 만화가로서 세상에 데뷔하게 해주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좀 있다. 제2의 최규석을 기다리는 우리의 소망이 문화 한국으로 가는 또 다른 길 아닌가? 만화, 이대로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한국의 가능성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