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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1 : 사랑하다 ㅣ 나는 오늘도 1
미셸 퓌에슈 지음, 나타니엘 미클레스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영원히 내 가슴 속에 각인돼 생을 이끌 그 순간. ‘사랑사고’라고 명명했던, ‘One Fine Day’로 각인된 그날 그 순간. 1996년, 어느 햇살 좋은 가을날의 주말. 내 설렘과 사랑이 시작됐고, 훗날의 용기와 통증을 동반하기 시작한 날. 누군가를 보고 ‘아찔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경험한, 그것은 어쩌면, 일생에 단 한 번 찾아올까 말까한 그런 순간이었다. 사고의 경위는 이렇다.
우리의 접속장소였던 학원의 야트막한 정원에서 나는 음악에 마음을 맡기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싶었다. 가을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는데, 뭐랄까, 눈이 아득해졌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파란빛 재킷, 얼굴을 감싸는 챙 넓은 모자와 푸른 선글라스로 한껏 분위기를 낸 모습이 가을 햇살과 뒤범벅됐던 순간, 아주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심장은 박동속도를 높였고, 쿵쿵쿵 우렁찬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느닷없이 당하고야 마는. 준비도 예고도 없이 맞닥뜨리는, 사랑사고였다. 그렇게 작동한 심장을 부여잡고, 다운타운을 거닐다가 들어간 곳이 백화점 옥상 테라스에 위치한 커피하우스. 가을풍경이 잘 보일 것 같다며 들어간 그곳의 커피 한 잔 가격은 25센트. 가난한 학생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착한 가격. 커피와 함께 각자의 기억을 이식했다. 커피와 함께 한, 커피 향 같은 그녀와 마주한 그 순간,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김없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누군가와 말을 섞고,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웃고, 어슬렁거리며 작은 고민과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젠 그녀 생각 없이도 보내는 날이 꽤나 많지만, 느닷없이 그녀가 떠올라선 그저 이렇게도 묻고 싶은 날도 있다. “잘 지내나요, 당신...?”
사랑은 그래서, 혁명이다. 모든 것을 바꿔버리니까. 송두리째 바꾸길 원한다면, 사랑 외에는 방법이 없다. 미셸 퓌에슈의 말, 절절하게 공감한다.
“그 사람을 사랑한 이후로 나는 정말 엄청나게 변했어요. 그의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라 사랑 자체가 나를 변화시킨 거죠. 요즘 나는 음악, 풍경, 햇빛, 인생, 모든 것을 즐겨요. 마치 모든 것이 한층 강렬하고 진실해진 것처럼 말이죠.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감상적인 된 걸까요? 사랑은 신비로 가득하다.”(pp.72~73)
신비하다. 그녀가 내게 번짐으로써 나의 생은 180도 방향을 틀었다. 신자유주의에 포획된 경쟁자로서의 촉은 꼬리를 내렸다. 사랑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 덕분에 나도 누군가에게 번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커피 한잔이 그런 번짐이고 싶었다. 뭣보다 그녀가 내게 건넸던 그 말처럼 ‘건강하게’ 사회에 썩어 들어가고 싶었다. 사랑의 의무.
삶이 의무투성이라면 지겹고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를 돌봐야 했다. 사랑하기에 가능한, 사랑받는다는 사실에 따르는 의무, 특히 사랑하는 상대가 가치 있게 여기는 나를 소중하게 돌봐야 할 의무. 미셸 퓌에슈는 “사랑이란 상대의 필요를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에너지가 전환된 것은 사랑하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길지 않다. 굳이 사랑을 기나긴 설명으로 채워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듯, 책의 한 줄 한 줄은 내 사랑에 느낌표를 찍는다. 건강하게 사회에 썩어 들어가기 위한 나의 모든 결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다. 그 모든 과정은 어쩌면 모험이었다. 주류사회의 요구와 유혹에 늘 초연하게만 버틴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사랑하다’라는 행동의 철칙에 나를 견주어야 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내 사랑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묻고 물었다.
“사랑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대가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 걸맞은 인간이 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에너지는 엄청나다. 이 에너지는 진정한 개심(改心), 삶의 방식의 전적인 변화, 다른 가치 체계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p.92)
누군가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형성하도록 도와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내 사랑에 대한 존경이자 태도이다. 사랑은 단순히 느낌이나 감정이 아닌 행동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니까. 실천함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 《나는, 오늘도 1 : 사랑하다》가 건네준 귀한 속삭임이다.
책은 사랑이 축복임을 새삼 알려준다. 사랑을 일개 감정으로 알고 있다면 오산이요, 오해다.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실존의 강력한 상징”이라는 미셸 퓌에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랑할 때 밖에는 삶이 아니다. 삶은 사랑하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냥 살아지는 것이다. 흉터가 남는다손, 아픔이 있다손, 그것을 피해선 안 된다.
사랑에 대한 숱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방법론’과 ‘지침서’는 깡그리 무시해도 좋겠다. 이 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뭣보다 사랑을 감정이나 느낌이 아닌 행동과 실천의 것으로 꾹꾹 눌러 담으면 헤매기만 하는 당신의 사랑도 해방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돌봄으로 번지는 관계를 사랑의 핵심으로 삼을 것.
“어느 경우든, 처음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이란 돌보는 것이다. 상대를 돌보고 관계를 돌보며, 또한 자신을 돌보는 것.”(pp.96~97)
사랑 덕분에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내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됐다. 내가 누구인지 눈뜸으로써 사랑은 좀 더 크게 다가왔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언제나 사랑, 사랑을 할 것이다.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것이 삶이므로. 사랑이 나를 울게 하고, 사랑이 나를 파멸시키더라도, 사랑이 나를 나답게 하고, 나로서 살게 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니까, 사랑은 명사가 아닌, 영원히 동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