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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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스릴러,공포, 추리 장르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는 일을 쉽지 않다. 기법상 엄청난 트릭을 발견하자니 이미 트릭은 20세기 초반 작가들이 쓸만큼 써버린 느낌이다. 테크닉적인 요소는 더 이상 새로운게 없어서 - 새로운 트릭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 소설은 트릭에 감탄하는 시대는 분명 아니다 -  새로운 것이라면 테크닉 외의 다른 면 이를테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그 안의 주인공의 심리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대표적으로 온다 리쿠의 소설은 스릴러, 공포, 추리 장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는 없지만 - 그래도 대중적으로는 이미  그렇게 분류가 되고 있으니 - 그의 소설에서는 테크닉이 아닌 서술을 하는 방식의 독특함에 사람들이 매료 당한다. 광고문구따라 노스텔지어의 마법사라고 하지만 그의 소설 속  사건 자체는 굉장히 간단하다. 통상 몇 단계를 거치고 소설이 끝이 난다. 소년 혹은 소녀가 - 아무튼 성숙한 어른은 아닌 연령들이다 -  여행을 가거나 혹은 어떤 사건에 휘말린다.  기억을 더듬어 가며 사건을 진상을 밝히려고 노력한다.  

결국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만, 이야기는 그 즈음 되면 진실은 사실 의미가 없어진다. 그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 속에 있는 인물들이 더듬는 과거가 중요해지고 그 속에서 밝혀지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주인공 조차도 잊고 있던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래서 간혹 결말은 허망하며  황당하기까지 하지만 소설을 덮고 나면 꽤 오래도록 곱씹게 된다. 온다 리쿠의 힘은 이야기 속에 사람들이 언제 몰입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데니스 루헤인처럼.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살인자들의 섬]은 정신병원이 있는 외딴 섬에 수사차 방문한 두 연방형사의 이야기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외딴 섬에서 한 환자가 사라지고, 이를 수사 하기 위한 방문이다. 하지만 이 두 형사는 사라진 환자 찾기 이외에도 각장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 섬으로 들어왔다. 섬 안에 있는 관리인, 의사들은 모두 두 형사에게 비협조적이며, 사라진 환자에게는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단서들이 계속 발견된다. 두 형사는 폭풍을 뚫고 폐쇠된 병동까지 들어가서 정신병원에서 하고 있는 '치료'의 실체와 이 섬이 진짜 어떤 병원인지를 알게 된다. 그 와중에 주인공 테디의 동료인 형사는 사고로 사라지게 되고, 주인공 테디 마져도 이 섬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이 정도가 대충 소설 [살인자들의 섬] 의 줄거리이다. 당연히 눈치챘겠지만 이 소설 다음에는 으레 그러하듯 나름의 이야기가 결말로 준비되어 있다. 사람들은 충격적인 결말이라고 할말큼 놀라운 이야기 전개였던 점은 분명했다. 솔직히 소설 중반까지는 섬의 어두운 면이 잔뜩 부각되어, 비밀스러운 섬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러운 일에 말려든 형사가 탈출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흔한 음모론 이야기가 그러하듯  주인공은 어떻게든 섬을 탈출해려고 하며, 탈출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답답하고 초초해 했다. 그러니 마지막 장을 읽은 내 마음이 어땠을지는 읽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거다. 더 기막힌건 모든 이야기가 정리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순간, 맨 마지막에 있는 두 장에 한번 더 나를 후려쳤다는 - 이런 격한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다 - 것만 말해두겠다. 

소설에서는 지나치다 싶을만큼 그 인물의 내면, 특히 과거 인물이 겪었던 사건의 영향을 따라간다. 장르 이름을 붙인다면 심리 스릴러 라고 할 수 있으려나. 주인공 테디는 화제로 죽은 아내를 끊임없이 상기하며 괴로워하고, 그녀가 죽게 된 화재를 저지른 범인을 찾는 일이 그에게 안식이 될 거라 믿는다. 섬에 도착해서 그 범인을 찾아 헤매는 동안 그는 끊임없이 죽은 아내의 환상에 시달린다. 과연 그는 범인을 찾고 안식을 얻을 수 있을지 따라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사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으면 둘 중 하나이다. '이게 뭐냐 허탈하다' 는 반응과 '대단하다'는 반응일텐데, 양 쪽에서 중간은 없겠다 싶다. 그야말로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이다. 음모론 같은 이야기를 한창 풀어내면서 '주인공이 위험한데'라는 생각을 마구 하게 해서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그 주인공이 - 사실은 독자가- 만나는 결말은 말도 안돼, 이게 다야? 라는 마음이랄까. 이야기의 실타래를 따라가면서 실타래를 푸는 일이 재미가 있는 사람도 있고, 다 풀린 실타래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살인자들의 섬]은 실타래를 고생해서 풀었는데, 그 끝에는 사실 실타래를 풀 필요가 없었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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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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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흡입력있게 읽을 수는 있으나, 마지막이 다소 허탈하다? 다시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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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원의 문화읽기'라는 라디오 프로가 있다. 매일 방송을 하는데, 일요일마다 방송하는 코너 이름이 책읽는 영화관이다.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를 찾아서 영화와 그 원작 소설 이야기를 하고, 소설을 부분부분 읽으면서 출연자와 진행자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정말 재미있다. 난 정해진 시간에 들을 수가 없어서 팟케스트로 듣고 있는데 월요일만 되면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하루에 열번도 넘게 아이튠스에 접속한다. 언제쯤 되면 팟케스트로 올라오려나 이러면서 말이다.

문제는 8.14일에 방송한 내용인데, 영화가 <셔터 아일랜드>였다.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영화정도라고만 알고 있는데,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이다. 방송 시작부터 끝부분의 반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버려서 차마 난 지금 방송을 들을 수가 없다.

난 꽤나 이 방송에 충실한 청자인지라, 방송에 등장하는 책은 꼬박꼬박 찾아 읽으려고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런 방송을 듣고 다시 책을 읽으면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 책이 다른 경우도 있고, 아주 간혹이지만, 전혀 모르는 내용도 있다. 아무튼 찾아읽는 재미가 있는 프로인데, 이번 주에 등장한 책은 무려 '반전'이 있는 소설이라니. 이래선 방송에서 등장할까봐 방송을 듣지도 못하겠다. 실제로 7일 방송된 <오리엔트 특급열차 살인사건>은 범인이 방송에서 공개 되었던 전례가 있는지라 , 참고로 8월 한달은 추리소설 특집,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랄까.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어떤 소설에 '반전'이 있다는 말 만으로도, 굳이 그 반전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스포일러인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소설을 읽으면서 도대체 그 반전이 뭘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을텐데. 반전이 있다는 말 그 자체가 스포일러가 아닐까. 도댗 스포일러라는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걸까.

아무튼 이 소설은 당장 주문해서 읽어야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관계로, 오매불방 기다린 팟케스트를 듣지도 못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라니.

P.S. 오늘은 책 배송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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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8-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전이 있다는 말조차 스포일러인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저는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읽으면서 제가 그냥 오와-라고 감탄하고 싶거든요. 음, 이렇게 생각하는 저를 보면 어쩌면 저도 반전이 있다는 말조차 스포일러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그건그렇고,
후후, 하루님.
저는 이거 몇년전에 책으로 먼저 읽고 영화도 봤지롱요. 하루님이 하고 싶어하는 거, 전 다 했지롱요. 움화화핫 (자랑자랑)

하루 2011-08-18 23:0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반전이 있다는 말 자체를 듣는 순간부터
'언젠가 이 소설에는 반전이 있을거야'라는 의식을 하면서 읽게 되어 버려서 전 반전이 있다는 말조차 스포일러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살인자들의 섬]도 지금 그렇게 되어 버릴거 같아서 걱정이라는.

+흑,전 영화도 아직이고 책도 아직이고
책을 어서 읽어야 방송을 듣는데 빨리 읽어야 하는데.
내일은 회식이고... 다음은 주말이고... 흑흑 (미워요미워요)
 

 

 

 

구글이란! 

오늘은 페르마의 탄신일이랍니다.  저 멘트!!!!


 

p.s. 역시 오늘 같은 날은 다시 넘겨봐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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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정확하게는 오후 7시즘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강남에서 신촌 방향으로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은 적당히 사람으로 붐볐고 시끄러웠다. 출퇴근을 버스로 한 이후로 지하철은 특별한 볼일 이외에는 잘 타지 않아서인지 조금 어색해졌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지하철이 이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다니는지 몰랐다. 정차할 때 내는 바퀴와 선로의 소리도 지나치게 날카롭고, 운행중에 나는 소리도 지나치게 시끄러웠다. 버스를 타고 다닐 때는 지하철이 조용하다고 생각했는데 지하철을 타보니 그건 잘못된 기억이었나보다.

아무튼 지하철을 타고 가만히 주변 소리를 듣고 있는데 사람들의 대화가 스물스물 들린다. 창문으로 비치는 내 뒷자리에는 두 여학생이 , 아마 대학생 즈음 되지 않았을까,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니와 전화를 하면서 짜증을 내는 - 아마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문제로 어머니와 오해가 생겨 말타툼을 하는 모양이다 - 여학생과 친구의 대화는 빈말로도 들을 맛이 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귀를 막고 싶다는게 정확한 심정이다. 도대체 지하철에서 대화를 나누는 - 대화가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 사람들의 어휘란 왜 저리도 빈약한지를 곰곰히 생각했다. 젊은 이들의 대화의 절반은 비속서이거나 제대로 된 문장이 아니고, 어른들의 문장은 아이들보다 비속어가 조금 적을 뿐 아주 많이 다르지 않다.

TV에서는 매일 자막이 흘러나오고, 자고 일어나면 이상한 줄임말이 생겨나는 이 사회에서, 언어의 변화란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게 말해 시대의 흐름이지 가만히 들어보면 언어의 빈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언어와 사고는 하나의 연장 선상에 있는데, 언어는 곧 그의 사고의 발현이 아닌가, 참 요즘 언어를 혹은 대화를 듣고 있으면 언어가 사고의 발현이 아니었으면 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특히 이런 생각을 무라카미 류의 [엑소더스]라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했는데, 소설의 내용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발랄한 청소년 들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뒷 부분의 작가 후기만큼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때 읽었던 그 후기가 꽤나 지금까지도 강하게 날 지배하고 있는 모양이다. 적어놓은 기록을 보니 2003년 7월에 이 책을 읽었던 모양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과 약간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가 다르기는 하지만 난 저때 읽었던 후기에서 상당히 큰 고민을 했고, 지금도 그 고민은 진행형 인가보다.

길었지만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지하철에서는 조금 조용히 합시다. 입니다. 지하철은 너무 소음이 심합니다. 이래서 자가용을 구입하는구나 싶을만큼이요.

   
  그 자유학교 학생들과 만났을 때, 깜짝 놀랄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애들의 어휘력이라고 할까요. 사용하는 언어가 정말 풍요롭고 정확했습니다. 말 하나도 신중히 생각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이마다의 교육위원회로 파견 나갔을 때, 중고등학생들과 꽤 시간을 들여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애들은 어쭈구리, 졸라, 꾸려, 그런 상투적인 말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애들의 언어 순화가 문제가 아니라 표현 능력이 없는게 문제입니다. 어휘력이 극도로 빈곤한 겁니다. 그건 아마 당연한 일일 겁니다. 학교에 가면 자연히 그렇게 되니까요, 살아남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텔레비젼을 틀면 그렇고 그런 젊은이들의 언어만 나오니까 적어도 정체성 위기는 느끼지 않으니까요. 자기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간단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스컴이 여고생이나 젊은 애들의 언어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그렇게 간단히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술집에 모여드는 셀러리맨을 보세요. 그들만이 아는 빈약한 언어로 저들끼리 웃고, 저들끼리 뭐라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습니다. 개인으로서 대면하면 이야기가 되지 않아요. 이야기할 것도 없고, 대화 방법도 모르고, 커뮤니케이션이란 아무 노력도 없이 성립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유학교 아이들은 무엇보다 고독합니다. 등교거부라는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스스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언어를 찾게 됩니다. 그들은 책도 잘 읽고, 지금부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고, 타인의 이야기도 잘 듣습니다. 필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설명하기도 하고, 타인의 의견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들에게는 사활 문제와도 같습니다. 그 애들은 나와 인터뷰를 한 후에 그것을 정리해서 팩스로 보내왔습니다. 매스컴에 종사하는 세키구치씨에게는 정말 실례가 되는 말이겠습니다만, 그 애들이 정리한 문장은 유력 신문사의 기자가 정리한 것보다 훨씬 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정리해서 편집해놓았습니다. 그 애들은 노력없이 그냥 알 수 있는 것 보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입니다. 언어의 미묘한 차이에도 민감했고, 혹시 자신들의 말고 이 사람의 말이 어딘가 뉘앙스에서 차이가 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스컴 관계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의 범위안에서 인터뷰를 정리하려 합니다. 그 때문에 활자화되면 전혀 다른 뉘앙스의 말이 되어버립니다. 자유학교 학생들에게는 그런 점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생각한 것이, 이런 학생들이 앞으로 일본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키구치 씨, 개똥철학자같은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만, 강자, 그러니까 생태계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종은 거기서 진화가 멈추어 버리고 맙니다.

-무라카미 류 <엑소더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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