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풀리지 않을 오해를 안고 무덤에 있는 여자가 있다.

그 오해는 어떻게든 끝끝내 지속될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오늘 커피수업 하면서, 커피 내리면서, 커피 마시면서 그녀를 생각했다. 


그 오해, 그녀가 하지도 않은 말 때문이다. 

"빵이 없으면 고기(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그 말, 앙투아네트를 상징하고 대변하는 거의 모든 것이다.

허나, 역사가들에 의하면 그 말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녀를 단두대로 몰아낸 자코뱅당이 자신들의 공포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어낸 것이다.  http://swingboy.net/532


10월 16일은 그녀가 붉은 피를 쏟으며 사라진 날(1793년)이자, 

세계 식량의 날이다. 


재밌는 우연이다. 또 흥미로운 우연이 덧붙여진다. 

내가 좋아하는 책 [커피가 돌고 세계사가 돌고]의 류이치로 교수에 의하면,

앙투아네트는 카페(살롱)문화와 커피 보급에 힘을 쏟았다.  

 

 

이유가 있었다. 커피를 좋아해서라기보다(물론 진짜로 좋아했을 수도 있겠지만) 18세기 프랑스 귀족층의 커피문화를 이끈 뒤바리 부인(바리 백작 부인) 때문이었다. 앙투아네트, 문화적 소양을 높이 평가받은 뒤바리 부인을 따라잡고 싶었다. 


그러나 카페와 커피 보급에 힘을 쏟은 앙투아네트의 행동은 부메랑이 되어 그녀에게 날아왔다. 그 카페에 함께한 계몽 사상가의 연설에 카페 시민, 카페 대중은 절대왕정에 맞서는 시민의식을 키웠다. 


아뿔싸, 그녀의 신분과 지위를 위태롭게 할 자양분을 그녀 스스로 북돋은 것이다! 어쩌랴. 그것이 역사의 운명인 것을. 그녀가 물을 준 커피와 카페는 시민계급 형성에 윤활유가 됐고, 마침내 시민계급이 추동한 혁명은 그녀의 목을 날렸다. 


그러니까, 오늘의 내가 내리고 수업했던 커피는 역사의 쓴물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의 커피. 

갑자기 추워진 가을 날씨는 그녀를 기억하라는 신호였을까. 

식량과 식품에 대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라는 계시였을까.  


여전한, 그리하여 영원히 봉인될 악플에 시달릴 무덤 속 앙투아네트의 눈물은, 또한 여전하며 영원히 구조적 불평등에 시달릴 식량 분배의 문제는 커피를 통해 흘러내린다.  


다시 반복하고 상기해보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하지도 않은 말)에 대한 악성 댓글이 프랑스대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문제가 아닌 부르봉 왕가의 사치와 부패가 곪고 곪아서 터졌다. 1%의 문제였다. 


식량의 문제는 곧 생존이며, 이것은 당면한 현실의 문제로서 저항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1%만 배부른, 99%가 굶주리는 신자유주의·금융자본의 탐욕의 도가니가 인민들의 봉기를 돋는다. 혁명은 지금도 여전히 필요하다. 


그렇다면,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던 커피는 초거대권력이 된 자본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아니, 없을 것이다. 자본은 또 다른 모습으로 세습화될 것이니까.  


나는 오늘 '마리 앙투아네트'의 검은 눈물을 뽑고 마셨다. 

내일(10월 17일)은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더 춥단다. 

식품정의를 생각한다. 좋은 커피, 함께 마시고 싶다. 

바로, 당신과 함께. 가을밤에. http://www.wisdo.me/3796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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