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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의 반어법 ㅣ 지식여행자 4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매혹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사용해본다. 소설을 읽으며서도 한장씩 넘어가는 페이지가 아쉬워 갈증이 난다. 남은 페이지가 몇장 되지 않는 사실에 안타까워 아끼고 아겨서 읽었더라. 그게 <올가의 반어법>에 대한 시작과 끝이다.
주인공 '시마'는 러시아 번역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이다. 그녀가 체코 프라하에서 공부하던 소녀시절 무용선생님이던 '올가'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올가 선생님은 무용의 천재였다는 사실과 나이 외에는 아는 것이 없지만 그녀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면서 시마는 자신이 모르던 올가선생님 속에 살아있던 러시아와 만나게 된다. 전날까지만 해도 다니던 회사 출근길에 잡혀가서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숙청을 당하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른 이들까지 끌려가고, 가족과는 모두 헤어지게 되고, 떄로는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인권마저 보장되지 않던 시대에 러시아를 겪어낸 올가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담담하다는 표현마저도 어쩌면 올가의 반어법인지도 모르겠지만.
1970~80년대 중반까지 독재 정권이 지배하던 대한민국의 현실은 당사자들이 말하지 않으면 너무도 우리에게 피상적으로 다가온다. 지그 생각해보면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 조차 실감나지 않는다. 하물며 1920년대 이후 공산화의 길을 걷는 러시아 치하의 소련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지금 나에게 무슨 현실성이 있겠는가. 역사책을 통해서 읽어보지도 않지만 - 러시아는 내게 너무나 멀기만 한 나라이다 - 역사책을 통해 읽어도 무엇을 나에게 준단 말인가.
하지만 올가의 삶에 투영된 러시아의 근현대사는 한 시대의 역사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말한다. 거대한 역사와 작은 개인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역사라는 이름으로 핍밥 받고 소외받은 이들은 과연 어떤 이들인지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구할 수 있다. 거대한 공산주의라는 이름 아래 억압 받았던 이름도 남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그 당시 공산주의라는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 역설은 무엇이란 말인가.
거대한 담론으로서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잘 안다. 근대사 혹은 현대사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 한국에서는 나는 더욱 그렇게 느낀다. 순수하게 내가 찾아서 책을 읽어보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하지 않으면 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근현대사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읽는 것보다 한 개인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났던 그 역사를 몸으로 겪었던 이들은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회사를 하고 아들을 학교에 보내던 평온한 아버지 들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5월 광주의 어느 날은 그들의 이야기의 모음집과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지배층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런 시대에 조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보고자 했던 개인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역사를 본다.
<올가의 반어법>이 이야기하고자 하는건 한 개인의 삶과 그 개인이 겪어야 했던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살아낸 그 시대 사람들의 아픔이다. 재미있다거나 슬프다거나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만으로 <올가의 반어법>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올가라는 한 개인의 슬픈 일생이 아니라, 올가를 통해 러시아의 근대사를 우리는 듣게 된다. 역사책은 절대 줄 수 없는 감동과 고민과 생각을 <올가의 반어법>은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