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혁명은 혁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히 많은 말을 통해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입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아는 남녀가 써내는 수많은 글로 나타난다. 

- 에릭 홈스봄 - 


오늘 볶는 커피는 아주 초큼은 특별해요.  

매일 매일이 특별하지만, 오늘은 아주 초큼 더! 

오늘, 그리고 한동안 밤9시의 커피를 찾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커피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뭣보다 '다른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는 사람과 나누고픈. 


한 명민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혁명주의자의 타계 소식에서 비롯됐어요.

역시 그 덕에,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도 알아차렸죠. 


그리고 자그맣게 혼잣말을 했어요.  

아 그래, 시월이구나, 시월. 10월.



에릭 홉스봄이 타계했습니다. ㅠ.ㅠ 

현지시각으로 10월1일. 어젯밤 들었습니다. 향년 95세. 

그리곤 떠올렸죠. 타협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탁월한 역사학자의 죽음이 시월에 놓였다는 사실. 그 사실이, 새삼 다가오네요. 


홉스봄 영감, 1917년 태어났어요. 뭔가 살짝 꿈틀하죠?

맞아요. 러시아 10월혁명(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던 해. 

그리곤 10월 혁명을 죽는 그날까지 늘 가슴에 품고 산 남자.

"10월 혁명의 꿈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내버리고 거부했건만, 사라지지 않았다."


아… 이 미친 고해성사라니요! 


그렇게 가슴에 콕 박힌 '혁명의 시대'를 죽을 때까지 내치지 않고, 

성찰을 바탕으로 한 신념으로 평생을 지탱한 역사학자의 죽음이 시월이라는 사실. 그것에 자꾸 미련한 의미를 두게 됩니다. 


어쩌면 혹시, 이 노친네! 

죽을 날(日)까진 무리였어도 죽을 달(月)은 얄짤 없이 시월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무고한 혐의(?)까지 둡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시월에 죽음을 맞은 또 하나의 혁명, 체 게바라(9일). 곧 다가올 그의 45주기. 


또한 스물일곱의 요절로 이름을 박은, 

전설의 뮤지션 3J 중의 한 명이자 혁명적 뮤지션, 재니스 조플린(4일). 그녀의 42주기. 


시월은 그렇게 혁명의 달. 

그러니, 저는 훅 끌리듯 '혁명'을 레시피로 한 커피를 볶습니다.

마성의 혁명커피. 에릭 홈스봄을 추모하면서 체 게바라와 재니스 조플린까지 블랜딩한. 


로스팅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홉스봄 영감, 자서전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미완의 시대》


85세의 나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며 여전히 세상의 불의에 맞설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노친네의 외침을 외면할 자신, 없습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여전히 짱짱한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죠.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내가 그 글을 유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p.508)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가들의 마음을 담은 커피. 

그들의 마음이 마냥 강퍅하리라 오해하지 마세요. 

세상을 바꾸기 위한 혁명적 마음이 얼마나 달달하고 알싸한지, 제 커피는 그것을 알려줄 거예요.  


아, 마침 찾아온 우리 커피집 단골.  

간혹 저와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는 그녀가 이심전심이었는지, 《혁명의 시대》를 들고 옵니다. 와우~ 이런 멋진 우연이! 


그녀도 이미 알아챘을 거예요. 

제가 오늘 어떤 커피를 만들어 제공할 것인지. 

비록 9시가 되진 않았지만, 이심전심 그녀를 위해 1000원에 '혁명의 시대 커피'를 제공합니다.  



우리 커피점 서재에 꽂힌 《혁명의 시대》에 눈길이 갑니다. 

3분의 1도 채 읽지 않고 방치해놓고 있었던 《혁명의 시대》. 

이 시월엔 다시 꺼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그녀가 말합니다. 


"우리 좀 통한다 그쵸?"


"하하. 절 너무 잘 아는 거 아니에요? 너무 많이 알면 조직의 후환이 있을 텐데~" 


"피, 그 조직 하나도 안 무섭네. 사실 그동안 회사 일 핑계로 쌓아놓기만 한 책이 너무 많아요. 홉스봄 할아버지가 죽어서야 다시 꺼내는 게 미안하긴 한데, 이달의 테마는 정했어요. 먼지 털어내기! 《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극단의 시대》 그리고 자서전인 《미완의 시대》까지 읽어보려고요. 그러면 '시대'를 관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와~ 다 읽고 얘기 좀 해줘요. 그말 듣고 커피 좀 만들어볼 테니까. 지연씨 말을 원재료로 블랜딩 해드릴 테니, 꼭이요."


"근데 아저씨, 요즘 마을공동체는 잘 돼 가요? 잘 돼야 할 텐데."


"뭐, 그저 그래요. 쉽지만은 않네요. 관료주의라는 괴물이 삼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그럴 거예요. 공동체, 지금 꼭 소멸된 단어 같아서 요즘 사람들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한편, 너무 무분별하게 남발돼서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홉스봄이 이런 신랄한 말도 했어요. "사회학적 의미에서 공동체들이 실재의 삶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 최근 수십 년 동안처럼 '공동체'라는 단어가 무분별하고도 공허하게 남발된 것도 없을 것이다." 마을공동체도 무분별하고 공허하게 남발되는 공동체의 하나가 아니도록 끊임없이 성찰하는 신념이 필요할 거예요. 그런 면에서 홉스봄은 마을공동체에도 영감을 줄 것 같네요."


"이런 이런, 나보다 더 많이 마을공동체를 안다니까.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하하. 별별 일에 관심도 많고. 오늘은, 재즈 어때요?"


"짜잔, 그렇지 않아도 빌리 홀리데이 앨범 갖고 왔어요." 


"야~~ 진짜, 졌다, 졌어.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니까. 오늘 안 왔으면 섭섭할 뻔 했어요. 진짜." 


"나 이래봬도 센스 짱이라니까요. 그래서 홉스봄이 마르크스와 혁명만큼 좋아했던 재즈도 당연히 준비했죠. 하늘에서도 들으라고 이렇게 짜잔~"

 

"맞아. 그러고 보니, 시월은 역시 재즈의 계절이네요. 홉스봄이 시월에 생을 마감한 이유가 마땅히 있다니까. 하하." 


"혹시 읽어봤어요?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Jazz Scene)》?"

 

"아뇨. 아직은." 


"홈스봄 영감, 재즈광이라서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냈어요. 역사에 대해서라면 불편부당한 자세를 꼿꼿이 유지했던 영감도 재즈 앞에선 어쩔 수 없었나 봐요. 흐물흐물해진다니까요. 되게 주관적이고 격정적으로 재즈에 대해서 아낌없는 헌사를 바치거든요. 물론 그것도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유가 있어요. "재즈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근간을 두면서도 주류 예술로 성정한 아주 드문 사례다." 아마, 더 오래 살았다면, '재즈의 시대'라는 책도 냈을지 모르죠. 호호."  


그리하여, 

그녀가 들고 온, 

홈스봄이 추도사까지 쓰면서 격하게 아꼈던 빌리 홀리데이의 선율을 BGM으로 깝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월의 가을밤, 빌리데이의 선율이 온 몸을 감쌉니다. 

비록 먼저 저 세상으로 가서 홉스봄으로부터 추도사를 받기도 했던, 빌리 홀리데이지만, 지금은 홉스봄을 위해 이런 노래를 불러줄 것 같아요. 

.   


 


"아저씨, 다음주,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가요?"


"가야죠. 시월이잖아요. 그리고, 혁명의 계절이니까. 홉스봄도 없고, 체 게바라도 없고, '대가의 시대'가 소멸되고 있는 있는 마당에 재즈라도 있어야죠. 하하. 깊은 슬픔이 담긴 재즈 같은 거. 혁명처럼 지독하며 진하고 슬픈 커피와 함께라면,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오늘 밤, 밤9시의 커피를 찾는 사람들에겐 '혁명의 시대 커피'와 함께 이 말이 적힌 쪽지를 살짝 건네야겠습니다. 


홈스봄이 손자들에게 전한 유언 같은 한 마디.

"호기심을 가지거라. 호기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거든."


작년에 나왔으나 한국엔 아직 번역되지 않은 홈스봄의 저서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How to Change the World)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영감의 이런저런 말씀이 오늘, 밤9시의 커피에선 반짝반짝 빛납니다. 


물론 내가 받아들인 대의가 실패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공산주의를 선택하지 말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상을 품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인류를 위한 유일한 이상이 물질적 풍요를 통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인류는 언젠가 멸종하고 말 것이다. 


미래는 더욱 낫고, 더욱 정의로우며, 더욱 활력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굿바이, 홈스봄 할아버지! 

당신의 죽음으로 '대가의 시대'도 거의 종결되어가는 것 같네요.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 당신 덕분에 알았습니다.

그런데 궁금해요. 그 바람결에 묻은 슬픔, 혹시 혁명이 흘린 것일까요?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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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1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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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7 0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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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8 2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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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9 0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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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물을 내리고 전등을 켜고, 깨끗한 물, 

그리고 맛 좋은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쉽다.

좀 더 어려운 것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아마도 십 수 년 만.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았다.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쏟아지는 비로 온몸을 감싸면서,

묘하게 희한하게도 은근 기분이 좋았다. 


왜 그럴까, 속으로 궁금했다. 


그리고, 파리를 갔다. 정확하게는 스크린을 통해. 

<미드나잇 인 파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파리. 

길(오웬 윌슨)은 말했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답다고. 

그는 그렇게 비를 맞았다. 


십 수 년 만에 흠뻑 비를 맞은 날, 

파리도 비에 젖었고, 내가 몰랐던 파리가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도 비에 젖은 파리를, 그 빗방울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리라. 파리에 가야 할 이유. 


우디 앨런이 그린 파리. 

환상이겠지만, 비 오는 서울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말도 안 돼. 

사람은 그렇게 갖다 붙이길 좋아하는 존재. 아니, 내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직 이르지만, 만추(晩秋).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호우시절.

류준형 팀장은 여전했고, 그는 나와 수다를 떨어서 모처럼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박경민 대리가 4년 여 전 죽었다는 소식. 놀람과 슬픔이 범벅됐다. 

그는 내가 만난 가장 샤이한 홍보맨이었다. 한참 늦었지만 명복을 빈다. 부디.


엘살바도르 커피, 깊진 않아도 깨끗하고 맛있었다. 

어쩌면, 가을날의 선물. 고마운 당신이다.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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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잔을 마신 후 도취 상태에 빠져 있는 이때를 줄여서 "BC(Blissfully Caffeinated, 더 없이 행복할 정도로 카페인에 취한)"라고 부른다. 이때가 되면 거미줄이 걷히고 정상 상태인 행복하고 긍정적인 나의 페르소나로 회망이 돌아온다."

-샤나 맥린 무어

 

이 마을에 축제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우리마을 음악가가 있다.

 

직업이 뮤지션, 아니다. 말하자면 '그냥 회사원'인 그녀, 음악이 그녀의 일상을 살게 하는 것 같다.

 

노래(보컬)도 곧잘 하고, 오카리나도 곧잘 부른다.

 

그녀가 속한 우리 마을 밴드의 이름은 '어루만지다 음악대'.

 

그들의 음악으로 우리네 마음을 달래도 주고, 어루만지면서 힐링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란다.

 

'어루만지다 음악대'는 어쩌다 꽂히면, 우리 커피하우스에서도 간혹 공연을 한다. 

 

 

그녀는 수시로 좋은 음악이 있으면 들어보라고 CD를 들고 온다.

 

오늘은 아침부터 찾아왔다.

 

 

"아저씨~ 이거 틀어주세요."

 

 

귀한 LP판을 들고 왔다.

 

 

"뭐에요?"

 

 

"마리아 칼라스! 아시죠?"

 

"응, 디바. B.C. 알아요. 비포 마리아칼라스. 칼라스 이전의 오페라와 이후의 오페라. 근데, 오늘 무슨 날이에요?"

 

"히히, 마리아 칼라스가 죽은 날이에요.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35주기란다.

그래서 우리 커피하우스의 오늘의 음악은, 마리아 칼라스.

 

그렇다. 진짜 디바. 세상에 더 없을 목소리.

 

태풍 올라온다고 비도 올락말락. 흐린 날의 가을. 칼라스의 음성은 제격이다.

 

"이 목소리, 도대체 대체할 수가 없어요. 그쵸? 아저씨? 칼라스를 알고 들으면 다른 오페라 가수들의 목소리가 시시해져요."

 

"그래도, 파바로티도 있잖아요."

 

"아, 인정. 파바로티까지는 인정. 그런데 그 이후가 없어요. 칼라스-파바로티-그런데 다음이 없는 게 우리의 비극 같애요. 슬퍼."

 

"우리 예쁜 안젤라 게오르규는 어때요?"

 

"에이, 아저씨. 수컷 티 낸다. 호호. 게오르규가 '제2의 칼라스'라는 소리도 듣고, 칼라스 오마주 앨범도 냈지만, 칼라스한테는 안 돼요. 도저히 넘어설 수가 없어요. 그 목소리, 나쁘진 않지만, 칼라스를 잇기엔 너무 약해."

 

그런 것도 같다. 칼라스를 누가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궁금한 것도 있다.

 

게오르규는 칼라스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여전히 넘고 싶을까?

무언가를 넘어설 수 없다는 '숙명'이 주는 감상은, 좌절일까? 안도일까?

 

나는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는데,

진짜 디바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몸에 전율이 살짝 흐른다.

신이 내린 목소리, 맞다. 인류의 축복이다. 이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제가 오늘의 음악 가져왔으니 어떤 커피 주실래요?"

 

때론 당돌한 그녀의 요구. 거절할 수가 없다.

또한 당연히 그래야 한다. 오늘의 커피는 BC. 마리아 칼라스를 그리는 커피.

 

그리스 이주민의 딸이었던 그녀였던 만큼,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이상한 사랑도 감안한다면,

지중해가 낳은 커피를 내린다.

 

아마, 그녀도 지중해를 그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 이곳을 찾는 사람들, 마리아 칼라스의 음색을 들으며 지중해를 떠올릴 테니까.

 

"자, 기다리시라. 오늘의 커피는 BC(비포 칼라스)입니다."

 

참, 커피를 내리는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나온다.

처음 칼라스를 접했던, <필라델피아>에 삽입된.

AIDS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깨게끔 만들어줬던 아주 좋은 영화.

 

베스트 씬이라 해도 무방한 장면, 칼라스의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의 3막에 나오는 곡.

 

아, 눈물이 찔끔한다. 커피에 이 눈물이 섞이면 무슨 맛일까, 미친 호기심.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봐도 눈물이 찔끔거리는 음악과 연기의 미친 앙상블이 떠오른다.

칼라스의 음성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놀라운 장면.

(물론 톰 행크스의 연기 또한 마찬가지!)

 

참, 연세대 주변 서대문 우체국 부근, '마리아 칼라스'라는 카페가 있다.

한때, 물론 오래 전, 나의 소개팅이 있던 그곳.

소개팅 그녀, 예뻤다는 외엔 얼굴은 전혀 기억나질 않고.

연인과 함께라면 참 예쁘고 좋은 곳, 추천!

 

또, 삼성역 부근 '카페M'이라는 대웅제약이 운영하는 와인 바의 지하,

'마리아 칼라스'라는 작은 공연장(홀)이 있다. 음향이 꽤 괜찮다.

역시 연인 혹은 친구와 와인으로 기분 내고 싶다면, 역시 추천!

 

아울러, 서울 모처엔 마리아 칼라스 모텔도 있다. 여긴 안 가봐서 함부로 추천 않겠지만.ㅋ

모텔 룸에는 칼라스의 음악이 흘러나올까, 약간 궁금하긴 하지만.ㅋㅋ

 

아래는,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기고문.

밤9시의 커피에서 'BC 커피'를 주문하기 전에 예습할 것. :)

 

============

 

천하의 비천한 속물에게 주어진 천상의 목소리

가을, 마리아 칼라스를 듣는 이유

 

 

1950년대 오페라를 주름잡았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 2008년 별세). 그의 오페라 단짝은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였다. 두 사람은 1951년 처음 오페라를 함께 했다. 이후 무대에 자주 함께 올랐다. 레코딩 또한 함께였다. 그들의 파트너십은 훌륭했다. 음악적으로도 그랬고, 오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공연 하나하나, 기념비적인 업적이자 전설이었다. EMI에서 남긴 전곡 레코딩은 아직 필적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전성기, 10여 년으로 길지 않았다.

 

그리고 1977년, 마리아 칼라스가 죽었다. 스테파노는 그녀를 이렇게 추억했다. “칼라스는 노래를 잘하는 여자였지, 노래에 딸린 여자는 아니었다. 사랑과 성공의 인생을 살다 그걸 잃고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오페라 계, ‘BC(Before Callas)’라는 말(프랑코 제페렐리)을 만들게 한 사람,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오페라를 나눈 사람,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도 사랑이 죽자 결국 무너졌다.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마리아 칼라스(1923.12.2 ~ 1977.9.16)였다.

 

벨 칸토 오페라를 다시 수확한 디바

 

벨 칸토(Bel canto). 이탈리아어다. 액면은 아름다운(Bel) 노래(canto). ‘아름답게 부르는 창법’을 뜻하기도 한다. 18~19세기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양식이다. 벨 칸토로 노래한다는 것은 극찬에 가깝다. 고도의 훈련으로 갈고 닦은 기교로 전체 성역(聲域)에 걸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든 성악도가 연구와 훈련을 통해 달성하고픈 창법일 것이다. 롯시니의 오페라에서 특히 강조된 창법이기도 하다.

 

여기에 가장 잘 들어맞는 소프라노가 마리아 칼라스였다. 1858년 롯시니는 벨 칸토 가수의 조건으로 내세운 바 있다. ‘전체 성역에 걸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목소리’와 ‘노력 없이도 화려하게 부를 수 있도록 훈련된 목소리’가 그것이었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금속성을 띠고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타고난 음색과 기교로 벨 칸토 오페라를 되살렸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칼라스만의 것이었다. 탁월한 표현력과 호소력 앞에 벨 칸토 오페라는 대중들과 다시 교합했다. 칼라스였기에 수확 가능한 것이었다.

 

디바(DIVA). 여신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오페라에서 천부적 자질이 뛰어난 소프라노 가수를 뜻하는 이 말에 가장 부합한 사람이라면, 닥치고 칼라스. 일부 팝 가수 등에도 붙여주지만, 자타 공인 칼라스의 아성에 도전하는 것은 언감생심. 그녀 이전, 레나타 테발디가 있었다.

 

칼라스는 사실 그녀의 대역이었다. ‘라스칼라의 여왕’ 테발디, 1950년 <아이다>공연을 앞두고 쓰러졌다. 대타로 나선 무명의 칼라스, 테발디에게 없는 목소리로 청중을 압도했다. 객석은 놀랐고, 오페라 계는 일대 지각변동이 일었다. 1인자의 뒤바뀜. 여태껏 소프라노 역사상 모든 영역을 넘어 메조소프라노 역까지 소화할 수 있는 가수는 오직 칼라스다. 진정한 디바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그녀의 노래 앞에선 복종을 맹세할 수밖에 없다. 여신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

 

우리의 귀가, 마음이 원하기 때문이다.

 

열등감 덩어리의 뜨거운 속물근성

 

 

허나 칼라스, 디바의 ‘품격’까지 갖추진 않았다. 스캔들 메이커, 트러블 메이커라는 표현, 그녀를 설명하기엔 역부족. 천상의 목소리, 타고났다. 엄청난 노력도 따랐다. 그러나 디바는 모든 것을 갖추진 않았다. 아니, 갖출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생활은 울퉁불퉁했고, 일상은 난폭하고 끊임없이 흔들렸다. 천상의 목소리와 천하의 속물 사이, 칼라스가 있었다.

 

그녀,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20대 중반까지 그녀는 굼뜨고 못생긴 뚱보였다. 심한 근시도 있었다. 가정환경도 불우했다. 소녀가장의 중압감을 일찌감치 짊어졌다. 학교와 가정 모두에서 사랑받지 못했다. 디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뚱뚱하고 어수룩했으며 귀엽지도 않았던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미운 오리새끼였다.” 욕심 많은 어머니와는 평생에 걸쳐 공개적인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칼라스, 성공에 대한 근성이 남달랐다. 성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자, 그녀는 엄청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30㎏ 이상을 뺐다. 그녀를 보는 세상의 시선이 180도 바뀌었다. 최고의 미인이라는 칭송이 쏟아졌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 우아한 백조로의 변신. 외양만 그러했다. 안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세상을 비웃었다. 세상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속물들의 세상, 그녀는 스스로를 더욱 그 속에 함몰시켰다. 스스로를 삶의 주인이 아닌 ‘바깥에서 지켜보는 증인’으로 규정한 것에서도 그것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대체로 나빴다. 음악을 빼곤 장점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진흙탕 싸움을 거듭하며 불화했다. 변덕은 죽 끓듯 심했고, 시기심과 질투도 남달랐다. 탐욕이 지배했고, 잘못은 늘 남 탓이었다. 남을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물론, 그것에 이유도 있고, 사연도 있지만, 칼라스는 자신을 난폭하게 내몰았다. 공연과 세간의 눈초리에 따라 고무줄 늘리듯 행했던 초인적인 다이어트, 은둔하면서 보낸 만년, 홀로 쓸쓸히 세상을 등진 최후 등 그의 생의 가지들은 어떤 오페라보다, 극적이며, 그의 목소리가 방출한 어떤 노래보다 풍성하고 구불구불했다. 성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속물. 그것이 틀린 표현은 아니다.

 

특히, 사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세기의 스캔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세간의 입방아를 몰고 다녔다. 30년 가까운 나이차에도 불구, 사랑에 빠졌던 사업가 메네기니(그는 엄청난 수전노였다!)와의 결혼과 이혼,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클린 케네디와의 삼각관계. 메네기니를 버리고 음악을 멀리하면서까지 오나시스에 빠졌던 칼라스였다. 사랑을 찾아 여자로서 행복을 찾아갔으나, 칼라스의 음악을 잃은 관객은 불행했을지 모르겠다.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오나시스와 재키가 붙었다. 그녀, 우울증에 시달렸다. 목소리에 금이 갔고, 유산을 겪었으며, 자살 기도까지 이어졌다. 예술은 힘을 잃어갔고 여인은 생의 윤기를 잃었다. 다만 어설픈 위안이라면, 오나시스는 죽기 전 “진정한 연인은 칼라스였다”고 말했다는 것? 한편, 진정한 연인이라고 일컬었던 여인을 지키지 못한 남자는 얼마나 지질한가. 디바에게도 사랑이 모든 것이었나 보다. 사랑을 따르다가 음악이 망가졌고, 음악을 다시 찾으려 했지만, 사랑이 죽자 그녀도 죽었다.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 맞다.

 

디바를 둘러싼 스캔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여신에게 도덕률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제우스의 못 말리는 바람기를 봐도 말이다. 누구도 그녀를 대신할 수 없다. 전성기,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티켓 전쟁은 물론 교통 전쟁까지 겪어야했다. 칼라스가 파리 관광 중, 가방을 잃어버리자 비행기가 출발을 늦추고 기다렸다는 일화도 그녀의 존재감을 증명한다. 헤밍웨이는 칼라스에게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라는 레떼르를 선사했다.

 

올해 마리아 칼라스의 35주기. 가을에는 그녀의 노래를 수확해도 좋으리라. 칼라스도 없고, 파바로티도 없는 오페라, 허약해졌다. 안젤라 게오르규? 칼라스에게 오마주를 바친들, 칼라스의 아우라엔 역부족이다. 두 사람을 이을 누군가를 아직 발굴하지 못했다.

 

새로운 디바를 수확하고픈 계절, 그게 힘들다면 칼라스(의 노래)를 계속 수확하는 수밖에. <필라델피아>를 꺼내든다. AIDS에 걸린 변호사 앤드류(톰 행크스)와 그의 복직투쟁을 변호하는 조(덴젤 워싱턴)가 교감하는 장면에서 나오던 아리아. 칼라스의 음색이다.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의 3막에 나오는 곡이다.

 

그래, 지금은 라디오나 TV 등을 통해 5년여를 들었던 훈계조의 쇳소리에 오염된 귀를 깨끗이 씻어야 할 때다. 마리아 칼라스를 권한다.

 

 

(※ 참고 : 『마리아 칼라스 : 내밀한 열정의 고백』(앤 에드워드 지음|김선형 역 / 해냄 펴냄), 위키백과, 브리태니커백과, 필름2.0)

 

[뷰즈 기고]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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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처럼 검은,

지옥처럼 뜨거운,

천사처럼 순수한,

사랑처럼 달콤한.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계절이 흔들린다. 바람의 온기도 달라진다. 

9월은 그런 시기다. 

여름은 이미 숨이 꼴딱 넘어갔다. 아이스 커피도 살살 꽁무니를 뺀다. 

커피하우스를 찾는 손님들의 표정도 미세하게 달라진다. 본인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계절, 작정하고 붙잡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바람이 되기 십상이다.

달라진 바람과 온도 차이에 마음 틈도 벌어진다. 

바람은 그 벌어진 틈으로 들어와 쉼표를 찍는다. 

가을은 그래서 마음이 쉬어야 한다. 끊임없는 변덕들 사이에서 쉬이 지치고 피로해지는 것이 이 계절이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9월이 특별한 이유, 있다. 

내 어느 9월에 틈입했던 추억의 편린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9월11일도 끼어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계가 품은 기억들 때문이기도 하겠다.

내 것은 아니지만, 혹은 우리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내 것이기도 하고, 우리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커피를 준비한다. 밤9시의 커피는 9.11을 그렇게 맞이한다. 

 

(1) 이 커피, 2001년의 그 시간을 위한 것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인류의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을, 2001년 9월11일.

 

그때 그 사건, 뒤늦게 깨달았다. 세계는 나와 상관 없는 일이 아니구나.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남의 일이라고 멀뚱하게 바라볼 일만은 아니구나. 

그제서야 어설프게나마 세계를 인지할 수 있었던 순간. 깨달음의 순간. 

 

그리고서야 어설프게 알았다. 사랑! 

마지막 순간,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밖에 없구나.

숨 쉬고 있다면, 사랑해야겠구나.

 

누구나 똑같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루하루 죽어간다. 

그럼에도 '살아간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사랑이 전부로다! 

죽기 직전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역시나 뒤늦은 자각. 

 

9·11을 둘러싼 숱한 담론과 해석,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9.11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깨달음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직간접으로 이를 다룬 다큐나 영화를 통해 9·11을 사유하는 편이었다. 

 

 

☞ <화씨 911> <루스 체인지> <플라이트 93> <레인 오버 미> <내 이름은 칸> 등이 그것이었다. 

 

그 가운데, 압권은 <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 

같은 아픔을 공유해도 서로 할퀴고 후벼파기도 하는 것이 사람살이임을 엿봤고, 누구나 상처 입고 피 흘리는 절망적인 세상에서도 서로 삼투하면서 타인의 슬픔에 접근할 수 있음을 알았다. 

 

참고로 제목. 다시 말하자면, 직역은 '나를 지배해달라'이나,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내 곁에 있어 줘'라고 의역될 수 있음을. 


(2) 이 커피는 2001년 이전, 1973년의 그날을 위한 것이다.

  

9월11일이 품고 있는 이날의 슬픔.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권의 대통령이 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죽은 날. 아옌데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과 인민들의 이상이 피노체트라는 개새끼 때문에 산산조각났던 그날.

 

당시, 아옌데가 집권한 칠레는 20세기의 '파리 코뮌'이었다. 

대기업의 국유화와 농지개혁의 촉진,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 등 '노동자 인민을 위한 나라'였다. 

 

그걸 증명하듯,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다큐 속, 한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정말 위대한 유토피아를 위한 꿈이었다." 

 

그러나 '인민들을 위한 나라'를 용납할 수 없었던 치사하고 속 좁은 미국, 농간을 부렸다. 칠레 경제의 핵이었던 구리의 국제가격을 떨어트리는 등 인플레와 생필품 부족을 유발했고, 피노체트라는 유치찌질한 하수인을 전면에 내세워 반동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군 앞에 포위 당한 아옌데, 피델(카스트로)이 준 소총으로 죽음을 택한다. 

투항도, 망명도, 애원도 않는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라고 외치며 장렬한 산화. 

 

9월11일, 1973년의 9·11. 

물론 비극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인민가수 빅토르 하라가 16일, 인민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23일에 피노체트 하의 칠레를 거부했다. 칠레의 비극에 방점을 찍었다.

 

그 어느해 9월, 내가 꼭 칠레에 발 딛고 싶은 이유다.

9월의 어느날, 핏빛으로 꺾인 사회주의 혁명을 기억하며 칠레산 레드와인을 마시는 이유.

1970년 아옌데의 인민연합 대통령후보 캠페인송이었던 빅토르 하라의 '벤 세레모스(Venceremos·우린 승리하리라)'를 들으며, 파블로 네루다의 詩를 꿍얼꿍얼 읊조리면서. 아직 맛보지 못한 칠레 커피도 함께. 

아마도, 메이비가 아닌 프로바블리, 살아선 경험하지 못할, 혁명의 순간을 그리면서.

 

 

앞서 언급한 <살바도르 아옌데> 외에도 이런 영화와 책이 있다. 

밤9시의 커피가 구비하고 있는 친구들. :) 

 

☞ <칠레전투:비무장 민중의 투쟁> 3부작. 인민의 희망과 좌절, 그 기록. 참으로 먹먹하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그 비극의 9·11을 재현한다. 

<일 포스티노>(파블로 네루다) <평화 속에 살 권리>(빅토르 하라) <영혼의 집>(아옌데의 조카가 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여성들의 삶을 통해 칠레의 역사를 보는)

 

책을 꼽자면,  

[빅토르 하라]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3) 그렇다면 비극만 있었느냐? NO! 

1973년 이전, 1906년의 9·11. 그러니까 100년하고도 6년 전.

 

20세기 들어 최초의 9·11은, 평화의 기념일이었다. 

스와라지(자치)를 통해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말씀해주신 간디는 이날, 

남아공에서 인도 노동자 3000여명과 함께 '비폭력 불복종운동(사티아그라하)'을 펼쳤다.

 

변호사였던 간디, 소송사건을 맡아 남아공으로 갔다.

인도인, 황색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당했다. 

기차 1등석을 샀으나 3등석으로 가라는 승무원의 요구.

 

간디, 간지나게 버텼으나 쫓겨났다. 

이유? 남아공의 그 유명한 아파르트헤이트(흑백인종분리)정책 때문이었다. 

굴욕 당한 간디, 깃발을 들었다. 굴욕에 저항하기 위한 3000여명과 함께 유색인의 지문을 날인하도록 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의미로 신분증을 불태웠다.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간디의 그 유명한 비폭력 불복종운동의 시초.

이 운동, 1960년대 마틴 루터 킹의 흑인인권운동과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현대음악가 필립 글래스가 재현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실황을 담은 영화 <사티아그라하>도 있다. 

 

한편으로 재밌는 역사.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차별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 일어난 날(1906년)과

미국의 폭력적 패권주의를 깨우는 계기가 된 날(2001년)이 같다는 것. 

 

4. 여기에 이젠 또 하나의 9·11이 덧붙여진다. 2012년 9월11일.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공식적인 개소를 알렸다. 

 

이것은 그러니까, 9·11의 '네 가지' 의미.  

 

밤9시의 커피는 네 가지 커피 메뉴를 준비했다. 

각각이 지닌 역사와 의미를 버무리고 블렌딩하여, 맛과 향을 낸.

BGM으로는 '벤 세레모스(Venceremos·우린 승리하리라)'를 깔았다.

 

밤9시의 커피를 찾은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9월11일의 메뉴 중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당신의 마음과 이야기를 듣는다. 밤9시의 커피다.  

 

1. 레인 오버 미

2. 칠레의 눈물 

3. 사티아그라하

4. 부엔 카미노(Buen camino·당신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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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퍼 무비(Caper Movie). 

<도둑들>(의 장르)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단어인데, 제목에 걸맞게 하나 같이 훔치는데 바쁘다. 강탈하고 절도하는 범죄를 향한 치밀한 준비와 실행과정의 묘사가 그렇다. 날고 기는 한국과 중국의 '전문가' 10명을 모이게 하기 위해 <도둑들>이 카드로 내세운 것은 으마으마한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이다. 2천만 달러. 군침이 돈다. 침이 고인다. 꿀꺽. 저 정도면 케이퍼, 할 만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태양의 눈물'은 맥거핀이로다. 

프로들께서 눈에 쌍심지는 물론 레이저까지 쏘면서 뎀비는 이 다이아몬드. 홍콩의 카지노에 고이 모신 이 다이아몬드의 '자리이동(?)'을 위한 위험천만한 모험담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 이거 순전히, 연애 영화다. 그러니까, 멜로물이야! 다이아몬드, 훔치고 독차지하려고 안간힘 쓰는 것 같지? 근데, 정작 그들 각자가 훔치고 싶은 건, 마음이었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꺄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로다. ㅠ.ㅠ

 


사랑은 마음을 훔쳐야 한다. 

한때, 90년대의 실없는 혹은 닭살표 우스개 소리. 

남자가 여자에게 묻는다. "당신, 도둑이죠?"  

여자, 갑자기 놀라서 되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요?"

남자,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내 마음을 훔쳐갔잖아요. (흐흐흐)" 

뻑뻑. 대패로 닭살을 깎아내야 했다. 그럼에도, 이 대화의 핵심은 세상에 더 없을 진실. 사랑은, 그래, 마음을 훔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것 쉽지 않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울 거다. 기가 막힌 재주를 가진,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절도의 프로께서도 마음을 훔치는 것만큼은 손사래를 칠 것이다. 이건 당최 용의주도한 계산이나 치밀한 계획과 실행도 통하지 않는다. 예측 불허다. 내 마음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하는 마당에 남의 마음을? 에구구, 섣부른 도둑질이 화만 부른다. 


물론 흥미진진하다. 

태양의 눈물을 향한 동상이몽의 한중 전문가들이 펼치는 전문성은 기가 막히다. 그런데, 그것들 하나하나가 어떻게든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훔쳐보겠다는 의지에 속한다. 즉, 부분집합이라는 거다. 잠파노(김수현)는 '미친년' 예니콜(전지현)을 향해 줄곧 순정이다. 마음을 훔치고 싶어 안달이다. 안 그런척 해도 숨길 수가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잠파노의 모든 것은 예니콜에 속한다. 극중 그의 마지막 외침이 마침내 그녀의 마음을 훔쳤을지도 모르겠다. "복희야 사랑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내가 꿈을 잘못 샀어." 

첸(임달화)를 향한 씹던껌(김해숙)의 마지막 고백인데, 진짜 잘못 샀다는 뜻이 아니라, 반대의 것으로 들린다. 10년 만에 벅찬 오르가슴을 선사한 첸을 향한 씹던껌의 찬란한 고백. 두 사람, 서로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티파니(태양의 눈물 소유자)를 잠깐 이용할 뿐이다. 그들, 진짜 훔치고 싶었던 것을 훔쳤다! 안타까운 결말이긴 해도.


삼각구도 역시 마찬가지. 

마카오박, 뽀빠이, 그리고 '으~~마으마한 쌍년'(예니콜의 표현) 팹시. 뽀빠이는 팹시의 마음을 빼앗고 싶었고, 마초상남자("여자는 치마는 짧고 머리는 길어야 해") 마카오박은 안 그런 척, 오해의 늪에 빠진 팹시의 마음을 돌리고 싶다. 배신 당했다는 생각에 마카오박에 대해 빠득빠득 이를 가는 팹시지만,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엔 마카오박의 진짜 마음을 알고 싶은 것이다. 이 엇갈린 마음의 행보와 훔치고 싶은 사람의 마음. 뽀빠이가 마카오박의 뒤통수를 치는 것도 '질투'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훔쳐간 수컷에 대한 수컷의 질투. 극중 앤드류(오달수)는 그런 상대가 없어 안타까울 뿐.ㅋㅋ    


그러니까, 케이퍼 무비가 맞다.  

무언가를 훔치는 것을 묘사한 영화 장르가 케이퍼 무비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맥거핀을 써가며 용쓰는 <도둑들>은 케이퍼 무비가 맞다. '도둑들'이라는 제목 앞에 '(사랑하는 마음의 훔치고 싶은)'이라는 말이 생략돼 있는 거지. 주도면밀한 연애의 기술과 방법이 담긴 <도둑들>은 그래서 또한 로맨틱한 멜로물이기도 하다. 내 눈엔 그 도둑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질)하고 싶어서 태양의 눈물을 이용한 거다. 


아무렴,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좆도 아니야.~ 

<도둑들>의 멋진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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