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에 의하면) 세종은 '성군'이라는 호칭에 가장 부합한 임금이다. 진짜 그만한 성군이 없단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소설의 대가, 김별아 작가는 그랬다. 소설을 쓰기 전, 철저하게 역사를 공부하고 파악하는 그의 작가의식을 감안하면, 그 말은 100%일 것이다. 오죽하면, 우리는 조선조 처음으로 '대왕'이라는 직함을 세종에게 부여했을까. 그 뒤 정조대왕이 있지만, 글쎄, 잘은 모르지만, 정조에게 대왕은 좀 어색하다.


그런데, 그의 즉위는 좀 놀라운 데가 있다.

다른 게 아니라, 그는 장자(맏아들)가 아니다. 그것도 셋째 아들.

장자에 대한 절대적인 우선권이 부여된 시대, 그는 왕에 즉위했다.

물론 나는 자세한 이유와 배경을 잘 모른다.

양녕과 효녕의 실기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충녕에 대한 아비(태종)의 신뢰와 왕의로서의 자질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왕위에 올라서 성군이 되고 대왕이 됐으니까, 그건 아비의 정확한 판단이었다.


헌데, 왕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왜냐!

태종도 다섯째 아들이라는 '핸디캡'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두 번째 왕 정조도 둘째 아들, 세 번째 왕 태종도 다섯째임을 감안하면,

태종으로선 장자에 당연히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그리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충녕은 간택됐다.


아마 아비는 갈등했을 것이다.

정당성이냐, 왕권의 안정이냐. (물론 그것은 연결돼 있기도 하다.)

충녕이 왕권 안정에 적합한 인물이자, 성군으로서의 자질을 발견한 아비의 선택은 옳았다.


그런데, 궁금했던 건, 충녕 본인은 왕위에 오를 생각이 있었을까?

공부가 가장 쉬웠고, 형들과 달리 놀 줄도 모르고, 잘은 모르지만, 범생 분위기가 자욱하게 풍겼을 그에게 그런 야망이 있었을까?

찌질한 것은 아니어도, 그는 딱 FM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육두문자를 지껄이는 세종은 완벽하게 허구다!)

충녕은 야망 없는 날라리를 꿈꾸는 내 기준에서는 슈퍼울트라 비재미.

친구할 생각은커녕, 신하였어도 그를 임금으로 모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 간단하다. 재미 없을 것 같아서!

그의 뇌구조를 뒤적이면 한 83.27%는 '백성의 고단함'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본투비 킹.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그런 궁금함에서 출발한다.

이제야 영화 이야기에 본격 들어가는 셈인데, 장규성 감독은 충녕을 찌질한 샌님으로 설정한다. 아비에 의해 세자로 책봉된 뒤에도 후덜덜. 형들한테도 미안하고,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언감생심, 왕이 다 뭐다냐! 야망도 없고, 성장에 대한 욕심도 없으며, 그렇다고 책 외에는 삶을 즐길만한 건덕지도 없어 보인다.


영화는 '왕자의 거지'의 모티브를 차용, 심약한 충녕이 어떻게 세종이라는 성군으로 거듭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결정적 계기!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만듦새, 영 아니올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야 만다.

 

심약한 샌님, 충녕이 어떻게 임금이 되고자 하며 성군이 되는지,

그 역사적 상상력의 소재,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가! 

허나, 소재로만 끝난다. 아쉽다.

연출력이 가장 큰 문제로 보여지는데,

충녕과 우연히 뒤바뀐 노비 덕칠의 왕 행세는 어설프다.

충녕이 백성들이 고단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세자 행세를 한다고 모질게 맞고, 고난을 당하는데, 대역죄인이라는 어명까지 내려온 마당인데, 너무 쉽게 빠져나간다. 세자임을 증명할 방법도 충분히 있을 터인데, 덕칠은 궁궐에서 너무 무기력하고, 충녕의 민생탐방(?)은 작위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살짝 아깝다.

변희봉, 백윤식, 김수로, 임원희 등 연기력 좋은 배우들의 연기가 어딘가 끌려다니는 느낌이다. 극에 완벽하게 묻어있지 않다.  

 

그리고 연기 잘'했'던 젊은 배우, 주지훈의 복귀작. 그는 덕칠일 때보다 충녕일 때 더 빛난다. 확실히 그 간지, 제 아무리 분장을 하고 열연한다손, 노비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연기가 완벽하다거나 충분하다는 뜻, 아니다.

배우 주지훈, 충분히 몸이 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재밌다. 주지훈의 캐스팅.

마약사건으로 불가피하게 군대에 가야했던 주지훈의 처지.

그리고 '벌써?'라는 논란이 따르고 있지만, 그는 어쨌든 복귀했다. 

그것, 극중 충녕의 탈피와 묘하게 맞물린다.

샌님 나부랭이였던 충녕의 깨달음 그리고 성군의 탄생. 


이 캐스팅, 충분히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주지훈 역시 마찬가지일 듯하다.


영화의 만듦새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렸지만,

이 영화에 왜 별 세 개를 줬냐고?

물론 이유, 있다!

만듦새만 놓고 보면, 꽝이요, 두 개로도 충분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만듦새에 대해 툴툴거리면서도,

나는 진정성 같은 걸 느꼈다.

어떻게든 잘 만들고 싶은 필사의 노력 같은 게 내 마음에 닿았다.


나는 감독과 배우들 모두 아무런 관련도 호감도 없다.

그저 연기 잘하는 배우 주지훈이 다시 배우로서 뿌리를 내리는 정도?

(그가 군대 가기 직전, 내가 매니저로 있던 카페에 화보를 찍으러 왔던 어설픈 '인연' 정도는 있다.ㅋ 눈앞에서 주지훈을 보면서, 감탄했다. 저 길쭉길쭉한 간지, 깎아지른 외모. 남자가 봐도, 주지훈, 아름다웠다!) 


관객들과 호흡하고 싶다는 열망을 감지했고, (어느 영환들 그게 없으랴마는!)

뭔가 지금의 정치적 세태와 맞물려 좋은 지도자를 갈망하는 어설픈 정치의식까지 느꼈다.

그러니까, 별 하나는 그 잘 만들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에 대한 화답이다.


일부러 영화를 권하지는 않겠지만,

이 장면만큼은 찡하였다. 


백윤식이 분한 황희 정승, 야인으로 살면서 일갈한다! 임금의 도리에 대해.

충녕임을 알아차리진 못한 채. (근데, 황희가 충녕을 못 알아보는 것, 아무리 영화적 장치라지만, 이해가 안 돼!ㅠ.ㅠ)


"백성의 고단함을 돌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이더냐?"


충녕이 세종으로 탈피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 한 마디!

충녕이 180도 변신하는 것이 감성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어설픔에도,

영화를 관통하는 이 호통(?)은 찡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세상에서 멸종한, 더 이상 우리에게 없을 지도자(최고통치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는 결론을 짓는다. 국민성군은 더 이상 없다.

안철수? 개뿔! 그는 그저 온건한 보수이자, 포악한 자본주의에 살짝 균열을 가게 하고 싶은 체제 지킴이다. 그만한 대안이 없다는 게 참 아쉬울 뿐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많은 사람들, 안철수를 삶의 태도와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것에 대한 신물, 단순한 트렌드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우습게도 단언하건대, 혁명이 없는 한, 세상은 바뀔 수 없다!

성군을 향한 열망도, 결국 내 삶의 미세한 부분에서도 바꾸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말만 번지르르하다. 안타깝게도 그것, 생명력이 없다.

삶의 최소주의와 일상의 정치의 최소주의를 일치시켜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만, 내가 씨부렁한 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라.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결코 심각한 영화가 아니로소이다~ㅎㅎ 

<선생 김봉두> <이장과 군수> 등의 장규성 감독은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참,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다. 마지막 풍경.
노비 덕칠과 양반집 규수 수연(이하늬)가 가정을 이뤄 애들 순풍순풍 낳고 산다.
노비와 양반의 결합. 당대로선 이뤄질 수 없는 커플일텐데, 감독의 어떤 의도가 담긴 장면이리라.
물론 수연은 몰락한 양반가문의 영애인데, 계급을 넘어선 사랑과 결혼, 그것은 늘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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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상상, 마을 롹페스티벌!

<말리>가 개봉한대요. 기사를 보고선, 심장이 두근, 했습니다. 밥 말리. 노래로 평화와 인류의 하나됨을 꿈꾼, 1981년 5월, 서른 여섯의 나이로 요절한 레게혁명꾼. 작렬하는 태양과 푸른 파도를 품은 레게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노래꾼. 가난하고 비참했던 시절, 울음과 함께 시작한 노래로 평화를 끊임없이 갈구한 그를 스크린으로 만날 생각을 하니, 두근.

그러고 보니 여름은 음악이자, 노래입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관심을 덜 뒀던 비틀스의 철학자 '조지 해리슨'을 담은 <조지 해리슨>을 내놨고, 최근 개봉했죠. 영국으로 이어가면, 올림픽. 개막식을 이끈 건, 영국 팝(노래)이었죠. 롤링스톤스, 더 후, 퀸, 셱스피스톨스, 더 클래시 등 영국 팝의 전설이 개막식을 지배했고, 역시 압권은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헤이 주드'가 장식한 피날레. 뭉클했습니다. 노래 한 곡이 주는 힘이란. 그 노래 하나가, 모든 차이를 넘자는 런던올림픽의 슬로건 '하나의 삶'을 뚜렷하게 각인시킵니다.

'음악 없는 여름'이란, '마을 없는 서울'이 아닐까요? ^^ 주변을 둘러보세요. 곳곳에 음악입니다. 요즘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톰 크루즈가 락커로 등장한 <락 오브 에이지>, 락이 세상의 전부였던 호시절의 풍경을 신명나게 보여주고요. 지난주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이 끝났지만, 우리에겐 아직 펜타포트 락페스티벌(10일 개막)이 남았잖아요. 9일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리고, <원스>의 그녀 '마르게타 이글로바'는 제천에 이어 15일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가진다는 것.

이 락페(락페스티벌)의 계절, 음악은 폭염과 함께 찾아오는 축복. 부디 즐겨주시라. 그리고 내년엔 '마을 롹 페스티벌'도 열려주시라. 마을롹페에서 미친 헤드뱅잉을. 음악으로 평화로운 마을의 우리들. 그러니까, 우린 지금 8월을 만난 거죠. 인사하셨어요? 안녕, 팔월. 너의 노래가 듣고 싶어. 노래와 함께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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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부터 이맘 때면,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이 있어요. 

느닷 없이 닥쳐온 사건에 심장은 때론 격하게 반응을 하죠. 

그리고 특정 시간을 품은 심장은 때가 되면 몸과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 말을 다시 되씹어야 했던 그날. 2004년 8월4일.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꽃을 먼저 꺾어 식탁을 장식하듯, 

신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데려가 천국을 장식하신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울었습니다. 

당시 울면서 썼던 누나에 대한 추모.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일. 

슬픔을 참고 견뎌내는 일 외에 그 사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습니다. 

매년 8월4일, 1년에 단 하루,

심장이 시켜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어요.

아름다운가게의 도움을 받아서. 

 

올해도 열립니다. 

행여 집에서 팽팽 놀고 있는 책이나 CD 등이 있다면 보내주세요. (무료택배 방법 있슴다!)

아님, 추모바자회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에 오셔서 자원봉사나 물건을 사주셔도 되고요.

뭐, 별로 보고 싶진 않겠지만, 행사 당일 저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ㅋ 


참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사람입니다. 정든님 정은임. 

<냉정과 열정사이>는 그랬습니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다."

 

아무렴요. 

누군가, 정은임은 누군가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있을테니 행복할 거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렇게라도 정든님을 우리는 기억하고 삽니다.

살아남은 자의 숙명이자 슬픔.

 

영원한 나의 누나. 

이젠 늙지 않는 나의 누나.

안녕, 은임 누나. 잘 있나요?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

8월4일(토) 아름다운가게 서 제7회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열려


8년여 전, 그날 즈음,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하늘도 슬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며칠 뒤, 비가 많이 오는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4년 8월4일. <정은임의 FM영화음악> 등을 통해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였던 그녀가 떠난 자리, 그녀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정든님, 정은임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청춘의 어느 한 시절을 정은임에 빚진 사람들, 그 사람과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아름다운 하루를 열기로 했습니다. 매년 8월4일,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날입니다.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는 8월4일(토) 모입니다.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에서 추모바자회를 엽니다. 우리 세상과 사회를 조곤조곤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 아직 기억합니다. 지난 2011년을 제외하고, 매년 8월4일 연 추모바자회는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합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입니다. ‘정은임 아나운서 팬페이지’(www.worldost.com)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 등과 함께 열고 있습니다.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이뤄집니다.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에 모여 봉사활동도 하고 수집된 물품을 판매합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수익금은 아름다운가게에 전액 기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해왔습니다.

지난 1회 바자회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됐습니다.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 영상회를 가졌으며, 바자회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성금으로 활용됐습니다. 3회(136만2천원), 4회(155만4450원) 5회(187만2010원) 6회(111만원) 바자회 수익금 전액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 성금에 보태졌습니다.


이번 바자회도 자발적인 기증과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은 무료택배(1577-1113)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은 도서, 음반 등을 주로 받으며, 옷을 제외한 가로*세로 30cm 정도의 잡화류도 가능합니다. 무료택배 기증은 8월1일(수) 도착 분까지 가능하며, 직접 갖다 주셔도 됩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분은 당일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에 오셔서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정든님 정은임,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합니다. 

안녕, 정든임 정은임.

 

다음은 8주기 추모행사 내용입니다.


1. 행사일 : 2012년 8월4일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 (서울 종로구 종로1가 24번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지하2층 B215, 연락처. 02-732-6006)

3.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 http://www.beautifulstore.org/Join/Giving/Process.aspx

 

관련사이트

http://www.worldost.com  정은임 추모사이트 ‘정든님’

http://www.cyworld.com/bastian2004  정은임 미니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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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단골집이 있다는 것의 즐거움에 대하여

(* 일정 등에서 일부 '오타'가 있어서 다시 보냅니다. 미안합니다. 저, 여름 꼴딱~ 먹었나 봐요. ㅠ.ㅠ)

이탈리아 볼로냐. 협동조합 도시로 널리 알려진 그곳은 대학도시, 아동도서전으로도 유명하고요. 뭣보다 제가 가장 끌리는 건 '미식'의 고장이라는 점인데요. 1954년 볼로냐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마게리타 바의 친구들>. 이 영화, 마게리타 바를 찾는 별의별 인간 군상이 다채롭게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단골'들. 결혼식 전날 다른 여자에게 뿅 가서 파경에 이른 남자, 사기죄로 감옥 간 사람, 젊은 피아노 선생에게 빠져 개인교습을 받는 영감님, 가수의 꿈을 가진 친구를 골려 먹는 꼴통. 그 이력하곤, 휘유~ 화려합니다.

헌데 이들의 관계, 재밌습니다. 마게리타 바를 중심으로 지지고 볶는 건 일상다반사. 그런 와중에 이 단골들, 1년에 한 번 단체사진을 찍어 유대감을 유지합니다. 이런 마을 단골집, 절로 웃음이 나고, 생각만 해도 포근해요. 볼로냐의 숨겨진 매력인가 싶기도 하고요. 역시 단골집 하나 정도 있어야 삶이 눅눅해지지 않을 것 같아요. 건축가 황두진은 말합니다. "술집이건 밥집이건 찻집이건 단골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게다가 그 집이 오래되었거나 적어도 앞으로 오래될 거시라면 그 행복은 더욱 커진다." 

어때요? 동감? 콜? 말 없어도 내 취향과 기분을 알아서 커피를 내놓고, 지금 돈이 없어도 부담없이 외상을 하며, 오래 죽치고 있어도 딴지 안 거는 단골집. 나도 결국은 그 집의 풍경이나 소품이 되는 단골집. 공간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단골집. 거대자본 프랜차이즈의 획일화된 것보다 마을의 필요와 요구, 정서가 고스란히 반영된 단골집. 

마을공동체엔 그런 단골집, 있겠죠? 한 번 둘러보세요. 당신에겐 어떤 단골집이 있는지. 혹시 없다면 그런 단골집 만드는 건 어때요? 마을평상에 소개한 <카모메식당>도 한 번 보시고요. 볼로냐에 가면 마게리타 바에도 들러 봐야겠어요. 볼로냐의 미식도 꼭 맞보고요. 참고로,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에 의하면, 탐식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이며, 미식은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자는 것"이래요. :) 

제 기준이지만, 함께할 때 가장 행복한 세 가지! 
아름다운 마을공동체,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맛있는 커피! 
당신에겐 어떤 세 가지가 있나요? '네 가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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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여기 마을이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지난 주말, 서울광장에서 열린 '도시농업박람회'에 다녀왔어요. 다양한 식물(채소)들과 여름 인사 나누면서 룰루랄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요. 제 옆을 스치며 지나가던 한 여성, 이런 혼잣말을 하더군요. 
"시장 한 명이 바뀌니까, 서울이 이렇게 많이 바뀌네." 

그말 듣고, 주억거렸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부는 마을이라는 산들바람, 마을공동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한 노력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 모든 것, 시장 한 사람 때문이 아니죠. 우리네 마음이 바로 '서울시장'의 형태로 드러난 것일 테니까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마음! 그래서, 이 말을 끄집어냈습니다. 

"공동체를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공동선을 논의하고 정의할 수 있고, 공동선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경제 민주화와 같은 자기 관리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우리는 민주주의 정치에서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토피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구와 정치는 이미 멕시코의 치아파스와 오악사카에서 자율적인 공동체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원칙과 과정으로 정치·경제적 조직을 만든 수많은 공동체가 있고, 이것은 우리에게 다른 세계는 가능함을, 그리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의 증거를 보여줍니다." (폴리투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 

아, 오해는 금물! 마을공동체는 '무조건 하자'는 형식이나 주장의 것, 아닙니다.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사항을 행동으로 옮겨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에요.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말했죠. "배고픈 자가 책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화폐가 똥 싸지른 경제위기 혹은 공황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절, 마을공동체를 향해 손을 뻗는 것, 어쩌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당신과 맞잡은 손이고 싶어요.

6월 20일.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떠올립니다. 탄생 110주년.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마을을 떠올립니다. 참, (사)마을 사무실에 오시면, 폴리투스가 언급한 공동체, 멕시코 치아파스의 공정무역 커피를 드실 수 있어요. 커피스토리텔러 '미쓰(터) 킴~(킴양아~)'하고 불러주세요. 여름엔 씨원한 아이스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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